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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야생의 인도기행 (3)


김승국

 

세계사회포럼 대회장에서 ①

 

오른쪽의 사진(생략)은 1월 15일 오후 세계사회 포럼 대회장의 입구 모습이다.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인도 민중들이 쇄도하고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 뿐인 이들은, 수천리 떨어진 곳에서 며칠 동안 완행기차를 타고 몰려들었다. 이들의 얼굴만 보아도 고난에 찬 삶을 직감할 수 있다.

‘제국주의 없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Without Imperialism/ Another World is possible)'라는 이번 대회의 슬로건은, 이들의 삶을 농축한 표현이다.

버려진 공장의 좁은 입구 옆에 세계사회 포럼을 알리는 'WSF 2004 Mumbai India'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입구의 좌우 폭이 4미터 정도 되는데, 약 10만 명의 대회 참가자가 이 문을 통과하느라 법석이다. 첫날 대회장의 입구부터 시골장터를 연상케 했다. 수많은 사람이 좁은 문에 쇄도하며 각종 구호를 힘껏 외치니 귀가 윙윙거려 정신이 어지러웠다. 각종 구호가 남발하는 가운데 역시 ‘제국주의 없는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게 좁은 문’임을 실감할 수 있다.

왼쪽의 사진(생략)은 1월 15일 오후 대회장 등록장소 부근의 공터에서 인도 농민들이 즉석 춤판을 벌이는 장면이다. 농민운동 단체의 회원인 듯한 인도인들이 농악을 울리며 요란한 춤을 추고 있다. 몇 사람이 줄을 지어 마당을 휩쓸고 다니며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고 있다. 사진 왼쪽의 여성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춤추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순 덩어리 세상에 대한 웃음 섞인 규탄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향한 절규가 그녀의 가냘픈 몸매에서 흘러나온다.

오른쪽 사진(생략) 역시 대회장 입구를 촬영한 것인데 좌우의 기둥에 꽂혀있는 붉은 색 깃발은 인도 공산당의 당기이다. 이번 대회에 인도 공산당 계열의 인사들이 많이 참여했으며, 대회장 입구 건너편에 공산당 전용 안내소를 차려놓았다. 인도의 중앙정치에서 공산당이 차지하는 위력을 잘 알지 못하나, 지역 정당중 공산당이 활약하는 곳이 꽤 있다고 한다. 인도에는 공산당의 이름을 내건 정당이 여럿 있는데, 이들 공산당이 인도의 3개주에서 의회를 석권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 인도의 사회주의 계열의 단체들도 대거 참여한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대회는 사회주의 당 대회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인도 참가자 중 상당수가 ‘사회주의(1백 년 전의 고전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제3세계 민중의 의지를 반영하며 신자유주의 등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경향)’에 동의하는 듯했으며, 약8천명의 해외참가자 다수도 그런 사회주의 경향에 동조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대회의 주요 흐름이 제국 ‘미국’의 전쟁 정책과 신자유주의형 착취에 저항하는 사회주의 경향을 띄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란 말이 한 마디 없는 것은 운동의 세련됨에 기인한다. 이번 대회의 워크샵에서 토론된 내용이나 옥외에서의 각종 행사는 ‘Another World is possible'의 각론을 풀이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구호의 속 내용은 사회주의를 통해 새로운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했다.

따라서 ‘Another World is possible'는 이번 대회 참가자들이 마음속으로 지향하는 사회주의의 수사(metaphor)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는 사회주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느나, 겉으로는 ‘Another World is possible'과 같이 아주 대중적인 언사를 사용함으로써 '사회주의에 대한 경직된 이해'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실제로 대회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소개한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이들이 워크샵 등에서 발언할 때는 과거의 사회주의자들이 즐겨 쓰던 딱딱한 사회과학의 용어 대신 민중 친화적인 용어를 에둘러 사용하는 슬기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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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9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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