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C3I(지휘Command, 통제Control, 통신Communication, 정보Intelligence)에 대한 철학적 평론을 아래와 같이 시도한다.
1. Command
지구촌의 모든 존재물을 절멸(無化)시킬 수 있는 핵무기의 지휘체계 안에, 하이데거(Heidegger)가 말하는 ‘무(無)’의 개념이 들어 있다. 하이데거는 제1차 대전이 무(無)의 개념을 소환한다고 갈파했다. 핵시대의 무(無)는 현대의 무화(無化) 즉 현대문명의 절멸을 예고한다. 하이데거가 말하듯이 ‘인간의 현존재(Da-Sein)는 핵무기에 각인되어 있다.’
2. Control
핵전쟁의 우발성, 핵무기의 남용 ・오발을 통제(control)하는 시스템을 미국과 옛 소련이 갖췄다. 그중의 대표적인 형태가 MAD(상호 확증파괴, Mutual Assurance Destruction)이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공포의 균형’ 자체가 핵무기의 남용을 막는다는 발상이다.
미국과 소련이 미친 듯이(mad) 핵무기 개발경쟁을 하는 과속을 냉각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MAD 전략을 채택했으나, 핵무기 개발경쟁의 광증(madness)은 본질적으로 치유하지 못했다. MAD 전략을 통해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세계 평화를 유지할 것이라는 발상은 ‘광기(狂氣)의 평화’에 다름 아니다.
MAD 전략은 기본적으로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 이론에 입각해 있다. 이 힘의 균형 이론은 미국의 한반도 전략의 핵심이며, 한반도 주변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논리로 직결된다. 여기에서 힘의 균형자(Balancer of Power)로서의 주한미군은 ‘광기(狂氣)의 평화’를 낳았다.
3. Communication
핵무기의 통신(Communication) 시스템을 헤겔(Hegel)의 ‘주인과 노예의 승인 투쟁’에 견강부회하면, 핵무기의 통신 시스템이 (핵무기 통신 시스템의 주인인) 인류의 생사를 승인한다. 헤겔의 목숨을 건 승인투쟁은 주인의 노예에 대한 승인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노예에 대한 주인의 승인인 ‘통신(communication)’에 내면화된다. 핵무기의 주인인 미국 ・소련이 노예(핵무기 체계 앞에서 목숨이 저당 잡혀 있는 전 세계의 무고한 민중들)의 생사여탈 여부를, 핵무기 발사의 통신체계를 통해 승인했다. 여기에서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승인투쟁’이라는 변증법이, 핵무기 전자시스템이라는 유물주의(Materialism)에서 부활한다.
4. Intelligence
핵무기의 억지력(MAD 전략을 통해 핵전쟁을 미국 ・소련이 억지할 수 있다)으로 핵전쟁의 위기를 회피할 수 있다는 논리는 거의 신앙에 가깝다.
군(軍) ・산(産) 복합체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의 핵에 대한 믿음은 거의 광신에 가까운 ‘핵신학(核神學) 논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광기 어린’ MAD(상호확증파괴) ・제한 핵전쟁론 ・SDI(별들의 전쟁) 등에 관한 그럴싸한 교리를 호전적인 지도자에게 설파하곤 하는 이들 ‘핵 신학자’들은 그들의 재정적 지원자인 ‘죽음의 상인들(무기 메이저를 형성한 다국적 기업)’과 더불어 세계 곳곳에 ‘핵 신앙’을 전도한다. ‘핵의 신앙’은 신의 본질에 관하여 사유하는 신학자와 마찬가지로 전략이론가에 의해 생겨난다. 이러한 신학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핵의 제국’이 건설되며, 이단자는 투옥되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또한 이러한 ‘핵의 신학’ 때문에 첨단 항공산업 ・첨단 전자산업 ・첨단 유전자공학 등이 번창한다.
핵무기 체계의 근간인 컴퓨터를 ‘신(神)’으로 모시는 핵억지 시대는 또 다른 얼굴을 한 ‘신(神)’을 준비한다.
오늘날의 [군사]위성은 모든 것을 보고 아는 신(神)이다. 모든 것[有]과 무(無)를 판가름하기 위해 판돈을 거는 ‘억지 게임’에 말려든 우리들에게, 핵무기는 파스칼(Pascal)의 신(神)과 같은 존재이다. ‘정보(intelligence)의 조작’과 통신 체계는 군사(軍事)와 민사(民事)의 경계를 넘어선 ‘동원’을 조직하고 있다. 폭탄[핵폭탄]은 단지 신(神)일뿐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지탱하는 근거이다. 핵시대의 폭력은 ‘죽음보다 나쁜 것’을 반복한다. 한편 중립적인 기술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말하는 혹성(惑星) 규모의 ‘군사화’는, 우리들 자신의 생물학적인 죽음보다 나쁜 죽음을 이미 물질화하고 있다. 니체(Nietzche)가 말하듯이 ‘신(神)은 죽었다’가 아니라 핵체계의 ‘죽음’이 ‘신(神)’으로 된 것이다. 이러한 지고(至高)의 악(惡)을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승인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이다.<市田良彦 {戰爭} (東京, 新曜社, 1989). 175쪽>
(200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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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333~336쪽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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