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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일본 서부 지방 탐방기 (6)


김승국

 

규동 · 소바 · 우동

 
 
 
일본의 서민들이 즐겨 먹는 ‘프롤레타리아트 음식’은, 라아멘 · 소바 · 우동 같은 면 종류가 대세를 이루지만 규동과 같은 밥 종류도 있다. 일본식으로 조리된 밥을 ‘고항(御飯)’이라고 발음한다. ‘고항’의 ‘고(ご; 御)’는 최고의 존경을 나타내는 접두어이다. 쌀(米; 고메)의 경우 ‘오(お; 御)’라는 극존칭 접두어를 붙여 ‘오고메’라고 부른다. 이렇듯 일본사람들은 쌀과 밥을 숭배한다. 쌀과 밥(쌀밥) 속에 신이 있다고 본다. 쌀과 밥(쌀밥)이 곧 신이라고 여긴다. 요즘 일본사람들이 쌀밥 대신 빵 등의 서양음식을 많이 먹지만 쌀밥을 신성시하는 태도는 크게 변함이 없다.

米(쌀)를 신으로 모시는 일본인들은 米의 나라 미국(米國)도 신으로 모신다. 신격화된 쌀(米)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해준 미국 역시 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가지의 米(쌀 米와 미국의 米)를 하늘 끝까지 섬긴다. 米 제국(미국 제국)의 우산 아래에서 米(쌀)를 실컷 먹을 수 있으니 두개의 米를 신으로 모실 수밖에...미국판 신자유주의 정책인 ‘우정(郵政)’ 개혁(민영화)을 위해 정치생명을 걸고 내각을 해산한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 신격화에 부시가 감복하리라...

일본인들은 누가 주는 밥이든 가릴 것 없이 밥을 신으로 모시며 밥에 전혀 싫증을 내지 않는다. ‘달빛 비치는 밤과 잘 지은 밥에 싫증내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멍석 펴놓고 식구들이 둘러 앉아 흰 쌀밥을 꿀맛 나게 먹는 게 일본 서민들의 꿈이었을까?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불철주야 땀 흘려 노동한 프롤레타리아트들에게 밥은 너무나 친근한 음식이다. 그래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좀더 평이하게 ‘밥’에 가까운 의미로 ‘메시(飯)’라고 부른다. 남성 프롤레타리아트들이 ‘메시’를 즐겨 사용하는 반면에 여성들은 ‘고항’이라고 한다. ‘메시’에 젠더(gender)의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쌀밥 신(神)을 숭상함에 틀림없다.

 

규동


 
이 ‘메시’라는 쌀밥 신 중에서 가장 값싸고 배부르며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 것이 ‘규동’이라는 쇠고기 덮밥이다(주문한 뒤 1분 만에 나오는 규동 한 그릇에 290엔). ‘규동’에서 ‘규’의 한자는 牛이며, ‘동’은 우물 정(井)자의 한가운데에 점을 찍은 한자로서 덮밥 종류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식당에서 나오는 그릇의 높이가 아주 낮고 나긋나긋한데 반하여, 돈 없는 프롤레타리아트들이 다니는 '규동’ 식당에서 나오는 그릇은 꺽다리에 투박한 근육질이다. 밑바닥이 옴폭하게 파인 그릇을 가득 채운 쌀밥 위에 삶은 쇠고기를 얹고 일본 간장을 친 다음 갖은 양념(향신료)을 뿌려 젓가락으로 휘저으며 먹는다. 더우기 주문하자마자 나오는 규동은, 일하기 바쁜 프롤레타리아트 음식으로 제격이다.

일본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은 이처럼 ‘규동’이라는 쌀밥 신을 먹으며 노동한다. 규동 식당에서 노동과 쌀밥 신이 만난다. 그럼 그 만남의 현장으로 가자.

8월 3일 이른 아침. 필자는 히로시마의 시내를 헤매다가 겨우 '마쓰야(松屋)'라는 이름의 규동 식당을 찾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전역에 ‘요시노야(吉野家)’라는 유명한 규동 식당이 산재했는데 지금은 거의 폐점했다. 규동에 필수적인 쇠고기가 미국산인데...미국에서 소 광우병 선풍이 일어나자, 일본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을 하는 바람에 규동 식당을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값비싼 일본산 쇠고기를 사용하면 음식 값이 껑충 뛰어 프롤레타리아트 음식 대열에서 이탈하므로 주 고객인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오지 않는다. 그나마 규동의 명성을 유지하는 길은 휴업 밖에 대안이 없었다('규동'이라는 메뉴가 있는 식당이 있지만,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 덮밥을 판다).

미국산 소의 광우병이 규동에 광풍(미친 바람)을 일으켜 일본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을 식상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식상한 입맛을 지니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들에게 희소식이 들렸다. 그 유명한 ‘요시노야’를 딱 하루 다시 개점한다는 소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시노야’를 단 하루 재개점한 날 식당 앞은 인산인해이었다. 잃어버릴 듯했던 규동 맛을 다시 느끼려고 일본 전국에서 몰려든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인간시장이 형성되었다. 규동에 생강 절임을 버무려 훌훌 먹어제낄 때 나는 밥 내음을 맡으러 온 규동 골수분자들로 장사진을 이룬 것이다<2005년 10월 8일자 아사히 신문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재개되면 내년 1~2월에 요시노야 식당에서 규동을 제한적으로(하루 한 식당에서 200병 식사분만 판매) 팔겠다'는 기사가 실렸다>.

필자가 고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는데...집에서 김치 등의 보급품을 받은 며칠 동안은 반찬이 좀 있으나 그것마저 동이 나면 밥만 있을 뿐 반찬이 전혀 없다. 그 때 즉각 동원할 수 있는 것이 일본 간장 즉 왜간장이다. 밥 위에 왜간장을 부은 다음 비벼 먹으면 억지춘향으로 밥이 목구멍을 넘어간다. 만약 그 때 규동처럼 밥 위에 쇠고기를 얹어 쇠고기 덮밥을 먹었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규동을 먹으니 더욱 맛이 났다. 바로 옆에 앉은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과 함께 규동을 먹으니 일본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마음 속으로 연대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침 6시 30분에 규동집을 찾았는데도 노동자 손님이 많았다. 규동 집에서 아침밥을 빨리 때우고 일하러 나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급함엔 ‘슬픈 노동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 테다...

그리고 24시간 영업하는 규동집 종업원들의 충혈된 눈자위 속의 눈물이 내 눈물인 듯하여 가슴 아팠다. 저들이 저렇게 죽기 기를 쓰고 일하는데 도대체 수입은 얼마쯤 될까? 봉급이 얼마냐고 종업원에게 묻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며 규동 집을 나섰다. 한국 보다 노동 강도가 강한 일본 땅에서 프롤레타리아트들이 규동의 생강절임을 씹으며 지배계급을 씹는(?) 이유를 눈빛만 보아도 알만했다.

 

소바 · 우동 이야기

 

일본 열도는 크게 관동과 관서로 나뉜다. 관동의 중심도시는 도쿄이고 관서의 중심도시는 오사카 지방(교토 포함)이다. 그런데 도쿄의 에도 문화와 오사카 · 교토의 상인 · 귀족문화가 너무 다르고 관동사람과 관서사람의 기질이 다르다. 기질이 다르므로 운동의 스타일도 다르다. 도쿄의 운동권이 정보 중심으로 담론을 생산하는데 주력하지만 오사카 · 교토의 운동권은 몸으로 때우며 치고 나가는데 힘쓴다.

음식 문화 역시 관동과 관서가 다르다. 도쿄사람들은 소바(메밀 국수)를 즐겨먹는데 오사카 사람들은 우동을 즐겨 먹는다. 이런 취향 때문에 (오사카와 가까운) 히로시마에서 소바를 먹기 힘들다. 요즘 소바의 몸값이 올라 귀족 취향적으로 먹는 경향도 있으나, 그 옛날 봉건시대엔 가난의 상징이 소바이었다. 신과 같은 쌀밥을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배 곯는 아랫것들(프롤레타리아트)의 대체 식품이 소바이었다. 눈물의 소바인 셈이다.

소바의 원산지 논쟁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나가노 현을 꼽는다. 해발 3천 미터 급의 북 알프스 산맥의 기슭에 있는 나가노 현에 평야가 드물기 때문에 쌀 농사가 힘들다. 게다가 봉건제의 수탈을 심하게 받은 농민들이 쌀 농사를 지어도 그건 영주의 몫이지 자기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나가노 현의 농민들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 바로 소바이다.

16세기 말 나가노 현의 기소 지방 농민들이 메밀을 발견했다고 한다(그래서 기소 소바가 유명하다. 서울에도 기소 소바 집이 몇 군데 있다). 나가노 현의 산골처럼 척박한 땅,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얕은 산지 토양에서 75일이라는 빠른 시일 안에 씨앗에서 곡식으로 자라는 소바는, 쌀 농사가 실패할 때마다 탁월한 구휼식품이 되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쌀 떨어진 서민 가정에서 굶주림을 막아주는 음식이 소바이었다. 그래서 소바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통식품이 된 것이다.

필자가 몇 년 전 나가노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유황 냄새 풀풀 나는 온천욕을 즐긴 다음에 먹은 소바의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음식점 이름은 잊었지만 그 때의 소바 맛은 잊을 수 없다. 나가노 시내의 유명한 소바 집에서 먹은 소바의 미묘한 향이나 독특하고 우아하면서도 흙을 연상시키는 맛은 ‘일품’이었다. 소바의 중심지라고 자랑하는 도쿄에서 먹은 소바와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나가노 지방이 소바의 원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헌대 나가노의 흙냄새 나지 않는 도시 냄새의 소바를 도쿄에서 만끽할 수 있다. 단돈 290엔(2,900원)에...도쿄의 소바는 좀 짠 맛이 난다. 짠 맛이 나는 소바의 역사적 배경을 알면 그 짠 맛 속에, 에도(도쿄의 옛 이름)를 건설한 일용 노동자의 짜디짠 땀 맛이 배어 있음을 직감하리라...

권력의 중심지를 교토에서 에도(도쿄)로 옮기는 결정은 지배계급이 했지만 옮기는 작업(노동)은 아랫것들(프롤레타리아트들)이 했다. 새로운 수도인 에도를 건설하는 막대한 과업을 위해 지배계급은 수천 명의 목수와 수만 명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을 동원했다. 강인한 일꾼들이 훗날 도쿄로 개명한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들이 노동하면서 즐겨 먹은 프롤레타리아트 음식이 소바이다. 이들 ‘에도의 자식들’은 교토에서 온 유미주의자와 달리 평범하고 직설적인 기질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 기질에 따라 ‘강하고 짙은 갈색의 가츠오 부시(말린 가다랭이)로 만든’ 다시(국물)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으며, 이런 맛을 가장 잘 내는 소바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진하고 색이 어두운 츠유(양념 장국)가 에도 소바의 맛을 낸 밑뿌리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소금 같은 땀이 배어 있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독자들이 규동과 소바를 실컷 드셨을 테니 이제 우동 집으로 안내한다. 우동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서민음식이므로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련다. 우동은 나라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소바가 등장하기 이전에 오랫동안 서민들의 주식이었다. 오늘날 우동은 일본 전역에서 ‘통통하거나 가늘고 둥글거나 납작한’ 다양한 면발을 선보인다. 우동도 츠유와 함께 뜨겁게 담아내거나 츠유 없이 차게 내놓지만, 인기 있는 방식은 뜨거운 국수를 차가운 츠유에 담가 먹는 가마아게 우동이다.

앞에서 소바 · 우동과 같은 대표적인 면 음식을 소개했는데, 면 음식을 파는 식당에 대한 안내가 빠졌다. 밀(우동)과 메밀(소바) 등의 면 음식(국수)을 전문으로 파는 ‘멘 도꼬로(麵處; 면 가게)’에 가면 국수(면)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麵處’라는 간판이 붙은 식당에 가면 진짜 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혼케(本家; 원조)’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집은, 면 음식의 귀신(달인)들이 손수 만든 수타(手打) 면 음식을 내놓는다. 그러나 거의 모든 면 음식점의 메뉴가 유사하고, 대부분의 우동 식당 · 소바 식당은 겉으로 비슷해 보이므로 진짜 원조 맛을 외국인이 맛보기 힘들다. 그래서 ‘진짜’ 면 음식 고르는 10계명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첫째, 유명한 관광지와 기차역을 피하라. 둘째, 사진을 붙여 메뉴판을 만든 음식점을 믿지 말라. 셋째, 영어 메뉴가 붙은 집에 가지 말라. 넷째, 점심이나 이른 저녁때 가라(너무 일찍 가면 국물이 충분히 우러나지 않기 때문). 다섯째, 주인이 직접 국수를 만드는지 증거를 찾아보라(커다란 소바 자르는 칼이 증거이다). 여섯째, 입구의 진열장 속 플라스틱 음식 모형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집에 가지 말라. 일곱째, 로마자로 광고하거나 서양식 건축물을 모방했으면 의심하라. 여덟째, 역무원 · 이발사 등의 민초들이 그 지역의 국수에 대한 도사이다. 라아멘에 대해서는 트럭 운전사들에게 물어보라. 아홉째, 택시운전사 · 치과의사 · 경찰들은 국수에 대하여 최악의 정보를 주므로 피하라. 열 번째, 어느 고장에 가도 좋은 국수가게 하나, 나쁜 국수가게 하나 그리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곳이 적어도 한 군데 있음을 명심하라.

위의 10계명은, 일본에서 공인된 면(국수) 중독자가 내려준 것이므로 ‘아멘!?’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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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00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