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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야생의 인도 기행 (14)


김승국

 

인도에서의 기차 여행

 
 
인도에서 기차 여행은 즐거움이자 고행이다. 인도의 지도를 펼쳐보면 대륙을 종횡으로 달리는 철도길이 자랑스럽게 그려져 있다. 인도의 철도는 영국의 제국주의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부설되었다. 마치 한반도를 경영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도를 깔아 만주벌판을 달렸듯이...

영국 제국주의가 부설한 철도가 지금도 인도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이 철도는 인도 서민들의 발이다. 보통 역의 경우 기차가 하루에 몇 차례 밖에 왕래하지 않지만, 철도역은 인도인의 의사소통, 물자 소통의 혈맥이다.

필자가 인도를 여행하면서 기차가 달리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지만, 언제나 저속이었다. 저속 사회 인도에서 기차가 한국처럼 고속으로 달리면 비정상이리라....그런데 느려도 너무 느린 것 같았다. 필자의 어린 시절의 완행기차처럼 빨리 달리면 기차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정도이었다. 그것도 언제 도착하고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완행기차라면, 한국 사람들은 두 손을 반짝 들고 짜증을 낼 것이다.

인도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좀처럼 느낄 수 없다. 매사가 세월아 네월아 한다. 전혀 서두를 일이 없는 인도인들은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지 않아도 화를 내는 법이 없다. 그저 느긋하게 몇 시간 연착하더라도 기다린다. 기차가 언제 왔다가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 승객들이 거의 하루 종일 대기 상태이다.

작년에 델리에 갔을 때 인도에서 가장 큰 델리 역에 구경 삼아 나가 보았는데....지난 밤 연착한 기차를 밤새도록 기다리다 지쳐 대합실 바닥에서 누워 자는 사람들, 이른 새벽에 차를 타러 나와서 기다리다 지쳐 벌렁 누운 사람들, 차표를 사기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떼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이었다.

델리 역 앞에는 발통 달린 것은 모두 나와서 승객과 짐을 실어 날랐다. 심지어 역마차까지 출동하여 화물을 싣고 달그락거리며 달렸다. 서민들의 애환이 물씬 풍기는 델리 역 정경은 잊지 못할 추억거리이다.

델리 역은 인도 대륙을 동서남북으로 이어주는 동맥과 같은 곳이다. 수십 개의 플랫폼마다 먼 곳을 달리는 열차가 대기해있다. 델리 역에서 인도 대륙의 최남단인 타밀나두로 가는 기차는 몇 시간이나 걸릴까? 3~4일 정도 소요될 것 같은데(인도 국내선 비행기의 요금이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에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기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 열차에 몸을 맡기고 하염없이 달리고 싶었으나 빡빡한 일정 때문에 포기했다. 그래도 아쉬워 대륙 횡단용 특급열차에 들어가 보았더니 겉에서 보기보다 열차 내부의 환경이 좋았다. 에어컨도 잘 나왔다. 수십 시간 달릴 승객들은 아예 눈을 딱감고 딴청을 부리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올해는, 대륙 횡단 열차를 탈 기회가 생겼다. 1월 21일 오후에 뭄바이를 출발하여 델리까지 가는 특급열차를 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열차표를 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인도의 가장 중요한 두 도시인 뭄바이와 델리를 잇는 특급열차의 이름은 라즈다니 특급(Rajdhani express). 이 열차는 인도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호화로운 가장 낭만적인(?) 열차로 소문이 나있어서, 수많은 인도인들이 라즈다니 열차를 애용한다. 그런데 라즈다니 열차는 하루에 단 두 차례 오후 늦게 출발한다. 인도 대륙을 횡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차 노선이 하루에 단 두 번 밖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라즈다니 열차 표를 사려면 한달 두 달 전에 예약해야 간신히 구입할 수 있단다.

필자는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기차역에 가면 곧장 표를 살수 있거니 생각하고 매표소에 갔으나, 이미 한두 달 전부터 만원사례라고 하며 말도 못 꺼내게 한다. 한참 헤매는데 어느 역무원이 델리 시내의 거점역(역명을 망각함)에 가면 외국인에게 특별 서비스(?)가 있을 것이라고 귀뜸해주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릭샤를 타고 먼지구더기의 그 역에 갔으나 그곳에서는 외국인에 주는 특별 표가 없다고 말하면서 ‘Church Gate역 단 한군데에서만 외국인에게 표를 판다’고 일러주었다. 하는 수 없이 완행기차를 타고 멀리 떨어진 Church Gate 역에 갔다.

Church Gate역은 뭄바이 해안가의 서양풍의 도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최상류층이 집단거주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당연히 외국인도 밀집거주할 것이고, 그들을 상대로 특별 서비스로 라즈다니 열차표를 판다. 한국과 달리 인도의 특급열차마다 외국인용 표가 일정한 숫자로 할당되어 있다. 외국인 특별대접인지 관광산업 진흥을 위한 조치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하늘에서 별 따기라는 라즈다니 열차표를 초특급으로 구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두 달 전에 노심초사하며 표를 예약해야하는 인도의 서민들에게는 매우 미안한 일이지만....

한참 만에 Church Gate역에 당도했다. 물어물어 매표소를 찾으니 거의 퇴근 시간이 임박했다. 서둘러 표를 사려고 하니 ‘한 사람이 표 두장을 살 수 없다’고 한다. 내일 델리에 갈 때 한분을 더 모시고 가야하므로 결국 표 사는 걸 포기하고 숙소로 되돌아 왔다. 내일 새벽에 기상하여 이 곳에 와서 다시 표를 살 생각을 하니 꿈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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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34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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