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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파리 시내의 진보단체 방문

김승국

 

* 아래의 글과 관련된 동영상이 평화 만들기의 [평화누리 TV]에 실려 있으니 감상하시기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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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등 5개 단체가 2008년 12월 6~9일 프랑스의 파리에서 공동주최한(평화 만들기는 참관 단체로 참여했다) [2008 파리 국제정책 포럼(이하 ‘파리 포럼’)]은, 3대 주제(‘신자유주의 반대’ ‘동북아 평화’ ‘한반도 통일’)를 중심으로 열띤 논의를 거듭했다. 필자를 비롯한 50여명의 국내 활동가․노동자․시민들이 참석한 ‘파리 포럼’에, 유럽의 진보적인 단체․인사들,유럽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참여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그리고 파리 포럼 기간중 파리 시내에 산재해있는 진보적인 운동단체․언론기관․정당을 현장방문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러한 현장방문 프로그램의 일부에 참여한 필자는 12월 8일 오전에 [le mouvement de la paix(이하 ‘la Paix’)], 12월 9일 오전에 [Attac(시민지원을 위한 국제금융거래 과세연합; Association pour une Taxation des Transactions Financières pour l’aide aux Citoyens)], 12월 9일 오후에 [L’Humanité(프랑스 공산당 계열의 언론사)]를 방문했다.

파리 포럼 기간중 방문한 la Paix(“라 뻬”), Attac(“아탁”), L’Humanité(“뤼마니떼”)를 소개하는 글과 현장방문 취재기(取材記)를 아래에 싣는다. la Paix, Attac, L’Humanité를 방문한 결과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의 ‘평화 누리 TV’에 실은 영상물과 이 글이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들이 ‘평화 누리 TV’에 실린 la Paix, Attac, L’Humanité 현장방문 동영상을 보면서 이 글을 읽으면 현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Ⅰ. la Paix, Attac, L’Humanité 소개

 

  1. la Paix(라 뻬)

 

필자에게 la Paix는 낯설지 않다. 매년 8월초 일본의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열리는 반핵평화 세계대회에 단골손님으로 참석하는 la Paix 인사들의 낯이 익어서이다. 반핵운동에 적극적인 la Paix의 활동가들이 반핵평화 대회에서 맹활략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장하다”고 칭찬만 했을 뿐, 언어 장벽 등의 이유로 그들과 깊이 사귀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파리 포럼에 참석하면서 la Paix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뜻깊은 기회를 가졌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평화운동 단체의 명칭에 나오는 ‘la paix’는 우리말로 ‘평화’이다. ‘평화(la paix)’를 화두로 삼아 운동(mouvement)를 전개한다는 뜻으로 ‘le mouvement de la Paix’라는 단체명을 부여한 듯하다.

la Paix의 홈페이지(http://www.mvtpaix.org)에 들어가 살펴보면 이 단체의 성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 1948년에 창설된 la Paix의 주요한 관심사는 다음과 같다; ① 전쟁 반대, 핵무장한 군대 반대 ② 정의, 민주주의, 민중 연대 ③ 군축(특히 핵 군축), 무기생산․거래 감시, 군사예산 감축 ④ 분쟁의 정치적․평화적 해결 ⑤ 평화대(平和隊; peace forces) 활동 ⑥ 평화체제 구축 ⑦ 평화의 문화 증진 ⑧ 평화 교육 ⑨ 인간 안보  ⑩ 평화의 세계화 ⑪ 비폭력 운동

 

2. Attac(아탁)

 

Attac은 국제투기자본에 과세(토빈세)를 매겨 세계경제의 질서를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이다.

Attac은 1997~1998년의 연쇄적 금융위기 이후, 이에 대한 대응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이유로 투기자본에 대한 통제와 과세가 곧바로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던 것이다. 1998년 12월, 영향력 있는 월간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지는 사설에서 Attac의 창립을 제안하였다.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고 그것도 아주 많았다. 이처럼 편집위원회를 결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은 후에 노동조합들과 단체 혹은 NGO, 그리고 몇몇 사람이 모여 1998년 6월 Attac을 창립하였다.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Attac의 창립은 당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던 하나의 생각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것은 ‘금융시장의 독재를 더 이상 앉아서 두고 볼 수 없다는 것, 정치적 고려와 선택의 중심에 사회적인 것의 문제를 놓아야 한다는 것, 시민의 참여를 통해 그리고 새로 정치적 형식 하에서 정치를 재전유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이것이 Attac의 행동 강령이 단지 투기자본에 대한 과세에 그치지 않았던 이유이자, Attac의 운동이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갖게 된 이유이다.<Pierre Rousset「토빈세를 위한 투쟁을 또 다른 투쟁의 장과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사회진보연대』제10호(2000년 10월) 38~39쪽>

아탁은 1998년 6월 3일 프랑스에서 탄생하여 전세계적으로 40여 개의 지부를 거느린 세계적인 반세계화 운동 단체이다. 프랑스에서만 전국 250개 지부에 3만 5,000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아탁은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를 기점으로, 스웨덴 예테보리의 EU 정상회담, 이탈리아 제노바의 G7 정상회담 등 대규모 국제회의장에서 벌어진 반세계화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 단체가 주장하는 목표는 ‘시민 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 추진협회’라는 단체의 이름에 나타나 있는 대로, ‘무역상품과 마찬가지로 국경 없이 넘나드는 금융거래에 대해서도 과세를 하여서 그 재원으로 시민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 발상은 미국의 경제학자 토빈(Tobin) 박사의 생각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서 흔히 ‘토빈세(Tax Tobin)’라고 부르고 있다. 금융거래에 대해 과세를 하자는 주장의 타당성은 금융거래의 실상과 조세의 원칙 등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수적이겠지만, 그보다 먼저 (혹은 그 옆에서) 이것이 끼치는 결과에서부터 이 경제활동의 속성을 짐작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탁의 회장이자 파리 8대학 유럽연구소의 교수인 베르나르 까생(Bernard Cassen)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는 “금융세계화는 경제 불안정과 사회 불평등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국민의 선택, 민주주의 제도, 일반이익의 수호자로서의 주권국가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카생은 또 IMF의 존재의의에 대해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비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자본에 대해 “일종의 ‘저항 인터내셔널’ 같은 것을 창설하도록 노력”하고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이 함부로 투기행위를 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애쓰겠다”는 카생의 생각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아탁 운동이다.<김진식「불어권의 반세계화 담론 연구」『불어불문학 연구』제58집(2004년 여름) 445~447쪽>

Attac은 토빈세 도입을 위한 투쟁 속에서, 민주적이고(시장의 독재에 대한 정치적 대결의 우선성에 대한 긍정의 의미에서), 교육적․전투적이며(자유주의적 금융적 메커니즘들을 밝혀내고 비판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이고(자본에 대한 과세라는 의미에서), 연대적이며(불평등, 특히 남과 북 사이의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한 소득의 활용이라는 의미에서), 反 투기적(자본의 투기적 운동에 대한 제한이라는 의미에서) 전망을 각인시켜 왔다. Attac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는 대중의 투쟁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Attac은 시애틀에 대표단을 파견했고, 프랑스에서 WTO의 야망에 맞서 싸우는 수 만 명의 대중들을 조직했다. Attac은 프랑스 남부에서 농민 연맹의 전투적 회원들에 대한 소송을 계기로 일어난 밀로(Millau)의 대규모 집회에, 매우 대규모로 참여했다. Attac은 정보 확산, 시민 행동, 대중 교육, 사회적 운동, 통일적 동원 등을 강조한다. 프랑스에서, Attac의 성격들 중 하나는 그것의 통일적 특성이다. 그것은 특히 노동조합들, 실업노동자 운동들, 농민 연맹, 페미니스트 조직들 혹은 국제 연대, 개발 원조, 인권 보호 등을 위한 협회들 등을 결집시킨다. Attac 내에서 활동적인 노조 연맹들은 전국적인 연맹과 조직들의 성원들이다. 그것들은 기업들 내에서 경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Attac의 틀 내에서 협력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Attac은 정치적 분파들의 카르텔이 아니다. Attac 내에는 급진적인 反 자본주의적 활동가까지 포함하여 급진적 反 신자유주의적 활동가들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수의 관점들이 조직적인 분화로 나아가지 않으면서 공존하고 있다. Attac은 (Attac의 창립조직인 노동조합 등과 함께) 사회적 요구와 (개인적인 가입의 쇄도와 함께) 시민적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하나의 사회-시민적인 운동이다. Attac은 형성 중인 조직이다. 그것의 영향력은 현재 제도적인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다. 다수의 국회의원들과 시의원들이 Attac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Attac의 기능과 방향결정은 계속해서 창립조직과 지역 위원회에서 조직된 구성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Attac의 중심은 여전히 전투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Pierre Rousset「토빈세를 위한 투쟁을 또 다른 투쟁의 장과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사회진보연대』제10호(2000년 10월) 40~42쪽>

아탁 창립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아탁은 “행동을 지향하는 교육운동”이다. 그래서 각 지역 지부마다 엄청나게 공부를 하고 있다. 이 학습은 강연회나 강독모임, 그리고 수백 명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여름학교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소책자나 팸플릿을 제작하기도 하고, 정부 경제정책에 관한 내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한다. 이브 카를렌의 표현에 따르면, “아탁-이것은 경제적인 문명퇴치를 위한 거대한 운동”인 셈이다. 아탁 프랑스는 백과사전적 계몽에 대한 열정과 간헐적으로 벌이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의 혼합체이다. 아탁은 고도로 중앙집중적이면서도 동시에 기본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지역 지부에 거의 완벽한 자유를 허용하는 정치조직이다.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현 세계를 혁명하자는 것이지만-이는 그들 편에 서 있는 많은 정치가들을 사실 짜증나게 하는 면이다-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여 그 원칙만을 주장할 뿐, 그들 주장에 미래의 유럽 제도에 관한 어떤 구체적인 구상도 담지는 않는다. “만일 그러한 부분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다면 아탁은 지금이라도 사분오열될 것”이라고 카생은 말한다. 아탁 발기인단은 다양한 인사들로 꾸려졌다. 이들은 아탁을 일종의 ‘결사체’로 만들고자 했다. 발기인단은 열 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는 『경제적 공포』를 쓴 비비안 포레스테, 신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가수 마누 차오(Manu Chao), 여성 운동가 지젤 알리미(Gisèle Halimi), 그리고 이냐시모 라모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가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 47개 NGO 중 주요 단체 및 정치단체 출신 인사들도 포진해 있었다. 이들 단체는 아탁이 설정한 목표에 지지를 보내면서 아탁과 함께 효과적인 공동의 행동기반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즉, 아탁과 이들 단체는 특히 국제 경제질서와 금융질서에 대항하는 경우에, 그리고 이 질서들이 야기한 결과에 대항하는 경우에 동맹을 맺는다. 물론 여타 영역에서도 때때로 서로 협력하면서 공동 전선을 펴나간다. 그러나 그 밖의 사항과 관련해서는 모든 단체들이 자유로운 결정을 내린다. 주요 단체로는 실업자 조직인 AC, ‘지구의 친구들’, 무정부주의 신문『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조제 보베가 창설한 농민동맹, 피에르 부르디외의 네트워크인 ‘행동할 이유’, 좌파 성향의 교직원․우체국․일반의사 노조, 기독교 좌파단체들, 세속주의적 가정연합 등이 있다. 이 발기인단은 행정위원회를 구성하는 30명 가운데 18명을 선출하며, 여기에서 아탁의 정치노선이 결정된다. 또한 이 18명에 의해서 의장이 임명된다. 이는 아탁이 다른 단체나 정당에 의해 은밀히 조롱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아탁은 자신의 성격을 잘 규정한 다음 글처럼 ‘개개 조직유형의 장점을 서로 결합하고 그들의 단점을 피하려는’ 다음과 같은 시도로 인해 스스로 모순을 잘 나타내고 있다; “구속적이지 않은 네트워크 구조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가지면서도 안정적인 사회운동의 권력정치적인 무게 중심 추구, 종속성과 관료화 경향을 갖지 않으면서 여러 NGO와 단체들이 보이는 권능․안정성․구속력의 추구.” 지속성과 혼돈, 다양성과 임의성 사이에서 나타나는 긴장관계를 아탁이 견뎌낼 것인가 하는 것은, 이 새로운 저항운동에 대한 희망이 많은 것을 약속하면서 오븐에 던져진 과자 반죽처럼 생각보다 빠르게 다시 오므라들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부풀어 오를 것인가에 달려 있다.<하랄트 슈만 외 지음, 김무열 옮김『아탁』(서울, 영림카디널, 2004) 145,160~163, 216쪽>


3. L’Humanité(뤼마니떼)

 

L’Humanité는 현재 프랑스 공산당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매체이다(이러한 점에서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赤旗(아카하타)』가 당 직속으로 편제되어 있는 것과 다르다). 그렇지만 당의 이념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있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당 기관지 L’Humanité에 관하여 쓴 글을 보고 현재의 L’Humanité를 파악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좀 오래된 글이지만 박명진 교수(서울대)가 1982년에 당 기관지 L’Humanité에 관하여 쓴 글「L’Humanité와 10․26 사건」『社會科學과 政策硏究』(서울대 사회과학 연구소) 제4권 제2호(1982.6)을 소개한다;

“L’Humanité는 1979년의 발행부수가 150,161부로서, 10개의 중앙지 중 6위의 순위를 보이고 있다. PCF(프랑스 공산당)는 1945년 해방 직후, 3개의 중앙지와 19개의 지방지를 갖고 있었으나, 점차 그 수가 줄어들어, 오늘날에는, 중앙지 중 L’Humanité만이 남았고, 지방지는 세 개만이 남았다. 반면에, 주간, 월간으로 발행되는 전문지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문예전문지, 농업전문지, 여성지, 청소년지, 아동지, 스포츠 전문지 등의 주간, 월간지 등이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다. 스포츠 전문지는 상당히 세분화되어, 싸이클 전문지에서 자동차, 권투 전문지까지 발행되고 있으며, 아동지도 나이별로 세분화되어 여러 종류가 나오고 있다. 이들 전문지들 중, 농업 주간지인 La Terre는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농업 전문지 중의 하나이며, 아동지들은 카톨릭계의 아동 대상 정기 간행물들보다도 앞서서 그 중 Pif는 50만부 정도가 팔리고 있어 아동물 중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고 있다.

이 밖에도 PCF는, 여러개의 출판사들을 소유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의 전문서적 출판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일간지를 포함한 정기간행물 분야에 국한시켜 볼 때 PCF의 출판정책은 이념교육과 공산당의 당세확장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L’Humanité와 세 개의 지방 기관지, 그 외 세포신문(journaux de cellules)은 당원들의 이념교육을 그 주요 기능으로 하고 있으며, L’Humanité-Dimanche 등의 종합 주간지와, 위에서 소개한 전문지들은, 노동자 계급뿐 아니라, 다른 사회계층에 파고들어, 공산당의 세력을 확장시키거나, 공산당 유권자층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노력에 동원되고 있다.
이들 정기 간행물은, 단일기구에서 발행되는 것이 아니라, 종류별 혹은 분야별로 출판 그룹이 형성되어, 서로 독립된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다. 운영방식도 그룹별 독립채산제로 되어 있으며, 당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은 거의 받지 않고 있다.
L’Humanité는 L’Humanité와, 종합주간지인 L’Humanité-Dimanche를 발행하는 L’Humanité 그룹에 속해 있다.

L’Humanité 그룹에도 당으로부터의 재정적 지원은 전혀 없다. 오히려 PCF 당원인 L’Humanité 임직원의 봉급을 신문사 측에서 부담토록 되어 있다. L’Humanité의 재원은 신문판매 수입과,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상당한 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모든 일간지들이 신문 판매 수입만으로는 1부당 생산원가의 ⅓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고, 그 적자는 광고수입으로 메꾸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L’Humanité의 경우는, 광고수입이 전체 적자의 20% 정도를 메꾸어 줄 뿐이다. 광고수입은 L’Humanité 전체 재원의 11.8%에 불과하여 Le Figaro의 82%, Le Monde의 69.6%에 비교할 때, 엄청나게 빈약한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L’Humanité에 광고 게재를 회피하는 이유로, 발행부수가 적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발행부수가 5만에 불과한 Le quotidien de Paris의 광고수입이 L’Humanité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미루어, 신문의 정치적 경향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L’Humanité의 적자는 자매지인 종합 주간지 L’Humanité-Dimanche에서 나오는 이윤으로 메꾸어 진다. 이 주간지는 45만~50만의 발행부수를 갖고 있으며, PCF 당원을 중심으로 한 배급망을 통해 ⅓을 소화시키고 있어서, 배급에 소용되는 어마어마한 경비(1부 판매 가격의 45~50%에 달한다)를 절약할 수 있어 흑자운영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Humanité는 그같은 특별한 배급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 다른 일반 중앙지나 마찬가지로 배급담당 회사인 NMPP(Nouvelles Messageries de la Presse Parisienne)을 통해 배급되고 시판된다. L’Humanité는 다른 중앙지와 같은 배급경로를 거쳐 시판되며, 시사문제로부터 일기예보,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된 종합지로서 당원외에 일반 독자층을 상당수 확보하고 있지만, 일차적인 대상 독자는 당 간부층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당간부라는 것은 중앙당 간부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여러 갈래의 지역기구 간부들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수에 달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앙과 지역의 당기관지들과 세포신문들은 당원들의 이념교육을 담당하는 기능을 맡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L’Humanité는 당간부 훈련원과 함께 간부들의 이념적 재교육을 그 기본사명으로 하고 있다...PCF로서는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정치적 투쟁에 있어서 노동자 계급의 지도적 역할을 재확인시키고, 당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지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간부당원들의 이념적 재교육이 끊임없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재교육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당간부 훈련원과 L’Humanité이다.

따라서, L’Humanité는, 노동자 계급이외의 다른 사회계층에 파고들어 공산당의 세력을 확장시키거나, 선거에서의 공산당 지지 유권자층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별로 기울이고 있지 않다. 이같은 활동은, L’Humanité 그룹내의 L’Humanité-Dimanche와 기타 다른 정기 간행물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L’Humanité는 독자층을 확보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독자층을 의식해서 시대적 취향의 변화에 따라 편집방식이나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도 별반 해본적이 없어서, 상당히 보수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L’Humanité가 발행부수를 증가시키고자 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1926년 L’Humanité가 재정난에 처했을 때, 공산당원을 중심으로 해서, 비당원 인사를 포함한 L’Humanité 보호 위원회(CDH; Comité de Défense de L’Humanité)가 조직되어 기금을 모아 위기를 모면한 일이 있다. 그 조직은 오늘날도 남아 있어서, L’Humanité-Dimanche의 강력한 배급망의 구실을 해 주고 있다. L’Humanité도 CDH를 통하거나 유사조직을 만들어 독자층 확대수단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나, 구태여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L’Humanité가 담당하고 있는 주요사명의 성격으로 인해 다른 일간지들과 경쟁적인 위치에 서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L’Humanité는 그같은 특수사명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기자나, 기고가들을 모두 공산당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L’Humanité-Dimanche나 다른 정기간행 전문지들이 편집진용에 비당원도 상당수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L’Humanité의 고용인 수는 대략 130명 정도인데, 이중 기자의 수는 60명에 달하며, 이들의 봉급은 프랑스 일반 숙련공의 임금수준에 불과하여, 다른 일간지에 비해 봉급수준이 매우 낮은 편이다. 60여명의 기자수는, L’Humanité 규모의 대 일간지로서는 매우 부족하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는 5,000여명의 노동자 통신원들의 자원봉사로 많은 지면을 메꾸어 나가고 있다.

L’Humanité는 이처럼, 노동계급 정당으로서의 정통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것을 기본 사명으로 해서 당의 간부를 주요 독자층으로 삼아 그들의 이념적 재교육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세력간의 끊임 없는 이념적 마찰을 겪고 있는 PCF내의 가장 보수적인 세력의 관점, 바꾸어 말하면, 가장 정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세력의 관점을 대변하고 있는 신문이라 볼 수 있다.”

 

  1) 취재기

 

필자가 2008년 12월 9일 오후에 단 몇시간 동안 L’Humanité 그룹의 본부 건물에 들어가 취재한 것으로 취재기를 자신 있게 쓰는데 무리가 있으나, ‘가장 정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세력의 관점을 대변한 과거의 L’Humanité’에서 상당히 벗어난 느낌을 받았다. ‘독자경영에 따른 독자적인 편집으로 말미암아 (노동계급만이 아닌 프랑스 민중 전체를 상대로 하는) 대중적인 편집노선을 취하게 되었다’고 L’Humanité의 책임자가 설명해주었다. L’Humanité 책임자의 말에 따르면 L’Humanité의 현재 인쇄부수는 75,000이고 이중 45,000부가 판매된다. 프랑스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일간지가 된 L’Humanité는 당연히 적자이며, 독지가들이 지원하고 있지만 적자를 모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요판 종합 주간지인 L’Humanité-Dimanche는 8만부를 발행하므로 흑자라고 한다. 맹렬 지지자들․당 활동가․정기 구독자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흑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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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355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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