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파키스탄의 부토 수상은, 1998년 핵실험 이후 국가가 치러야 할 대가(경제제재 등)에 대하여 “우리는 굶을 준비가 되어 있다. 풀을 먹어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주1) 굶어죽을 각오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뜻이다. 민중의 굶주린 창자를 담보로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권력의 비정함이 배어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국가권력보다 더 비정한 쪽은 국제
사회・국내의 가진 자들이었다. 파키스탄의 빚쟁이 나라인 미국・일본 등의 강력한 경제제재와 가진 자들의 자본유출로 파키스탄 경제는 붕괴 일보 직전에 봉착하여 국가의 위기를 가속화했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민중의 기아는 가중되었다. 핵무기 개발로 민중의 기아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파키스탄의 핵무기-기아의 악순환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한반도의 이야기이다. 한반도의 북쪽에 있는 북한이 기아에 허덕이는 경제난 속에서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핵무기와 기아의 관련’이라는 측면에서 파키스탄과 북한은 닮은꼴이다. 세계적인 빈국(貧國)인 파키스탄과 북한(주2)이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는 현상이 ‘민중고(民衆苦)의 가중’이
라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국간 현상의 닮은꼴이 결과의 닮은꼴로 이어질 것인가? 즉 북한도 파키스탄처럼 핵무기 개발로 인한 기아의 가중이라는 악순환을 밟을 것인가?
내친김에 가혹하게 물음표를 더 찍는다면,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의 경우에도 굶을 준비가 되어 있나? 풀을 먹어도 핵무기를 개발할 셈인가? 핵무기를 만든 북한 정권은, 인민들에게 굶을 준비를 시킨 채 핵을 만드는 비정한 정치집단이 아닌가? 인민의 굶주림을 희생양으로 정권 안보를 추구하는 게 온당한가? 인민의 주린 창자 속에 핵무기 집어넣는 게 정치인의
도리인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었을 텐데 그 돈으로 북한 인민의 기아 문제를 해결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배고픈 인민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핵무기를 만들었다면, 그 핵무기는 북한 인민의 고혈을 짜낸 것이 아닌가? 인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천하를 유랑하는 데 국고를 탕진해가며 핵무기를 만드는 정권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북한 인민의 인간안보(‘빈곤으로부터의 자유’를 통한 인간안보)를 무시하는 국가안보(핵무장 중심의 국가안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인간안보를 결정적으로 해치는 ‘먹거리 빈곤’ 속의 ‘핵물질 풍요’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국가권력이 핵무장을 통한 평화적 생존권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핵무장 경제로 인한 인민 개개인의 평화적 생존권 박탈(빈곤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살 권리의 박탈)이 예상된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북한의 핵무기-기아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정도의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물음에 대한 북한 쪽의 대답을 직접 들을 수 없으므로, 질문자 스스로 ‘북한의 핵무기-기아의 악순환’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하여, 기아의 악순환이 핵무기 개발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상황을 먼저 기술한다.
북한의 가장 큰 대외적인 위협은 ‘미국의 북한 협공․붕괴 시나리오’이며 대내적인 위협은 기아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만이 북한에 가(加)해지는 위협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후자도 전자 못지않게 강력한 위협요소이다. 두 위협요인은 서로 맞물려 있다. 미국의 집요한 북한 협공 시나리오 때문에 기아가 가속화되었고, 기아의 가속화라는 경제난을 군사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렇듯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아가 북한 안보의 커다란 위협요소임과 동시에 핵무기 개발의간접적인 원인 제공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기아가 안보적인 측면의 핵무기 개발로 이어진 ‘경제-안보의 쌍안경’으로 북한 핵개발을 조망하는 게 중요하다. 기아가 핵무기 개발을 낳는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핵무기보유 선언→기아 지수 증가’의 악순환
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보는 ‘복안 렌즈’가 필요하다.
그럼 지금부터 쌍안경과 복안 렌즈를 통하여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핵무기보유 선언→기아 지수 증가’의 악순환을 면밀하게 살펴보자.
1. 기아→ 핵무기 개발의 악순환
북한의 경우 기아가 안보의 위협 요소이다. 북한 등의 제3세계 빈국들은, 빈곤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에서 에너지의 빈곤(제1차 빈곤)이 외세의 개입을 동반했으며, 외세의 개입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핵무기 개발이 빈곤의 가중(제2차 빈곤)을 초래할지 모른다.
북한에서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제1차 빈곤→제2차 빈곤의 악순환이 동시 진행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소련의 붕괴 이전처럼 북한에 대한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했다면,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제1차 빈곤→제2차 빈곤의 악순환’이 동시 진행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중국으로부터 에너지를 여유 있게 공급받았다면 영변의 핵시설에서 그렇게 무리하게 핵물질(플루토늄)을 생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플루토늄 생산에 제동이 걸린 다음에 맺어진 제네바협정-KEDO 협정에 따른 경수로 건설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수로 건설의 차질로 에너지난 해결이 난망하다고 결론 내린 북한 당국이, 제네바협정 체제를 뛰어넘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에너지난을 해소하기 위한 ‘무리한 핵물질 생산’이 미국의 개입을 가져와 북한 핵문제라는 분쟁의 소용돌이를 만들게 된 것이다. 더욱이 미국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핵무기를 제조함으로써 더욱 큰 분쟁의 불씨를 제공한다.
이처럼 빈곤(에너지의 빈곤)이 분쟁을 유발・격화시킨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아・기아 경제가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이게 북한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할 말이 없으나, 핵무기보유 선언이 ‘제1차 빈곤→제2차 빈곤의 악순환’의 분기점이 될지 모르는 운명은 너무나 가혹하다. 지나친 도식이지만 제1차 빈곤이 핵무기보유 선언을 낳고, 핵무기보유 선언이 제2차 빈곤을 유발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 예감을 뒷밭침하기 위하여 북한과 같은 ‘빈국의 핵무장(과잉 무장)이 빈곤을 가중시킨다(제1차 빈곤→제2차 빈곤)’는 가설을 세운다. 이 가설을 통해 ‘핵무기보유 선언→기아지수 증가’의 악순환을 증명하려고 한다.
2. ‘핵무기보유 선언→ 기아지수 증가’의 악순환
(1) 과잉 무장이 빈곤을 가중시킨다
국가의 과잉 무장이 민중의 빈곤을 가중시키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특히 제3세계의 핵무장 국가(인도・파키스탄・북한)에서 심각하다.
파키스탄은 핵실험 이후 경제제재에 시달려왔고 그 결과 파키스탄의 경제는 외채로 붕괴할 정도에 이르렀다. 핵실험 이후 파키스탄 국민들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통쾌해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실험에 대해 당황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핵실험의 성취감이 사라진 후 파키스탄은 그들의 결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제적 제재에 직면하였고 이는 파키스탄의 경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구병기 1999, 25∼26쪽)
본래 군사경제는 폭력 체계에 의존하고 소비 지향적이므로 생산성이 떨어진다. 이 생산성을 메우기 위해 제국주의(자본주의) 나라들은 식민지에 무기를 파는 ‘식민지 나라의 무장화’를 시도했다. 현재 미국이 한국의 최첨단 군비확장을 종용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다. 그런데 미국만 그런 행태를 보이지 않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소련 역시 위성국가에 대한 무기수출, 제3세계 친소(親蘇) 국가에 대한 무기 수출・무기 지원(반제・반미운동 게릴라에게 무기 지원)을 통해 무기의 수급조절을 하면서 군사경제의 선순환(善循環)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악순환으로 치달아 소련경제가 망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무장 군사경제는 선순환(핵무장을 통한 경제발전)을 이룰까? 아니면 악순환(핵무장을 통한 경제난 가중→북한 정권의 붕괴)을 이룰까? 북한의 경우 친북 추종국가나 식민지가 없으므로, 북한 인민의 소비경제가 식민지화될 수밖에 없다. 북한 민중의 생활을 식민지화・내적식민지로 삼아 핵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북한의 인민생활・인
민경제를 희생양으로 삼은 핵무기의 증강이 국고의 증강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경제난 가중은 명약관화하다. 이에 대하여 ‘핵무기가 경제적인 무기이므로 오히려 북한의 경제난을 덜어줄 수 있다(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한 재래식 군비확장의 경제적 부담을 핵무기 한방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반박이 있을 법하다.
핵무기가 북한 경제의 구세주가 되지 않는 한 위의 반박은 한계를 내포한다. 일반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은 ‘핵무기가 경제적인 무기’라는 신앙을 갖고 핵무기 개발 대열에 뛰어들었으나,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북한도 그런 과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핵무기는 북한 경제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 오로지 ‘비핵 경제(핵무장 하지 않은 경제)’가 북한 경제의 구
세주가 될 것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Mary Kaldor의 이론을 원용한다.
(2) Mary Kaldor의 이론
칼더(Mary Kaldor)는 「Warfare and Capitalism」(1982)이라는 논문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에 나오는 ‘상품의 이중성’, 즉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논점에서 핵무기의 문제를 아래와 같이 제기한다:
에드워드 톰슨은 ‘핵폭탄은 物이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이 ‘物’을 어떻게 분석할까?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1장에서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사용가치의 특정한 집합체를 생산하는 데 타당한 사회적 분업에 관하여 판정을 내린다.
핵폭탄은 사용가치・파괴력을 갖고 있으며 그걸 제조하는 데 자재―노동자・과학자・연구소・공장 등―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핵폭탄은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 무기에게는 전쟁이라는 별도의 결제형태가 있다. 그런데 전쟁이 자주 일어나지 않거나 폭탄 사용이 지나치게 파괴적이라면 어떻게 될까?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폭탄과 생산의 대상으로서의 폭탄 사이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나?
이처럼 폭탄의 사용가치와 그것에 요청되는 인간노동의 조건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라는 압력 자체가 전쟁의 원인될 수도 있다. 군비는 전쟁의 수단이다. 소비수단으로서의 군비는 특정형태의 ‘강제(强制) 도구’이다. 전쟁을 강제의 한 형태(소유관계의 재생산에 있어서 하나의 요소)로 볼 수 있다. 이 특정형태의 강제의 역사적 발전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강제형태
가 소여(所與)의 소유관계의 틀에 기초하여 어떻게 스스로 생산・재생산하는가, 다시 말하면 특정형태의 강제를 실시하기 위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인민의 노동시간을 짜낼 것인가, 어떻게 국민(시민) ・인민이 희생양으로 되고 국민・인민경제가 희생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핵무기 및 다른 무기는, 전쟁에서 사용된다는 의미에서 사용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무기는 국가를 독점적인 구매자로 삼고 시장에 진입하지 않으므로, 다른 모든 상품처럼 시장을 통해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모든 상품처럼 상품의 사용가치를 높여 교환가치를 줄여가려는 부단한 경쟁에 가담할 수 없다. 무기의 생산자가, 유일한 고객인 국가를 상대로 무기의 질・사용가치, 즉 기술적 향상만을 겨냥하는 특수한 경쟁에 노출된다. 또 무기의 가격이 국가・국가예산에 의해 이미 정치적으로 결정된 결과이므로 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Kaldor는 주로 선진자본주의의 핵무기 체계가 가치의 법칙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퇴영적(baroque)으로 흐른 나머지 자본주의 자체의 존망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Kaldor의 논리를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북한 역시 국가자본을 총동원하여 정치적 결정에 의한 핵무기 생산에 임하므로, 가치의 법칙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는 등 경제체제 전반의 존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에서 ‘퇴영적’이란 단어는 핵무기가 ‘퇴영적인 물(物)’, 즉 (가치의 법칙・경제의 법칙과 무관한) 고철 덩어리가 될 소지가 많다는 뜻이다. 정말 고철 덩어리로 될 소지가 많아진다면, 북한 당국이 (국가자본을 투여하여 생산해낸) 핵무기・핵물질의 교환가치를 높이기 위해 해외 수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미국의 전쟁욕구를 극도로 자극한 나머지 북・미간의 전쟁을 유발할 뿐이며, 이 전쟁은 북한 체제의 붕괴를 내포하게 된다. 북한이 생산해낸 핵무기의 본전을 빼기 위해 수출하지 못하면 북한 경제는 좀 먹는 고철 덩어리로 될 것이고, 고철 덩어리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해외 수출하다가 전쟁의 화마(火魔)에 휩싸여 정권의 붕괴-한반도에서의 핵전쟁-민족의 절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아무 쓸모도 없는 핵무기 때문에 민족이 절멸당하는 화근이 북한의 핵무기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핵무기는 다른 무기처럼 실전(實戰)에서 테스트가 불가능하므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하는데, 이 시뮬레이션에 가치의 법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으므로 국가경제를 퇴영적으로 만드는 주범이 된다. 북한 역시 시뮬레이션 또는 핵실험이 불가피한데, 그 비용 자체의 퇴영적인 효과가 북한의 경제난을 가중시켜 북한 경제를 ‘참수(斬首)’할지 모른다. 인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유랑하는 북한에서 식량 증산을 위한 국가자본의 투입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므로, 북한식 사회주의 시장의 발전․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사용가치・교환가치와 무관한 핵무기를 제조하면 할수록 그나마 조성된 사회주의 시장마저 파괴되어 북한 경제의 참수를 자행할지 모른다. 핵무기를 통해 ‘미국 제국을 참수’하기 이전에 북한 정권이 핵무기 체제에 의해 ‘참수’당할지 모른다. 그 이유는 미국과 과잉 핵군비 경쟁을 벌이다가 참수(붕괴)된 소련의 군・산 복합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대결한 소련에서 모든 상품의 가격은,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중앙국가 계획에 기반을 둔 정치적 결정의 결과이었다. 서방으로부터의 위협을 방지하기 위한 소련의 군비・무기 체계는, 비정상적인 군비확장(군확)을 통해 서방과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동서간의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났는데 소련도 모순에 빠져, (거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서방의 시스템과 유사한 군비・무기의 개발・배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버팀목이 된 분야가 군비(무기 생산부문)이었다. 소련에서 군비는 특권적인 산물이었으며 역사적인 산물이었다. 계획경제 체제 아래에서 국가자본을 군비에 우선적으로 충당하는 특권을 누렸다. 또 1930년대 나치즘의 군확에 대항한 사회주의권의 군확을 전개한 역사성이 있다. 나치즘을 평정한 2차대전 이후 미국과의 냉전에 대응한 핵무기고의 끝없는 확장을 위해 소비에트 경제를 총동원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핵전쟁에 대비한 고정자본에 국력을 탕진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의 끝없는 핵무기 개발경쟁에 함몰된 소련은 산업용 콤비나트를 軍・産 복합체로 전환하거나 군수산업에 과잉투자한 나머지 경제의 하부구조가 군사화되었다. ‘경제의 군사화・군수자본・군국주의가 사회구성체를 망친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고를 망각한 것이다.
미국과의 ‘핵미사일 갭(gap)’을 메우기 위해 소련의 국가자본을 과잉투자한 끝에 생산관계의 파행이 일어나 생산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더욱이 레이건 정권의 ‘별들의 전쟁(Star Wars)’ 군비확장 구도에 빨려 들어간 소련은, 우주 군확을 위해 천문학적인 군사예산을 필요로 했다.
이 군사예산은 민간산업 발전의 유발효과(Spin off)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국가경제를 참수하는 ‘악마의 축’이 될 가능성이 많았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가 ‘경제를 참수시키는 거액의 국방비’를 산업계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의 연장선상에서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를 추진했으나 이미 소련 경제는 중병이 들어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이제 관심을 북한으로 돌려보자. (소련형 경제 체제가 온존된) 북한 역시 소련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북한은 소련보다 훨씬 낙후된 경제상황 속에서 미국에 의해 강요된 재래식 군확(경제의 군사화)을 수십년간 지속해왔기 때문에 소련의 전철을 밟을 개연성은 더 높다. 그것도 부족하여 새롭게 전개하는 핵군확이 인민경제를 참수하는 처참한 사태를 유발할지 모른다.
북한의 핵군확 시스템이, 군사의 경제화(핵물질의 수출 포함)를 통해 북한 경제의 효자노릇을 하지 못할 경우 소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지금까지 소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차단한 것은 인민들의 희생, 즉 인민들이 굶주리면서도 ‘항미(미국에 저항하는) 군확 시스템’을 떠받쳐준 힘이었다. 이 힘이 얼마나 더 버티어주느냐가, ‘북한 핵군확 체제의 지속-북한 경제의 참수’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북한에서 기아와 핵군확의 함수관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불행하게도 핵무기와 기아의 악순환이 일어난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확률이 높아짐과 동시에 북한 경제의 참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민족의 지혜가 절실하다.(2005. 5. 1.)
▣ 참고 문헌
* 구병기 「인디아-파키스탄 핵실험과 NPT 체제」(고려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9)
* Mary Kaldor 지음/陸井三郞 옮김 戰爭論と現代(東京, 社會思想社,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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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파키스탄 핵개발의 효시인 카후타(Kahuta) 계획의 건축기술자이었던 Zulfikar Ali Bhutta는 1965년에 “만약 인도가 핵무기를 제조한다면 우리는 굶주려서 나뭇잎을 먹게 될지라도, 우리들 자신의 핵무기를 가질 것이다”고 선언하였다.
(주2) 2001년 기준 파키스탄의 1인당 GDP는 385달러로 전 세계 170개국 가운데 140번째이고 북한은 804달러로 127번째이다.
파키스탄의 부토 수상은, 1998년 핵실험 이후 국가가 치러야 할 대가(경제제재 등)에 대하여 “우리는 굶을 준비가 되어 있다. 풀을 먹어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주1) 굶어죽을 각오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뜻이다. 민중의 굶주린 창자를 담보로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권력의 비정함이 배어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국가권력보다 더 비정한 쪽은 국제
사회・국내의 가진 자들이었다. 파키스탄의 빚쟁이 나라인 미국・일본 등의 강력한 경제제재와 가진 자들의 자본유출로 파키스탄 경제는 붕괴 일보 직전에 봉착하여 국가의 위기를 가속화했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민중의 기아는 가중되었다. 핵무기 개발로 민중의 기아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파키스탄의 핵무기-기아의 악순환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한반도의 이야기이다. 한반도의 북쪽에 있는 북한이 기아에 허덕이는 경제난 속에서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핵무기와 기아의 관련’이라는 측면에서 파키스탄과 북한은 닮은꼴이다. 세계적인 빈국(貧國)인 파키스탄과 북한(주2)이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는 현상이 ‘민중고(民衆苦)의 가중’이
라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국간 현상의 닮은꼴이 결과의 닮은꼴로 이어질 것인가? 즉 북한도 파키스탄처럼 핵무기 개발로 인한 기아의 가중이라는 악순환을 밟을 것인가?
내친김에 가혹하게 물음표를 더 찍는다면,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의 경우에도 굶을 준비가 되어 있나? 풀을 먹어도 핵무기를 개발할 셈인가? 핵무기를 만든 북한 정권은, 인민들에게 굶을 준비를 시킨 채 핵을 만드는 비정한 정치집단이 아닌가? 인민의 굶주림을 희생양으로 정권 안보를 추구하는 게 온당한가? 인민의 주린 창자 속에 핵무기 집어넣는 게 정치인의
도리인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었을 텐데 그 돈으로 북한 인민의 기아 문제를 해결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배고픈 인민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핵무기를 만들었다면, 그 핵무기는 북한 인민의 고혈을 짜낸 것이 아닌가? 인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천하를 유랑하는 데 국고를 탕진해가며 핵무기를 만드는 정권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북한 인민의 인간안보(‘빈곤으로부터의 자유’를 통한 인간안보)를 무시하는 국가안보(핵무장 중심의 국가안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인간안보를 결정적으로 해치는 ‘먹거리 빈곤’ 속의 ‘핵물질 풍요’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국가권력이 핵무장을 통한 평화적 생존권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핵무장 경제로 인한 인민 개개인의 평화적 생존권 박탈(빈곤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살 권리의 박탈)이 예상된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북한의 핵무기-기아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정도의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물음에 대한 북한 쪽의 대답을 직접 들을 수 없으므로, 질문자 스스로 ‘북한의 핵무기-기아의 악순환’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하여, 기아의 악순환이 핵무기 개발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상황을 먼저 기술한다.
북한의 가장 큰 대외적인 위협은 ‘미국의 북한 협공․붕괴 시나리오’이며 대내적인 위협은 기아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만이 북한에 가(加)해지는 위협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후자도 전자 못지않게 강력한 위협요소이다. 두 위협요인은 서로 맞물려 있다. 미국의 집요한 북한 협공 시나리오 때문에 기아가 가속화되었고, 기아의 가속화라는 경제난을 군사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렇듯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아가 북한 안보의 커다란 위협요소임과 동시에 핵무기 개발의간접적인 원인 제공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기아가 안보적인 측면의 핵무기 개발로 이어진 ‘경제-안보의 쌍안경’으로 북한 핵개발을 조망하는 게 중요하다. 기아가 핵무기 개발을 낳는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핵무기보유 선언→기아 지수 증가’의 악순환
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보는 ‘복안 렌즈’가 필요하다.
그럼 지금부터 쌍안경과 복안 렌즈를 통하여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핵무기보유 선언→기아 지수 증가’의 악순환을 면밀하게 살펴보자.
1. 기아→ 핵무기 개발의 악순환
북한의 경우 기아가 안보의 위협 요소이다. 북한 등의 제3세계 빈국들은, 빈곤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에서 에너지의 빈곤(제1차 빈곤)이 외세의 개입을 동반했으며, 외세의 개입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핵무기 개발이 빈곤의 가중(제2차 빈곤)을 초래할지 모른다.
북한에서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제1차 빈곤→제2차 빈곤의 악순환이 동시 진행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소련의 붕괴 이전처럼 북한에 대한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했다면,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제1차 빈곤→제2차 빈곤의 악순환’이 동시 진행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중국으로부터 에너지를 여유 있게 공급받았다면 영변의 핵시설에서 그렇게 무리하게 핵물질(플루토늄)을 생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플루토늄 생산에 제동이 걸린 다음에 맺어진 제네바협정-KEDO 협정에 따른 경수로 건설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수로 건설의 차질로 에너지난 해결이 난망하다고 결론 내린 북한 당국이, 제네바협정 체제를 뛰어넘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에너지난을 해소하기 위한 ‘무리한 핵물질 생산’이 미국의 개입을 가져와 북한 핵문제라는 분쟁의 소용돌이를 만들게 된 것이다. 더욱이 미국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핵무기를 제조함으로써 더욱 큰 분쟁의 불씨를 제공한다.
이처럼 빈곤(에너지의 빈곤)이 분쟁을 유발・격화시킨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아・기아 경제가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이게 북한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할 말이 없으나, 핵무기보유 선언이 ‘제1차 빈곤→제2차 빈곤의 악순환’의 분기점이 될지 모르는 운명은 너무나 가혹하다. 지나친 도식이지만 제1차 빈곤이 핵무기보유 선언을 낳고, 핵무기보유 선언이 제2차 빈곤을 유발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 예감을 뒷밭침하기 위하여 북한과 같은 ‘빈국의 핵무장(과잉 무장)이 빈곤을 가중시킨다(제1차 빈곤→제2차 빈곤)’는 가설을 세운다. 이 가설을 통해 ‘핵무기보유 선언→기아지수 증가’의 악순환을 증명하려고 한다.
2. ‘핵무기보유 선언→ 기아지수 증가’의 악순환
(1) 과잉 무장이 빈곤을 가중시킨다
국가의 과잉 무장이 민중의 빈곤을 가중시키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특히 제3세계의 핵무장 국가(인도・파키스탄・북한)에서 심각하다.
파키스탄은 핵실험 이후 경제제재에 시달려왔고 그 결과 파키스탄의 경제는 외채로 붕괴할 정도에 이르렀다. 핵실험 이후 파키스탄 국민들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통쾌해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실험에 대해 당황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핵실험의 성취감이 사라진 후 파키스탄은 그들의 결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제적 제재에 직면하였고 이는 파키스탄의 경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구병기 1999, 25∼26쪽)
본래 군사경제는 폭력 체계에 의존하고 소비 지향적이므로 생산성이 떨어진다. 이 생산성을 메우기 위해 제국주의(자본주의) 나라들은 식민지에 무기를 파는 ‘식민지 나라의 무장화’를 시도했다. 현재 미국이 한국의 최첨단 군비확장을 종용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다. 그런데 미국만 그런 행태를 보이지 않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소련 역시 위성국가에 대한 무기수출, 제3세계 친소(親蘇) 국가에 대한 무기 수출・무기 지원(반제・반미운동 게릴라에게 무기 지원)을 통해 무기의 수급조절을 하면서 군사경제의 선순환(善循環)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악순환으로 치달아 소련경제가 망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무장 군사경제는 선순환(핵무장을 통한 경제발전)을 이룰까? 아니면 악순환(핵무장을 통한 경제난 가중→북한 정권의 붕괴)을 이룰까? 북한의 경우 친북 추종국가나 식민지가 없으므로, 북한 인민의 소비경제가 식민지화될 수밖에 없다. 북한 민중의 생활을 식민지화・내적식민지로 삼아 핵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북한의 인민생활・인
민경제를 희생양으로 삼은 핵무기의 증강이 국고의 증강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경제난 가중은 명약관화하다. 이에 대하여 ‘핵무기가 경제적인 무기이므로 오히려 북한의 경제난을 덜어줄 수 있다(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한 재래식 군비확장의 경제적 부담을 핵무기 한방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반박이 있을 법하다.
핵무기가 북한 경제의 구세주가 되지 않는 한 위의 반박은 한계를 내포한다. 일반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은 ‘핵무기가 경제적인 무기’라는 신앙을 갖고 핵무기 개발 대열에 뛰어들었으나,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북한도 그런 과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핵무기는 북한 경제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 오로지 ‘비핵 경제(핵무장 하지 않은 경제)’가 북한 경제의 구
세주가 될 것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Mary Kaldor의 이론을 원용한다.
(2) Mary Kaldor의 이론
칼더(Mary Kaldor)는 「Warfare and Capitalism」(1982)이라는 논문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에 나오는 ‘상품의 이중성’, 즉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논점에서 핵무기의 문제를 아래와 같이 제기한다:
에드워드 톰슨은 ‘핵폭탄은 物이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이 ‘物’을 어떻게 분석할까?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1장에서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사용가치의 특정한 집합체를 생산하는 데 타당한 사회적 분업에 관하여 판정을 내린다.
핵폭탄은 사용가치・파괴력을 갖고 있으며 그걸 제조하는 데 자재―노동자・과학자・연구소・공장 등―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핵폭탄은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 무기에게는 전쟁이라는 별도의 결제형태가 있다. 그런데 전쟁이 자주 일어나지 않거나 폭탄 사용이 지나치게 파괴적이라면 어떻게 될까?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폭탄과 생산의 대상으로서의 폭탄 사이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나?
이처럼 폭탄의 사용가치와 그것에 요청되는 인간노동의 조건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라는 압력 자체가 전쟁의 원인될 수도 있다. 군비는 전쟁의 수단이다. 소비수단으로서의 군비는 특정형태의 ‘강제(强制) 도구’이다. 전쟁을 강제의 한 형태(소유관계의 재생산에 있어서 하나의 요소)로 볼 수 있다. 이 특정형태의 강제의 역사적 발전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강제형태
가 소여(所與)의 소유관계의 틀에 기초하여 어떻게 스스로 생산・재생산하는가, 다시 말하면 특정형태의 강제를 실시하기 위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인민의 노동시간을 짜낼 것인가, 어떻게 국민(시민) ・인민이 희생양으로 되고 국민・인민경제가 희생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핵무기 및 다른 무기는, 전쟁에서 사용된다는 의미에서 사용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무기는 국가를 독점적인 구매자로 삼고 시장에 진입하지 않으므로, 다른 모든 상품처럼 시장을 통해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모든 상품처럼 상품의 사용가치를 높여 교환가치를 줄여가려는 부단한 경쟁에 가담할 수 없다. 무기의 생산자가, 유일한 고객인 국가를 상대로 무기의 질・사용가치, 즉 기술적 향상만을 겨냥하는 특수한 경쟁에 노출된다. 또 무기의 가격이 국가・국가예산에 의해 이미 정치적으로 결정된 결과이므로 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Kaldor는 주로 선진자본주의의 핵무기 체계가 가치의 법칙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퇴영적(baroque)으로 흐른 나머지 자본주의 자체의 존망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Kaldor의 논리를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북한 역시 국가자본을 총동원하여 정치적 결정에 의한 핵무기 생산에 임하므로, 가치의 법칙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는 등 경제체제 전반의 존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에서 ‘퇴영적’이란 단어는 핵무기가 ‘퇴영적인 물(物)’, 즉 (가치의 법칙・경제의 법칙과 무관한) 고철 덩어리가 될 소지가 많다는 뜻이다. 정말 고철 덩어리로 될 소지가 많아진다면, 북한 당국이 (국가자본을 투여하여 생산해낸) 핵무기・핵물질의 교환가치를 높이기 위해 해외 수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미국의 전쟁욕구를 극도로 자극한 나머지 북・미간의 전쟁을 유발할 뿐이며, 이 전쟁은 북한 체제의 붕괴를 내포하게 된다. 북한이 생산해낸 핵무기의 본전을 빼기 위해 수출하지 못하면 북한 경제는 좀 먹는 고철 덩어리로 될 것이고, 고철 덩어리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해외 수출하다가 전쟁의 화마(火魔)에 휩싸여 정권의 붕괴-한반도에서의 핵전쟁-민족의 절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아무 쓸모도 없는 핵무기 때문에 민족이 절멸당하는 화근이 북한의 핵무기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핵무기는 다른 무기처럼 실전(實戰)에서 테스트가 불가능하므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하는데, 이 시뮬레이션에 가치의 법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으므로 국가경제를 퇴영적으로 만드는 주범이 된다. 북한 역시 시뮬레이션 또는 핵실험이 불가피한데, 그 비용 자체의 퇴영적인 효과가 북한의 경제난을 가중시켜 북한 경제를 ‘참수(斬首)’할지 모른다. 인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유랑하는 북한에서 식량 증산을 위한 국가자본의 투입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므로, 북한식 사회주의 시장의 발전․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사용가치・교환가치와 무관한 핵무기를 제조하면 할수록 그나마 조성된 사회주의 시장마저 파괴되어 북한 경제의 참수를 자행할지 모른다. 핵무기를 통해 ‘미국 제국을 참수’하기 이전에 북한 정권이 핵무기 체제에 의해 ‘참수’당할지 모른다. 그 이유는 미국과 과잉 핵군비 경쟁을 벌이다가 참수(붕괴)된 소련의 군・산 복합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대결한 소련에서 모든 상품의 가격은,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중앙국가 계획에 기반을 둔 정치적 결정의 결과이었다. 서방으로부터의 위협을 방지하기 위한 소련의 군비・무기 체계는, 비정상적인 군비확장(군확)을 통해 서방과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동서간의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났는데 소련도 모순에 빠져, (거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서방의 시스템과 유사한 군비・무기의 개발・배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버팀목이 된 분야가 군비(무기 생산부문)이었다. 소련에서 군비는 특권적인 산물이었으며 역사적인 산물이었다. 계획경제 체제 아래에서 국가자본을 군비에 우선적으로 충당하는 특권을 누렸다. 또 1930년대 나치즘의 군확에 대항한 사회주의권의 군확을 전개한 역사성이 있다. 나치즘을 평정한 2차대전 이후 미국과의 냉전에 대응한 핵무기고의 끝없는 확장을 위해 소비에트 경제를 총동원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핵전쟁에 대비한 고정자본에 국력을 탕진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의 끝없는 핵무기 개발경쟁에 함몰된 소련은 산업용 콤비나트를 軍・産 복합체로 전환하거나 군수산업에 과잉투자한 나머지 경제의 하부구조가 군사화되었다. ‘경제의 군사화・군수자본・군국주의가 사회구성체를 망친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고를 망각한 것이다.
미국과의 ‘핵미사일 갭(gap)’을 메우기 위해 소련의 국가자본을 과잉투자한 끝에 생산관계의 파행이 일어나 생산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더욱이 레이건 정권의 ‘별들의 전쟁(Star Wars)’ 군비확장 구도에 빨려 들어간 소련은, 우주 군확을 위해 천문학적인 군사예산을 필요로 했다.
이 군사예산은 민간산업 발전의 유발효과(Spin off)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국가경제를 참수하는 ‘악마의 축’이 될 가능성이 많았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가 ‘경제를 참수시키는 거액의 국방비’를 산업계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의 연장선상에서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를 추진했으나 이미 소련 경제는 중병이 들어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이제 관심을 북한으로 돌려보자. (소련형 경제 체제가 온존된) 북한 역시 소련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북한은 소련보다 훨씬 낙후된 경제상황 속에서 미국에 의해 강요된 재래식 군확(경제의 군사화)을 수십년간 지속해왔기 때문에 소련의 전철을 밟을 개연성은 더 높다. 그것도 부족하여 새롭게 전개하는 핵군확이 인민경제를 참수하는 처참한 사태를 유발할지 모른다.
북한의 핵군확 시스템이, 군사의 경제화(핵물질의 수출 포함)를 통해 북한 경제의 효자노릇을 하지 못할 경우 소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지금까지 소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차단한 것은 인민들의 희생, 즉 인민들이 굶주리면서도 ‘항미(미국에 저항하는) 군확 시스템’을 떠받쳐준 힘이었다. 이 힘이 얼마나 더 버티어주느냐가, ‘북한 핵군확 체제의 지속-북한 경제의 참수’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북한에서 기아와 핵군확의 함수관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불행하게도 핵무기와 기아의 악순환이 일어난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확률이 높아짐과 동시에 북한 경제의 참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민족의 지혜가 절실하다.(2005. 5. 1.)
▣ 참고 문헌
* 구병기 「인디아-파키스탄 핵실험과 NPT 체제」(고려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9)
* Mary Kaldor 지음/陸井三郞 옮김 戰爭論と現代(東京, 社會思想社,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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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파키스탄 핵개발의 효시인 카후타(Kahuta) 계획의 건축기술자이었던 Zulfikar Ali Bhutta는 1965년에 “만약 인도가 핵무기를 제조한다면 우리는 굶주려서 나뭇잎을 먹게 될지라도, 우리들 자신의 핵무기를 가질 것이다”고 선언하였다.
(주2) 2001년 기준 파키스탄의 1인당 GDP는 385달러로 전 세계 170개국 가운데 140번째이고 북한은 804달러로 127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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