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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무기(核, 북한 핵, MD)

인도-파키스탄-북한의 핵개발 비교 (3)

김승국

1. 핵개발의 배경
  (1) 인도
    ① 국내의 배경
인도의 핵무장 추진에는 강력한 국내적 요구가 존재하고 있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인도가 국제사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년간의 식민통치는 인도인들에게 상당한 치욕감을 가지게 하였다. 따라서 인도인들은 치욕감과 독립 이후에도 지속되어 온 열등감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것을 성취
하기 위하여 그들은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인도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인도인들은 인도의 힘과 능력 그리고 위대함을 과시하는수단으로써 핵기술과 우주과학 기술을 획득하기를 염원하고 있다.

엘리트들 역시 국제사회에서 인도의 위상과 흥정력을 강화시키는 데 핵무장화가 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도인들은 핵프로그램, 특히 핵무장 프로그램을 그들의 국가능력과 기술발달의 척도로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시급한 경제발전 프로그램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인도 국민 대다수는 경제개발보다는 핵무장 프로그램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핵실험 직후 수행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인도인들의 87%가 핵실험을 지지하고 있으며, 인도의 대중매체들도 핵실험을 위대한 과학적 성과라고 부추겼던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인도의 핵실험 추진에는 당시 인도 인민당 정권의 정치적 계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 핵정책은 인도 인민당(BJP: 1998년 핵실험 당시의 집권 정당)이 내세웠던 가장 중요한 공약 중 하나로 연립세력 내에서도 이에 대한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핵무장에 대한 공약과 의지는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실제로 인도 인민당은 이를 추진함으로써 국민들의 합의와 지지를 획득하며 정권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고경희 {인도의 외교정책과 국제관계} 2003, 94∼97쪽>

1998년 당시 BJP의 국민적 지지기반은 매우 취약하였다. 핵실험은 BJP의 선거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따라서 핵실험은 이러한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인도의 핵실험은 정권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권정수 [탈냉전기 핵확산과 통제에 관한 연구](국방대학원 석사 논문,1999)>

BJP 정부가 핵을 선택하는 중요한 동기로 지적된 모든 요인들은 새로운 정부의 특징을 강조한 것들이다. 인도 내에서 카스트제도를 둘러싼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갈등, 분파주의운동, 실권과, 구조적 경제 침체 등은 파키스탄과 중국에 의한 핵무기 위협 못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바지파이(BJP정권의 수상) 정부가 국내적 응집력을 획득하기 위해 핵실험을 통해 돌파
구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구병기 [인디아-파키스탄 핵실험과 NPT 체제] 1999, 37쪽><이하 생략>

  (2)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개발 비교

미국은 친미정권인 파키스탄의 핵개발 묵인하고 반미정권인 북한의 핵개발은 결사 저지하고 있다.

파키스탄 사례는 미국이 핵확산 방지 원칙을 마음먹기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바꿀 수 있음을 실증한다. 미국은 1981년에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파키스탄에 대한 우라늄 농축 제재 조치 적용을 6년간 유예했다. 오히려 미국은 위험천만한 장난을 즐겨온 파키스탄에 대해 경제・군사 원조를 더 확대했다. 1980년대의 파키스탄은, 미국이 은근히 돕는 분위기 속에서 핵개발 프로그램을 더욱 진전시켰다. 그러나 1990년 10월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 철수하자 미국은 중단했던 경제제재를 다시 시작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미국에 최신예 전투기 F16을 주문해놓고 있었는데, 이 또한 ‘없던 일’이 되었다.

미국의 이중행동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연달아 핵실험을 실시해 전 세계를 핵확산 공포로 몰아넣었던 1998년 이후에도 되풀이 되었다. 1998년에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한 데 대한 보복으로 미국은 또 한번 경제제재를 가했지만, 2000년 9 ・11 테러 참사가 터지자 슬그머니 풀어주었다. 오히려 미국은 파키스탄이 ‘탈레반 토벌’에 필요한 군사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그해 말 국제통화기금을 통해 차관선물 20억 달러를 쿠데타로 집권한 무샤라프 장군에 안겨주었다.

미국이 국제정치 상황에 따라 재제와 원조, 즉 채찍과 당근이라는 극과 극의 처방을 내린 파키스탄 사례는 북한 핵의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 부시 정부는 북한에 대해 한때 ‘적대적 무시’ 전술을 폈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더 큰 전략적 이익이 걸렸는데도 이 전술을 끝까지 유지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상황은 점점 미국이 파키스탄의 핵문제를 다룰 때와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었을 때 파키스탄은 미국과 옛 소련 중간에 끼어 있었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떠오르는 용’ 중국을 장래 최대의 라이벌로 지목하고 있는 오늘날, 북한은 바로 그 미국과 중국의 중간에 끼여 있다.<{시사저널} 699호(2003. 3. 20.) 25∼26쪽>

파키스탄 모델은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및 보유를 용인할 경우, 북한이 가까운 시일 안에 도달할 ‘미래의 모습’으로까지 일각에서는간주하고 있다.

북한과 파키스탄은 핵개발에 관한 한 여러 가지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① 자국 국민의 상당수가 기아나 최빈곤선에서 헤어나지 못할 만큼 경제적으로 실패한 나라이다 ② 주변에 심각한 안보 위협이 상존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핵개발을 고려해왔다 ③ 핵개발 과정에서 미국이 심한 압박을 가했다.

파키스탄과 북한은 공통적인 안보환경과 핵무장 동기를 지니고 있다. 즉 양국은 상대적으로 강한 적대세력과 대치하고 있고(파키스탄의 적대세력은 인도, 북한의 적대세력은 미국) 그 적대세력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양국은 적대세력과 전면전쟁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양국은 세계적 빈국으로서 재래식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기에 충분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양국은 근본적으로 안보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200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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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핵문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7) 241~251쪽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