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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무기(核, 북한 핵, MD)

찬핵 민족주의의 문제점

김승국

김세진 열사(그는 1986년 4월 28일에 ‘반전・반핵・양키 고홈!’을 절규하며 분신・사망했다)가 요즘의 찬핵 민족주의 움직임을 보면 지하에서 통곡할 것이다. 그가 환생하여 운동권 일부의 찬핵 민족주의를 지켜보면 기절할 것이다. 그가 외친 ‘반핵!’이 ‘찬핵!’으로 뒤집히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켜온 ‘반전・반핵・양키 고홈!’의 봉화를 내버리고, 2 ・10 선언(2005년 2월 10일 북한의 핵무기보유 선언) 이후 갑자기 찬핵의 봉화로 교체하려는 ‘청개구리 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80년대의 ‘반핵’이 20년 만에 ‘찬핵’으로 둔갑할지 모를 운동의 위기 상황 속에서, 도대체 ‘반전’은 무엇이고 ‘찬핵’은 무엇인가? 찬핵하면서 반전할 수 있나? 반전운동을 전개하면서 찬핵운동을 전개할 수 있나? 찬핵하면 양키가 고홈(go home)하나?

‘찬핵’하면서 반전운동을 펼친다면 그 모순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찬핵이라는 ‘핵물신화(Nuclear fetishism)’에 사로잡힌 사람이 반전운동을 한다면 정신착란자라고 지탄을 받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남한 땅에는 그런 정신착란자들이 그들먹하게 있다. 일부 병력의 철수 계획을 세운 주한미군이 북한 핵무장 때문에 되돌아올 판인데도, 찬핵 민족주의자들은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있다. 그들이 찬핵을 주장할수록 주한미군의 철수가 늦춰지는데도,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넋 나간 짓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평화통일 운동의 핵심 구호이었던 ‘반전・반핵・양키 고홈!’의 ‘반핵’을 ‘찬핵’으로 바꾸면 ‘반전과 찬핵의 모순’ ‘양키 고홈과 찬핵의 모순’이 증폭되어, 2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운동의 기조인 ‘반전・반핵・양키 고홈!’이 완전히 헝클어지는데도 찬핵 민족주의의 깃발을 들고 있으니… 넋 나간 사람이라고 폄하할 수밖에…

혹시 북한이 하는 대로 거의 무조건 찬성하는 잔습이 운동권에 남아 있어서 찬핵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1980년대는 북한에서 반전・반핵을 주장하니까 추종하다가 지금은 핵무기를 개발하니까, 예전의 반전・반핵 구호를 외치던 단체・인사들도 이제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2 ・10 선언을 무조건 찬양하는 앵무새가 된 게 아닌가? 그들은, 북・미간의 핵공방으로 민족의 절멸이 내정되어 있는데도 북한에 맹종하는 ‘해바라기들’이 아닌가?

오늘의 찬핵 민족주의자들은 얼마 전까지 ‘반전・반핵!’ 구호를 외치고 다녔다. 이들 반핵 민족주의자들이 2 ・10 선언 이후 갑자기 찬핵 민족주의의 모자를 쓰고 ‘반전・찬핵!’을 외치는 ‘웃지 못할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찬핵’을 외쳤으면, 당연히 미국의 대북 핵전쟁도 찬성해야 하는데… 이들이 ‘미국의 대북 핵전쟁을 결사반대’하기 때문에 ‘웃지 못할 코미디언’이라고 냉소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운동이 너무 진지해서 앞에서 대놓고 웃을 수 없지만 반전과 찬핵을 왔다 갔다 하는 코미디언임에는 틀림없다.

찬핵 민족주의자들이 미국의 대북 핵전쟁을 수용해야 찬핵 논리의 일관성이 있는데, 거꾸로 ‘대북 핵전쟁을 결사반대하는 코미디’에 대해 찬핵 민족주의자들은 어떤 변명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북한의 통일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호흡을 같이 하려는 평화통일 운동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민족의 평화적인 생명권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장을 극찬하는 반평화적인 행위는 부정적이다. 오히려 북한의 핵무장 모험주의 노선에 대해 쓴 소리를 하는 것이 참된 평화통일 운동이다. 남한의 무고한 민중들이 북・미 핵공방에 끼어들어 몰살당할 판인데, 북한의 핵무장 노선을 맹종하는 게 진정한 통일운동이라고 찬핵 민족주의자들이 강변하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들이 미국의 대북 핵전쟁을 반대하는 ‘반전・반핵(핵전쟁 반대)’과 (2・10 선언의 핵무장을 무조건 찬성하는) ‘찬핵’은 모순・배리(背理)의 관계이다. 이렇게 모순으로 가득 찬 찬핵 민족주의자들의 견해를 드러내는 문건 중의 하나를 아래에 소개한다.

<북한의 핵무기 제조, 증산 선언에 대한 우리 입장>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제조, 증산을 열렬히 환영한다. 북한의 핵무기 제조, 증산 선언을 접하며 우리는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으로 감동에 휩싸여 심장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수많은 외침을 당해왔고 일미 제국주의에 의해 근 100년이나 넘는 식민지 역사를 강요당해온 우리 민족은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지키고 개척할 수 있는 자력자강을 일일천추로 갈망해왔다.
제국주의 군사침략이 횡행하고 자국중심주의만이 우선시되는 현 세계에서 자기 민족의 운명을 제 힘으로 지키고 개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군사력 강화가 선결과제임이 명확하다.
군사력이 강해야 온갖 제국주의, 패권주의의 침략과간섭을 배격하고 민족의 이익과 의사에 맞게 민족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은 인류역사와 오늘의 세태가 입증하는 진리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고 증산한다고 함으로써 이제 우리 민족은 세계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강대국이 된 것이 확실해졌다.
제국주의자들과 자국 이기주의자들 그리고 시정잡배 같은 정치모리배들과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자들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이래저래 시비하고 있지만 그들이 그러는 사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우리 민족의 위상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이제는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이래저래 치여 살던 약소민족의 설움과 한이 다 가셨다. 이제는 백두산 한민족의 슬기와 저력, 기개를 떨쳐 통일강성 번영대국을 건설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온갖 어려움과 고충을 다 이겨내면서도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마련하여 민족사에 자력자강의 새 장을 활짝 열어젖힌 북한 동포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들의 핵무기 제조, 증산 조치를 열렬히 환영하는 바이다.
미일제국주의와 한국의 당국자는 심사숙고하고 처신을 제대로 해야 한다.
미제국주의자들은 경거망동을 삼갈 것이다.
오늘 북한을 핵무기 제조, 증산의 길로 떠민 것은 미국 자신이다. 미국의 악랄한 대북적대 정책이 없었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 증산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가 원망스럽다면 자신의 대북적대 정책부터 저주해야 한다.
미국은 이제 전쟁과 대화, 북한 무시,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들어서고 있다. 미국이 어떤 길로 들어서건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미국이 어떻게 하건 북한의 핵무장으로 자력자강의 새 역사를 열어젖힌 우리 민족은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자주통일 융성번영의 새 시대를 개척하고야 말 것이다.
만약 미국이 무모하게도 우리 민족에게 전쟁을 걸어온다면 전체 민족은 북한의 민족자력군대와 힘을 합쳐 미제를 일격에 쳐부수고 자주통일을 일거에 달성하고야 말 것이다. 북한의 무자비한 핵무기가 상시, 집중적으로 미제의 심장팍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도 미제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현 사태를 바로 보고 자기가 할 바를 옳게 찾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민족의 숙적이다. 그러나 북한은 북일 정상회담과 북일선언 등을 통해 불미스런 과거를 정리하고 공존과 공영의 새 역사로 나가기 위한 아량 있고 관대한 조치들을 취해주었다. 이것은 일본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 출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러나 미개한 정치난장이들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아량을 나약으로 오판하고 북한에 대한 재재니 뭐니, 유골 조작이니 뭐니 하면서 선의를 악의로 갚았다.
일본은 북일 정상회담의 정신과 북일선언을 성실히 실천하는 길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군국주의화와 재침의 길로 계속 나간다면 북한의 핵무기가 섬나라 것들 일본 자체를 수장시켜버리고 말 것이다.
당국자는 외세공조를 버리고 민족공조로 매진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는 미제를 치고 민족을 보위하는 민족자위무기이다. 당국자가 친미매국의 길로 갈 생각이 없다면 북한의 핵무기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예전엔 몰랐다 하더라도 청와대에 들어가서부터는 한국사회가 철저히 미제의 식민지이고 집권자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당국자 스스로가 가장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이다. 더구나 수구 보수 세력을 추동하여 탄핵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미국이지 않았는가.
이제는 한국사회를 식민지로 옭아매는 미제의 핵우산을 집어던지고 민족의 자주통일과 자강번영을 담보해주는 북한의 핵우산에 합류할 때가 되었다.
민족공조와 외세공조는 양립하지 않는다. 당국자는 지금이야말로 치욕스런 외세공조를 단호히 배격하고 영광스러운 민족공조를 확립해야 한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애국애족인가 친미매국인가, 당국자는 결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선군 대단결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자주통일을 불러오는 민족의 핵무기이다.
백두산 항일유격대가 독립을 가져왔듯이 북한의 선군정치가 통일을 불러온다. 모든 민족 성원은 선군정치를 중심으로 굳게 단결하자. 민족의 선군 대단결로 자주통일 성취하자.
북한의 핵무기는 민족자주무기, 반전평화무기, 통일애국무기이다.
각계각층, 각 당 각파는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3대기치 높이 들고 주한미군 철수, 조국통일 성취 투쟁에 거연히 일떠서자.
북한의 핵무기는 전체 민족의 대단합을 추동하는 자존과 긍지의 무기이다.
북한의 선군정치로 민족이 강대해지고 민족성원들이 시대의 투사들로 성장한다. 강대한 민족답게 선군으로 대단결하고 시대의 투사들답게 반미로 통 크게 대단합하자.
우리는 북한의 선군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민족의 대단합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반미 선군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할 것이다.
2005년 2월 13일
민족자강촉진협의회
* 출처: <전국연합>의 홈페이지 자료 게시판(2005. 2. 13.)


1. 핵과 민족주의

위의 문건은 ‘핵무기와 민족주의가 밀접하게 결합된 찬핵 민족주의’를 잘 나타낸다.
근대 주권국가의 정치적 기반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민족주의이다. 우익에도 좌익에도 민족주의자들이 있으며, 그 어느 쪽이 민족주의를 독점(동원)하느냐에 따라 우익・좌익 중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민족주의가 좌우・보수 혁신의 이데올로기 이상으로 국민의식의 심층에 뿌리내리고 있는 게 근대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우리나라(my country)’에 대한 귀속의식, 특히 동일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에 대한 일체감―민족 자결주의―을 지주(支柱)로 하기 위하여 자국의 ‘강대함’에 대한 동조를 낳기 쉽다. 특히 자국이 주권국가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군사력을 갖는 게 불가결하다는 것이 근대국가의 통념이었다. 민족주의는 본래 ‘국민개병(皆兵)’을 지향하며 국가・사회의 군사화와 친화성을 갖기 쉽다.

여기에 핵무기가 국가의 국제적인 지위・위신을 높이는 가운데, 각별히 민족주의와의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이 있다. 미국・영국 등의 핵무기 선진국은 물론 핵무기를 ‘프랑스의 영광・위대함’의 상징으로 삼은 드골 장군・프랑스 국민, 핵실험 성공에 이어 버섯구름이 남은 실험장에서 인민해방군이 환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영상을 몇 번이나 보여주며 국민의 자존심을 고무한 중국, 핵실험 성공에 즈음하여 국민적인 고양・환희를 나타낸 인도・파키스탄 국민 등―이러한 사실은 핵무기 개발 후진국, 그중에서도 식민지화의 굴욕을 경험한 나라에서 핵보유가 여하히 열렬한 '영광과 자립’의 상징이 되는지를 여실히 말해준다. 이러한 핵(찬핵) 민족주의는 근대의 군사적 민족주의의 극한적인 형태에 다름 아니다.

한편 민족주의는 ‘상상의 공동체’ 이데올로기인바, ‘민족국가’ ・‘민족국가의 힘’과의 일체감・동일화(identification)로 말미암아 ‘마치 개인의 힘이 강화된 듯한 공동 환상’을 갖게 한다. 바로 이때, 국가에 충실한 국민일수록 국가권력의 시스템을 지탱해주는 부품으로 된다. 징병에 복무하는 병사 개인의 무력(無力), 명령 하나에 소모품으로 사라져가는 병사(국민)의 운명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핵(찬핵) 민족주의에 이런 환상이 단적으로 나타난다.<坂本義和 편 核と人間 제1권(東京, 岩波書店, 1999) 31∼32쪽>

위에서 ‘식민지화의 굴욕을 경험한 나라에서 핵보유가 열렬한 영광과 자립의 상징이 된다’고 명기했는데, 북한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지배를 받았던 피억압 민족은 한 번 지배했던 민족에 대해서 핵무기로 겁을 줘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인도, 파키스탄, 중동에서 보듯이 억압받았던 민족의 첫째 소망은 핵무기를 소유하는 것이다. 사담 후세인이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피억압 민족인 것은 다를 게 없다.<하세가와 게이타로 外 북한이 붕괴한다 왜? (서울, 인능원, 1996) 140쪽>

1883년 미국의 셔먼호가 대동강에 진입한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 의해 시달릴 대로 시달린 북한이, 미국을 공략하는 핵무기를 갖고 싶은 욕망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런 욕망이 심리적인 희망에 그치지 않고 실물의 핵무기로 실현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찬핵 민족주의자들의 <좌경 모험주의적인 핵무기 보유・발사(‘미국 제국주의를 향해 북한의 핵무기를 발사하자’) 욕망>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찬핵 욕망이 한반도 통일 욕망에서 우러나온 충정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오로지 비핵 욕망으로 한반도 통일이 충족되는 ‘통일욕구의 충족 체계’에서 바라보면 그들의 찬핵 욕구는 하품이 나오는 ‘하품(下品)’이다. 그들의 찬핵 욕구는 우물안 개구리의 핵무기 보유욕이다. 개구리가 핵의 방아쇠를 잘못 당기면 우물 전체(한반도)가 날아간다. 이 개구리는 우물 안에만 있기 때문에 ‘우물밖의 핵무기를 갖지 않은 전갈(일본)’의 핵무장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일본이라는 전갈이 북한 핵보유선언을 빌미 삼아 우물 전체를 통째로 삼키려 하는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는지 모른다. 또 핵무장한 전갈들(미국 등)이 우물을 분할통치하는 수법을 감지하지 못한다. 북한 핵보유 선언으로 갈등이 고조되는 남북한 사이를 이이제이함으로써 한반도의 영구분단을 초래하는 분할통치가 강화되는 구조를 감지하지 못한다. 우물안 개구리의 찬핵 욕구가 우물 밖 전갈들의 핵무장・한반도 분할통치 욕구를 증폭시킴을 감지하지 못한다.

위의 찬핵 욕구에 내재된 모순 중에서 ① 찬핵 민족주의가 일본 우익의 핵무장론을 증폭시키는 점 ② 찬핵 민족주의의 주장이 일본 우익의 핵무장론과 유사한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유사점을 중심으로 기술하면서, 한국 진보진영의 찬핵 민족주의 핵무장론이 일본 극우세력의 핵무장론과 비슷하다는 ‘인식의 도착증(倒錯症)’을 증명할 셈이다.

2. 찬핵 민족주의가 일본 우익의 핵무장론을 증폭시킨다?

우선 일본 우익의 핵무장론의 내용을 단편적으로 설명한다.

  (1) 친미 반공주의자들의 핵무장론
    ① 키시(岸)수상
그가 은퇴한 뒤인 1975년에 ‘방위용의 핵무장 가능성(방위용 핵무기라면 보유 가능)’을 시사했다.
    ② 나카소네 수상
나카소네는 수상 재임 기간 중 핵무장 자주방위론(핵무장을 통한 자주국방력 구축)을 주장했다. 그는 수상 퇴임 이후에도 ‘억지력으로서의 핵무장은 민족주의자라면 누구나 염원한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③ 니시무라 의원
1999년 10월 방위청 정무차관인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 의원이 ‘일본이 핵무장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관해서도 국회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발언함으로써, 50여 년간 금기시되어 온 ‘비핵 3원칙’을 깼다. 한 일본 주간지와의 회견에서 내뱉은 그의 발언 요지는 ‘처벌의 억지력이 있기 때문에 강간범이 횡행하지 않는 것처럼 주변 제국의 대(對)
일본 미사일 조준을 억지하기 위해 일본도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폭탄 피폭국 일본의 금과옥조인 비핵 3원칙(핵의 보유・제조・반입 금지)에 정면으로 도전한 맹랑한 발언이다.
    ④ 아베 관방 부장관
2002년 6월 아베(安倍晋三) 관방 부장관이 와세다 대학에서의 강연에서 ‘대륙간 탄도탄은 헌법상의 문제는 아니다.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핵무기 보유는 헌법상 반드시 금지되어 있는 게 아니다. 전술 핵무기의 사용에 대하여 이미 1960년 당시 기시(岸) 총리의 답변에서 위헌이 아니라는 답변을 한 바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도 핵무장이 가능함을 주장한 것이었다.
    ⑤ 후쿠다 장관
2003년 8월 6일 ‘원폭의 날’에 후쿠다 관방장관은 ‘지금 핵억지력을 가질 필요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장래 보유 가능성에 대하여 ‘그것은 장래에 결정할 일’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내일 일은 모른다는 일반적 차원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장래의 보유 가능성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책 표명이다. 예전 같았으면 ‘명확한 부인’이 강조되는 것이 상례였다.

  (2)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의 ‘미니(mini) 핵무장’론

일본 민족주의와 미국 안보우산의 접합이 가능하다는 ‘미니 핵무장’론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中島尙志는 ‘이제 일본이 핵무장할 때가 도래했다’고 선언하면서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일본도 자국의 안전보장의 견지에서 독자적인 핵전력(核戰力)을 보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中島尙志 {日本核武裝}(東京, はまの出版, 2003) 24쪽>.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일본 우익의 핵무장 욕구를 얼마나 자극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자료이다.
    ② 中川八洋는 ‘일본이, 미국의 핵탄두 장비인 ALCM(공중발사 순항미사일) 25기를 탑재한 B52 전략폭격기를 64기(4개 비행대) 구입함과 동시에 모두 미군에 무상으로 공여하여, 16기씩 미국 캘리포니아 주・하와이・오키나와・오산(한국)에 전개한다. 부대비용・인건비는 미국・일본이 절반씩 부담한다. 소련이 일본을 침공할 때 이들 비행대가 우선적으로 일본방어(소련공격)에 나서는 임무를 미국이 지닌다. 이 밖에는 미군의 전략에 일임한다’는 방자한 제안을 했다. 이러한 논리는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도 갖고 있으며, 카플란 교수(시카고 대학)는 일본에 중성자 핵폭탄을 반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中川八洋 {超先進國のアキレス腱}(東京, 講談社, 1981) 104쪽>. 中川八洋는 ‘비핵 3원칙이 핵전쟁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핵우산을 더욱 강화하여 소련의 핵공격을 막아야 하는데 비핵 3원칙이 강조되니까 오히려 핵전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위의 책, 66쪽>. 中川八洋은 이윽고 일본헌법 개정안을 내놓는다. 그의 헌법 개정안 제7조는 ‘천황은 국방군 통수의 상징이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제9조의 ‘교전권 금지’ 조항을 없애고 집단자위권을 넣고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국방군의 보유를 삽입했다. 그리고 국방군의 최고 지휘권은, 국방군 총수의 상징인 천황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발상에 의거하여 일본이 미니 핵무장하자는 것이다. 즉 일본군 총수인 천황에게 미니 핵무기를 안겨주
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中川八洋 {新・日本國憲法草案}(東京, 山手書房, 1984)>.

결국 북한의 핵무장을 찬양하는 찬핵 민족주의자들이 친일 인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미니 핵무장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이러한 모순을 남한의 찬핵 민족주의자들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가? 해소할 수 있다면 어떠한 길이 있는지 묻는다.

  (3) 극우-반미의 핵무장론
    ① 이시이 신따로(동경 도지사)派
지난날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막연한 망상 아래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소수의 일본 극우세력들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핑계로 일본 핵무장화를 주창한다. 일본 민족의 ‘야마도(大和) 혼(魂)’을 주창한 이시하라 신따로 동경 도지사의 일본 핵무장론이 2 ・10 선언 이후에 더욱 힘을 얻는 듯하다.

  (4) 최근의 핵무장론
최근 일본의 핵논의가 국내적 요인보다 미국 부시 정권의 정책변화에 의해 촉발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2002년) 5월 이래 후쿠다 관방장관, 아베 관방차관, 오자와 자유당 당수 등이 잇달아 ‘비핵 3원칙’의 수정 가능성을 들고 나온 것은, 2002년 초 부시 정권이 ‘핵태세 재검토’(NPR) 보고서에서 불량국가에 대한 소형 핵사용의 정책화를 거론한 직후다.

이어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체니 미국 부통령이 잇달아 일본 핵무장 용인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일본 핵논의에 불을 지르는 계기가 되었다.

표면적으로 일본과 한국, 대만의 핵무장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 중국의 북핵 강경자세 유도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미국 내 강경파 일각에는 이전부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 용인론이 존재했다. 기동력 중심의 미 군사력 재편과정에서 생기는 주일・주한 미 지상군의 철수로 인한 공백을 메우고 미국의 부담 없이 대만을 방어하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발상이다. 핵무장이 일본의 자주노선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미국의 ‘악몽’에 대해서는 미사일 방어(MD), 대량파괴 확산방지 구상(PSI) 등 미국 주도의 새로운 지역적 군사동맹 체제 속에 일본의 군사력을 통합하는 길이 제시된다. 미국의 군사전략의 일부로 통합된 일본의 핵무장은 걱정할 것이 없다는 논리다.

일본의 핵무장은 일본이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 아니다. 동북아 지역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위기상황이 문제다. 직접적인 빌미를 주고 있는 북핵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면서, 그 과정에서 대두할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일본의 비핵정책 법제화,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일본 자신의 장기적 이익에도 합치하는 길임을 인식시켜야 한다<이종원 교수가 한겨레 신문(2003. 8. 10.) 에 기고한 칼럼>.

이렇듯 북한 핵문제를 에워싸고 미국 쪽에서 일본 핵무장을 용인하는 흐름이 조성되고 있는데, 2 ・10 선언은 이런 흐름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며 찬핵 민족주의자들의 망동은 일본 핵무장론에 시너를 뿌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의 핵무기가 일본 우익의 핵무장론에 날개를 달아주고, 남한의 좌경 맹동주의적 찬핵론이 일본의 우경 핵무장론을 위해 몸 바쳐 봉사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남한의 좌익 찬핵주의자가 일본의 우익 찬핵주의자에게 핵무장이라는 보시를 할 수 있다. 양쪽은 국적만 다를 뿐 동일한 호핵(好核) 노선을 취하므로 남한의 좌익이 일본의 우익과 상통할 수 있다. ‘극좌는 극우와 통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역설이 성립될 수 있다. 이 역설은 ‘찬핵 민족주의의 어법과 일본 쪽 핵무장론의 어법이 기이하게 닮은 꼴’에서 절정을 이룬다.

  3) 찬핵 민족주의와 일본 우익 핵무장론의 기이한 닮은 꼴

한반도 찬핵 민족주의자들의 자주적 핵무장론과 일본 극우의 자주적 핵무장론이 형식상 유사한 게 너무나 기이하다. 양자 모두 기이하게 ‘민족주의+핵무장론=호핵 파시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예컨대 ‘북한의 핵무기로 미제를 싹쓸이하자’는 찬핵 민족주의자들의 상투어에서 ‘싹쓸이’는 폭력지향적인 어법이다. 이 어법이 핵무장론과 불행한 결합을 하면 호핵 파시즘의 경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호핵 파시즘 안에 퇴영적인 핵군비 확장-민족의 평화적 생명권 유린-민족 상호 절멸의 폭력성이 내재해 있을 수 있다. 양쪽의 자주적 핵무장론이 호핵 파시즘의 옷을 입고 자멸적인 핵무장론으로 전락하면 민족 파멸・절멸로 나아갈 수 있다.

만약 북・미간 핵공방이 최악으로 치달아 북한이 미국과 사생결단하고 전쟁을 할 경우, 가미가제(神風)식 핵공격이 예상된다. 일제의 가미가제는 당시 미국 제국주의(미제)를 향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무기도 미제를 향한 것이므로, (일제와 북한의 政體에 천양지차가 있고 북한은 일제를 철천지원수로 여기지만) 그 행태의 유사점이 있다. 북한의 ‘주체형
핵무기’가 일본 군국주의식의 가미가제 핵공격을 하면, 북한의 반미형 군국주의와 일제의 반미형 군국주의가 뒤섞인다. 바로 여기에서 찬핵 민족주의 핵무장론과 일본 극우 민족주의의 핵무장론이 ‘엇박자 속의 어울림’이 연출될 수 있다. 북한 쪽의 선전문구에 자주 나오는 ‘총폭탄이 되어 미제를 향해 싸우자’는 구호와, 일제 당시의 ‘영・미 귀축(英・米 鬼畜)을 향하여 총 폭탄이 되어 산화하자’는 선동 구호가 일치하는 기이함 속에서 ‘찬핵 민족주의의 핵무장론과 일본 극우 민족주의의 핵무장론이 만나는 지점’이 기이하게 형성된다.

위의 닮은꼴을 인도・파키스탄 극우 민족주의의 핵무장론에 적용하면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인도의 경우 ‘핵보유를 지향하는 민족주의’가 강화되었다. 1998년 5월의 핵실험 직후에 Indian Today 가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핵실험 찬성’이 60%를 넘어섰고 ‘경제제재도 불사한다’가 50%를 넘었다. 인도 수상이 핵보유국가임을 선언한 것을 지지하는 일부 열광적인 국민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춰지기도 했다. 힌두 민족주의(힌두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극우정권(BJP)의 핵무기 실험이 비판받기는커녕 국민들의 열광 속에서 대중적인 사면을 받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도에 뒤이어 핵실험한 파키스탄의 정권도 군사 파시즘 정당이다. 군사 파시즘 정권인 탓에 국민들로부터 지배의 정당성을 얻지 못한 파키스탄의 지도부는,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핵개발 계획을 추진하였다. 파키스탄 국민들의 핵무기에 대한 애착을 이끌어낸 찬핵 민족주의가 정치가들의 정권 획득・유지 도구로 이용되었다. 북한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찬핵 민족주의를 통해 인민들의 통합력을 높이려하는 듯하다.

이렇듯 서남아시아 파시즘 정당의 핵무장과 북한의 핵무장이 정황상 유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핵무기를 선호하는 정치 체제가 민중(인민)의 인간안보를 무시하고 구조적 폭력을 양산(주1))하는 파시즘으로 전락할 가능성 앞에서 유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4. 찬핵 민족주의자들의 인식에 있어서 문제점
   
   (1) 북한이 핵무기 한방을 갖고 있으면 미제가 쩔쩔매면서 북한식대로 따라온다?

주체사상에 입각한 선군정치가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고 있는 바, 미제가 마땅히 북한의 핵개발 노선에 복종하게 되어 있다는 필연론이 문제이다. 이 필연론은 ‘북한 필승론(북한이 미국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이기게 되어 있다는 논리)’과 정서상 일치하며, 이런 신화에 빠져들면 오히려 주체사상의 건강한 부분을 훼손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의 아류들이 마르크스 이론의 다양성을 죽였으며 조선의 성리학 근본주의자들이 성리학의 원리를 죽이며 사화(士禍)를 일으켰듯이, 핵무장 필연론에 빠진 아류 주체 사상파들이 주체사상의 생명관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상황에 따라 미제가 어쩔 수 없이 북한의 주체형 핵무장 논리를 따르게될 것이다’고 예측하는 개연성 논리와 ‘반드시 미제가 복종하게 되어 있다’는 필연성 논리는, 그 차원이 다르다. 남한의 찬핵 민족주의자들은 대체로 후자를 따르고 있으며, 이들의 찬핵 민족주의 감성은, 주체의 핵무기에 대한 신앙을 낳기 쉬우며, 또 다른 신화, 즉 ‘핵무기 체계의 군사적 근거를 무
시하는 신화’를 형성하기 십상이다. 핵무기에 대한 ‘주체식 신화화(神話化)’와 ‘주체의 핵무기로 미제에 대한 필승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신념이 지나쳐, 맹목적인 ‘주체의 핵무기 원리주의(Nuclear fundamentalism)’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

이 원리주의의 7가지 요소를 갈퉁(Johan Galtung)의 {ガルトゥング平和學入門}(京都, 法律文化社, 2003)} 129쪽을 참조하면서, ‘주체의 핵무기 원리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2) ‘주체의 핵무기 원리주의’의 문제점
    ① 선민의식
유대인의 선민의식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민족 제일주의가 핵무장 논리와 결합되면 ‘우수한 우리 민족이 미제를 굴복시키기 위한 주체의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로 비약할 우려가 있다.
    ② 영광
굴종을 강요하는 미제의 압력을 핵무기로 극복한 순간에 민족의 영광이 찾아온다는 낙관론이 ‘주체의 핵무기 원리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③ 정신적인 외상(Trauma)
우리 민족이 입은 피지배의 충격, 깊은 상처가 정신적인 외상으로서 민족의 기억장치 속에 남아, 집합적인 잠재의식으로 응어리져 있다. 북한의 핵무기를 미국 쪽으로 날려 보냄으로써 이런 응어리를 속 시원하게 풀 수 있다는 믿음이 찬핵 민족주의자들에게 있다.
    ④ 이분법
찬핵 민족주의자들은 평소에 세계・공간・국가・민족 등에 대하여 명확한 경계선을 동반하는 두 개의 부분으로 구분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핵무기 체계의 다양한 논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이분법에 의해 미제의 핵무기와 주체의 핵무기를 구분하면서 주체의 핵무기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핵무기는 절대무기로서 선악의 구분 없이 인류의 절멸을 예고하고 있는 바, 찬핵 민족주의 입장에서 주체의 핵무기가 정당하다면 미국식 민족주의 입장에서도 핵무기가 정당하다고 강변할 수 있다. 이 점을 놓치고 주체의 핵무기의 정당성만 강조하면 이 또한 일방주의이다. 부시의 일방주의를 비난하는 찬핵 민족주의자들이 부시와 유사한 일방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⑤ 마니교(Manichaeism)
모든 좋은 것을 자기에게 귀속시키고, 모든 악한 것을 타자에게 귀속시키는 마니교의 경향이 찬핵 민족주의자들에게 있다. 북한 핵문제의 원흉인 미국에게 악(惡)한 것을 모두 돌리고, 북한에게 선(善)한 것을 모두 귀속시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한 뒤에도 ‘북한이 100% 선(善)하다’고 주장하는 게 마니교식의 설법이다. 이런 마니교식 설법에서 매카시즘이 탄생했는데, 찬핵 민족주의자들 자신들도 이 매카시즘(박정희 반공 파시즘)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신(神) 對 악마(惡魔)의 대결로 세상을 바라보는 부시의 전쟁관’이 한반도의 전쟁을 내정하고 있는데, 이와 동일한 사고방식인 ‘미제에 저항하기 위해 핵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모순된 논리로 세상을 혼란스럽
게 만들고 있다.
    ⑥ 아마겟돈(Armageddon)
찬핵 민족주의자들은 북한 핵보유선언에 대하여 ‘선(善)의 축(軸)인 북한이 악(惡)의 축(軸)인 부시 정권(미국)에 대하여 이판사판으로 벌이는 최후의 결전이다’고 평가하면서 ‘이번 결전에서 북한이 필승하게 되어 있으며 그 결과 미제는 멸망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고 확언한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찬핵 민족주의자들의 사고 유형은, 또 다른 종말론자인 부시의 사고 유형과 비슷하다. 자신들이 ‘선(善)의 축’인 북한 편에 서 있으면서도 ‘악의 축’인 부시 정권(미국)과 같은 대열에 서 있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북미간의 대결을 선과 악의 아마겟돈 전쟁으로 비화시킨 나머지(부시도 이와 똑같이 생각한다) ‘북미간의 최후의 대결에 대비하여 북한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종말론적인 결론을 너무나 쉽게 내리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 이와 동일한 대북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하는 부시 역시 ‘북미간의 최후의 대결에 대비하여 미국이 대북 핵전쟁을 벌여 북한 인종을 청소(ethnic cleansing)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생각은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와 연결된다.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는 미국의 대북 압살 정책의 뿌리에 있다. 그런데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를 비난해온 찬핵 민족주의자들이 오히려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와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⑦ 생명 경시
부시의 ‘북한 인종청소’ 기획 속에 기독교 근본주의의 생명 경시 사상이 깃들어 있다. 부시가 전쟁광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타자(他者)-타문명권(他文明圈) 사람들의 생명을 너무나 안이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부시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북한 인종을 싹쓸이(인종청소)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살인마에 버금가는 낙인을 부시의 머리에 찍는 사
람들도 있다. 부시는 실제로 텍사스 주지사 당시 사형집행의 최다 기록을 만들었다. 그는 이제 전쟁광(?)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무기에 의한 살인집행의 최다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는 또 하나의 원리주의자는 빈・라덴이다. 빈・라덴 역시 자살공격을 통해 무고한 민중의 생명을 해치고 있다. 부시가 융단폭격을 통해 북한 인종의 대량학살을 노리는 수법만 다를 뿐 생명의 대량 탈취에서는 동일하다.

부시・빈 라덴의 ‘싹쓸이 생명탈취’와는 본질이 다르지만, 찬핵 민족주의자들의 ‘북한의 핵무기로 미제를 싹쓸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목해보자. ‘양키 고 홈(Yankee Go Home!)' ‘미제를 물리치자’는 보통의 어법에는 미제와 관련된 생명을 탈취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나, ‘미제를 싹쓸이해야 한다’에는 ‘미제와 관련된 생명을 무차별하게 짓밟아야 한다는 잠재심리’가 내재해 있다. 1980년대 초 학생운동 쪽의 반미구호 중 자주 등장한 ‘미제의 각을 뜨자!’와 비슷한 잠재심리이다. 그들이 보기에 미제는 강력한 퇴출대상이지만, ‘북한의 핵무기로 미제의 악당들을 싹쓸이해야 한다’는 원리주의 속에, 생명탈취의 잠재의식이 파고들어갈 우려가 있다. 부시를 미워하면서도 부시와 비슷한 생명탈취 의식을 닮아갈 우려, 즉 부시를 증오하는 극도의 언사를 즐겨 사용하다가 부시의 생명탈취 사상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들 우려가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군부대 생활 중 ‘매를 많이 맞은 졸병이 병장이 되면 하급 부하에게 더욱 살벌한 기합을 주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다. 수난자가 득세하면 너무나 쉽게 가해자의 폭력을 휘두른다. 그만큼 수난자 시절에 한(恨)이 쌓였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한(恨)의 핵무기’ ‘미제의 북한 압살 정책에 시달리다가 한이 쌓여 만든 핵무기’라고 할지라도, 찬핵 민족주의자처럼 ‘미제를 인종청소하듯’ 한을 풀면 안 된다. 물론 북한 당국이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북한의 핵보유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찬핵 민족주의자들의 한 풀이식 ‘북한 핵무기로 미제 싹쓸이’ 발상이 위험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잔소리처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을 풀면 유대인처럼 전락한다. 제2차대전 당시 나치즘에 의해 수난을 당한 유대인이 나치즘과 동일한 인종청소를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벌이고 있지 않나? 그것도 핵무기를 양손에 쥔 채… 수난자가 핵무기를 갖고 한 풀이를 잘못할 때의 생명몰살이 어느 정도 심각할지는 유대인을 보면 된다.

직접적인 비폭력 투쟁을 통해서도 미제를 물리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으며, ‘미제와 관련된 생명을 핵무기로 싹 쓸듯이 탈취하지 않고’ 미제의 퇴출이 가능하다. 반핵평화 운동과 관련된 직접적인 비폭력 투쟁은 비핵지대화 운동이다. 비핵지대화 운동으로 미제-미제의 핵무기를 이 땅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2005.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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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민중의 복지증진, 즉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써야 할 제한된 자원을 핵무기 개발에 전용함으로써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의 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