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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이라크 전쟁, 기타 전쟁

‘김선일 증후군’과 평화 불감증

김승국

이라크 전쟁(주1)의 무고한 희생자가 된 故 김선일 씨의 명복을 빈다. 명부(冥府)에 전쟁이 없다면 그곳에서 장수하기 바란다.

김선일(金鮮一: 1970년 9월 13일~2004년 6월 22일) 씨는 이라크 주둔 미군과 거래하는 업체인 주식회사 가나무역 소속으로 이라크에서 근무하는 통역사였다. 그는 아랍어를 전공하여 2003년 2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중동의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였고 가나무역에 취직하여 2003년 6월 15일에 이라크로 갔다. 가나무역이 기독교 선교를 지원했다는 설이 있다. 2004년 5월 30일 바그다드 시에서 서쪽으로 50㎞ 떨어진 팔루자 시에서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이슬람 무장단체인 자마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아랍어로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뜻)의 인질로 납치되었다. 이 단체는 파병국인 대한민국 정부에게 이라크 추가 파병 중단 및 한국군을 즉각 철수시키라고 요구하였고,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6월 22일에
그를 참살하였다.

이렇게 무고한 참살을 당한 김선일 씨에게 바치는 조사(弔辭)를 써야 마땅하지만, 그에 앞서 ‘평화의 시각’으로 곱씹어 볼 사안이 상당히 많다.

1. 김선일 증후군

김 씨가 납치되었다는 뉴스를 들은 한국민은 가슴을 졸이며 생환을 바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수 소식이 들리자 날벼락을 맞은 듯 경악했고, 곧 이어 살인자 집단에 대한 증오 ・보복심리가 발동되는 등 시민사회 전체가 ‘참수 증후군syndrome)’에 사로잡혀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김 씨 피살 이후의 사회 현상을 ‘김선일 증후군’으로 요약하고, 이 증후군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응이 ‘평화 불감증’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비판하고자 한다. 김선일 증후군과 연관된 한국인(특히 냉전 수구 세력)의 평화 불감증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주2)
먼저 김선일 증후군을 열거한다.

  1) 김선일 씨 참수와 관련된 trauma(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
trauma를 일으키는 정황은 다음과 같다:
① 이라크 저항 세력에 붙잡혀 심문을 받는 김선일 씨가 “살려달라.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부르짖는 목소리. 이 목소리를
들은 한국의 시민들이 무언가 김선일 씨를 구출하기 위해 손을 쓰고 싶은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책감 어린 슬픔.
② 참수된 김선일 씨의 목.
③ 김선일 씨가 입은 오렌지색 옷. 이 옷은 아부 그라이브 미군 형무소에서 학대당한 이라크 인들이 입은 옷과 색깔이 똑같다. 김선일 씨의 살해자들은 이 옷을 김 씨에게 입힘으로써 복수의 상징화를 시도했다.
④ 스트레스 받게 하는 한국 정부의 대응. 김선일 씨 납치 사실을 정부 당국이 미리 알았을 법한데 파병강행 발표를 한
괘씸죄.
⑤ 미국에 줄 것 다 주면서 찬밥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정부. 미국이 파병하라면 끽 소리 못 하고 맹종하면서도, 김
선일 씨 피살 관련 정보를 미국으로부터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여 대책을 세울 수 없었던 한국 정부. 한국 정부의 협상
력 ・외교력 부족을 생각하면 열 받는다.
⑥ ‘파병 반대=국론 분열=테러에 굴복’이라는 등식이 주는 스트레스.
⑦ 애꿎은 국내의 이슬람 사원을 향해 분풀이하는 ‘못난 백성
들’의 신경질.
⑧ 일부 네티즌들의 집단 공격성. 국방부 홈페이지 등에 극우 보수적인 글을 올려야 겨우 대리만족하는 군사주의의 노예
들. 주적 만들기에 너무나 익숙한 한국인들이 이라크의 저항 세력을 새로운 주적으로 만들려는 심리적 기제. 주적이 없으면 불안한 한국사회. 너무나 쉽게 상대방을 적으로 만드는 국민 심성. 이라크 저항 세력의 행위를 전체 이슬람권 사람들의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반(反)이슬람 파쇼’의 칼날을 가는 대중심리. 초전박살 내듯 이라크에 특전사를 풀어 섬멸하자는 ‘실미도 발상’.

  2) 테러 공포증
한국이 테러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내가 사는 곳 주변에서 테러라는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테러 공포증(정부 당국은 이 테러 공포증에 편승하여 테러 방지법을 입법하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이라크의 저항 세력은 한국을 테러 공격의 취약한 고리로 여기고 있다. 이라크 주둔 한국군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민이 김선일씨처럼 처참하게 당할지 모른다. 내가 재수 없이 테러에 걸려들지 모른다는 불안감.

  3) 동영상
위의 테러 공포증과 참수에 대한 호기심이 묘하게 배합되어 참수 동영상을 보고 싶게 만드는 심리적인 자극.

  4) 응징 ・보복 욕구
피의 보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단순한 분풀이를 벗어나 보복성 파병을 하여 ‘람보’처럼 이라크 저항 세력을 소탕해야 한다는 보복 욕구.

앞에서 열거한 증후군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민으로 하여금 전쟁의 기억, 학살의 기억, 보복의 기억, 증오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북한을 상대로 형성되어 온 ‘원수 상(像)’이 이라크의 저항 세력 위에 그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증후군을 평화의 담론을 통해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평화의 담론을 통한 치유’를 가로막는 것은, 김선일 씨 사건을 에워싼 ‘해석의 남남갈등’이다. 분단 상황에서 켜켜이 쌓인 남남 갈등이, 김선일 씨 사건과 연관된 파병 논란을 통해 도지고 있다.

김 씨 피살 사태의 해석을 둘러싼 남남 갈등은, 전쟁지향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쪽과 평화지향적으로 대응하려는 쪽으로 나뉘는 지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자가 응징 ・보복 파병론으로, 후자가 파병 반대(전면적인 파병 철회)론으로 나타나면서 양자 간의 팽팽한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 긴장은 남북문제를 에워싼 오랜 남남 갈등의 재판이다.

한편 김 씨 피살 사건이 국제적인 관심사가 된 측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한반도에 국한되어 온 남남 갈등이 세계화(?)되고 있다고나 할까? 이라크 전쟁 자체가 ‘미국 주도의 전쟁이 세계화된 것(제국의 무장력의 세계적 진출로서의 이라크 전쟁)’이어서 그런지, 이라크 전쟁 중에 터진 김선일 사건 속에도 세계화 담론이 내재해 있다.
이 담론 중의 하나로 김선일 씨 피살에 관한 국제적인 논란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김 씨 피살과 관련된 남남 갈등 역시 자연스럽게 세계화되어 전 세계의 매스컴에 한동안 오르내렸다.

이 남남 갈등의 오른쪽에 있는 냉전 수구 세력의 평화 불감증이 심각하다. 이들은 분단체제의 사생아로서 평화의 감수성이 부족한 대신 전쟁의 감수성에 뛰어나다. 이들의 우익적인 세계관이 보복성 파병(참전)으로 연결되는 등 평화 불감증이 우심함을 드러내고 있다.

2. 피살의 의미

김선일 씨를 직접 살인한 자는 이라크의 저항 세력, 즉 ‘자마트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이다. 그러나 간접적인 살인자로 노무현 정권과 부시 정권을 상정할 수 있다. 이 간접적인 살인자에 의한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정치사(政治死)
한미 두 정부는 김선일 씨를 정치적으로 죽였다. 김 씨는 이라크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현대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김 씨의 죽음은, 전쟁이라는 이름을 빌린 정치에 의한 사망, 즉 정치사(政治死: politicide)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 씨가 세 번 죽임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저항 세력에 의해 첫 번째로 죽임을 당한 김 씨의 시신 위에, 미국의 군가권력과 한국의 국가권력이 차례로 정치사(政治死)의 낙인을 찍었다.

  2) 한국 ・미국의 국가권력에 의한 사망
정치사(政治死)의 주범은 한국과 미국의 국가권력이다. 이라크 전쟁 자체가 미국의 국가권력에 의한 전쟁이고, 한국이 이 전쟁 구도에 파병의 이름으로 참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선일 씨의 간접적인 살인자는 한국과 미국의 국가권력이다.

  3) 동맹에 의한 사망
이라크 전쟁은 미국 ・영국의 앵글로 색슨 동맹이 주도했으며, 이 전쟁에 한-미-일 군사 공동체가 참여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 일본의 자위대와 한국군이 파병되어 있는 구조는, 한-미-일 군사 공동체의 군대가 ‘의지 연합’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라크의 전쟁구조는 유럽형 동맹(미국+영국의 앵글로 색슨 동맹)과 아시아형 동맹(한-미-일 군사공동체)의 연합구조이다. 이 동맹의 연합구조에 저항하는 이라크의 무장 세력이 김 씨를 참수했다. 그러므로 이 동맹의 연합구조가 김 씨의 간접적인 사망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김선일 씨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서 있던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파병 방침 불변’이라고 미국의 요구에 충실하게 화답을 했다. 테러범들은 이 메시지를 듣고 김선일 씨를 살해했다. 김선일 씨의 살해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도 부시는 재차 “한국 정부가 파병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못을 박았다. 곧, 한국 정부는 부시의 부도덕한 전쟁을 지지하기 위해 김선일 씨를 버렸다. 이 시점에서 한국이 오직 부시를 도와주기 위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추가로 보내려 한다는 사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한국인의 목숨을 포기하더라도 미국의 으름장에 화답해야 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다. ‘동맹’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지난 50년 동안 그만큼 많은 한국인이 죽고 다쳤으면 되었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주3)

  4) 전쟁 체제에 의한 사망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주도하는 최첨단 전쟁과 이에 원시적으로 맞서는 이라크 저항 세력의 대결구도이다. 이라크 저항 세력은 무장세력의 근육을 총동원하는 노동집약적이고 신체 접촉형 전쟁을 수행중인 데 비하여, 미국은 기술집약적이고 신체 접촉을 꺼리는 원격형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이 전쟁의 승부는 쉽게 판가름 나기 어렵다. 양측이 서로 승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가운데 신체 접촉형의 이라크 저항 세력이 ‘납치’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라크 저항 세력은 ‘납치’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유보한 채, ‘점령군에 대한 전술’로서 납치-참수극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서 생명을 초개같이 여긴 이라크 저항 세력의 도덕 불감증을 간파할 수 있다.

어쨌든, 김 씨는 미국과 이라크 저항 세력의 첨예한 전쟁체계의 한가운데에서 홀로 서 있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참변을 당한 김씨의 신체를, 양측 전략의 상충 속에서 독파하는 게 중요하다.

김 씨는 미군을 도와주는 군납업체인 ‘가나무역’의 근로자였으므로, 이라크 저항 세력이 보기에 미군의 동조자이다. 따라서 납치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김 씨는 이라크의 최전선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전쟁 노동자(주4)이므로, 노동집약적인 전투를 벌이는 이라크 저항 세력의 ‘밥’이 된 것이다. 이 구조를 모른 채 김 씨가 참수당한 동영상만 보고 흥분하면 안 된다. 김 씨의 신체가 미군 측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납치의 대상이 된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김 씨는 돈벌이하러 간 일반 노동자의 성격도 지닌다. 예전에 중동으로 돈벌이 간 노동자와 달리 전쟁터에서 돈을 벌려고 했고, 돈 버는 행위가 미국 측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이라크 저항 세력은 김 씨의 행위를 친미행동으로 보았을 것이다) 납치의 명단에 올랐다(김 씨가 이라크 주둔 미군 부대에 납품하고 돌아오던 길에 납치된 경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음).

어찌 되었든 돈벌이에 나선 가난한 전쟁 노동자 김선일 씨가 거대한 전쟁체계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일반 산업장에서 근무하는 일반 노동자의 죽음보다 더욱 처절한 ‘구조적인 사망’으로 보아야 한다.

  5) 부국 강병론의 희생자
미국 제국의 부국강병론(중동의 원유 패권을 장악함으로써 미국의 국익 증진)에 입각한 이라크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 씨가 피살된 것이므로, 김 씨는 ‘전쟁을 통한 미국형 부국강병론’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김 씨의 피살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강행하려는 한국 정부 역시 파병을 통한 국익을 주장하므로, 김 씨는 ‘파병을 통한 한국형 부국강병론’의 희생자이다.

  6) 제국에 의한 사망
이라크 전쟁은 제국 미국의 ‘Pax Americana(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 평정)’형 전쟁이다. 그러므로 김 씨의 죽음은. 제국 ‘미국’에 의한 간접적인 사망이다.

  7) 전쟁 자본에 의한 사망
가나무역의 원청업체로 알려진 AAFES(The Army and Air Force Exchange Service: 미국 육 ・공군 복지기관)는 ‘신종 죽음의 상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민간 전사(戰士) 기업(PMC)의 일종이다. 이 회사의 이사회는 미군 현역장성 ・정부고위직 인사로 구성돼 있으며, 직원 중 1,000명이 현역장병이다. AAFES의 이사회 의장은 미군 중장인 찰스 S. 메헌 Jr.이며 다른 현역 장성 외에도 미 육군성 존 맥클로린 부차관보, 미 공군성 켈리 F. 크레이븐 부차관보 등이 포함돼 있다. 또 AAFES 소속 직원 47,323명 가운데 1,000명 가까운 1.9%는 현역 미군 장병이다.

AAFES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미군 서비스 업체’로서 흔히 말하는 군수업체이다. 생각건대 AAFES는 미국 군 ・산 복합체(軍産複合體: military industrial complex)의 한 지류를 형성하는 PMC 계열의 관변회사로서 군수자본의 담지자이다. AAFES는 이라크를 종횡무진하는 미국계 전쟁 자본의 한 지파이고, 이 지파의 지파인 가나무역에 김 씨가 고용되었으므로, 김 씨는 전쟁 자본의 희생자이다.

최근에 등장한 PMC는 전쟁자본가이고 김 씨는 전쟁 노동자이므로, 형식상 전쟁을 에워싼 노사관계가 형성되지만 전쟁터에서 죽고 사는 문제를 놓고 계약하므로 생명을 담보로 한 노사관계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다만 일반 노동자처럼 생산현장에서 일하지 않으므로, 전쟁 노동자로서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 이 점에서 전쟁 노동자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면서 김 씨의 사망에 대한 관점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즉 전쟁 자본의 희생자인 김 씨를 자본과 노동의 관계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주5)
 
3. 피살의 구도

  1) 무장화한 근본주의 충돌

이라크 전쟁은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구도에 따라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전쟁의 맹주인 부시 정권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심취하여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권의 원군인 기독교 근본주의가 전개한 ‘야훼 전쟁’이다. 구약성서의 ‘야훼 전쟁론’에 따라 ‘사탄(Satan)=악의 축(Axis of Evil)’인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는 성전(제2의 십자군 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의 저항 세력 역시 이슬람교의 성전(Jihad) 차원에서 점령군과 대결하고 있다. 이렇듯 양쪽의 무장화한 근본주의(militarized fundamentalism)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이 이라크 전쟁이다.

김 씨 피살은 이러한 ‘무장화한 근본주의 간의 전쟁’에 기인한다. 미국 측의 무장화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부시 정권)의 선제공격(주6)에 대한 무슬림 근본주의의 대응 폭력이 테러로 나타났으며, 극단적인 테러의 한 종류인 참수가 김 씨를 상대로 이루어졌다.

  2) 한국의 제3자 개입; 생략

  3) 反이슬람, 反노무현, 反부시, 反美; 생략

4. 국가안보 對 생명안보

  1) 개인의 목숨을 살리는 인간안보

김선일 씨 참수 뒤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위해 파병을 강행하겠다.”는 국가안보 선언이었다. 이라크에서의 평화재건을 위해 파병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국가안보 개념에 입각한 파병강행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단체들은 국가안보보다 개인의 목숨을 살리는 인간안보(human security)가 더 중요하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이들 단체들은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인간안보가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이번 김선일 씨 피살사건을 통해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2) 생명안보
시민 사회운동 단체들은, 인간 안보를 중요시하여 파병을 중단하라는 호소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생명안보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주로 여성 평화 운동 단체들이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한 국민(김선일 씨)의 생명이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추가 파병 입장을 강력히 밝혔으며, 그것은 오히려 그들(김선일 씨를 참수한 저항 세력)에게 더욱 자극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개인의 생명이 처참하게 짓밟히는데 추가 파병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이득이 있는가. 국가의 존립은 개인의 인권과 생명이 존중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안보”라는 생명 안보 논리를 펼쳤다. 2004년 6월 24일 광화문에서의 촛불 시위 참가자들도 “한 생명이 국가보다 무겁다.”는 등의 피켓을 들고 파병 반대 구호를 외쳤다.

  3) 평화적 생존권
생명안보는, 이라크 민중과 한국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이 보장되는 전제 아래에서 가능하다. 이라크 점령군의 팔루자 학살로 평화적 생존권을 상실한 이라크 민중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 주는 ‘생명 안보 체계’이다. 그 당시 이라크에 정부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안보가 이라크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켜 줄 수 없었다.

5. 냉전 수구 세력의 평화 불감증; 생략

6. 테러 ・폭력의 문제

  1) 전쟁이라는 폭력
전쟁은, 폭력을 독점한 국가권력에 의해 일어난다. 전쟁을 일으키는 폭력 독점체인 국가가 공권력을 통해 조폭(조직 폭력배)을 소탕하는 것이야말로 근대국가의 소극(笑劇)이다.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국가폭력의 무대 위에서 칼춤을 추고 있는 부시. 국가폭력의 칼잡이 부시가 현재 이라크 저항 세력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다.

이러한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과 같이 충성스런 맹견을 이라크에 풀어서 이라크 저항 세력의 군기를 잡으려는 게, 부시 정권의 한국군 파병 카드이다.

이 지점에서 파병을 에워싼 한미 간의 ‘폭력 동맹’의 의지 연합이 형성된다. 제국 미국의 군대는 악의 축 국가 ・집단(반미 무장 집단)을 향해 ‘반테러 전쟁’이라는 선전포고를 했다. 이 반테러 전쟁 전선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라크의 팔루자에서 미군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다. 이 팔루자 학살은 ‘제국(미국)의 국가테러’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어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서의 성학대, 즉 성테러(Gender terror)는 제국형 국가테러의 절정을 이룬다.

위의 두 가지 국가테러는 당연히 이라크 민중의 봉기(이라크형 Intifata)를 불러일으키고 이라크의 열혈청년들로 하여금 AK 소총을 들게 한다. 이윽고 민중봉기군(이라크 민병대), 무슬림 무장 근본주의 부대의 ‘제국형 국가테러에 대한 맞대응(맞테러)’이 일어난다. 제국의 국가테러에 대한 ‘非국가 테러’의 대결양상이 벌어진다.

이러한 대결양상의 희생양이 김선일 씨이다. 그런데 김선일 씨의 참수는 이런 대결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앞으로 본격적인 대결이 남아 있다. 아마 한국군이 파병되면 이런 대결의 본론에 들어갈 것이다.

7. 파병 강행론에서 파쇼의 냄새가 난다; 생략

  2) 한국 자본주의의 대외팽창 아닌가
김선일 씨의 피살을 계기로 박차를 가하는 추가 파병이, 미국의 요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군사행동처럼 여겨지지만,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도 있다. 혹시 국력이 신장된 한국 자본주의의 군사화가 파병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제국 미국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아(亞) 제국주의(sub-imperialism)’의 흉내를 내려는 게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3) ‘평화 재건’에 부국강병론이 숨어 있다
김선일 씨 피살을 계기로 더욱 강화된 파병 반대 전선에 맞서는 정부 쪽의 궁색한 논리는 “이라크의 평화 재건을 위해 추가 파병한다.”는 것이다. ‘평화 재건’의 ‘평화’는, 미국의 ‘Pax Americana’ 노선을 추종하는 ‘Pax Koreana(한국의 국력을 대외적으로 팽창함으로써 국익을 증강시킴)’의 ‘Pax(평화)’이다. 이는 월드컵 축구대회 때 붉은 악마들이 외친 ‘Peace Korea’에 정면도전하는 ‘악마의 평화’이다.

한편 ‘재건’이라는 허울 속에 근대화 개발론이 숨겨져 있다. 이때 ‘평화’는 ‘재건’의 당의정일 뿐이다. 이 ‘평화’는 이라크에 근대화 개발론을 평화롭게 수출하자는 것이다. 추가 파병의 논리로 앞장세우는 이라크 재건론의 구체적인 내용은, (근대화 개발론에 입각한) 새마을 운동을 이라크에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개발독재의 상징이다. 군부파쇼의 반공-개발독재론을 이라크에 수출하기 위해 수천 명의 군인을 사지(死地)에 보내 저항 세력의 테러 앞에 놓이게 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한국의 수많은 청년 실업자에게 새마을 운동을 훈련시켜 이라크에 보내면 이라크의 무장 세력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4) 노 대통령의 담화; 생략

8. 맺음말: 우리는 무슬림 원리주의 집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이번에 김선일 씨를 참수한 단체는 무슬림 원리주의에 따라 무장 공격을 하고 있다. 이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을 테러리스트라고 표기하지만, 이는 통칭에 불과하다.

김선일 씨를 납치 ・참수한 행위는 테러리즘의 소행이다. 그렇다면 이라크 시민을 반체제 용의자로 마구 연행하여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 처넣은 뒤 성학대 ・성고문하면서 살상한 미국의 악행 역시 테러리즘의 소행이다. 이 테러 행위를 교사한 미군 사령관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테러리스트의 왕초가 된다. 미국의 국가테러야말로 테러의 극치이다.

그러므로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만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이 잘못을 벗어나려면, 부시 대통령 ・럼스펠드도 테러리스트로 불러야 한다.

테러의 원조들(미국 정보기관, 미군 기관 등)이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을 테러리스트로 부르며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하는 위장술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필자가 알기에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은 1977년경 이집트에서 태동하여, 외국 관광객에 대한 테러를 자행했으며 정신적인 지주는 사이이드 쿠도브(1906~1966년)이다. 1979년 上이집트의 루크솔 고대 유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무장 원리주의 집단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사건을 주도한 ‘이슬람 집단’은 세속주의 노선을 걷는 무바라크 정권을 타도하고 ‘참된 이슬람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반정부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반정부 무장 투쟁의 제1차 과녁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이집트에는 고대 문화 유적이 많아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쇄도한다. 이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얻는 관광수입이 국가재정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에 착안한 무슬림 원리주의 집단이 외국인 관광객을 테러의 표적으로 삼아 살해한 것이다. 이러한 테러로 말미암아 한때 이집트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져, 이집트 정부에 큰 타격을 주었다.

무슬림 원리주의 운동은, 영국의 이집트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족운동이 고양된 1928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 운동을 주도한 ‘무슬림 동포단’은 ‘이슬람(Islam)이야말로 이집트의 난국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구 문명에 대한 부정을 시도했으나 테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무슬림 동포단’의 온건노선에 반발하여 무장투쟁 쪽으로 나아간 조직이 ‘이슬람 집단’이다.

쿠도브의 혁명사상은 현대 과격 원리주의 운동의 핵심 사상으로서 사회의 모순에 민감한 이슬람교도를 매료시켰다. 빈 라덴도 쿠도브를 사부님으로 모셨다.

아프간을 침략한 소련군에 대항한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이 ‘무쟈히딘(이슬람 성전사聖戰士)’이었으며, 아랍 국가들의 의용병 집단 ‘아랍 아프간즈’가 ‘무쟈히딘’을 지원했다. 이 ‘아랍 아프간즈’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빈 라덴이다.

빈 라덴이 소련군에 대적할 때는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9 ・11 사태 직후의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빈 라덴의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이에 빈 라덴은 미국 ・이스라엘을 비롯한 서방 기독교 ・유대교 세력을 이슬람의 주적으로 상정하여 무장항쟁을 벌이고 있다. 이 무장항쟁이 테러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테러는 서방측에서 붙여 주는 성격부여이지, 원리주의 집단의 입장에서는 ‘민족해방을 위한 무장투쟁’이다. 우리 선조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테러의 형태를 띤 무장공격을 했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테러로 부르지 않는다. 일본제국주의는 물론 테러로 규정하여 ‘반일(反日)-민족해방 무장투쟁 조직’에 대하여 잔인한 탄압을 했다.

요즘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알 카에다’ 등도 무슬림 무장원리주의 조직이다. 그러나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이집트 안에서 무장 투쟁을 에워싼 노선 투쟁이 전개되었고, 그 결과 무장 투쟁 노선을 포기한 집단도 나타났다. 따라서 무슬림 원리주의 집단은 무장 투쟁을 하는 집단과 비무장 투쟁을 하는 집단으로 나뉜다. 김선일 씨를 참수한 집단은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에 속한다.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 소속원의 사생관(死生觀)이 한국인의 사생관과 다른 점을 주목하면 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집단에 속한 이슬람교도들의 자살폭탄은 서방인에게 테러로 비춰지지만 아랍인들에게는 성전(聖戰: Jihad) 도중에 순교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인식에 접근하지 못하면 김선일 씨 참수의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슬람교도들은 성전(Jihad)을 수행하다가 순교하면 천당에 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영광된 마음으로 자살폭탄을 던지며 산화(?)한다. 그러면 어떤 천당인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당인가?

무슬림들은 “신(神)은 우리들에게 천국을 약속한다. 순교자는 천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물, 가장 감미로운 과일, 육체 중 가장 부드러운 부분을 취할 수 있다. 천국은 화려한 누각, 유려한 시냇물, 초목이 우거진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슬림 무장 원리주의 투쟁을 한 순교자는 神의 오른편에 앉아 72명의 미녀(美女)의 서비스를 받는다. 한번만 보아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처녀(영원한 처녀) 72명과 신성한 결혼을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믿음의 과학성 여부는 차치하고 한국인과 사생관-세계관이 너무 다르다. 이 다름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타(他) 문화를 수용하려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김선일 피살 사건을 다층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37호(200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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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필자가 보기에, 현재 이라크에서 ‘2차 이라크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1차 이라크 전쟁’은 지난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킨 전쟁을 말한다. ‘2차 이라크 전쟁’은, 현재 제국 미국에 저항하는 무슬림 무장 근본주의 세력과 점령군(미국+영국+일본+한국 등의 연합군)과의 전쟁을 말한다. 김선일 씨 피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2차 이라크 전쟁’이지만, ‘1차 이라크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두 개의 전쟁을 종합하는 의미에서 ‘이라크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1차 이라크 전쟁’과 ‘2차 이라크 전쟁’을 특별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는 ‘2차 이라크 전쟁’을 명기할 것이다.

(주2) 진보 세력은 평화 불감증에서 벗어나 있으나, 파병 반대에만 머물러 있을 뿐 김선일씨 피살의 본질적인 원인규명과 대안 찾기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않다.

(주3) 김동춘 「한-미 동맹 위해 김선일을 버렸다」, {한겨레 신문(2004.6.26)}.

(주4) 가나 무역은 미국 관변의 ‘민간 전사戰士 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인 AAFES와 계약을 맺은 회사이다. 김 씨가 가나 무역의 근로자이므로 김 씨는 민간 전사 기업 계통의 전쟁 노동자로 분류된다.

(주5) AAFES를 전형적인 PMC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면 전형적인 PMC에 고용되어 이라크 현지에서 활동하다가 저항 세력에 납치 ・참수된 전쟁 노동자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4년 6월 15일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 조직에 의해 납치된 사실이 인터넷에 공개됐던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의 직원 폴 마셜 존슨(49)은 6월 18일 참수당했다. 또 6월 11일에는 이라크 건설노동자 2명과 함께 납치됐던 레바논인 후세엔 올라이얀도 목 잘린 주검으로 발견됐다. 6월 11일에는 인터넷 사이트에 미국인 닉 버그(26)가 참수당하는 장면이 공개돼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이탈리아 무장 경비업체 직원 파브리치오 쿼트로치가 다른 동료 3명과 함께 ‘녹색여단’이라고 자칭하는 이라크 저항 세력에 의해 납치 ・살해됐다. 미국 기업 핼리버튼의 직원 티머시 벨과 윌리엄 브래들리는 실종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수리공사에 참여했던 이라크 출신 캐나다인 리파트 모하메다 리파트(41), 요르단 사업가 와엘 맘두도 지난 4월 납치됐으며, 건설 ・용역 업체직원 터키인 2명은 지난 5월 10일 바그다드 서쪽 팔루자 인근에서 납치된 뒤 행방이 묘연하다.”
앞에서 열거된 PMC 중 해리버튼은 미국의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 수주 제1위의 업체이고 네오콘(Neo Con: 신보수주의자)의 수장인 체이니 부통령의 영향 아래에 있는 군수업체이다. 해리버튼은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종하는 초국적 기업이다. 해리버튼이 PMC로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군사화에 해당되며, 이 기업의 종사자 역시 봉급쟁이이지만 신자유주의 군사화를 이라크에서 펼쳤고, 이게 빌미가 되어 이라크 저항 세력의 납치대상이 되었다. 그러면 PMC 노동자의 전쟁을 위한 노동의 대가(전쟁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사용가치 산출: 이 사용가치는 생명을 파괴하는 가치이다)와 관련된 노사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나? 전쟁터에서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애쓴 노동자의 대가에 대한 사회적인 보상에 대한 관점은 어떻게 정립되는 게 바람직한가?

(주6) 선제공격에는, 이라크의 무슬림을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종교적인 선제공격이 포함된다. 기독교 신자인 김 씨도 이라크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한 듯하다. 그러나 이라크의 무슬림들을 기독교로 개종할 의지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 가나 무역에 취직한 인연이 그의 종교 활동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