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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야생의 인도 기행 (15)

김승국

 

델리 행 특급열차 안에서-1

 

1월 21일 오후 4시 55분. 드디어 델리 행 특급열차 ‘라즈다니’가 뭄바이 역 구내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필자는 에어콘‧침대가 달린 2등칸에 올라탔다. 델리까지 1,400킬로미터를 17시간 달려야하니까 내일(1월 22일) 아침 10경 종점에 도착한다. 난생 처음 장거리 기차 여행이어서 그런지 가슴이 설렌다. 인도 대륙의 서쪽 지방 일부를 가장 빠른 열차 ‘라즈다니’로 달리는데 17시간 걸린다면, 도대체 인도 대륙 전체를 완행열차로 달리면 얼마나 걸릴까?

열차의 서비스는 좋았고, 승차하자마자 간식과 인도 차가 계속 나왔다. 영성 어린 힌두음악이 흘러나와 흥취를 더했다. 가사를 이해할 수 없으나 코브라가 춤추듯, 주문을 암송하듯, 원시부족이 드럼치듯하는 힌두 음악이 이국풍을 더했다. 인도 대륙을 쾌주하는 열차 안에서 인도 차를 마시며 힌두 음악을 듣는 묘미란...

열차는 뭄바이 근교의 빈민촌을 지나고 있다. 도색이 벗겨지고 건물 벽의 틈이 갈기갈기 벌어진 아파트 위로 까마귀 떼가 날아다닌다. 너른 들판에 지는 황혼은 눈물겹도록 환상적이다.

앞자리에 앉은 인도인과 말문을 텄다. 그는 화학계통의 엔지니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인도는 개발이 뒤지고 가난한 나라이지만, 매우 민주적인 국가이다. 치안이 좋고 언론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어 있으며 공공 서비스가 훌륭하다’며 조국 예찬론을 펼쳤다. 특별히 애국주의자가 아닌 듯한데, 자랑삼아 자신의 인도론을 펼쳤다. 허풍이 좀 센 사람 같았다.
 
이윽고 자신의 여성편력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그는 신바람이 났다. 필자는 건성으로 들으면서 차창을 내다보았다. 경지정리가 안 되어 옹기종기 토지의 구분선이 그어진 들판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 너른 들판의 군데군데에 10~20미터의 거목들이 심심한 듯 서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김제 평야가 가장 넓은 들판이라고 귀가 따갑게 들어온 필자의 눈에 인도의 들판은 광대하게 비쳐졌다. 반도인(한반도의 거주인)의 자연을 보는 눈동자의 폭과 대륙인(인도 대륙 거주인)의 눈동자 폭이 달라, 눈 조리개를 무한대로 넓히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몇 년 전에 드넓기로 소문난 만주벌판을 지나쳤으나 유감스럽게 비행기로 건너는 바람에 상공에서만 눈요기하는데 그쳤다. 그러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대륙의 들판(그것도 인도 대륙의 일부)을 횡단한 것이다.

헌대 인도의 광야에 의지하여 사는 민초들의 삶은 고달팠다. 열차가 달리는 대평원 지대의 강수량이 상당히 부족한데다 관개시설이 열악하여 농업생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수로 개발이 시원치 않아 농민들이 제때에 농사를 짓지 못한다. 게다가 낮은 소득의 농민들을 억압하는 계급‧사회적 차별이 가중된다. 조선시대 중엽 이후 조선 농민의 초근목피가 연상되었다. 인도의 농민운동이 강한 연유가 이러한 농업모순에 기인함을 알 수 있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여, 고난에 찬 농민의 모습을 멀리에서 나마 지켜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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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35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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