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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일본 서부 지방 탐방기 (9)


김승국

 


히로시마 주변의 3각 기지



지난 8월 2일 오전부터 히로시마에서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원수폭 금지 일본 협의회 주최)>가 열렸다.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기간 중에 ‘히로시마 평화 기념(記念) 자료관’과 ‘사몰자(死沒者) 추도 평화 기념(祈念)관’을 둘러본 필자는,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기미조차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 반핵평화 운동을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런데 두 기념관 모두 ‘일본의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이 피폭의 원인이 되어 무고한 아시아 민중이 개죽음을 당했으며, 천황이 주도한 전쟁 때문에 아시아 민중이 몰살당했다’는 문구가 전무하여 적지 않게 실망했다.

이들 기념관은 ‘피폭을 두 번 다시 당하지 않는 평화’를 기원할 뿐...‘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두 번 다시 일으키지 않겠다’는 평화의 결의를 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히로시마 식(式) 평화의 한계’를 드러냈다.

히로시마 식 평화의 한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돋보인다. 첫째 일본인만 피폭을 당했다는 의식 때문에 조선인 · 중국인 등의 피폭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둘째, 히로시마가 또 다시 군사도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히로시마 시 근교에 육상 자위대 13여단이 있고 구레(吳)기지에 해상 자위대의 함정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으며, 이와쿠니(岩國) 미군 공군기지의 활주로를 새로 만들고 있다. 육상 자위대 13여단-구레-이와쿠니를 잇는 미-일 동맹의 3각 기지(주일미군 기지+자위대 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3각 기지 안에 핵무기가 존재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히로시마 부근에 핵의 그림자가 얼씬거리는 3각 미 · 일 동맹군 기지가 엄존하는 모순이 미 · 일동맹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히로시마 시내의 폭심지에서 동쪽으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역에 육상 자위대 제13여단이 있으며, 13여단이 있는 해안도로를 따라 20킬로미터쯤 달리면 구레 기지(해상 자위대 기지이지만 미군과 함께 사용함)가 나오고, 폭심지에서 서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이와쿠니 미 공군기지가 나온다. 이렇게 히로시마-구레-이와쿠니를 잇는 3각형의 군사거점이 폭심지 주변에 형성되어 있으며 핵무기 보유 의혹을 받고 있는 현장을 보고 숨이 막혔다.

피폭도시 히로시마 부근의 3각 기지(핵무기 보유 의혹을 받고 있음)는, 피폭도시 나가사키 부근의 사세보 기지(핵무기 보유 의혹을 받고 있음)와 더불어 미국의 북한붕괴 전쟁(대북 핵전쟁)의 전초기지들이다.

매년 8월초에 히로시마 · 나가사키에서 세계적인 반핵평화 대회를 열어 두 도시가 비핵평화의 도시임을 과시하는 이면에, 미일 동맹이 드리운 핵무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으며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유령이 배회한다. 이러한 기가 막힌 모순을 절감한 필자는,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히로시마 · 나가사키 부근의 미 · 일 동맹군 기지(주일미군 기지 · 자위대 기지)의 실상을 간파하기 위해 ‘3각 기지 탐방길’에 나섰다(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히로시마 · 나가사키 부근의 주일미군 기지 · 자위대 기지 탐방기를 연재함).

이번 호에서는 히로시마 부근의 3각 기지(육상 자위대 13여단-구레-이와쿠니를 잇는 기지 연계망)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올해의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는 히로시마 부근의 3각 기지를 배로 돌아보는 현장 방문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참여 희망자를 모집했다. 필자는 이런 호기를 놓칠까 두려워 재빨리 등록하고 8월 5일 현장방문을 위한 배에 승선했다.
 
 
3각 기지 탐방선은 8월 5일 아침 8시 30분에 히로시마 항을 출발하여 육상 자위대 13여단이 보이는 해상을 거쳐 히로시마 만에 산재한 주일미군 기지 · 자위대의 바로 코 밑까지 배를 대고 면밀하게 관찰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 배에 승선한 약 150명의 기지 탐방객들은 안내자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으며 미 · 일동맹의 장래를 크게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필자는 ‘구레 · 이와쿠니의 탄약고에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선상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기가 막혔다. 핵으로 망한 히로시마 주변에 다시 핵무기의 유령이 얼씬거리고 있으며 이를 일본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는 이중적인 기만을 실감했다.

기지 탐방선은 드넓은 히로시마 만에 산재한 切串 탄약고 · 吉浦 저유소(군사용 유류 저장소) · 구레 기지(해상 자위대 기지) · 秋月 탄약고 · LCAC(에어쿠션 형 양륙정; Landing Craft Air Cushioned) 정비장 · 이와쿠니 기지(주일미군 · 자위대 공용 기지)를 지나 오후 3시경 히로시마 시내에 복귀했다.

그러면 3각 기지의 하나 하나에 무슨 군사시설이 있으며, 무슨 기능을 하는지를 설명한다.

 

  1. 육상 자위대 13여단

 


일본 방위청의 ‘신방위계획 대강’에 따라 육상 자위대 13여단이 1999년 3월 29일에 새로운 모습으로 편성되었다. 5천명의 대원이 소속된 13여단은 시설대대와 전차대대가 중심을 이룬다. 기능이 우수한 기동차 · 군수물자 수송용 헬리콥터 · 120밀리 박격포로 무장하고 있다. 13여단은 최신 장비를 동원한 합동훈련을 함으로써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13여단은 미 · 일 공동지휘소 연습에 참가함으로써 미 · 일 군사동맹의 일체화(一體化)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이런 군사행동이 모두 일본 평화헌법 9조를 위반하고 있다. 불법적인 군사연습을 거듭하면서 한반도를 향해 진격연습(?)을 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13여단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2. 구레

 

13여단은 멀리에서 보이는 육상기지 이므로, 실체를 실감하지 못했으나 구레 기지는 완전히 달랐다. 구레 기지에 가기 전에 나타난 吉浦 저유소(해상 자위대용)와 구레 기지 바로 옆에 있는 秋月 탄약고의 위용은 공포 그 자체이었다. 출격기지로서의 구레 군항이 사용할 어마어마한 군사용 기름을 담고 있는 연료 탱크와 탄약고 속에 있을지 모를 핵무기는 테러 자체이었다. 알카이다의 테러 보다 이곳 주일미군 · 자위대의 무력 테러(공격) 가능성이 한반도에 더욱 큰 위험으로 다가올 것으로 여겨졌다.
이윽고 탐방선은 구레 항 깊숙이 들어와 부두에 정박한 자위대 함선 바로 옆에까지 육박했다. 이 덕분에 (출격기지로 변모한) 구레 항의 전모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최근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법제화한 유사법제에 따라 자위대가 마음 놓고 해외파병 되고 있는데, 이곳 구레 항을 통해 해상자위대의 보급함 · 호위함 · 수송함 등이 인도양 · 페르시아 만에 파견되어 미군의 작전을 지원하고 있다.

미 · 일 동맹의 세계화 · 미군-자위대의 일체화가, 구레 항의 안팎에 떠 있는 각종 함정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2004년 2월 14일 일본의 대형 수송함인 ‘오오스미’가 이라크로 파병되었을 때 불과 몇 십 명의 반전 운동가들이 두 손 번쩍 들고 구레 부두에서 항의했지만, 이런 시위에 코웃음 치듯 이라크로 향했다.

구레 항은 한반도와 질긴 인연을 지니고 있다. 19세기말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를 점령한 일본 해군의 거점이 구레이었으며, 한반도를 경유하여 중국 대륙으로 진출한 일본군의 출항기지가 구레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소해함정이 태부족했던 미군의 요청에 따라 이곳 구레에 있던 일본 소해함정이 원산 · 인천 앞바다에서 기뢰제거 작업을 했다. 옛 일본군의 일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한국전쟁에 간접적으로 참전한 비밀 아닌 비밀을 말해주는 곳이 구레 항이다.

그런데 구레의 악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듯하다. 북한과의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미 · 일 군사동맹이 건재하는 한 구레 항이 한반도를 향한 해상 출격의 거점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구레의 이모저모를 살펴본 기지 탐방선은 기수를 급선회하여 이와쿠니 기지를 향해 달렸다. 지도를 펴 놓고 보면 히로시마 만의 오른쪽에 구레 항이 있고, 왼편에 이와쿠니 기지가 있다. 구레는 히로시마 현에 있지만, 이와쿠니는 야마구치 현에 있으며, 두 곳은 해상으로 약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히로시마 만의 좌우에 포진된 3각 기지 연결망(주일미군 기지 · 자위대 기지)의 좌청룡이 이와쿠니 기지이고 우백호가 구레 군항인 셈이다. 우백호인 구레 군항과 좌청룡인 이와쿠니 기지를 종합관찰하면, 미 · 일 동맹의 군사적인 일체화를 손바닥 보듯이 알 수 있다.

구레 항을 통해 미 · 일 동맹군 일체화의 절반을 보았으니, 나머지 절반을 살펴보기 위해 이와쿠니로 가보자.

  
  3. 이와쿠니

 

이와쿠니는 이미 한국전쟁의 출격기지로서 한반도와 악연을 지닌 곳이다. 또한 1999년 6월의 서해교전에 대비하여 출동한 항공모함 ‘콘스텔레이션’의 함재기 EA6B 프라우라가 이와쿠니에 파견되기도 했다. 지금도 한미합동훈련(Foal Eagle 등) 때 이와쿠니가 주일미군의 거점이다. 미국이 북한과 전쟁할 때 이와쿠니에 배치된 FA 호넷 전투기가 주한미군의 전투기와 더불어 맨 먼저 북한 상공에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유사시에 대비하여 이와쿠니에 배치된 주일미군 전투기들이 매향리까지 날아와 사격훈련(한반도 상륙연습)을 거듭해왔다.

이와쿠니 기지의 정면에 'U.S. Marine Corps Air Station IWAKUNI'라는 표식과 더불어 ‘미 해병대 이와쿠니 항공기지/ 해병 제12 비행대대/ 해상 자위대 31항공군(航空群)의 근거지’라는 일본어 간판이 붙어 있다. 위의 영문 간판과 일본어 간판은 미 · 일 동맹의 군사적 일체화를 대변하며, 간판에 기록되어 있는 문구가 군사적 일체화의 내용을 말해준다.

영문 간판이 말해주듯이, 이와쿠니는 (전 세계에서 일본에만 배치되어 있는) 미 해병대의 기지이다. 오키나와에 배치된 미 해병대와 깊은 연계 속에서 움직이면서 (한반도를 비롯한) 전쟁 · 분쟁 지역에 가장 신속하게 이동하는 채비를 갖춘 미 해병대의 항공 기지이다.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는 (북한 등을 점령하는) 육상훈련을 많이 하지만, 이곳 이와쿠니 기지는 해병대의 육상 · 해상 활동을 지원하는 항공부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가 가장 먼저 움직이게 되어 있는데, 이와 동시에 이와쿠니의 항공부대가 출동하여 한반도로 출격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펜타곤이 구상하는 전 세계 미군재편(GPR; Global Posture Review)에 따른 주일미군 재편의 핵심지역이 이와쿠니인 점에서 두드러진다. 주일미군 재편의 요점은 (중국과 북한에 대한 포위망을 더욱 좁히기 위해) 이와쿠니 기지 등을 최첨단화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와쿠니 기지에 2,500미터 길이의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중이다(60% 공정). 2008년까지 새로운 활주로 공사를 마치면, 이와쿠니 기지는 2,500미터의 활주로 2개를 보유하는 세계 최대의 미 공군기지가 된다. 세계 최대의 미 공군기지 이와쿠니가 한반도 지척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끔찍함은 이와쿠니의 탄약고 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 호넷(FA Hornet) · AV8B 해리어Ⅱ 등 57대의 최첨예 전투기(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투기들)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새로운 활주로 공사장 부근(이와쿠니 기지의 후문) 도로의 건너편에 있는 탄약고 입구에 ‘위험 표시 1’이라고 쓰여져 있는 팻말을 똑똑히 보았다. 우리 일행을 향해 탄약고 입구의 ‘위험 표시 1’이라는 문구에 주목하라고 요구한 안내자가 ‘바로 저 곳에 핵무기가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 이와쿠니는 핵전쟁에 대비한 공군기지’라고 설명하는 말을 듣고 등골이 오싹했다. 어떤 나라가 어떤 나라를 상대로 치루는 핵전쟁인가? 혹시 미국의 대북 핵전쟁에 대비한 탄약고가 아닌가?

더욱 심각한 것은, NLP 훈련을 이와쿠니 기지 주변에서 할 계획이다. 북한 등을 ‘야간에 저공(低空)에서 공격연습하는 NLP훈련’을 앞으로 이곳에서 할 작정이며, 이는 주일미군 재편 즉 해군과 해병대 항공부대의 통합과 관련이 있다. 동경 부근의 아츠끼(厚木)기지에서 하던 NLP 훈련을 한반도에 더욱 가까운 이와쿠니에서 할 예정이며 호넷 전투공격기가 주력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이와쿠니에서 NLP 훈련을 함으로써 야간에 북한 상공을 저공비행하며 북한군의 전략사령부(김정일 위원장 등이 숨어서 전쟁을 지휘할 곳)에 벙커 버스터 핵폭탄을 퍼붓는 연습을 할지 모른다. 이러한 훈련에 대비하여 이와쿠니에 북한 선제공격용 핵무기(벙커 버스터 핵폭탄 등)를 갖추고 있을지 모른다.

앞에서 거론한 해군-해병대 항공부대의 통합은 전술항공통합(TAI; tactical air integration)이라 불리는 새로운 발상이며, 이 발상에 따라 이와쿠니에 배치된 호넷 전투기가 (대북 전쟁을 총체적으로 지휘하기 위해) 한반도로 향하는 항공모함의 탑재기 부대에 합류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와쿠니가 항공모함 탑재기의 발진 연습 · 전투훈련 기지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항공모함에 탑재한 전투기들은 좁은 함상에서 훈련을 할 수 없으므로, 발진연습 · 공격훈련을 하고 가까운 공군기지에 착륙한 다음 되돌아오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예컨대 사세보 해상에 정박 중인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이 공중훈련을 한 다음 이와쿠니 기지에 착륙했다가 다시 항공모함으로 되돌아가는 연습을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항공모함까지 끌어들여 한반도를 향해 촉각을 드리우는 이와쿠니 기지. 이 기지의 기능을 두 배로 높이기 위한 새로운 활주로 공사장. 이 공사장에서 건네다 본 호넷 전투기 부대. 그 부대 안의 지하 탄약고에 쓰여 있는 ‘위험 표시 1’ 등은, 한반도와의 악연을 예고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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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03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