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안보-군사/이라크 전쟁, 기타 전쟁

자원 약탈 ‘조폭’ 전쟁

김승국

이라크에 대한 일방적인 무력행사를 ‘전쟁’이란 일반 명사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발상이다. 동양사회에서 전쟁과 관련된 여러 용법이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이 ‘전(戰)’이란 단어이다. 이 단어는 동등한 정치집단 간의 무력 충돌을 지칭한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 미국이 지나치게 일방적인 공습을 단행했으므로 ‘戰’ 자를 붙여 ‘이라크 戰’이라고 부를 수 없다. 제1차대전과 제2차대전은 비교적 비슷한 힘을 가진 강대국들끼리의 싸움이므로 ‘戰’ 자를 붙여도 무방하다.

현재 진행 중인 이라크 사태는 제국 ‘미국’의 패권욕에 따른 전쟁이므로 그에 어울리는 다음과 같은 한자를 떠올린다: 征(군주가 군대를 파견하여 악당을 정벌하다) / 討(치죄治罪하기 위해 치다) / 侵(침략하다) / 襲(덮치다. 습격하다) / 伐(죄 있는 자를 치다. 토벌).

이 한자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확한 개념규정을 시도한다. 첫째, 이라크 전쟁은 정벌 전쟁이다. 21세기의 군주인 부시가 미국의 군대를 파견하여 ‘악의 축’ 두목인 후세인을 정벌한 것이다. 미국이 최첨단 무기를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양식은 중세기 봉건영주 시대의 ‘사무라이(기사도) 전쟁’을 재현했다. 21세기의 정보화 자본주의 아래에서 중세기 전쟁을 벌인 셈이다. 21세기의 군주국가 ・제왕(帝王) 국가를 노리는 미국은 ‘미군을 봉건영주 시대의 사무라이로 부려 먹으면서’ 역사를 중세기로 역행시켰다.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의 세계정세는 중세의 암흑기로 돌입했다.

둘째, ‘전쟁 하이에나’ 부시는 ‘악의 축’ 국가인 이라크를 치죄(治罪)한다며 ‘전쟁이라는 더욱 큰 죄’를 저질렀다. 이라크 ・북한 등의 반미국가가 얼마나 죽을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으나 죄를 지었다면 ‘미국문명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고, 미국에 불복하고, 미국을 뱁새 눈으로 쳐다보는’ 불경죄일 것이다. 이런 불경죄를 다스리기 위해 융단폭격을 가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중대한 전쟁범죄이다.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른다. 제3세계 반미국가의 대표선수가 된 덕택에 ‘악의 축 국가’로 뽑힌 이라크 ・북한 ・이란은 불경죄에 따른 벌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받을 것이다. 그 첫 번째 벌을 받은 이라크가 지금 전쟁의 지옥에 빠져 있다. 두 번째는 북한이며 세 번째로 이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더욱 큰 전쟁범죄를 저지른 미국은 벌을 받지 않고 있으며, 미국에 천벌을 내릴 세력이 전무한 지구촌의 모순은 참담함을 넘은 절망 자체이다.

셋째, 이라크 전쟁은 명백한 침략행위이다. 유엔의 승인절차를 무시한 침략이다. 이라크는 ‘악의 축’ 국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대량파괴무기 사찰을 흔쾌하게 받은 끝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이 무혐의 판정에 초조한 미국이 서둘러 이라크를 침략한 사실은 세계시민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전쟁 하이에나’ 부시의 몰이성이, 세계인의 이성 ・양식을 진압 ・침략한 것이다. 이성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라도 부시 정권(미국) 반대 운동이 요청된다.

바그다드에 대한 공습은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양심에 대한 공습이다. 미국 ・영국 등 앵글로 색슨족의 전쟁구도를 따르지 않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의 평화 노력에 대한 습격이다. Pax Americana(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평정)의 전형인 이라크 전쟁은, 아랍 민족주의의 상징인 후세인 체제에 대한 습격이며 이슬람 세계의 Jihad(평화로운 성전)에 대한 공습이다. 앞으로 Pax Americana의 도전을 받은 Jihad의 응전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넷째, 이라크 전쟁은 ‘악의 축’ 오랑캐[夷狄]에 대한 토벌작전이다. 기독교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은 언제나 선(善)이며 이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은 언제나 악마라는 ‘마니교식(式) 2분법 심판’ 논리에 따른 ‘마녀 토벌 전쟁’이다. 21세기 벽두의 마녀인 이라크 ・북한 ・이란을 (오랑캐의 죄를 물어) 무찌르는 ‘아마겟돈 성전’이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자원 약탈 ‘조폭’ 전쟁

이라크 전쟁에 대하여 한자풀이를 하다 보니 표의문자인 한자가 지닌 고상함 때문에 ‘전쟁 하이에나’ 부시의 행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원색적인 우리말로 표현하여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의 석유(원유)를 통째로 빼앗으려는 ‘조폭’ 전쟁”이라고 하면 실감이 나는 듯하다. 이라크의 유전(油田)을 노린 ‘油戰(유전: 석유전쟁)’이라는 뜻이다. 이 油戰에서 미국이 이기면 더욱 강대한 有錢국가(자본주의 국가)가 됨과 동시에 승전의 월계관을 쓰고 전쟁범죄에서 영원히 벗어나 무죄가 된다. 이라크가 지면 후세인이(유고의 밀로세비치처럼) 헤이그의 국제사법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아 처형된다. 한마디로 ‘이라크의 油田을 노린 油戰’은 有錢無罪(유전무죄)의 법칙(?)이 적용되는 ‘조폭의 세계화’를 반영한다. 그리고
제국의 자원 약탈 전쟁(油戰)은 면죄부를 받아 무죄가 되므로 油戰無罪(유전무죄)이다. 油戰無罪의 새로운 법칙(?)이 적용되는 ‘조폭 세계화’의 두목이 바로 제국 ‘미국’이다.

뒷골목의 ‘조폭’들의 세계에는 그나마 의리가 있다. 그러나 제국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 조폭’의 세계에는 의리도 피도 눈물도 없다. 이란을 덮치기 위한 선봉장으로 이라크를 앞세워 이란-이라크 8년 전쟁을 벌인 미국. 이 미국이 이제 이라크에 비수를 들이대는 인정머리 없는 제국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므로 ‘전쟁 조폭’ 국가 미국을 치죄(治罪)하지 않으면 ‘평화의 세계화’는 난망이다.

이라크 전쟁을 규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회과학적인 분석틀을 동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자원 약탈형 ‘조폭’ 전쟁은 일찍이 없었던 행태이므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15~16세기 포르투갈 ・스페인 등 ‘초기 제국주의의 원시적 자본축적(primitive capital accumulation)을 위한 무지한 약탈수법’에서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과 같은 ‘자원 약탈형 조폭 전쟁’은 마르크스의 생존시에도, 레닌 시대에도, 모택동 시절에도 없었고(이들의 생존 시에 자원 약탈형 제국주의 전쟁은 있었으나 무지막지한 깡패 같은 ‘악의 축’ 전쟁은 없었다), 현대의 석학 그람시(Gramsci)나 네그리(Negri)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야만적인 전쟁이므로 사회과학적인 개념정립에 앞서 ‘자원 약탈형 조폭
전쟁’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앞으로 북한 등을 상대로 벌어질지 모를 ‘제국’ 미국의 ‘조폭’ 전쟁에서의 폭력을 지양할 세계 체제(시스템)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2003년 3월 20일 바그다드를 공습한 순간부터 세계 체제는 제국(미국)과 반(反)제국으로 갈라졌다(물론 제국 대 반제국 대항 전선의 중립지대에 많은 나라들이 속해 있다). 앞으로 세계정세는 ‘제국대 반제국의 구도’로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국 대 반제국의 대립 전선 아래에서 한반도의 특수한 분단상황을 대입하는 정세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부시 정권은 2003년 3월 20일자로 전쟁범죄 집단이 되었으므로 인류의 양심이 모인 전범 재판장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부시 정권의 ‘조폭 전쟁’에 동조하는 아류 국가들(일본, 한국) 역시 ‘새끼 조폭’으로 낙인찍어 전쟁범죄 집단의 예비자 명단에 집어넣어야 할 게 아닌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역시 노무현 정권을 전쟁범죄 집단의 예비자 명단에 넣느냐 마느냐는 기준에서 다루어져야 할 엄중한 사안이 아닌가?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