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화 운동/평화기행

야생의 인도 기행 (1)


김승국

 

들어가는 말

 
 
필자는 2004년 1월 14일부터 2월 2일까지 인도에 다녀왔습니다. 1월 14일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싱가폴 공항을 거쳐 인도의 뭄바이(Mumbai)에 1월 15일 새벽에 도착했습니다. 1월 16일부터 21일까지 뭄바이에서 열리는 세계사회 포럼(World Social Forum)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6일 동안 세계사회 포럼에 참석한 필자는 1월 21일 뭄바이를 떠나 델리(Delhi)로 이동했습니다. 카시미르의 잠무(Jammu)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델리에서 3일 동안 했습니다. 요즘 카시미르 분쟁을 연구하고 필자가 카시미르 분쟁의 현장조사 장소로 잠무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1월 25일 델리에서 잠무행(行) 야간 특급열차를 타고 카시미르로 갔습니다. 잠무에서 4박 5일간 지내면서 현지조사를 마쳤습니다. 1월 30일 새벽에 델리에 도착한 필자는 20일 동안의 인도 학술기행을 정리한 다음 2월 2일 귀국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카시미르의 분쟁을 인도 현지에서 파악하기 위한 학술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행 도중 필자의 눈에 감각적으로 들어온 장면을 에세이 형식으로 기술하는 게 의미 있다고 판단하여 연재물을 싣습니다.

그러나 연재물의 제목을 정하는 초반 작업부터 막히기 시작하여 여러 제목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맴돌았습니다. 그 중에서 ‘야생의 인도 기행’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연재물의 제목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야생(야생의)’이란 말입니다. 한국인들의 가장 매력 있는 해외 여행지인 인도에 대한 여행기가 인도에 대한 단편적인 평가로 범벅되어 있으며, 인도의 역사‧ 사회‧ 종교‧ 인도인의 가치관 등에 대한 몰이해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필자 자신이 인도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런 잘못을 질타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에 대하여 한국인 일반이 무언가 중대한 판단착오를 하는 것 같아서 인도인의 ‘생생한 삶’ ‘인도인의 생명력’ ‘인도에서 바라 본 생명’ 등 주로 ‘생(生)’字 돌림을 따라 ‘야생’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야생’의 ‘야(野)’는 거칠다는 의미이므로 자칫하면 ‘인도의 조야(粗野)한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여행기 같이 보일 염려가 있습니다.

근대화론‧ 제국주의론‧ 서양 우월론에 물든 서양인들, 서양식 사고방식에 젖은 동양인들은 마땅히 ‘인도의 조야한 모습’을 다루며 인도의 야만을 부각시켜왔습니다. 이런 태도는 서양식 인도론(Post-Colonialism의 인도론 포함)의 부산물입니다. 요즘 쓰는 말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지요.

필자는 ‘오리엔탈리즘’의 인도론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인도는 서양식으로 산뜻하게 발전한 곳’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인도의 산하는 아득한 옛날부터 그냥 거친 상태로 있으며, 그런 산하에 묻혀 사는 인도인은 거친 자연과의 친화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냥 그대로 거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가는 인도인’의 ‘야생적인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인도기행을 연재할 생각입니다. 인도에 대해 무지한 필자가 인도에 관하여 운운하는 게 멋쩍어 보이지만 모험적으로 기행문을 정리할 예정입니다. 전문가 여러분의 애정 어린 비판을 바랍니다(2004.2.11).
---------
*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7호에 실려 있다.
 

'평화 운동 > 평화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생의 인도기행 (3)  (0) 2009.06.01
야생의 인도기행 (2)  (0) 2009.06.01
일본 서부지방 탐방기 (11)  (0) 2009.05.31
일본 서부 지방 탐방기 (10)  (1) 2009.05.31
일본 서부 지방 탐방기 (9)  (0) 2009.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