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인도기행 (5)

김승국

 

세계사회 포럼 대회장에서-③

 

2004년 1월 16일 개막식

세계사회 포럼(WSF)의 개막식이 1월 16일 인도의 뭄바이에서 열렸다. 대회장인 네스코 그라운드(Nesco Ground)는, 개최국인 인도 뿐 아니라, 브라질‧ 프랑스‧브라질‧일본‧한국 등에서 온 8~10만 명의 참가자로 붐볐다. 대회장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장외에서 미국‧영국에 의한 이라크 전쟁과 군사점령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개회식에서 10명의 활동가가 인사를 겸한 연설을 했다. 세계 사회포럼의 창설자인 Chico Whitaker(브라질人)의 연설에 이어 이라크의 아브두크 아미랄 레카비(Abduk Amiral Rekaby) 씨가 힘찬 박수를 받으며 등단했다. 그는 미군이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기 위한 길목인 뭄바이에서 전 세계의 풀뿌리 단체의 집회가 열린 의미를 강조했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미군점령에 반대하고 주권의 회복을 요구하는 저항운동의 전략을 강구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는 1월 15일에 이라크 남부 각지에서 점령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고 소개했다.

이어 인도의 여성 작가이자 평화운동 지도자인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 씨가 ‘우리들도 저항자가 되어야한다’며 미국‧영국과 싸우는 이라크 국민과 연대하자고 제의하자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로이 씨는 또 멕시코의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의 결렬을 언급하며, 거대기업에 봉사하는 경제정책과 경제의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저항을 강화하자고 호소했다.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고빈 의원은, 런던에서의 이라크 전쟁반대 집회가 영국 역사상 최대규모이었다고 보고하고, 미국에서도 수십만 명 규모의 반전행동이 일어나는 등 전 세계에서 반전평화운동이 고양되었다고 역설했다. 특히 80세의 늙은 할머니 투사 Lakshmi Sehgal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은 감명 깊었다.

이들의 연설에 이어 축하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파키스탄의 록 밴드와 남아프리카의 민속무용이 가장 큰 갈채를 받았다. 파키스탄의 3인조(Brian O'Connell, Ali Azmad, Salman Ahmed) 록 밴드인 {Junoon}이 'Damadam Mast'를 부른데 이어 애창곡 'Sayonee'를 부르자 청중들이 열광했다. 이어 출연한 남아프리카의 {Siwela Sonke Dance Theatre}의 야생적인 민속무용을 지켜본 청중들은 넋을 잃었다. 반라(半裸)의 남여 무용수들이 ‘원생적인 삶을 갈아 먹는 세계화’에 저항하는 민속춤을 온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무대 뒤편의 대형 걸개그림(검정색 바탕위에 흰색으로 5대양 6대주의 세계지도를 그린 그림) 앞에서 춤추는 이들의 몸은 바로 ‘제3세계 민중의 신체’이었다.

이 밖에 인도의 민중가수 집단이, 펩시 코카 콜라에 반대하는 운동가요, ‘인도인이여 나라를 사랑하자’는 내용의 애국적인 가요 등을 불렀다.

개막식장의 마이크 시설이 좋지 않아 가사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았고, 대회장 좌우의 전자 전광판의 영상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국의 야자수 잎 사이로 흘러나오는 뭄바이의 밤바람을 맞으며 전 세계의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공설운동장 같은 차디찬 흙바닥 위에 깔린 마대 위에 철퍼덕 앉은 청중들이 옆 사람과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우며 흥겨워 어깨춤을 추는 현장에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인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참가한 10만 명의 언어, 피부색, 이념, 사상, 운동 방향, 운동 노선이 제각각이지만 ‘민중가요’의 도가니에 빠져 밤이 이슥해지는 줄 모르는 ‘운동의 삼매경(三昧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람이 아름다워’라는 한국의 민중가요의 가사가 암시하듯,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 10만 명이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고 꿈꾸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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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21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