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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통일의 땅 길 열다 (11)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다녀와서

 
김승국
  


2003년 10월 8일 ④-보현사,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

 

우리 일행은 점심 식사를 한 묘향산 호텔을 나와 보현사로 갔다. 보현사는 조계종 사찰로서 1042년에 창설된 유서 깊은 명찰(名刹)이다. 이 보현사는 산자수려(山紫秀麗)한 묘향산 속에 있으므로 그야말로 ‘명찰(名刹)에 절승(絶勝)’이다.

헌대 ‘명찰(名刹)에 절승(絶勝)’을 시샘한 외세의 총칼 자국이 보현사에 널려 있으며, 외세의 총칼을 물리치기 위해 항쟁한 흔적이 도처에 있다.

보현사의 한 편에 있는 서산대사의 사당은 우리 민족의 반외세-자주의 상징이다. 이 사당의 모든 유물에는, 위정자가 망친 나라를 스님들이 다시 세운 구국정신이 깃들어 있다. 임진왜란 때 항일 승병 5,000명이 왜적과 싸운 반외세 투쟁의 성지(聖地)가 보현사이다.

이 성지는 한국전쟁의 전란 속에서 또 한 차례의 수난을 당한다. 평양을 초토화한 미군 폭격기는 기수를 묘향산으로 돌려 (북한군의 거점이었던) 보현사 주변을 공격했다. 이 바람에 보현사의 다보탑이 크게 훼손되었고, 절간 14동과 1만여 점의 유물이 잿더미로 변했다. 보현사를 점령한 미군이 쏜 총탄 자국이 아직도 절 입구의 비석에 남아 ‘미제(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역사의 상흔’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총탄 자국의 모습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민중의 가슴에 박힌 총탄과 동일한 비명을 울리고 있는 듯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우리 일행 중의 불교신도들이 보현사의 스님들과 함께 다보탑 주위를 강강수월래를 하듯 돌고 있었다. 그들의 ‘통일염원 탑돌이’가 현실정치에 반영되는 날이 언제나 올까? 임진왜란 때 스님들의 구국․ 애족정신의 힘을 빌리면, ‘반통일 외세 귀신들’을 내쫓고 소아(小我)에 머무는 정치인들을 솎아내어 통일지향적인 정치판을 만들 수 있을까?

 

희망에 따라 무료로 과외공부

 

보현사 관광을 마친 일행은 오후 6시부터 예정된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 관람을 위해 귀환을 서둘렀다. 우리가 탄 버스는 오던 길을 되돌아 평양으로 질주했다. 이윽고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에 도착했다.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은, 그동안 방북한 남쪽 인사들의 단골 방문지이므로 상세한 관람 내용은 생략한다. 필자는 어린이들이 무용, 거문고 연주, 서예, 자수, 바둑, 컴퓨터, 배구, 농구 등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방과 이후 몇 시간씩 학습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곳에서 누구나 희망하면 무료로 과외공부를 할 수 있으며, 7백 명의 선생이 5천명의 학생들에게 예체능 특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천국” 자랑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은 김일성 주석이 어린이를 임금처럼 모시겠다는 뜻에서 ‘궁전’이란 명칭을 붙였다고 북측 안내원이 설명했다. 안내원은 이곳이 ‘어린이들의 천국’이라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누가 보아도 이곳에서만큼은 ‘어린이들의 천국’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만했다. ‘필요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 받는다’는 사회주의의 유토피아적인 원칙에 ‘교육’을 입력하면 ‘필요에 따라 교육받고 능력에 따라 (공교육의 열매를 무상으로) 분배 받는다’는 점을 이곳에서 확인하라고 안내원이 은근히 권유하는 듯했다. 사회주의적 교육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여기 저기 있었으며, 그런 측면에서 안내원의 ‘어린이 천국’이란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특히 북녘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고려할 때, 안내원이 ‘천국’이라고 말한 게 무리한 발언은 아닌 듯싶었다.(주1)

 

남쪽과 비교

 

필자는 여기에서 남북한 사이의 교육체제의 질을 비교평가하고 싶지 않으며 그럴 만한 능력도 없다. 다만 입시지옥에 부대끼다 자살한 남쪽 학생들의 혼백이 구천을 맴돌다가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에서 안식처를 찾을 것 같아서 ‘어린이 천국’이란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할 따름이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북녘의 모든 체제를 ‘천국’으로 부르는 것에도 일방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니 오해하지 말길...). 수백만 명이 기아 속에서 허덕이면서도 어린이 교육에 투자하는 교육열이 돋보이는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에 ‘천국’이란 미사여구를 붙일만하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필자 역시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인 입시생을 두고 있는 학부모이다. 이제부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의 관람 소감을 피력한다. 필자의 자그마한 소득으로 아들 녀석의 과외비를 쓰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필자의 순수한 소득으로만 계산하면 우리 집의 교육계수는 100%에 육박한다. 버는 돈을 사교육비에 100% 충당하면 굶을 수밖에 없다. 우리 집 식구들은, ‘엥겔계수 0%에 교육계수 100%인 희한한 살림살이’를 강요당하는 희한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걸 공개하고 싶지 않지만 ‘엥겔계수 0%라는 절대빈곤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아내가 돈벌이 나서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필자의 가정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필자의 소득이 낮아서 극단적이지만, ‘지나친 교육계수에 압박 받는 엥겔계수’를 높이기 위해 맞벌이를 강요당하는 가정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며, 자녀들의 사교육비(과외비)를 마련하기 위해 몸까지 파는 엄마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 시대 교육모순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이미 ‘사교육’ 중심의 ‘교육’은 사람 살리는 ‘살림의 교육’이 아니라 ‘죽임의 교육’이다. 이 ‘죽임의 교육’ 체제의 피해자 중의 하나인 필자가 보기에, 사교육비를 전혀 들이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은 이채롭게 다가왔다.

아마 필자보다 교육 모순의 더 직접적인 희생양인 필자의 아들이 보기에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은 ‘천국’이 아닐까 싶다. 물론 경제적 사정 때문에 북녘의 일반적인 학교의 교육 인프라가 뒤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곳도 남쪽처럼 입시지옥이니 학교붕괴, 학급붕괴이니 하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교육의 공공성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의 '천국성(天國性)'과 남쪽 입시 '지옥'의 차이는 ‘교육의 공공성(公共性)’에서 판가름 난다. 남쪽은 교육의 공공성을 위해 밑빠진 독에 물붓 듯 교육예산을 투입해도 결국 학부모의 과외비 출혈로 끝맺는다. 교육의 최종 보루는 개인(가장)이거나 (개인이 모인) 가정이며, 국가는 엉성한 책임만 질뿐이다. 자본주의가 본래 개인주의 중심이니, 공공성에 입각하여 ‘사교육비 없는, 입시 지옥 없는’ 교육의 천국을 만들어 달라고 국가에 강요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필자와 같이 경제적으로 뒤진 학부모는 몸으로 때우며 사생결단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가 철두철미하게 교육의 공공성을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집체주의를 지향하는 북쪽의 경우 교육만큼은 철두철미하게 국가가 책임지는 것 같다. 북녘에 빈부의 차이가 공식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더 배고픈 자의 자녀들도 필요에 따라 공교육을 받고 능력에 따라 공교육을 분배받을 수 있는 듯하다.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이 바로 그런 곳으로 여겨진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소년학생 궁전에서 학습하는 모든 학생들의 실습 자재․재료가 국가에서 지급되므로, 머리가 좋고 열의만 있으면 우수학생으로 선발되어 출세할 수 있다. 이 소년학생 궁전 졸업생중 우수한 학생은 만수대 창작사에 들어가 직업도 얻고 자신의 기량을 더욱 깊이 연마할 수 있다고 한다.

 

'짐나지움'과 비슷

 

필자는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을 둘러보고 독일의 '짐나지움(Gymnasium)'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소상하게는 모르지만 독일의 사회가 민주적인 분위기일 때 '짐나지움'중심의 교육체제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공공성을 띠었지만, 반민주적일 때는 공공성을 어긋나는 사례가 있었다. 특히 히틀러가 ‘짐나지움’을 통해 전체주의, 파시즘을 계몽했다.

그러므로 공교육이 국가권력과 행복하게 만나느냐 불행하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올 수 있다. 북쪽 체제가 히틀러의 전체주의와 같다고 평가하면, 북녘의 짐나지움인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은 전체주의의 계몽장소로서 지옥성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지 않고 독일처럼 계몽의 터전으로 작용하여, 그야말로 ‘어린이들의 교육 궁전을 지향한다면’ 공공성이 살아날 것이다.

독일의 히틀러처럼 ‘짐나지움’을 전체주의적 교육의 터전으로 왜곡하느냐, 독일의 민주정권처럼 ‘짐나지움’을 민주시민의 양성하는 전당(궁전)으로 승화발전 시키느냐가 관건이다.

 

‘교육의 공공성’이란

 

이 ‘공공성’의 두문자인 ‘공공’을 한자로 표기하면 ‘公共’이다. ‘公共’의 일반적인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일반 사회의 여러 사람과 정신적이나 물질적으로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힘을 함께 함. 公衆. 公同.(이 희승 편저 『국어 대사전』1994년 펴냄). 이 뜻풀이를 ‘공교육’에 붙이면, 공교육이 공동의 이익, 公衆의 이익에 보탬이 되느냐는 것이다. 남북한이 모두 '공교육’에 열중하지만 그 결과가 정말로 公衆의 이익에 합치하느냐가 문제이다. 어느 쪽이 더욱 ‘公衆의 이익에 합치하느냐’는 논의가 소모적인 남북간 교육체제 논쟁으로 흘러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公共’의 뜻풀이를 한자 사전(옥편)에 찾아보았다.

 

‘公’과 ‘私’

 

『漢韓大字典』(민중서림, 1997년 펴냄)에 나오는 ‘公’은 ‘사(私)’의 대립어로 쓰인다. 이를 ‘교육’에 적용하면 ‘공교육(公敎育)’과 ‘사교육(私敎育)’의 2항 대립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 ‘私敎育’이 제도적으로 없는 북녘의 경우 ‘公敎育-私敎育 사이의 2항 대립관계’의 모순은 논외이다. 그러나 남쪽의 경우 ‘公敎育-私敎育 사이의 2항 대립관계’의 모순은 심각한 사회현상이다. 公敎育이 私敎育의 기(氣)에 눌려 있는 남쪽에서는, 私敎育의 公敎育에로의 지양이 국가적인 과제이다.

 

‘公’과 ‘共’

 

그러면 북쪽교육의 ‘公共性’은 어떠한가? ‘公共性’의 ‘公’에 관하여 앞에서 거론했으며, 현재 북쪽의 교육이 만경대 소년학생 궁전에서 나타나듯이 ‘公敎育’을 실시하므로 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다만 북녘 교육의 ‘公共性’에서 ‘公’이 ‘共’을 지향하느냐가 과제이다. 이 ‘共’이 ‘공산주의’의 두문자라는 점에 유의하면, 북녘 교육의 ‘公共性’이 ‘공산주의(또는 사회주의)’ 원론, ‘공산주의(또는 사회주의) 교육’ 원론에 합당하는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는 북녘 체제의 궁극적인 목표인 ‘共’을 지향하고 있느냐의 본질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公’에서 ‘共’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도하차한 ‘사회주의의 퇴조’가 1990년대에 나타난 적이 있으며, ‘公’과 ‘共’의 교량역할을 하던 국가권력의 권위주의(억압) 때문에 ‘共(공산주의)’을 흉내 내지도 못한 사례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북쪽은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지금까지 교육의 公的 성격을 통해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共’의 세계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公’과 ‘共’의 교량역할을 하는 국가권력의 왜곡으로 사회주의의 성과가 공(空)이 되느냐가 문제이다. 히틀러가 맨 처음에 이상 야릇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다가 전체주의로 흘렀듯이, 공공성을 주장하다가 사회주의를 공허하게 만든 전례를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다. 쉽게 말하면 헛구호 등을 통해 공수표만 날리는 사회주의의 공허함이 커질수록, 교육의 공공성마저 빈 깡통(空)이 될 수 있음을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다. 혹시 국가권력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요구가 지나쳐 ‘共’을 지향하기는커녕 그동안 축적한 공공성(公共性)마저 공회전(空回轉)시킬지 모른다. 이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앞에서 교육체제를 통한 ‘私’ ‘公’ ‘共’의 3者를 거론했는데, 이 3자 관계의 원융(圓融)이 평화통일의 열쇠이다. 그러나 체제는 달라도 남북민(南北民) 모두 ‘한솥밥 먹는 우리’라는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지 않은가? 교육체제는 서로 달라도 남쪽의 민(民)이 북쪽의 민(民)을 ‘한솥밥 먹는 궁전’으로 모시고 북쪽의 민(民) 역시 똑같은 형식으로 모시는 연습을 줄기차게 하면, 교육체제 등의 차이를 넘는 상생(相生)의 역사, 통일의 역사가 이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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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이번에 북쪽 학생들을 관찰하는 가운데 북녘의 부모들도 자녀교육에 남달리 정성을 쏟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부족한 살림을 쪼개가며 교육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는 ‘교육 제1주의’는 남녘이나 북녘이나 대동소이(大同小異) 한 듯했다. 이런 점에서 남북한은 이미 통일되어 있었다.
북쪽은 공교육이 강한데 비해, 남쪽은 공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사교육이 감당하므로 학부모들의 허리가 휘어진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남쪽이나 북쪽이나 부모들의 교육열은 비슷한 것 같다. 남쪽의 치맛바람이 북쪽보다 훨씬 강하게 불지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순정’은 비슷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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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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