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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간디와 불가촉 천민

인도 방문기-4월 1일


 
김승국  

 

간디의 체취가 남아 있는 불가촉 천민들의 공동체인 All India Harijan Sevak Sangh을 방문했다. 불가촉 천민은 영어로 ‘Untouchable'로 불리우나 구체적으로 Dalit 등으로 분류된다. 사람 축에 끼지 못하니 접근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untouchable’이란 꼬리표를 붙였다. 필자가 보기에 멀쩡한 사람인데 왜 이들이 조상 대대로 인도에서 접근 금지대상으로 되었을까? 불가촉 천민과 접촉하면서 인도의 지독한 계급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Dalit의 고난

 

인도의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한다. 그중의 25%가 Dalit이다.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Dalit이다. 옛날 조선시대의 백정처럼 인간 이하의 푸대접을 받는 이들이다. 이들 Dalit는 대물림한다. 역사․사회․종교․문화적 관점에서 Dalit가 규정되어 왔다. 고대의 인도를 침략한 아리아인들이 피부색깔에 따라 4계급(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을 나눌 때 수드라 축에도 끼지 못한, 노예만도 못한 비인간(非人間) Dalit는 위의 4계급이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따로 산다. 4계급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 물을 마실 수도, 교육을 받을 수도, 힌두 사원을 출입할 수도 없는 완전히 소외된 사람들이다.

Dalit가 되는 것도 브라만이 되는 것도 힌두교의 윤회사상에 따른 業報(Karma)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인도에서 종교가 계급차별을 낳는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하는 게 문제이다.

이런 계급사회를 거부한 간디는 불가촉 천민을 하리쟌(Harijan; 神의 사람)으로 높이 부르며 불가촉 천민을 사람으로 대접해줄 것을 인도인들에게 호소했다. 이런 자신의 뜻을 몸소 보이기 위해 간디는 불가촉 천민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이곳에서 했다.

이 곳은 Dalit의 쉼터이자 교육의 터전이다. 이곳 학교의 교사‧학생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들은 우리들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 내용은 알 수 없으나 靈性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간디 화장터

 

All India Harijan Sevak Sangh을 빠져나온 우리들은 간디를 화장한 곳을 찾아갔다. 뉴델리 번화가를 지나가는데도 대낮에 나무 그늘 밑에서 늘어지게 낮잠 자는 사람들이 눈에 띤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축 늘어진 몸으로 오수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게으름뱅이로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정경이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한국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낮잠이나 자니 인도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지”라며 핀잔할 것이다.

조금 뒤 관청가를 지나가는데 로터리 안의 나무그늘 밑에서 공무원인지 회사원들인지 알 수 없으나 삼삼오오 짝을 지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점심 먹고 나오며 고작 이쑤시개를 쑤시며 약간의 여유를 부리는 서울의 직장인들에 비하면 이들의 포카 게임은 신선놀음 아닌가? 조금 전에 낮잠 자는 델리 시민을 게으름뱅이로 폄하하려고 했던 마음이 바뀌어 카드놀이 하는 샐러리맨들이 부러웠다. 낮잠 자는 것도 카드놀이 하는 것도 인생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니 부러울 수 밖에.

드디어 간디의 시신을 화장한 곳 Samadhi of Mahatma Gandhi에 도착했다. 간디의 화장터는 외국인 관광객용 델리 지도에 필수적으로 표기되는 유명한 장소이다. 많은 이들이 찾아와 간디 화장터에 분향하며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명했다. 간디의 정신이 사라져 가는 인도의 사회풍토를 애석해하는 이들이 많다는데, 이 더운 날 폭염을 무릅쓰고 간디의 화장터를 방문한 사람이 꽤 되는 걸 보면 아직도 간디는 인도에서 살아 있는 듯했다. 국내에서『인도에 간디가 없다』는 책이 출판되었는데, 이 화장터에서만큼은 간디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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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인도 남부의 중심도시인 첸나이(Chennai; 옛 지명 마드라스)로 가기위해 국내선 공항으로 향했다.

첸나이는 인도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는 약7백만 명이다. 첸나이는 타밀족들이 많이 사는 타밀나두(Tamilnadu)의 州都이다. 타밀라두 주의 주지사는 유명한 여자배우인데, 이 배우가 출연한 유명한 영화에 심취한 노인들이 영화 속의 여자 주인공과 현실 정치인인 주지사를 혼동하여 지금도 몰표를 몰아준다고 한다. 인도인들이 얼마나 영화를 많이 보며 영화가 인도 서민들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줌을 알 수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과 현실 정치인을 구분 못할 정도로 영화광들이 많은 듯하다.

인도에서는 영화 말고는 별로 여가생활을 즐길 게 없기 때문에 그렇게 영화에 미친다고 한다. 영화 관람료가 상당히 비싼데도 영화관은 만원이라고. 필자가 호텔 방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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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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