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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간디의 평화사상은?

인도 방문기-4월 7일

 
김승국  


Gandhi Peace Foundation 방문

 

오늘은 델리 중심에 있는 Gandhi Peace Foundation을 찾아가서 Vora 부부를 만났다. 남편 Rajiv Vora는 Gandhi Peace Foundation의 기관지 편집장(55세; 그는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다 투옥된 적도 있다)으로, 그의 부인 Niru Vora 박사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Gandhi Peace Foundation은 간디의 암살 사건 이후 인도 안팎의 유력인사들이 제창하여 세운 대표적인 간디 관련 시설이다. 이 곳에서는 간디의 사상을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일, 간디 평화사상을 실천하는 일을 주로 한다.

필자는 Gandhi Peace Foundation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Vora 부부와의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Vora 부부 인터뷰

 

필자가 Hindu Fundamentalism(힌두 원리주의)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인도에서 어떻게 평화를 만들 것인가 물었다. 필자가 인도에서의 평화 만들기(peacemaking)를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는 제의에도 불구하고 Hindu Fundamentalism에 집중되었다.

Vora 부부가 말하는 ‘Hindu Fundamentalism’은 필자가 주로 의존했던 서구적인 시각과 달라서 충격을 주었다. 우선 인도의 지식인 두사람이 말하는 Hindu Fundamentalism을 소개한다. Vora 부부는 한결같이 Hindu Fundamentalism은 서구에서 지어낸 이름이지 Islam Fundamentalism과 같은 현상은 없다는 것이다. 있다면 힌두교의 일원론적(monolistic)이거나 퇴행적인(decadent) 행태라는 것이다. 아마 서구인들이 ‘힌두교의 일부가 타락(decay)한 모습을 보고 Hindu Fundamentalism으로 부르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만약 그런 Hindu Fundamentalism이 있다면 그건 매우 폐쇄적인 것으로 종교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Hindu교의 본령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간디도 힌두교도이었음을 재차 강조하며 간디가 숭앙한 힌두교가 그렇게 빗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가 RSS 등의 Hindu Fundamentalism 전위 조직이 있고 BJP와 같은 Hindu Fundamentalism 정당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하여, Rajiv Vora가 RSS에 대하여 동정적인 발언을 하여 필자를 놀라게 했다. Rajiv Vora는 ‘RSS-BJP도 민주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나름대로 독자적인 신념체계를 갖추고 있으므로 Fundamentalism 집단으로 부르기 어렵다. 이들 집단에 세속화(securalize; 脫宗敎化)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으나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오히려 RSS-BJP에서 말하는 Hindutva(Hinduness)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재정립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재정립할 때 非서구적인 시각이 아니라 인도적인 관점, 인도적인 패러다임(paradigm) 즉 ‘내재적 접근’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인도든 어디든 각 나라, 각 민족, 각 사회마다 독특한 관점이 있으므로 이런 관점을 배제하고 서구 지향적으로 나아가면 인도사회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조언을 했다.

이들 부부는 서구사상을 세속적 가치로 보는 RSS-BJP의 입장에 총론적으로 동의하는 태도를 보이며 Hindu Fundamentalism을 Islam Fundamentalism과 동일시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필자가 이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점은 인도에서 평화를 말하기 이전에 종교의 담론을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원효대사와 간디가 실천하려고 한 종교의 회통(會通)을 화두로 하지 않고는 인도에서 평화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에 주목하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화시간을 Gandhi Peace Foundation의 평화 활동에 할애했으나 시간여유가 없었다. Rajiv Vora는 간디의 비폭력 평화 운동에 주목하라고 일러주었다. 대화가 끝날 무렵 한국에서 ‘인도에는 간디가 없다’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고 소개하자 그거 재미있는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에는 간디가 없다’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는 책이름 자체가, 간디의 정신을 잃어가는 인도의 현실세계와 본디 인도의 것(카레)을 잃어가는 인도인의 생활행태(서구지향적인 소비풍조)를 풍자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것 같다. 이들 부부는 무엇보다도 ‘간디가 없는 인도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는 것 같았다.

이들 부부의 마음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필자가 ‘한국에는 간디를 흠모하며 간디의 사상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말하자, 이들의 시름이 좀 풀린 듯 즐겁게 웃으며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제의했다.

Gandhi Peace Foundation의 식당에서 내놓은 식사는 간디의 식단처럼 정말 소찬이었다. 필자는 인도 빵을 씹으며 Rajiv Vora로부터 Gandhi Peace Foundation의 秘史를 들었다. 바로 이곳에서 인디라 간디의 독재에 항거하는 국민위원회(한국의 경우 ‘6월항쟁 지도부’에 해당?)를 조직했으며 그 조직이 앞장서서 인디라 간디를 하야시켰는데, 3년 뒤 인디라 간디가 정계에 복귀하자 Gandhi Peace Foundation에 앙갚음을 했다고 한다.

정계에 다시 복귀한 인디라 간디는 의회 안에 ‘Gandhi Peace Foundation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위협을 가했다. 인디라 간디는 ‘Gandhi Peace Foundation과 관련된 인물들이 반국가적인 활동을 전개했으며, 그런 활동은 간디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선전하며 관련인물들이 부정한 짓을 저질렀는지 면밀하게 뒷조사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전혀 문제 될 게 나오지 않자 라지브 간디 수상 시절에 그 위원회를 폐쇄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Gandhi Peace Foundation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간디의 평화사상을 전수(?) 받을 수 없느냐가 질문하니까, (내가 마음에 든 듯) ‘당신이라면 얼마든지 Gandhi Peace Foundation 본관의 3층에 있는 숙소에 장기체류하면서 각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Rajiv Vora는 자기가 직접 간디의 평화 사상을 가르쳐주겠다는 특전(?)을 베풀기도 했다.

점심 식사 후 Rajiv Vora가 말하는 숙소를 둘러보았다. Gandhi Peace Foundation 3층에 침대 3개가 놓인 방이 8개 정도 있었으며 시설은 열악했다. 특히 겨울철에는 난방이 안 된 다고 했다. 방 사용료를 하루 10달러 정도(아주 검소한 3끼의 식사 제공)이며 총경비는 하루 10달러 미만이라고 한다. 이 숙소가 델리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교통수단 이용의 장점은 있었으나 차들이 지나가는 소음이 크게 들렸다. 필자가 만약 이 숙소를 이용하려면 1~2달 전에 예약하라고 귀뜸해주었다.

 

도서관에 낡은 자료 뿐

 

인터뷰를 모두 마침 다음 Gandhi Peace Foundation의 도서관에 들러 쓸만한 자료가 있는지를 검색해보았다. 인도의 대개의 공공시설이 그렇듯이 사후관리가 거의 이루어있지 않아서 그런지 간디의 전집 정도를 제외하고는 낡은 자료뿐이었다. Rajiv Vora가 ‘Gandhi Peace Foundation은 정부 눈치 안보고 독자적으로 운영한다’고 뽐낸 자긍심이 남루할 정도로 자료의 빈곤을 드러냈다.

Gandhi Peace Foundation의 도서관을 나와 진보적인 사회과학 도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 ‘People Tree'에 들러 4권의 책을 샀다. 4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여러 분야의 책을 전시하고 있었으며 서점 주인이 아주 친절하고 자상하게 고객의 취향에 맞는 책을 선보였다.

이 서점은 델리의 번화가인 Connaught Place에 위치해 있으며 홈페이지도 갖고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peopletreeonline.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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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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