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2차 대전의 종전(終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그은 선이 동아시아의 냉전선(冷戰線)이 되었다. 이 냉전선의 두 개의 거점은 한반도와 대만이다. 현재 주일미군 ・일본 자위대가 중심이 되고 주한미군 ・한국군이 보조세력이 되어 한반도와 대만을 거점으로 한 전쟁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군재편(GPR) 중이다. 펜타곤의 GPR 계획에 따라 한국의 평택에 주한미군을 집결(한국판 GPR)하고 있으며, 주일미군의 재편(일본판 GPR)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냉전체제가 만든 동아시아의 분단선을 해체하는 과업이 중요하다. 동아시아의 분단선을 상징하는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가 ‘세계 최고의 무장지대’라는 역설을 낳고 있다. 이러한 역설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한 민중의 평화통일 염원이 깃든 ‘남북한 주도(미국의 입김 배제: 脫美)의 평화공동체’를 내와야 한다.
한편 동아시아의 또 하나의 분단선인 중국 ・대만의 국경 부근에 미국의 그림자가 사라지면 중국통일이 앞당겨질 것이다. 중국 포위전략에 모든 힘을 쏟고 있는 미국이 대만을 중국 포위의 거점으로 삼기 때문에, 미국 ・중국 사이에 갈등관계가 상존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원한다.’는 미국 정부의 발표가 구두선(口頭禪)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만을 ‘중국 역공의 거점’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미국은 남북한의 분단, 중국 ・대만의 분단을 통해 동아시아인들 끼리 티격태격하도록 해놓고 갈등의 장기화를 도모하기 위해 친미국가(한국 ・대만)의 군비확장을 종용하고 있다. 최첨단 미제(美製) 무기로 무장한 한국 ・대만이 북한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전선을 미국이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동아시아의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구도를 지양하지 않는 한 ‘동아시아인의 연합에 의한 평화공동체’ 건설은 요원하다.
미국의 동아시아 분할 ・통치 전략을 지양(止揚)하고 ‘동아시아인의 연합에 의한 평화공동체’를 지향하기 위해 한국 민중과 대만 민중의 연대가 긴요하다. 이러한 연대를 준비하는 뜻에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Ⅰ. 미 ・일 동맹과 대만
1. 미 ・일 동맹(미 ・일 동맹 재편)과 중국의 신경전
1) 미 ・일 동맹의 강화에 대응해 온 중국은, 2001년 1월에 새로운 해양 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략은 기존의 G라인[Green Line: 대만을 포함한 전수(專守) 방어선]에서 B라인[Blue Line: 쿠릴 열도~마리아나 군도~파푸아 뉴기니]으로 해양방위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2) 위와 같은 중국의 (경제력 확대에 따른) 방위영역 확장에 대하여, 미 ・일 동맹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3) 중국과 일본의 에너지 확보 전쟁이 ‘춘시아오(春曉) 가스田’ 등에서 벌어지고 있다.
4) 센가쿠 섬 등을 에워싼 영토분쟁이 중국 ・일본 사이에 일어날 수 있다.
2. 미 ・일 동맹의 재편과 대만
1) 일본의 방어선 확장이 대만에 미치는 영향
일본은 예전의 극동방위(대만 포함)에서 탈피하여 미국 주도의 ‘불안한 호(弧)’ 방위(중국 대륙 포위)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방위선 확장에 따라 미 ・일 동맹이 대만 사태에 대한 개입하는 정도가 높아질 것이다.
방위선을 확장하고 있는 일본 자위대가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주변 3국을 ‘위협 대상국’으로 상정하여, 유사시 이들 국가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과 이에 대한 대응계획을 담은 극비문서 ‘방위경비 계획’이 2005년 9월 26일 공개되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대만의 독립선언 등에 의한 대만분쟁이 발생해 ‘미군이 개입하고 일본이 지원하며 중국군이 주일미군기지와 자위대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했다. 또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도서지역에 병력을 사전배치하고 상황에 따라 규슈(九州)와 시코쿠(四國) 주둔 병력을 동원한다는 계획을 일본정부가 세웠다. [연합뉴스(2005.9.26)]
이처럼 주일미군 ・일본 자위대가 대만 사태 때 군사 개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02년 9월에 작성된 핵 태세 재검토(NPR) 보고서는 미국의 선제 핵무기 사용이 고려될 수 있는 ‘우발 상황(contingency)’으로 중국의 대만 공격을 명시함으로써, 대만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한-미-일 3각 미사일 방어망(MD)의 일환인 해상 MD체계(이지스 함이 중심임)가 대만 방어에 활용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3. 미 ・일 동맹과 중국의 방어선이 중첩된 분쟁 예상지역
대만 ・한반도 ・춘시아오(春曉) 가스田・센가쿠 섬[釣魚島] 등 미 ・일 동맹과 중국의 방어선이 중첩되는 지역(동아시아의 분쟁 예상지역)을 미 ・일 동맹, 중국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에 분쟁의 태풍이 부느냐 평화의 순풍이 부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반도와 대만은 동일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Ⅱ. 미국의 전쟁구도: 동아시아에서의 1.5 전쟁
대만 ・한반도가 미 ・일 동맹의 양대(兩大) 거점이 되어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양대 거점은 미 ・일 동맹이 중국을 향해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는 북방(한반도), 남방(대만)에 존재하면서 상호연동되어 있다. 미 ・일 동맹의 수뇌부가 보기에, 북한 붕괴를 위한 전략(5027 작전계획 등)과 양안 전쟁 대비용 전략이 연동되어 있다. 미 ・일 동맹은, 이 양대 거점 중 한 거점에 1의 비중을 두고 나머지 한 거점에 0.5의 비중을 두는 ‘1.5 전쟁구도’를 짜고 있는 듯하다.
1) 양안 전쟁(1의 전쟁) 때 중국이 대만을 직접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중국군의 역량을 분산시키기 위해 만주 또는 한반도(북한)에서 국지적인 분쟁(0.5 전쟁)을, 미 ・일 동맹(미군 주도)이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군을 간접적으로 동원한 미 ・일 동맹군이 (중국의 발목을 잡기 위해) 만주지역에서 불장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 만주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이며 탈북자가 많이 거주하는 바, 북한 인권문제 ・중국의 북한 인권문제 처리 미흡을 트집 잡아 소요를 일으킬지 모른다. 북한 인권을 에워싼 인도적 개입 명분 아래의 군사적 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2) 한반도에서의 분쟁, 즉 북한-미국 전쟁(1의 전쟁) 때, 중국군이 만주 지역에 집결하거나 북한에 진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 ・일 동맹군이 대만에서 0.5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3) GPR에 따라 신속 대응군으로 변환 중인 주한미군이 한반도 역내의 방어동맹 범주를 뛰어 넘어 (중국을 겨냥한) 동북아 지역군-전 지구적 침략군으로 탈바꿈하게 될 경우, 주한미군이 한국군을 거느리고 대만사태에 개입할지도 모른다. 중국을 겨냥한 (동북아 지역군으로서의) 주한미군의 기동성과 전략적 유연성을 높여 주한미군 기지가 대만사태의 발진-지휘 ・통제기지(C4I 기지)가 될지 모른다. 대만사태에 따른 중국-미국 분쟁(전쟁)에 한반도가 휘말려 들고 일본이 개입할 경우 ‘제2의 청일전쟁’이 재연될 개연성도 엿보인다.
4) 미국은 겉으로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표방하지만 속으로는 대만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계획을 세웠다. 미 태평양 사령부는 1990년대 말에 ‘대만 군사작전 계획’을 세웠다. (中國時報 2005.6.12) 이는,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징후를 네 가지로 파악하고 그 징후가 포착될 때 곧장 군사작전에 돌입한다는 전면적 전쟁계획이다. 징후가 포착되면 미군이 1,500대의 전투기를 동원하는 전면전을 미군이 주도하며 대만군을 합동작전에서 배제하는 전쟁계획이다.
Ⅲ. 한반도-대만의 공동운명
1. 대만해협의 파고와 한반도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대만 총통이 국민투표를 강행하며 독립을 표명할 경우, 1996년의 봄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미사일 발사 ・상륙작전 연습, 이에 대항한 미 제7함대의 파견 등, 미-중 간의 군사적 긴장이 일거에 고조될 위험이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6자 회담을 포함해 북핵문제와 한반도 정세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미치게 된다.
대만의 안전보장은 미국의 ‘보호’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도 동맹이나 조약이 아니라, ‘대만 관계법’이라는 미국의 국내법이 유사시 미국의 지원을 규정하는 기형적인 상황이다. 대만은 미국 내 보수파 ・대중(對中) 강경파의 지원에 빌붙어 국가의 생존을 의지하고 있다. 따라서 대만으로서는 자신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 미국 내의 지원세력의 주목을 끌고 여론을 등에 업기 위해 중국과의 긴장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1996년 봄의 대만해협 위기도 대만 독립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리덩후이 총통의 이른바 ‘탄성(彈性)외교’ 공세가 중국을 자극하여 촉발된 것이다.
대만이 고립된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긴장을 촉발하는 구도는 북한 핵문제와도 유사한 점이 많다. (중국의 내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초래한 분단국가인) 중국과 대만 관계는 제3자가 관여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지역협력 틀 안에 대만이라는 존재를 안정적으로 포괄하는 외교적 노력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도 더욱 관심 가져야 할 과제이다.
2. 한반도의 생존이 걸린 대만 사태
대만 문제는 한국민에게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한국민이 죽고 사는 문제이다. 대만의 독립선언은 중국의 무력침공을 초래하고, 이에 대응해 미 ・일 동맹군이 개입함으로써 중국-미 ・일 동맹 간의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이때 주한미군에게 전략적 유연성이 허용된다면 남한 땅은 미국의 최전방기지로서 중국침략 발진기지와 대리 전쟁터가 되는 끔찍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미국의 전략 보고서가 상정하는 ‘중국의 대만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대만 군 당국은 2003년에 ‘전갈 계획(중국의 대만침공 조짐이 있을 경우 베이징, 상하이 등의 대도시와 싼샤 댐 등의 주요 목표들을 선제공격하여 중국의 반격 능력을 마비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중국은 대만해협의 둥산다오에서 대만 모의 공격 등의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양안 간에 군사적 긴장이 은근히 지속되고 있다.
대만사태에 따른 중-미 전쟁의 틈바구니에 낀 한반도에서 ‘제2의 청일 전쟁(국제 대리전)’이 예상되므로, 대만사태는 우리 민족의 흥망이 걸린 문제이다.
분단국인 한국과 대만은, 한 ・미 동맹-미 ・일 동맹이 일체화되면 될수록 한반도 ・대만에서 전쟁의 기운이 높아지는 운명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한국인과 대만인은, ‘한 ・미 동맹-미 ・일 동맹의 전쟁체계에서 탈피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향하는 동맹’을 맺어야 한다.
3. 미 ・일 동맹군의 양동작전 아래에서 한반도와 대만은 공동운명에 놓여 있다. 중국 포위-북한 붕괴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미 ・일 동맹군이 동아시아 유사시 두 개의 화살(북한 ・만주 등의 북방으로 날아가는 화살, 대만 등의 남방으로 날아가는 화살)을 쏘기 전에 전쟁의 활 자체를 꺾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반도 민중과 대만 민중이 단결해야 한다. 미 ・일 동맹이 기획 중인 동아시아에서의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대만의 평화세력과 한국의 평화세력이 연대해야 한다.
* 위의 글은, 대만의 ‘노동인권협회’가 2005년 11월 19일에 개최한 토론회(주제: 대만과 동북아 정세)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07호(200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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