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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캐시미르 분쟁 해소의 길

인도 방문기-4월 6일

 
김승국  


Rashid 의원 인터뷰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캐시미르 출신의 국회의원 Abdul Rashid Shaheen(54세, 전직 산업장관, 무슬림계 인물로 National Conference당 소속)의 관저(인도의 국회의원들은 대통령 궁 앞에 있는 고관들의 관저 단지에서 살고 있다)를 오전에 찾아가 캐시미르 사태에 관하여 인터뷰했다. 다음은 그의 말을 요약한 것이다.

캐시미르 사태를 해결하는 길은 간단하다. 첫째, 인도-파키스탄 양측의 무력충돌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있다. 그러나 양국의 의회 등 정치권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것이 문제이다. 둘째, 양측이 서로 교류와 교역의 폭을 넓혀 가면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열 수 있다.

캐시미르 지역을 에워싼 군국주의 분위기로 인하여 캐시미르의 민주주의 발전이 늦어지고 있다. 캐시미르에서 공정한 선거가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이다. 인도 정부군과 파키스탄 군이 서로 싸우고 있으나 캐시미르 사람들은 캐시미르人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더욱 중요시한다. 양국 정부는 이 점에 유의하여 사태해결에 앞장서야한다.

나는 캐시미르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캐시미르가 양국의 전쟁터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양국의 어떤 원리주의 정당도 캐시미르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캐시미르 지역은 본래 세계적인 관광지이며 문화․종교적으로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큰 지장이 없이 지냈다. 그러나 1947년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 기간의 혼란 이후 이 지역주민들을 엄습한 빈곤이 모든 폭력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캐시미르에서는 교육받은 젊은이들의 취업이 거의 불가능하며 정부의 공무원 채용이 거의 유일한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나 그것마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캐시미르 곳곳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소식이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전무한 실정이다.

캐시미르의 경제적인 하부구조는 전무하며 관광 산업, 수공업 산업이 곤경에 처해있다. 이런 판에 정치상황까지 악화되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한 요즘 캐시미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통 큰 마음으로 캐시미르를 양분한 경계선을 뛰어 넘어 인도-파키스탄이 서로 의사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양국의 지도자들은 캐시미르人들에게 경제발전 권리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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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reshi 교수 인터뷰

 

이날 오후 6시경에 인도의 명문대학인 네루 대학 교수 M.H. Qureshi의 자택(대학 구내에 있음)을 찾아가 캐시미르 사태에 관하여 인터뷰 했다. 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독립하기 전에 캐시미르 주민의 다수는 무슬림이었다. 지배자가 힌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무슬림이 서로 사이좋게 지냈다. 그런데 힌두의 지배자가 캐시미르를 인도에 귀속시킨다는 조약에 서명하는 바람에 정치적 분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분리독립 이후 인도에 있는 무슬림은 파키스탄으로 되돌아가고 파키스탄에 살던 힌두교도들이 인도로 되돌아오는 대혼란 속에서 인도 전역에서 6백만 명이 죽었고 캐시미르에서도 수십만의 사람들이 죽었다. 이 사건으로 캐시미르에 증오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에서 상실감이 큰 파키스탄이 군대를 보내 캐시미르 주둔 인도군에 저항하면서 군사적인 분쟁이 촉발되었다. 이 군사적인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양측을 가르는 경계선을 긋고 유엔에 사태해결을 위임했으나 큰 성과가 없었다. 유엔의 캐시미르 개입이 실패한 것이다. 이것이 1988년 이전의 상황이다.

1988년 라지브 간디 수상이 이끄는 내각이 저지른 부정선거로 캐시미르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이에 자극을 받은 여러 집단들의 군사적인 활동이 급증했다. 이윽고 테러리스트의 폭탄 투척행동이 나타났는데 거의 모든 사건이 파키스탄 쪽에 책임이 있다. 파키스탄은 겉으로 민주주의인체 하지만 오랫동안 군사지배 체제를 지속하고 있는바, 파키스탄에서 분쟁의 불씨가 상존하는 것이 파키스탄 군사 파시즘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파키스탄의 군사 파시즘은 캐시미르의 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강경한 군국주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여기에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집단인 무자헤딘까지 가세하여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물론 인도 쪽의 강경파도 캐시미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기본적으로 양국의 정치가 캐시미르 사태에 개입하여 테러, 무력 공격이 자주 일어난다. 캐시미르 지역은 지금도 힌두-무슬림이 서로 이웃처럼 사이좋게 지낸다. 한반도에서처럼 캐시미르 역시 동족끼리 총을 겨누며 싸우며 아군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옛날에는 한솥밥을 먹고 살던 동족, 이웃, 형제, 친지들인데...

한반도의 분단선처럼 캐시미르를 양분시킨 경계선이 그어진 다음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던 동족끼리 분리되어 오랫동안 교류․교역 없이 지내왔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군사적인 분리일 뿐 인간적인 분리(人情의 분리)라고 볼 수 없다. 캐시미르에서 활동하는 3대 정치세력(이슬람 원리주의 당, JKLF 해방전선 등)이 정치․군사적인 분리를 강화하는 가운데 캐시미르인들에 의한 독립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측면에서 보면, 이스라엘 정부-팔레스타인 정부-팔레스타인 지역 거주민 사이의 3각 관계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인도에 거주하는 무슬림인데, 이들 소수파를 배려해야하는 인도 정부의 입장이 캐시미르 해결에 정치적 부담을 주고 있다.

간디는 ‘캐시미르 이야말로 인도에서 종파폭동(communal riot)이 일어나지 않는 모범적인 지역이다’고 격찬했다. 이러한 평화공존의 문화(평화의 문화)가 주효한 탓인지 1999년까지 캐시미르에서 종파폭동이 전무했다. 1995년 캐시미르의 농촌지역에서 종파폭동이 일어나자 이에 충격을 받은 평화 그룹들이 힘을 합하여 캐시미르에서 평화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인도와 캐시미르 현지에서 활동하던 몇 몇 그룹이 캐시미르에서 평화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무슬림들이 힌두교도에게 사죄하기에 이르러 화해의 길이 열렸다.

이러한 화해의 길이 더욱 넓어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경제에 있다. 캐시미르의 경제가 워낙 좋지 않다보니 일부 젊은이들이 돈을 받고 테러 활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 테러 용병들이 화해의 길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캐시미르에서의 경제 발전이 평화의 회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평화의 회복과 관련된 경제난을 설명하면 캐시미르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관광산업의 전멸을 들 수 있다. 둘째, 오랜 기간의 무력충돌로 인한 전쟁과부-교육 받지 못한 젊은이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도 경제 활성화에 지장을 주고 있다.

그럼 캐시미르에서 평화의 대안은 무엇인가? 평화의 대안은 간단하다. 캐시미르인들은 지금도 人情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캐시미르 사람들은 간헐적인 총격전의 뒷전에서 서로 의사소통을 잘 하고 있다. 문제는 인도-파키스탄 양쪽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캐시미르 분쟁이 증폭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도-파키스탄 양쪽의 정치권이 아주 대담한 결단을 내리면 사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다. 특히 파키스탄의 군부정치가 사라져야한다.
파키스탄의 군부 파시즘이 캐시미르 무력공격의 원인 제공자이다. 물론 인도의 일부 정치권도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캐시미르에서의 무력․종파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민간단체들의 평화 포럼(forum)이 캐시미르 현지에서 열려 평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점이다. 아직 캐시미르 현장에서 맹렬하게 활동하는 평화운동 단체는 드물지만(캐시미르 지역에서 드러내놓고 평화운동 운운하다가는 테러 집단의 표적인 된다), 힌두-무슬림간의 종파적인 화합(communal harmony)을 이루는 가운데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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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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