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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평화사상은? 인도 방문기-4월 7일 김승국 Gandhi Peace Foundation 방문 오늘은 델리 중심에 있는 Gandhi Peace Foundation을 찾아가서 Vora 부부를 만났다. 남편 Rajiv Vora는 Gandhi Peace Foundation의 기관지 편집장(55세; 그는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다 투옥된 적도 있다)으로, 그의 부인 Niru Vora 박사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Gandhi Peace Foundation은 간디의 암살 사건 이후 인도 안팎의 유력인사들이 제창하여 세운 대표적인 간디 관련 시설이다. 이 곳에서는 간디의 사상을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일, 간디 평화사상을 실천하는 일을 주로 한다. 필자는 Gandhi Peace Foundation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V.. 더보기
캐시미르 분쟁 해소의 길 인도 방문기-4월 6일 김승국 Rashid 의원 인터뷰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캐시미르 출신의 국회의원 Abdul Rashid Shaheen(54세, 전직 산업장관, 무슬림계 인물로 National Conference당 소속)의 관저(인도의 국회의원들은 대통령 궁 앞에 있는 고관들의 관저 단지에서 살고 있다)를 오전에 찾아가 캐시미르 사태에 관하여 인터뷰했다. 다음은 그의 말을 요약한 것이다. 캐시미르 사태를 해결하는 길은 간단하다. 첫째, 인도-파키스탄 양측의 무력충돌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있다. 그러나 양국의 의회 등 정치권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것이 문제이다. 둘째, 양측이 서로 교류와 교역의 폭을 넓혀 가면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열 수 있다. 캐시미르 지역을 에워싼 군국주.. 더보기
'오로빈도'에서 인도 방문기-4월 3일 김승국 Aurobindo Ashram 인도는 역시 종교의 나라이다. 인구 70만 명의 폰티체리의 시내에 Ashram(道場; 신앙 수련원)이 3백 개나 된다고 한다. 이들 Ashram 중에서 가장 이름 난 오로빈도(Aurobindo) Ashram을 찾았다. 이 Ashram을 세운 Aurobindo는 일찍이 인도의 독립운동(영국 제국주의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투옥된 뒤 감옥 안에서 회심(回心)했다. 그는 출옥 이후 운동을 그만두고 수십 년간 칩거하면서 명상과 집필생활을 하면서 Aurobindo Ashram을 세웠다. 그는 이 Ashram의 연장선상에 있는 생태 공동체(오로빌 생태 공동체라고 부름; Ashram과 다른 기능을 수행)를 폰티체리 근교에 세우는 공적을 남겼다. Aurobin.. 더보기
Dalit의 고난 인도 방문기-4월 2일 김승국 Dalit 슬럼가 첸나이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아침 밥을 서둘러 먹은 다음 첸나이 시내의 Dalit 슬럼가(빈민촌)로 직행했다. 약 3킬로미터의 썩은 계곡물을 따라 오두막 집을 지어놓고 사는 Dalit 빈민들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대나무 껍질로 만든 집 안의 시멘트 바닥 위에 누워서 잔다. 방 한 칸에 한 가족이 우거하고 있으며 살림이라곤 간단한 취사도구에 옷가지 정도. 집의 벽에 낡아빠진 영화배우 사진이 붙여 있는 집이 많다. 그래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 우선적으로 텔레비전을 사는 듯 TV세트가 있는 집이 간혹 눈에 띈다. 텔레비전 매체가 이들의 고한 삶을 위로해주는 수단인지, 삶의 고난을 망각케 하는 마취제인지 알 수 없었으나 TV의 영상매체는 이들의 삶의.. 더보기
간디와 불가촉 천민 인도 방문기-4월 1일 김승국 간디의 체취가 남아 있는 불가촉 천민들의 공동체인 All India Harijan Sevak Sangh을 방문했다. 불가촉 천민은 영어로 ‘Untouchable'로 불리우나 구체적으로 Dalit 등으로 분류된다. 사람 축에 끼지 못하니 접근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untouchable’이란 꼬리표를 붙였다. 필자가 보기에 멀쩡한 사람인데 왜 이들이 조상 대대로 인도에서 접근 금지대상으로 되었을까? 불가촉 천민과 접촉하면서 인도의 지독한 계급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Dalit의 고난 인도의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한다. 그중의 25%가 Dalit이다.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Dalit이다. 옛날 조선시대의 백정처럼 인간 이하의 푸대접을 받는.. 더보기
소와 공존하는 저속 사회 '인도' 김승국 인도 방문기 (1) 2003년 3월 30일 밤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 항공기는 7시간 30분의 긴 항해 끝에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31일 0시 40분에 착륙했다. 착륙시간이 다가오자 다음과 같은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은 세계 종교의 중심지이자 인도 대륙의 중심지인 델리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렇다. 나는 세계 종교의 중심지이자 神들의 나라 인도에 발을 내디뎠다. 나는 앞으로 3주일 동안 ‘神들의 나라’ 인도 탐방 길에 나선다. 그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6일 동안(3월 30일~4월 5일) 한국의 ‘NGO 활동가 인도 연수단’에 합류하여 여러 곳을 둘러볼 것이다. 그리고 이들 일행과 헤어져 델리로 되돌아 온 다음 필자의 관심사인 인도-파키스탄 분쟁 현장(캐시미르 포함)을 방문하거나 자료 .. 더보기
세계 평화 포럼에 다녀와서 (3) 김승국 일본인의 조용한 ‘반핵운동 수출’ 지난호에 이어 일본인의 ‘미세하며 조용한 국제연대 운동’에 관하여 언급한다. 거대 담론을 즐기는 한국의 운동가들이 일본인처럼 째째하게 메모하는 습성이 없어서 국제회의의 미세한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미세한 국제연대 운동에 능한 일본인들은 이번 세계 평화 포럼에서도 조용하게 반핵운동의 수출 전사 노릇을 했다. 운동을 수출한다는 표현이 좀 어색하지만, 운동의 문화 · 운동 스타일 · 운동 양태는 수출 · 전파 · 보급할만한 것이다. 한국의 3보1배 운동 문화를 홍콩에서 전파했듯이, 일본의 평화 활동가들도 일본 특유의 ‘반핵운동 문화’를 조용하게 수출한다. 한국의 활동가들이 왁짜지껄 운동 문화를 수출하는데 반하여, 일본인들은 발걸음 소리를 죽여가며 ‘히로시마 형 반핵.. 더보기
세계 평화포럼이 ‘반핵’을 주창한 배경 김승국 세계 평화포럼(이하 ‘WPF’)의 프로그램 중 반핵(핵무기 반대 · 핵무기 철폐)에 관한 것이 많았으며, 반핵운동에 주력하는 일본인들이 대거 참가했다. 그러면 WPF가 ‘반핵’을 주창한 배경을 더듬어 본다; ① 캐나다 국민들 · 뱅쿠버 시민들의 반핵에 대한 관심이 높다. 1960년대부터 뱅쿠버 시민들은 반핵운동을 열심히 해왔으며 캐나다 정부는 핵무기 철폐를 위한 중견국가 그룹을 주도하고 있다. ② 이 것만으로 설명이 불충분하다. 결정적인 것은, 핵무기의 존재의미가 없는 탈냉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이 최첨단 · 소형 핵무기(사용 가능한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 소련 사이의 핵개발 경쟁으로 점철된 냉전이 종식되었기 때문에 핵무기의 존재이유가 없고 반핵운동도 사라져야.. 더보기
세계평화 포럼에 다녀와서 (1) 김승국 2006년 6월 23~28일에 캐나다의 뱅쿠버(Vancouver)시에서 세계평화 포럼(World Peace Forum 2006; 이하 ‘WPF'로 표기함)이 열렸다. 캐나다에서 그것도 뱅쿠버에서 WPF가 열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캐나다라는 국가와 뱅쿠버라는 도시가 세계평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끝에 WPF를 개최했다고 볼 수 있다. 평화의 나라 캐나다, 평화의 도시 뱅쿠버 캐나다는 미국 · 한국 · 일본 등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평화를 더 선호하는 나라이다. 역사적 태생이 비슷한 이웃 나라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이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가 캐나다이다. 캐나다는 미국처럼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다른 나라를 침공한 적이 없으며, 서부개척 기간 중 원주민과 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처럼 인디언을 학살하면서 .. 더보기
일본 평화대회 참가기 (3) 김승국 지난해 12월 7~9일에 일본 평화대회가 열린 이와쿠니(岩國)의 기지 현황과 기지반대 운동(주민투표)의 양상을 기술한다. 이와쿠니 기지는 제국의 군대가 줄곧 주둔한 곳이다. 1938년 일본 제국의 해군이 이와쿠니에 비행장을 건설한 다음 1940년에 해군항공대가 발족했다. 그 당시 이와쿠니는, 일제의 군대가 한반도·중국 대륙을 점령하는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 이와쿠니는 야마구치(山口) 현의 동쪽 끝에 있으면서 히로시마 현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육상의 요충지일 뿐 아니라, 일본 최대의 내해(內海)인 ‘세토 내해’의 길목에 있는 해상의 거점이다. 이런 탓인지 일본의 패전 직후인 1945년 9월에 미군 해병대가 이와쿠니에 주둔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의 기지이었던 이와쿠니가 미국 제국주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