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화 운동/평화기행

일본 서부 지방 탐방기 (10)


김승국

 


사세보 기지

 
  
 
 
지난 8월 8일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본부에서 모집한 ‘사세보 기지 현장방문’ 팀에 합류한 필자는 말로만 듣던 사세보(佐世保) 기지의 위용에 깜짝 놀랐다. 이날 아침 8시 40분에 나가사끼 역 부근의 버스 정류장에서 사세보 현장방문용 버스에 올라탄 뒤 두시간만에 사세보 기지에 당도했다. 
 
버스는 사세보 시내를 가로질러 달린 다음, 弓張岳(해발 364미터)의 전망대를 향해 급경사의 길을 곡예 하듯 올라갔다. 전망대에 오르니 사세보 만의 전경이 보였다. 필자의 시야에 들어온 사세보 만의 오른편에 99島(99개의 섬이 올망졸망 늘어선 다도해)가, 가운데에는 사세보 기지(에섹스 등 함정들이 수심 11미터의 거대한 도크 안에 정박중이었음), 왼쪽에는 사세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의 사세보 기지를 자세히 살펴보라는 안내자의 요청에 따라 눈을 크게 뜨고 해상 기지를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첫눈에는 망원경을 들이대듯 사세보 기지의 전모를 살피다가 점차 현미경을 들이대듯 미세하게 굽어보았다. 카메라의 줌을 당겼다 늦추듯이 눈조리개의 원경을 조절했다.

필자의 눈에 들어온 사세보 기지는 한마디로 ‘공룡 같은 허브(hub) 기지’이었다. 월남의 베트콩들이 만든 지하 요새의 입구가 겨우 몸 하나 들어갈 만큼 좁지만(덩치 큰 미군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좁음) 내부의 시설이 도시를 방불케 하듯, 사세보만의 유일한 입구의 폭이 1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일단 사세보 항에 들어오면 광활함을 느끼게 된다. 거대한 간장 독같은 사세보 만 안에, (미군이 해외원정용으로 갖출 수 있는) 모든 함정 · 무기 · 전쟁용 비축 물자(유류 · 탄약 등)가 백화점의 상품처럼 촘촘히 점재(點在)해 있었다. 이 모든 전쟁용 시설을 종합하면 미국 · 미군의 전략을 판독할 수 있으며, 이러한 판독요령에 따라 미국의 한반도 전략 · 대북(북한에 대한) 전쟁 전략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弓張岳의 전망대에서 단 20분 체류하면서 사세보 기지를 굽어본 것만으로도 주일미군의 대북 전쟁의 결의를 대뜸 간파할 수 있었으며, 거의 반사적으로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6자회담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을 갖게 되었다. 이곳 사세보(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에서 본 베이징 6자 회담장은 짙은 안개로 감싸여 있는 듯했다. 미 · 일 군사동맹의 가장 민감한 군사 현장인 사세보 항의 공세적인 무장력을 본 순간에 ‘미국 ·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6자회담의 전망이 불투명함을 느꼈다.

사세보 군항을 굽어보고 ‘안개 속의 6자회담’을 내다보는 필자의 직관을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사세보 기지와 한반도(한반도에서의 전쟁)의 관련성을 거론해야겠다.

 

사세보 기지와 한반도 전쟁

 

사세보는 100년 전부터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아시아 침략을 위한 출격기지이었으며, 지금은 미·일 동맹의 세계제패를 위한 출격기지이다. 일본의 패전 직후 사세보 항을 점령한 주일미군은 1946년에 미 해군 제7함대 기지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한국전쟁 · 베트남 전쟁 때 사세보가 보급기지 노릇을 했다. 그리고 걸프전 · 이라크 전쟁 때 사세보 주둔 자위대원들은 미군의 충견 역할을 충분히 했다. 앞으로 터질지 모르는 북한과의 전쟁에서도 ‘미군을 주인으로 섬긴 사세보 주둔 자위대’가 미국에 ‘충견 서약’을 한 뒤 한반도로 진격할지 모른다.
이런 예견이 너무 성급하다면, 이번 이라크 전쟁 때 사세보 군항이 일본 전국의 미군기지와 연동되어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요꼬스까에서 항공모함 키티호크가 출발했다. 물론 주일미군 기지를 떠나 이라크 전선에 배치된 카우펜스 순양함은 토마호크 미사일을 쏘았다. 이와 동시에 미자와 기지에서는 F16 전투기가 (오키나와의) 가네다에서는 F15 전투기가 이라크로 날아가 5천회의 공격을 했다.

그럼 사세보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을까? 사세보는 요꼬스까 · 미자와 · 가네다 보다 더 부지런하게 이라크 전쟁 1주일 전에 미군지원용 탄약 · 연료를 실어 날았다.

이상이 이라크 전쟁 때 주일미군이 즉각적인 전쟁진용을 짠 내용이다. 일본에서 수만 마일 떨어진 이라크의 전쟁에 즉각적으로 대응한 사세보 · 요코스까 · 미자와 · 가데나 기지(모두 주일 미군기지)의 연결망은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이라크보다 훨씬 가까이 있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때, 거리가 짧은 만큼 더욱 즉각적으로 주일미군-자위대의 연결망이 움직일 것이며 한반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세보가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이런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일 사세보의 전력(戰力; 주일미군+자위대의 전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에섹스(Essex)

 

에섹스(배수량; 41,150톤/ 길이; 253미터/ 폭; 32미터)는 1992년에 취항한 세계최대의 ‘강습 양륙함(强襲揚陸艦)’이다. 한반도와 관련하여 말하면, 에섹스가 북한을 강습하기 위해 원산 등에 양륙할 것이다.

물론 에섹스가 북한을 호락호락 강습하기 어려울 것이다. 펜타곤의 대북 시뮬레이션(컴퓨터 전쟁게임)은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치를 경우 수만 명의 미군 전사자가 속출한다’고 예고했다. 따라서 미국이 기어코 대북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군의 떼죽음을 각오해야하며 그에 대한 군사적 대비를 해야 한다. 한반도 전선에서 사망했거나 부상당한 미군을 동해안에 떠 있는 미군 · 자위대 함정에 긴급후송하거나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사세보 등으로 실어 날라 치료하거나 장례를 치러야한다.

결국 미군의 떼 죽음에 대비한 함선 안의 병원시설과 사세보 기지 안의 치료 시설을 갖춰야하는데, 에섹스는 위의 두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다. 에섹스는 세계최대의 해상전투 의료 시설을 구비하고 있다. 6개의 수술실, 15개의 집중 치료 침대, 5백 개의 의료용 침대, 44개의 병동을 선내에 갖춘 ‘떠 다니는 병원 함선’인 셈이다.

미군의 떼죽음을 각오하고 병원을 겸비한 강습 양륙함이 한반도의 코 밑에서 출격준비를 하고 있는 ‘몸서리쳐지는 현장’이 사세보 군항이다. 목숨을 걸고 북한 등과 전투하다가 부상당한 미군을 에섹스 함선의 병원에서 급하게 치료한 다음 대북 전선에 다시 투입하는 ‘즉사(卽死)의 정신’으로 북한 땅을 강습 · 점령하는 역할을 에섹스가 수행할 태세이다.

 

  2. 이지스 함

 

8월 8일 필자와 함께 이동한 사세보 기지 현장 방문자들은 弓張岳의 산꼭대기에서 기지를 조망한 다음에, 배를 타고 바다 위에서 기지를 살펴보았다. 산에서 굽어본 기지와 배를 타고 해상 기지에 최대한 밀착하여 느낀 점을 종합하도록 배려된 현장 방문이어서 필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필자가 배를 타고 둘러본 사세보 항의 여러 무기들 가운데 주일미군의 에섹스 함정과 자위대의 이지스 함이 가장 큰 두통거리(한반도에서의 전쟁 때 예상되는 두통거리)로 다가왔다.

군사대국 일본은 현재 4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2척이 사세보에 배치되어 있다(앞으로 이지스함 2척을 더 건조할 예정이며, 2척중 1척이 사세보에 배치될 것이다). 일본이 보유한 최첨단 군함의 절반이 사세보에 배치될 정도로 사세보는 중요한 군항이다.

사세보 기지를 현장 순회하는 배(관광선)는, 이지스함이 떠 있는 해상에 최대한 가까운 거리까지 육박했다. 선내의 차창을 통해 본 이지스함은 전자장비를 온통 두른 ‘IT 철갑선’이었다. 함선 전체가 군용 IT 시설로 꽉차여 있었다.

이 이지스함이 에섹스와 함께 원정군을 이루며 한반도(북한 부근의 해상)를 비롯한 전 세계에 진격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지스함은 북한의 미사일(대포동 미사일 등)에 대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요격하기 위해 미 · 일동맹이 개발 중인 미사일 방어망(MD; Missile Defense)의 최전선이 이지스함에서 이루어진다. 올 2월 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한 뒤, 북한의 핵무기 발사에 대비한 MD망-이지스함이 활약중이다.

주일미군 · 자위대의 이지스함이 북한 앞바다(대포동 미사일 발사장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상)를 순회하다가 사세보 항에 기항하는 ‘매우 비상한 움직임’은, 북한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점을 알고 한반도의 정세를 분석해야할 것이다.

 

  3. LCAC

 

LCAC는 ‘Landing Craft Air Cushioned’의 약자로서 에어쿠션 형 양륙정으로 해석된다. 바퀴 밑에 공기 주머니가 달린 양륙정이란 말이다. 해병대들이 사용하는 보통의 양륙정(양륙용 장갑차)과 달리, 쿠션처럼 탄력 있는 대형 공기 주머니 위에 장갑차가 부착되어 있는 최첨단 무기이다. LCAC는 시속 74킬로미터로 60톤의 군사물자를 실어 나르며 수상 · 지상을 질주한다.

 

사세보에 배치된 LCAC는, 북한과의 전쟁이 발생하자마자 에섹스에 실려 원산 앞바다로 향할 것이다. 원산 앞바다로 진출한 에섹스의 화물칸 문이 열리자마자 LCAC가 맨 먼저 튀어 나와 북한 땅으로 시속 74킬로미터로 진격할 것이다.

LCAC는 양륙정이므로 미 해병대가 주로 사용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와 LCAC의 관련이 깊다.

 

맺음말

 

앞의 에섹스 · 이지스함 · LCAC 등 미 · 일동맹의 대북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 이외에도 수많은 무기 · 전쟁물자(각종 함선 · 貯油所 · 탄약고 · 사격장 · 미군 주택 · 사령부 건물 등)를, 기지 순회용 관광선 안에서 보았다.

그런데 이들 주일미군 시설의 유지 · 보수비용(천문학적인 돈)을 일본 정부가 거의 전액 부담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주일미군 지원비용을 일본어로 ‘오모이(思い) 야리(やり)’ 예산이라고 부르는데, ‘오모이 야리’란 ‘남의 심정 · 입장을 배려함/ 남을 헤아림/ 남이 잘못될까 염려함/ 걱정/ 배려/ 동정’의 뜻을 지닌 일본어이다. 따라서 ‘오모이 야리 예산’이란 혹시 주일미군이 고생할까 두려워 지원하는 돈이다. 주일미군을 사랑하므로 주일미군이 혹시 잘못될까 걱정이 되어 호강하게 지내라고 들이는 예산이다.
한국의 경우 일본처럼 미군을 지원하는 예산을 지출하지만 일본처럼 ‘오모이 야리’ 예산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그냥 주한미군 지원비용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일본의 친미세력은 미국에 더욱 밀착하여 미군을 알뜰하게 보살피고 있으며, 그 돈은, 일본 국민들의 얄팍한 지갑을 털어 마련한 것이다.

토끼장같이 비좁은 집에서 사는 일본 사람들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오모리 야리 예산으로 세워진 사세보 기지 밖의 미군 아파트 촌을 번 필자는, 일본국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
*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04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