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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히로시마 · 나가사끼의 명물 음식


김승국
 

 
오코노미야끼

 

히로시마에 유명한 음식 중 하나는 ‘오코노미야끼’이고 나가사끼에서 유명한 음식은 짬뽕과 카스테라이다.

오코노미야끼는 ‘일본 피자’로 번역되지만 부정확한 표현이다. 피자라기 보다는 원반 크기의 맛있는 팬케이크이다. 밀가루, 계란, 물 반죽에 자기가 원하는 재료(코노미)를 넣어 오코노미야끼를 만든다. 재료에는 보통 고기, 오징어, 야채, 잘게 다진 양배추 등이 포함된다.
 
 
요리용 철판을 사이에 두고 손님과 마주 서 있는 주방장이 오코노미야끼를 만들어낸 다음 달콤한 갈색 소스나 마요네즈를 발라준다. 말린 아오노리(파래) 가루나 가츠오부시 프레이크를 뿌려주기도 하는데, 가츠오부시가 뜨거워지면 춤을 추듯 하늘거린다.

오코노미야끼 식당은 유쾌하고 시끄럽지만 별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서민지향의 음식점이다. 식당의 분위기가 좀 거칠고 약간 소란스러운 가운데 재빨리 음식이 나온다. 서울의 신림동에 있는 ‘순대 타운’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재료만 다를 뿐 한 동네 · 한 건물에 조그만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밀집된 형태가 비슷하다. 철판 위에 갖은 재료를 올려 놓고 대충대충 · 얼렁뚱땅 · 엎치락 뒷치락 재빨리 만들어내는 솜씨도 비슷하다. 손님이 앉아 있는 바로 앞에서 조리하는 것도 유사하지만, 오코노미야끼의 경우가 좀더 고객 밀착형이며 주방장의 행동반경이 크고 몸짓이 더 구성지다.
8월 2일 밤. 필자는 히로시마의 오코노미야끼 타운(오코노미야끼 식당가)을 들렀다. 히로시마 시내에 수백 개의 오코노미야끼 식당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데가 필자가 들른 곳이다. 오코노미야끼 식당만 입주해있는 커다란 건물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갔다. 그 건물의 3층에 들어서자마자 오코노미야끼 굽는 냄새가 진동하면서 식욕을 자극했다.

필자는, 20년 경력의 부부가 운영하는 오코노미야끼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오코노미야끼를 만드는데 청춘을 보낸 이 부부는 (오코노미야끼의 재료를 엎치락 뒷치락하듯) 손님들을 잘 다루면서 철판 앞으로 잡아 당겼다. 어렸을 적 명절날에 지지미를 붙여주는 엄마 앞에서 턱을 괴고 지지미 한 조각을 얻어먹으려고 침을 삼키는 심정을 손님들이 갖도록 유도했다. 말 몇 마디를 툭툭 던지며 몸으로 말하는 분위기에 손님이 저절로 끌려갔다.

고기 · 계란 · 소바(또는 우동)가 들어간 기본적인 오코노미야끼의 값이 7,300원이며 여기에 오징어 · 새우를 첨가하면 12,600원이다. 7,300원 짜리 하나만 먹어도 제법 포만감이 있었다. 거기에 일본술(니혼슈)을 곁들이니, 오코노미야끼가 훌륭한 안주가 되었다. 배가 출출한 서민들이 퇴근길에 찾아와 오코노미야끼로 배를 채우며 술 한잔 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철판에서 나오는 열기가 엄습하여 술기운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술기운이 오히려 히로시마의 열대야를 식혀주는 듯했다.

 

나가사끼 짬뽕

 

일본인에게 나가사끼의 명물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짬뽕과 카스테라’라고 대답한다. 짬뽕은 중국인들이 전수해 준 것이다. 짬뽕은 나가사끼의 중국 음식점 거리에서 주로 판다. 거대한 음식점이 수십개 들어선 나가사끼의 차이나 타운은, 짬뽕을 비롯한 일본식 중국음식(춘권, 달걀 푸융, 마파두부, 볶음밥, 딤섬 등)의 메카이다. 이곳 차이나 타운은, 일본에서 태어난 중국인 무역상의 자손뿐 아니라 중국 대륙과 대만에서 온 이민자들로 북적댄다. 이 곳의 음식은 스촨, 광둥, 북경, 대만 사람들의 성향을 잘 드러낸다. 대개의 식당들이 ‘일본화’된 맛을 선보이지만, 일부 식당은 중국의 전통적인 맛을 고집한다.

짬뽕은, 고향이 그리워 만들어먹은 중국인 덕분에 탄생했다. 나가사끼 짬뽕은 해산물, 야채, 돼지고기를 걸쭉한 라아멘 국물에 넣고 끓인 음식인데, 은은하게 우러나오는 국물이 별미이다. 우유빛의 시원한 국물을 마시며 중간 굵기의 면을 후루루 먹으면, 시원한 땀이 등줄기를 내려간다. 일본 요리답지 않게 달지도 않고 짜지도 않으며 은근히 배어나오는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필자가 8월 9일 대낮에 짬뽕 한 그릇을 사먹기 위해 진땀 흘리며 차이나 타운에 간 보람이 있었다. 짬뽕 한 그릇에 7,300원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카스테라

 

나가사끼는 (16세기부터) 약2백년간 서방 세계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이었다. 나가사키를 통해 서양(포르투갈 · 스페인 · 네덜란드)의 문물(총, 기독교, 덴뿌라, 육류, 카스테라 등)이 들어왔다. 이 때 들여온 총으로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쇄국정책으로 기독교의 전파는 차단되었다. 이 밖의 먹거리는 비교적 자유롭게 도입되었는데, 카스테라가 대표적인 수입품이다. 카스테라는 포르투갈인들이 전수해준 것으로 어원은 ‘Castella'이다. 스페인의 왕국이었던 카스틸라의 빵으로 첫 선을 보인 것이 카스테라의 원조이다. 그 뒤 4백년간 카스테라는 나가사끼를 대표하는 명과(銘菓)로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기품 있는 선물의 대명사가 되었다.
 
카스테라의 주요 재료는 꿀, 초코렛, 비파, 말차(抹茶)이며, 가장 값싼 게 7,300원(반근 짜리)이다. 그런데 일본의 귀족들이 먹는 카스테라는 값이 천차만별이며 엄청나게 비싸다. 일본의 천황에게 올리는 헌상품은 두 근 짜리가 7만3천원이다. 헌상품은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으며 최고의 원료만을 사용한다. 아주 숙련된 장인의 손에 의해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 구워낸 카스테라를 정성들여 포장한 다음 천황가로 보낸다.

필자는 나가사끼에 갈 때 마다 반드시 카스테라를 선물로 구입한다. 그런데 갈 때마다 역겨운 일이 있다. 유명한 카스테라 전문점일수록 ‘천황에 헌상하는 카스테라를 만드는 집’이라고 은근히 선전하는데 구역질이 난다. 기모노를 얌전하게 차려 입은 여성 종업원이 은밀하게 속삭이듯, 최고급 카스테라를 가리키며 ‘바로 이 물건을 천황에게 바친다’고 자랑한다. 이런 권유가 값비싼 카스테라를 팔기 위한 상술임에 분명하지만 ‘아직도 천황에게 제일 좋은 음식을 바치는’ 봉건시대의 존왕(尊王)의식이 일본인에게 남아있는 게 비위를 상하게 한다. 봉건적인 존왕의식이 넘쳐나는 카스테라 선전물의 표지에 큰 글씨로 ‘헌상’이라고 표기된 선물 세트를 보고 식상한 나머지 카스테라를 살까말까 하다가, “아빠! 나가사끼에 가면 꼭 카스테라를 사요세요!”라는 아들 녀석의 목소리가 떠올라 꾹 참았다.

몇 백 년 동안 카스테라만 만들어온 점포(老鋪) 안의 고전풍에 걸맞는(?) 천황숭배 의식은 카스테라 점포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10여 년 전 어느 지방의 메실 밭을 지나가는데, 옆에 있던 일본인이 ‘이 곳의 메실을 모두 천황에게 헌상한다’며 어깨를 으쓱하던 표정이 떠올라 기분이 또 한번 잡쳤다. 아직도 천황에게 맛나는 음식을 맨 먼저 바치는 의식이 ‘천황제 부활의 온상’이 될 가능성을 생각하니 몸서리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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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낫토 · 우메보시 · 말고기 광(狂)”


8월 1~5일에 히로시마의 비즈니스 호텔에 머물렀다. 물론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의 본부에서 마련해준 숙소이다. 8층 건물의 이 호텔은 매우 아기자기한 곳이다. 이 곳은 일본풍에 서양풍을 가미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1층에 있는 식당의 식단 역시 일본음식 중심이지만 서양 음식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손님이 알아서 골라 먹는 뷔페식 식당인 탓인지, 메뉴가 거의 고정되어 있다.

이 식당의 여러 식단 중 필자가 가장 선호한 것은 낫토(納豆; 콩을 발효시켜 만든 음식. 한국의 청국장과 약간 비슷하지만 제조 방법이 다르다. 볏짚 사이에 콩을 집어넣고 오랫동안 발효시켜 낫토를 만든다)와 우메보시(梅干; 신 맛이 나는 매실 장아찌)이다.

그런데 일본인 투숙객들이 먹는 낫토 · 우메보시의 몇 곱절이나 먹어치우는 필자를 지켜본 식당 주인이 놀랐다. 낫토와 우메보시를 피해 다니는 일본인이 많은 점을 잘 아는 식당 주인이 나를 향해 ‘저렇게 낫토 · 우메보시를 좋아하는 외국인 손님을 처음 보았다’면서 눈을 휘둥거렸다.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낫토 · 우메보시 광(狂)이다. 일본사람들이 질색하는 낫토 · 우메보시를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즐겨먹으니 ‘광(狂)’이 아니고 무어람?...

식도락가들이 그들먹한 일본에서 낫토는 기피식품(낫토를 좋아하는 도쿄 사람들을 제외하고...)중 하나이다. 우선 냄새가 고약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내팽겨둔 양말 썩은 냄새가 낫토에서 난다. 양말을 빨랫감으로 내놓기 전에 파삭파삭 썩은 냄새를 맡아본 사람이면, 이와 비슷한 낫토의 냄새가 얼마지 지독한지 알 것이다. 양말이니까 다행이지만 음식 맛이 그렇다면 얼마나 구역질이 날까? 그래서 식도락가들조차 감히 낫토에 도전하지 않는다(낫토를 먹어치우는 도쿄 사람들을 빼고...).

날 음식을 세계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본인들도 낫토는 기피 대상이다. 아마 목숨을 걸고 복어를 먹는 식도락가(복어의 독을 체험하기 위해 나선 어느 일본 식도락가가 복어의 간을 삼킨 뒤 3일 동안 반 마비상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나 ‘정액이 가득한 대구 수컷의 생식기관’을 먹어치우는 식도락가라도 낫토를 먹지 않을지 모른다.

낫토의 곰 삭듯 썩은 냄새를 없애기 위해 메추리 알과 파를 넣으면 악취가 조금 약해지지만 구역질 나는 냄새는 여전하다. 필자가 보기에 메추리 알과 파를 넣어 낫토를 먹는 사람은 촌놈이다. 이런 촌놈들은 낫토의 점액질에 신경질을 낸다. 낫토는 끈적끈적한 발효 대두가 엉켜 있는 식품이어서 불쾌한 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필자가 일본사람들에게 ‘일본 최장수촌의 할머니들이 낫토를 즐겨먹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낫토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입견을 버리지 않는다. 낫토를 먹으려면 끈적끈적한 발효 대두 덩어리를 나무젓가락으로 휘저어야 하는데...이 때 불쾌한 질감과 냄새가 복합적으로 올라와 코를 자극하므로 이들이 더욱 기피하는 것 같다. 이런 자극이 싫은 사람은 낫토에 손을 댈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자극을 즐길 줄 아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낫토 속의 와사비가 코를 맹렬하게 자극하며 카타르시스의 눈물을 뽑아낸 순간 정신이 맑아지는 그 맛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이어 우메보시 이야기로 넘어간다. 필자는 신맛을 꺼려하지만 우메보시는 예외이다. 우메보시는 일본의 츠케모노(절임) 중 하나로 매우 강한 신맛을 낸다. 신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우메보시의 ‘살포시 신맛이 드러나는 묘미’의 점진성을 즐기기 바란다. 메실의 부드러운 껍질이 터지며 신맛이 입 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약간의 단맛이 가미되는 미묘한 맛을 즐기시라! 그리고 매실 열매를 혀로 돌리며 빨면 새콤달콤한 맛도 느낄지어다!

마지막으로 말고기에 관하여 말하련다. 한국인들 대다수는 말고기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 말이 흉물스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한국에선 말고기를 대할 기회가 없었고 일본에서만 말고기 사시미를 먹었다. <바사시(생 말고기란 뜻의 ‘바사시미’를 줄인 말)>라고 부르는 말고기 사시미는 일본 술꾼들에게 최고의 안주이다. ‘바사시’는 대중식당의 메뉴가 아니라, 일부 특별한 술집의 특별한 안주로 나오며 값이 매우 비싸다(그러나 ‘이자카야’라는 대폿집에서도 가끔 ‘바사시’ 메뉴를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10여 년 전에 도쿄의 술집에서 교류회를 갖는데, 누군가 장난삼아 바사시를 주문한 다음 나에게 억지로 먹였다. 한국 사람들이 말고기를 적극적으로 기피하는 줄 알고, 일부러 나를 놀리기 위해 주문한 것 같았다. 이런 장난기에 속아 넘어갈 필자가 아니므로, 말고기 안주를 꾸역꾸역 먹었다. 그런데 의외로 질기지 않고 사각사각 씹혀서 술안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 때부터 말고기 안주에 친숙감을 갖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식했다.

이윽고 정통파 말고기를 먹을 기회가 다가왔다. 이번 일본 기행 중 (바사시로 유명한) 구마모토를 들르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구마모토에 가서 ‘바사시’라고 간판이 붙은 음식점을 여러 곳 지나쳤으나 침만 삼켰다. 그토록 비싼 바사시를 여유 있게 먹을 쇳가루(돈)가 없었기 때문이다. “웬수(원수)”같은 돈 때문에 바사시를 먹지 못한 채 귀국하다니...이번에 일본 서부지방 기행중 말고기를 바로 눈 앞에서 먹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다음에 일본에 가면 꼭 먹어야지...암 먹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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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02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