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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일본 서부 지방 탐방기 (7)

김승국


술 · 술집

 

2005년 8월 1일 히로시마에 도착한 첫날 밤. 목이 컬컬하여 술집을 기웃거렸으나 술 값이 하늘같이 높아(주먹만 한 술병 하나만 내놓고 9천원을 내라니...기본 안주도 안 나오고...) 언감생심으로 이틀 동안 술을 굶었다. 8월 3일 저녁에, 드디어 꾀를 내어 히로시마에서 유명한 ‘오코노미 야끼(일본식 피자-빈대떡)’ 식당에서 생맥주를 들이키니 세상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본부 측에서 준비한 만찬 석상에 나온 일본 술을 마음 놓고 마시니 세상이 내 것만 같았다. 위장 속의 술 창고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면서 핏돌이 도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걸맞게 두뇌의 회전이 빨라져 오히려 냉철해지기까지 했다.
8월 5일까지 체류한 히로시마에서는 별로 술 재미를 보지 못했다. 술의 명산지인 히로시마에서 한잔 꺾지 못한 회한이 나가사키에서 조금 풀렸다. 8월 6~8일에 나가사키에서 민박을 했는데, 필자를 환대한 민박집 주인이 규슈의 소주(나가사키를 포함한 규슈 지방은 고구마로 빚은 소주로 유명하다)를 내놓자마자 홀짝홀짝 들이켰다.

필자의 술배가 터진 건 히로시마 · 나가사키 대회(원수폭 금지 세계대회)를 공식적으로 마침 다음부터이다. 이 대회를 마친 8월 9일부터 매일 밤 술 냄새를 맡으며 지냈다. 8월 9일 밤 구마모토의 서민풍 레스토랑에서 일본 소주를 마시며 음주의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8월 11일 기타 규슈(하카타)에 갔을 때 친숙한 운동가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니혼슈(日本酒)에 소주를 섞어 마시니...취할 듯 말 듯 혀가 꼬부라지면서 일본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1990년대 중반에 필자가 일본에 체류할 때 일본어를 술 친구들로부터 배웠는데, 그 때 배운 일본어 단어가 술 기운에 힘입어 튀어나와 졸지에 일본어 도사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를 초대한 일본인 운동가의 집에서 니혼슈 댓병(됫술을 담은 큰 유리병)을 몇 개나 해치웠는지 모른다. 집 옆의 폭포수 흐르는 소리에 취하며 마신 니혼슈인지라 마실수록 정신이 말똥했다. 오랜만에 혁대를 끄른 채 값비싼 니혼슈를 말 술로 마셨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콧속으로 니혼슈의 향기가 흘러나와 ‘주태백’이 된 기분이었다.

이어 마지막 방문지인 야마구찌에서는 온천욕에 소주를 곁들이는 맛을 즐겼다. 온천장에서 나오자마자 직행한 술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온천수가 몸에 밴 상태인지라 소주가 삼투작용을 일으키듯 모세혈관까지 스며들었다. 드디어 시모노세끼에서 부산행 여객선을 타고 서울로 상경하여 귀가하자마자,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막걸리를 쭉~~~ 들이키며 일본에서의 평화여행을 마감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필자가 술고래인 것처럼 인식할 것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술에 사족을 못 썼으나 요즘은 독주를 피하면서 약게 마신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소주 같은 독한 술은 피하고 막걸리 같이 우러나오는 술을 좋아한다. 물론 평화운동하는 사람이므로 폭탄주를 돌리는 것은 질색이다.

술을 폭탄처럼 들이키는 족속은 아마 한국인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의 음주 문화는 폭력적이다. 이에 비하면 일본인들은 얌전하게 술을 마신다.
지난 8월 1일 히로시마에 도착한 첫날 밤. 목이 컬컬하여 술집을 기웃거렸으나 술 값이 하늘같이 높아(주먹만 한 술병 하나만 내놓고 9천원을 내라니...기본 안주도 안 나오고...) 언감생심으로 이틀 동안 술을 굶었다. 8월 3일 저녁에, 드디어 꾀를 내어 히로시마에서 유명한 ‘오코노미 야끼(일본식 피자-빈대떡)’ 식당에서 생맥주를 들이키니 세상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본부 측에서 준비한 만찬 석상에 나온 일본 술을 마음 놓고 마시니 세상이 내 것만 같았다. 위장 속의 술 창고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면서 핏돌이 도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걸맞게 두뇌의 회전이 빨라져 오히려 냉철해지기까지 했다.


8월 5일까지 체류한 히로시마에서는 별로 술 재미를 보지 못했다. 술의 명산지인 히로시마에서 한잔 꺾지 못한 회한이 나가사키에서 조금 풀렸다. 8월 6~8일에 나가사키에서 민박을 했는데, 필자를 환대한 민박집 주인이 규슈의 소주(나가사키를 포함한 규슈 지방은 고구마로 빚은 소주로 유명하다)를 내놓자마자 홀짝홀짝 들이켰다.

필자의 술배가 터진 건 히로시마 · 나가사키 대회(원수폭 금지 세계대회)를 공식적으로 마침 다음부터이다. 이 대회를 마친 8월 9일부터 매일 밤 술 냄새를 맡으며 지냈다. 8월 9일 밤 구마모토의 서민풍 레스토랑에서 일본 소주를 마시며 음주의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8월 11일 기타 규슈(하카타)에 갔을 때 친숙한 운동가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니혼슈(日本酒)에 소주를 섞어 마시니...취할 듯 말 듯 혀가 꼬부라지면서 일본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먼저 맥주를 시킨 손님(왼쪽)이 골똘하게 안주를 고르고 있다. 오른쪽에 다소곳하게 앉은 종업원이 명령 하달만 기다리는 태도로 주문을 받고 있다. 손님이 주문하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잽싸게 주문서에 기록한다.
1990년대 중반에 필자가 일본에 체류할 때 일본어를 술 친구들로부터 배웠는데, 그 때 배운 일본어 단어가 술 기운에 힘입어 튀어나와 졸지에 일본어 도사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를 초대한 일본인 운동가의 집에서 니혼슈 댓병(됫술을 담은 큰 유리병)을 몇 개나 해치웠는지 모른다. 집 옆의 폭포수 흐르는 소리에 취하며 마신 니혼슈인지라 마실수록 정신이 말똥했다. 오랜만에 혁대를 끄른 채 값비싼 니혼슈를 말 술로 마셨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콧속으로 니혼슈의 향기가 흘러나와 ‘주태백’이 된 기분이었다.

이어 마지막 방문지인 야마구찌에서는 온천욕에 소주를 곁들이는 맛을 즐겼다. 온천장에서 나오자마자 직행한 술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온천수가 몸에 밴 상태인지라 소주가 삼투작용을 일으키듯 모세혈관까지 스며들었다. 드디어 시모노세끼에서 부산행 여객선을 타고 서울로 상경하여 귀가하자마자,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막걸리를 쭉~~~ 들이키며 일본에서의 평화여행을 마감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필자가 술고래인 것처럼 인식할 것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술에 사족을 못 썼으나 요즘은 독주를 피하면서 약게 마신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소주 같은 독한 술은 피하고 막걸리 같이 우러나오는 술을 좋아한다. 물론 평화운동하는 사람이므로 폭탄주를 돌리는 것은 질색이다.

술을 폭탄처럼 들이키는 족속은 아마 한국인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의 음주 문화는 폭력적이다. 이에 비하면 일본인들은 얌전하게 술을 마신다.


나까마(동아리) 의식이 발달된 일본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나까마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곳 중 하나가 술집이다. 술집에서 나까마의 지도자(보스)를 모시고 술을 돌려 마시며 환담하는 가운데 자신이 나까마에 소속되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회사의 보스인 상사를 모신 술 좌석은 회사라는 나까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장소이다. 일본의 회사원들 역시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상사를 씹는다. 일본의 술집에서도 ‘상사 씹기’가 최고의 안주감이다.

모질게 일을 해야 하는 일본 사회에서 술이 없으면 노동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을 테다. 자본가(사장)의 혹독한 업무지시에 순종하는 노동자들의 정신이완을 해주는 게 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술은 일본 사회 · 일본 자본주의의 윤활유이다. 노동자 · 자본가 양쪽에서 보아도 술은 자본주의의 윤활유이다. 노동자들이 퇴근길에 얼큰하게 취할수록 계급의식 · 착취 의식(착취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묽어지므로, ‘술 권하는 사회’를 자본가들은 은근히 바란다.

 
노동자들이 맨 정신으로 귀가하여 마르크스의『자본론』을 읽으며 혁명 의지를 불태우면 총파업이란 불똥이 날아올 게 뻔하다. 술이 자본가와 노동자의 중립지대에 있기 때문에 일본 자본주의의 숨통이 트인다. 해질녘부터 다음날 해뜰 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술집에서 야음(夜飮)하는 중립적인 시 · 공간이 있으므로, 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시스템이 야음(夜陰)을 틈타 돌아간다.

이래저래 술은 일본사회의 막힌 곳을 뚫어주는 해결사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몰아세우는 사회적 · 가정적 의무의 복잡한 그물을 벗어던질 수 있는 수단이 술이다. 특별히 일본인의 일 중독(workholic)을 해소하는 단방약이 술이다.

 
요즘 한국인도 일본인처럼 일 중독에 걸리는 경향이 있는데...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2차 · 3차 · 4차를 전전하다가 알코올 중독(alcoholic)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한국인보다 약삭빠른 일본인들은 일 중독을 술로 해소하다가 알코올 중독에 걸리는 경우가 사뭇 적다. 사회적인 억압기제에 눌려 지내는 일본인들의 자제심이 강한데 반하여 한국인들이 성급한 탓도 있을 테지만, 음주 문화가 알코올 중독의 속도를 늦추는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성깔이 있는 한국인은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독주를 즐긴다. 소주도 부족하여 각종 폭탄주(수소 폭탄주 등)를 통음(痛飮)한다. 그리고 온 몸이 부서지도록 2 · 3 · 4차를 간 다음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를 불러제껴야 겨우 노동의 중압감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니혼슈라는 ‘돗수가 낮고(13~15도 정도) 은은하게 취하는 술’을 음미하므로, 3 · 4차를 가도 곤드레만드레 취하지 않는다. 한국의 소주가 화학주인 반면 니혼슈가 순수한 곡주이어서 만취를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은 술에 대한 자신감이 아주 강한데 비하여 일본인들은 자신감이 덜하다. 일본인 역시 술을 좋아하지만 술에 그다지 강하지 않다. 일본사람은 한국 사람보다 쉽게 취한다. 그래서 술에 대한 자신감이 덜하며 2차 정도로 마감하고 귀가를 서두른다. 일본인답게 술을 약게 마신다고나 할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기분을 내지만 몸을 상하지 않는 수준에서 음주량을 결정하는 약삭빠름이 작동한다고나 할까?

어쨌든 술을 약게 마시는 일본의 서민들은 적은 돈으로 최대의 기분을 내기에 안성맞춤인 ‘이자카야(居酒屋)’를 선호한다. ‘이자카야’란 ‘사케(酒)’가 있는 집이란 뜻으로 우리말로는 ‘대중적인 선술집 · 목로주점’이다(사케는 쌀로 빚은 니혼슈로서, 3세기말 조선 땅에서 건너온 이주자가 전수해준 것이라고 한다). 더욱 서민적인 말로 풀이하면 ‘대폿집’이다.

 
일본의 전형적인 대폿집인 이자카야는 주로 니혼슈를 판다. 서민취향의 실내장식을 한 이자카야의 도르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인장이 ‘랏샤이!!(어서오세요의 일본말인 ‘이럇샤이’를 된 발음으로 빨리 말하면 ‘럇샤이’가 된다)’하며 큰 소리로 환영의 외침을 내지른다. 앞치마를 두른 주방장은 ‘하찌마끼’라는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채 분주히 주문을 받으러 다닌다. 주방장의 행위 하나 하나가 너무 서민적이라서 술맛을 자극한다.

손님들은 ‘도리 아에즈 비이루(우선 맥주!)’라고 외우듯 말하며 안주를 선택할 시간여유를 얻는다. 맥주가 나오기 까지 2~3분 동안 술 종류와 안주를 고르기 시작한다. 같은 니혼슈라도 차게 마시는 방법과 뜨겁게 마시는 방법이 있다. 보통의 일본 사람들은 레이슈(冷酒)라는 찬 니혼슈를 마신다. 추운 겨울 날씨에는 ‘아츠칸’이라 부르는 뜨거운 술을 주문한다. 일부 술꾼들은 ‘히토하다(미지근한 술)’ ‘하나비(사꾸라가 필 무렵의 차가움; 10 정도)’ ‘유키비(눈 올 때의 차가움; 5도)’를 주문하며 자신의 음주 관록을 은근히 주방장에게 과시한다.

 
히로시마의 고급 음식점 입구에 진열된 니혼슈. 술 한병에 얼마냐고 물어 보았더니 35만원이란다...인도의 불가촉 천민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1달러(1천원)이니 줄잡아 1년 동안 일해야 니혼슈 한병 마실 수 있다.

동일한 니혼슈이지만 술의 온도에 따라 맛도 다르고 술잔도 달리 나온다. 옛날식으로 사케(酒)를 데우는 잔은 나오지 않지만, 아직도 작은 호리병 속에 아츠칸을 가득 담아 준다. 아츠칸이 들어 있는 따끈따끈한 술병을 손에 쥐면 추위가 가신다. 호리병을 기울여 작은 오초코 잔에 따라 마시면 목덜미가 뜨근뜨근해지며 음산한 추위를 이길 힘이 솟는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술을 마스(상자처럼 각지고 위가 뚫린 목재 그릇)에 담아 내놓았다. 나무 그릇의 부드러운 소나무 향기가 사케와 섞인다. 적은 양의 소금을 마스의 귀퉁이에 넣는 경우도 있다. 술을 마시는 동안 소금이 사케에 녹아들어 약간 짭짭하며 미묘한 술맛을 낸다.

필자가 좋아하는 막걸리가 일본에 없는 게 유감이어서, 히로시마에 갔을 때 일부러 재일동포 가게에 가서 한국 막걸리를 사려고 했으나 한 병에 12,000원을 호가하는 바람에 기절할 뻔했다. 일본에는 ‘니고리 자케’라는 막걸리 비슷한 술이 있다. 뿌옇고 흰색을 띠는 사케로서 술찌꺼기 일부가 술잔 바닥에 깔린다. (전주의 해장국집이나 비빕밥 식당에서 주문하면 나오는) 모주와 식혜 중간쯤 되는 술이지만, 막걸리와는 맛도 색깔도 다르다.



헌대 일본까지 가서 막걸리 타령하는 게 민망하여 소주를 많이 마셨다. 특히 규슈 지방은 소주로 유명한 지방이어서 술집마다 특색 있는 소주를 내놓았다.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주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장기 불황으로 취직이 잘 안되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독해져서 니혼슈 보다 독한 소주를 즐겨마시는게 아닐까? 니혼슈를 많이 마시면 그 다음날 아침에 머리가 아프지만, 소주를 과음하고 일어나도 두통이 없어서 젊은이들이 선호한다고 한다.

일본말로 소주를 ‘쇼오추우’라고 발음한다. 쇼오추우는, (단 음식을 무척 좋아하는) 규슈 지방 남부의 전통주로 유명하다. 니혼슈보다 독하므로 일본의 술꾼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 쇼오추우이며 일본의 대표적인 독주이다. 독주이어서 그런지 옛날에 일본군대의 소독제로 쓰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쇼오추우가 마냥 독한 건 아니다. 양질의 쇼오추우는 즐길 만하다.

쇼오추우는 일반적으로 독하므로 얼음을 넣어 차게 마시거나 뜨거운 물로 희석시켜 마신다. 가고시마 현에서는 감자로 만든 ‘이모 죠오추우’를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밤으로 만든 쇼오추우도 있다.

소주 타령을 하다가 밤새는 줄 모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술집으로 화제를 옮긴다. 일본의 동네마다 필수적으로 있는 대폿집이 이자카야이다. 이자카야는 식당 겸 술집이면서 시골 은신처 같은 분위기에 데이트 장소의 분위기도 연출한다. 이자카야의 안쪽에는 다다미 방이 있으나 입구엔 식탁이 놓여 있다. 이 곳에서 일본 서민들의 애환이 술을 통해 녹아난다.

이자카야 이외에도 ‘아카 초오친’ 이라는 서민지향적인 술집이 있다. 입구에 걸려 있는 ‘빨간 종이 등불’에, 초서체로 술집 이름이 적혀 있다. 아카 초오친은 저렴한 술집 겸 간이식당인데, 소박한 환경에서 일반적인 이자카야 음식을 판다. 어떤 동네이든 그 이름의 연유와 관련된 이름의 빨간 등불을 보고 찾으면 아카 초오친 술집이 나오며, 특히 주요 교통 터미널 근처의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또 다른 서민적인 술집은 ‘다치 노미야’이다. 다치 노미야는 ‘서서 마시는 술집’이라는 뜻이다. 근로자들이 귀가길에 딱 한잔 걸치는 곳이 다치 노미야이다. 일본의 다치 노미야에는 복고풍의 거친 매력(거칠게 사는 아랫 것들이 동전 몇 닢으로 손가락 빨며 ‘쐬주’를 까는 거친 매력)이 넘쳐난다. 다치 노미야는 메이지 시대부터 사케를 파는 상점이지만 (두 가지 금기만 지키면) 음식과 술을 팔 수 있다. 상점 안에서 조리하면 안 되는 금기, 손님이 앉을 수 없는 금기를 지켜야한다.

프롤레타리아트들이 몰려 사는 동네 어귀에 다치 노미야가 반드시 있으며, 손님들은 거의 남성 노동자들이다. 밑바닥 생활을 하는 일용 노동자들과 동지가 되려면 이곳에 들러 ‘쐬주’를 까라! 그러면 일본 프롤레타리아트 친구들을 즉석에서 사귈 수 있다.

일본의 서민풍 술집에 가장 많이 나오는 안주는 시샤모(빙어)이다. 좀 돈을 들여 니혼슈를 마신다면 스시를 주문하라! 스시 맛을 음미하며 니혼슈를 마시면 무아의 지경에 빠져든다. 내가 스시인지 스시가 나인지를 망각한다. 니혼슈를 거듭 들이킬수록 니혼슈의 바다에 빠져 양조장 속에서 헤엄쳐 다닌다.

일본인들은 술을 빚을 때 신에 경배하듯 술 귀신을 모신다. 독자 여러분도 일본에 갈 때 일본의 술 귀신들과 한바탕 놀기 바란다. 스시에 니혼슈를 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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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01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