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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야생의 인도 기행 (13)

김승국

 

善人과 惡人의 공존


 
뭄바이 대학 깔리나(Carlina) 캠퍼스에서 뭄바이 대학 본부가 있는 Church Gate 지역으로 가기 위해 완행열차를 몇 차례 탓다. 필자는 기차여행을 즐긴다. 특히 속도가 느린 완행열차 타기를 좋아한다. 필자의 이런 희망을 짓밟듯 한국에서는 완행열차가 완전히 사라져 살맛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뭄바이 시와 같은 거대 도시를 관통하는 주요 교통체계가 완행열차이었다. 그래서 열일을 제치고 완행열차를 타기로 했다.

완행열차는 서민들이 발이어서 그런지 낮인데도 만원이었다. 시내버스처럼 문짝이 없이 온통 개방된 열차의 난간에 승객들의 몸을 매단 채 달리고 있었다. 처음 보기에 위험하게 보였지만, 모든 승객들이 너무나 태연하게 난간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어서 ‘의아한 안심감’이 들었다. 열차 안에 있는 것보다 밖의 난간에 매달리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 닥쳐 피서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시원한 느낌을 받으려고 승객들이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리는가보다.

난간에 서 있는 게 위험한 것 같아서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열차 안은 좀 어두웠지만 서민들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차분하게 명상하는 듯 앉아 있는 승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침묵을 깨기라도 하듯 필자가 Church Gate의 역에 당도하면 알려달라고 물었더니 여기저기에서 관심을 갖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善人)과 이야기하면서, ‘이토록 착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

착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인도의 기차 정거장에는 검표원이 없다. 기차 요금이 워낙 싸서 검표원이 서 없는 줄 지레 짐작했으나, 사정은 달랐다. 필자가 옆 사람에게 “한국에는 기차역마다 검표원이 서 있는데, 인도에는 왜 없느냐?”고 질문했더니 “인도 사람들은 정직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난해도 모두 기차표를 성실하게 산다”고 대답했다. 인도인들보다 잘 사는 한국 사람들이 지하철 표를 사지 않고 슬쩍 빠져나가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적자 요인 중의 하나라는 뉴스를 곱씹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가난해도 성실하게 기차표를 사는 공중도덕이 인도 사회의 버팀목이지 않을까?

그러나 인도에는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즐비하게 서 있는 릭샤 운전사들은 필자가 외국인인줄 알고 요금을 높여 부르기 일쑤이었다. 택시 운전수들은 틈만 있으면 바가지요금을 청구하거나 미터기를 조작하려고 했다.

외국인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자는 택시 운전수 뿐이 아니다. 필자가 세계사회포럼의 대회장에서 나와 숙소로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틈을 노리고 서너 명의 치한들이 호주머니 속의 지갑을 전광석화처럼 날치기 하는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시장통 등 돈이 굴러다닐만한 곳의 입구에 서 있는 ‘돈독이 올라 핏발선 인도인의 눈빛’은, 완행열차 안의 친절한 이들의 눈빛과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대물림되는 가난 속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숙연해졌다. 워낙 물자가 귀하고 가난의 유령이 지배하는 인도 사회에서 먹고 살려는 생존경쟁 속에서 눈빛에 핏발이 선 악인(惡人)이 나올 수밖에...그러나 이들의 마음씨는 완행열차 안의 善人처럼 착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처럼 善人과 惡人이 공존하는 인도 사회의 내면을 다시금 바라볼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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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33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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