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화 운동/평화기행

반미감정이 하늘을 찌를 듯

인도 방문기-4월 9일

 
김승국  

 

“게릴라에 연락하겠다”

 

새벽 5시 30분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모스크에서 들리는 아자한(Azaan) 소리에 잠을 깼다. 스리나가르 시내 곳곳에 있는 모스크에서 일제히 들리는 아자한 소리로 스리나가르는 神都가 된 듯했다. 이 아자한 소리는 인도를 떠날 때까지 곳곳에서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내 영혼을 울렸다.

오늘은 스리나가르 남쪽에 있는 Nadimarg와 Shopian에 가기로 했다. 스리나가르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차를 정비하기 위해 정비소에 잠깐 정차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

필자를 미국 사람으로 착각한 차량 정비소의 주인이 운전수에게 “(필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 혹시 미국 놈 아니냐. 미국 놈이라면 게릴라에 연락하여 잡아가도록 하겠으니 그리 알라...”고 경고했다. 이런 경고를 들은 운전수가 깜짝 놀라 “저 사람은 미국 사람이 아니고 아시아 사람이다. 한국에서 온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게릴라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차량 정비소 주인에게 신신당부한 다음 헐레벌떡 차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운전수는 나에게 잠깐 동안 벌어진 일을 설명하면서 차를 돌려 냅다 달렸다. 모골이 송연한 순간이었다.

위기탈출에 성공한 다음 차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선 이 곳 주민(무슬림)들이 미국을 철천지 원수로 여긴다는 점, 게릴라와 주민들의 연락망이 촘촘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 이런 상황에서 게릴라들의 유격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미국인에 대한 증오심이 얼마나 심했으면 전혀 미국인 같지 않은 필자마저 미국 놈으로 착각하고 게릴라에게 연락한다고 했겠나?

이 사건을 계기로 필자는 미국인처럼 보이는 테두리 모자를 벗어던지고 무슬림처럼 수염을 잔뜩 기르기로 했다. 미국인으로 의심받아 게릴라들의 인질이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필자의 행색이 무슬림 같으면 게릴라들의 과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꾀를 낸 것이다.

 

“자연은 평화로운데...”

 

이 사건을 지켜본 안내자 Hussain은 게릴라들의 제1차 표적은 미국인이고, 제2차 표적은 이스라엘인, 제3차 표적은 모든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한다. 게릴라들은 미국인 등 외국인들을 (감옥에 정치범으로 있는) 자신들의 동료와 맞바꾸기 위한 인질로 삼아 인도 정부와 협상을 한다고. 몇 년 전에 납치된 미국인과 이스라엘인 여러 명이 실종되어 지금도 생사를 모른다고 Hussain은 귀뜸해줬다. 이 끔찍한 말을 듣는 순간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유채꽃이 만발한 들판은 노랑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자연은 평화로운데 인간은 평화롭지 못한 캐시미르의 현장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이어 필자를 실은 차 옆을 평상복장의 게릴라들이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데 게릴라와 필자가 서로 어긋나며 비켜지나간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리라...
------------
무고한 컴퓨터 엔지니어의 죽음

 

필자를 실은 차는 모진 인연 속에서 숨진 컴퓨터 엔지니어의 고향마을을 향해 달리고 있다. 최근 게릴라 활동가로 오인 받은 세 사람의 젊은이가 뭄바이 비밀경찰 당국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이곳 캐시미르 Shopian 마을 출신의 양민이다. 죽은 컴퓨터 엔지니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왜 그가 비밀경찰에 잡혔으며 어떤 경로를 거쳐 죽어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송장으로 돌아온 자식을 묻기 위한 장례 준비가 여인들의 오열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으며, 마을 주민들은 항의 표시로 철시했다.

Pirpanjal 산맥의 빙하가 녹은 계곡 굽이굽이마다 인도군의 군홧발에 짓밟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인도군이든 게릴라이든 인도 비밀경찰이든 가릴 것 없이 군사주의의 망령이 캐시미르 계곡에 스며있는 듯했다.

 

힌두마을 주민을 집단학살

 

초상집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한 우리 일행은 지난 3월 23일 정체불명의 무장괴한들에 의해 23명이 집단학살 당한 힌두교도 마을 Nadimarg를 방문했다. 3월 23일 밤 11시경 이 마을을 지키던 인도 경찰을 무장해제시킨 다음 집안으로 쳐들어온 무장괴한들은 돈과 귀금속을 바치는 사람들을 제외한 23명을 마을 한 가운데 정렬시킨 다음 일제히 사살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짐작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무장괴한이 인도군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할 뿐 이 사건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두메산골 마을에서 약 100명 남짓한 힌두교도들이 이룬 신앙 공동체가 총 몇 방에 깡그리 무너졌다. 죽지 않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곧 이 곳을 떠나 힌두교도들이 많이 사는 잠무로 이사할 것’이라며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정든 고향산천을 버리고 빈손으로 타향살이를 할 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Nadimarg 마을을 떠나 스리나가르로 귀환하는 도중 순교자의 무덤이 있는 Bijbhera 마을(스리나가르에서 45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지나쳤다. 1994년 인도군이 게릴라를 향해 자동화기를 난사하여 90명을 사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게릴라들의 시신을 안장한 다음 이 곳을 ‘Martyr's Graveyard'라고 이름 붙였다.
---------
*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평화 운동 > 평화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간 대화 마당을 찾아  (1) 2009.06.01
자주와 평화의 명제  (1) 2009.06.01
캐시미르 분쟁 현장에서  (0) 2009.06.01
간디의 평화사상은?  (2) 2009.06.01
캐시미르 분쟁 해소의 길  (2) 2009.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