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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통일의 땅 길 열다 (8)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다녀와서

 
김승국
 


2003년 10월 8일 ①-묘향산 가는 길

 

오늘은 묘향산 가는 날이다. 묘향산행 코스를 희망한 참관단을 실은 버스는 아침 8시 50분에 호텔을 떠났다. 버스가 출발한 다음 묘향산에 도착하기까지 차창을 통해 본 풍경을 시간순서로 서술한다.

 

민초들의 움직임

 

양각도 호텔을 벗어나자마자 김일성 훈화를 모신 조그마한 공원을 아침 일찍 깨끗이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표정으로 보건대 자발적으로 공원 청소를 하는 것 같다. 그녀는 지금도 김일성 주석을 ‘심장에 남는 사람’으로 모시고 있는 게 아닐까?

이른 아침부터 보통강변으로 출근(?)한 낚시꾼이 보인다. 강변을 산책하며 책을 읽는 시민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침 9시 경에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각자 일터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북녘 땅 민초들의 조촐한 삶의 공동체, 단순하고 검소한 삶의 공동체, 가난함의 평등 공동체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계속 나타난다. 아파트 개축 공사현장의 혁명구호, 경쟁 실적표, “105호 공사장! 본떼를 보여주자”는 격려구호, 주체사상탑 밑에 헌화한 소담스러운 꽃이 평양의 사회상을 대변한다.

 

평양의 근교 풍경

 

평양의 근교에 이르자 야채밭과 염소 떼가 시선을 끈다. 버스는 묘향산행 4차선 고속도로에 진입했으나 차량통행은 거의 없다. 근교의 산은 소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다. 고속도로 옆에 2차선의 철길이 나있다. 뒷켠에 사람들을 가득 실은 화물차가 냅다 달린다. 손에 손에 꽃을 든 걸 보니, 행사장(10‧10절과 관련된 행사장?)에 가는 사람들인 것 같다. 왼쪽에 순안 비행장으로 가는 길이 탄탄대로처럼 뻗어 있다.

코스모스가 손짓하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이른 아침부터 모래무지 위에서 낮잠 자는 사람, 남쪽 사람들보다 느릿느릿 뚝길을 걷는 사람들, 철도의 레일 위에 궁둥이를 걸쳐 놓고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농부, 독서하며 거북이 걸음을 걷는 학생의 모습에서 ‘사회주의 북한의 시계’가 ‘자본주의 남한의 시계’보다 느리게 달리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북녘 땅 곳곳에 사회주의 경제발전을 위해 속도전을 벌이자는 구호가 여기저기 걸려 있어도, 남쪽 경제를 움직이는 제트기 속도에 비하면 경운기 수준이다. 경운기 속도에 적응해온 북쪽의 노동자들이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쪽 기업에 취직할 경우, 제트기 속도를 내라는 빗발친 채근을 어떻게 이겨낼지....미리부터 걱정이다.

 

남쪽 농촌과 닮은 꼴

 

평양 근교의 논은 가을걷이가 끝난 듯 한산하다. 더러 추수를 마치지 않은 논에는 늦깍이 나락을 베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손수 나락을 베며 땀 흘리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미(人間味)있게 보인다. 근교의 구릉지대에 있는 채소‧ 과일밭을 지나자 남쪽의 농촌과 똑같은 정경이 나타난다. 뒷산의 명단자리에 꽈리를 튼 농가, 농가 부근의 채마밭, 채마밭 아래의 논이 펼쳐지고 마을 앞에 개천이 흐르는 공간배치가 남쪽과 영락 없이 닮았다. 다만 집단 농가가 많고 농가의 구조와 색깔이 남쪽과 달라 농촌 전체가 남쪽과 다른 느낌을 줄 뿐이다.

정비 잘된 농촌의 집단 마을 아래의 추수가 끝난 논에서 아낙네들이 무언가 먹거리를 찾는 듯 이삭으로 추정되는 것을 줍고 있다. 이런 가여운 모습이 북녘 땅의 식량난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평양 근교에는 민둥산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농촌이 비교적 윤택하게 보인다. 좀 때깔 나는 농촌의 추색(秋色)은 청천강 평야에 와서 더욱 완연하다. 청천강의 들녘은 추수를 마치지 않는 논이 많아서 그런지, 조그만 황금물결을 연출하는 듯하다. 올해 비가 많이 와서 작황에 약간의 타격을 입었다는 데도 군데 군데 샛노랑색의 들녘을 보니 농민들과 (식량난으로 고심하는) 북쪽 당국이 한시름 덜 정도는 된 듯하다.

 

청천강이 흐르는 들판

 

청천강물이 적신 들판은 기름져 보인다. 청천강 유역의 평야지대의 농가는 다른 곳보다 풍요로운 듯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농지에서 불도저가 경지정리중이다. 드문드문 공장이 나타났으나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에서 ‘본래 공업사회이었던 북한이 어쩔 수 없이 농업사회로 선회한 사연’을 감지할 수 있다.

 

눈여겨 본 농촌 사정

 

청천강 유역의 산에는 경제림이 드물고 잡목과 소나무만 무성하다. 농업의 하부구조(인프라)도 부족한 듯싶다. 저수지, 농수로, 양수 시설 등을 위해 사회간접자본이 투여되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형편인 듯하다. 양수를 위해 안감힘을 쏟은 흔적이 여기저기 보이지만 여전히 녹슨 양수시설이 많다. 경작지 부근의 담수율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천수답 비율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하늘에 의지하는 농사를 짓는 게 아닌가? 그러니 10년 전의 왕가뭄 때 북녘의 주민들이 하늘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산기슭의 조그마한 계곡에 물이 늘 흘러야 담수율이 높아질 텐데 거의 메말라 있다. 거기에다가 남쪽처럼 비닐하우스도 거의 없어서 하늘만 쳐다보는 농사가 불가피한 게 아닌가?

 

묘향산 자락의 마을

 

창밖을 보니 묘향산이 30킬로미터 남았다는 팻말이 보인다. 묘향산이 다가오자 제법 높은 산봉우리들이 떡 버티고 있다. 기상 드높은 소나무(松林)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조금 더 달리니 청천강을 에도는 묘향산 자락이 펼쳐진다. 묘향산 부근의 집단마을은 고즈녘한 가을의 산촌을 연상케 한다. 평소엔 완만하지만 홍수가 나면 급물살이 흐를 계곡 바로 위에 제방이 없는 촌락을 형성하여 위태로워 보인다.

20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다른 산간 마을의 입구에도 ‘당의 시책이 쓰인 구호 간판’이 서 있는 걸 보고, 북쪽은 역시 구호로 먹고 사는 사회임을 실감했다. 마을 입구에 써 있는 ‘모두 다 가을걷이 전투로’라는 구호는, 전쟁을 치르듯 농사지으란 이야기인데... 그러다가 생산성이 높아질지 의문이다. 경제는 경제의 논리로 풀어야 할 텐데 전쟁의 논리로 해결될지....

버스가 묘향산 진입로에 있는 도시 ‘향산’을 우회하기 시작한다. 향산에서 묘향산 호텔로 들어가는 관광로 옆을 따라, 시리다 못해 뼛속 깊이 서늘한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향산(香山)이란 말이 뜻하듯 수려(秀麗)한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등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가 그윽하기 그지없었다. 묘향산은 ‘香山’ 앞에 ‘妙’자를 붙였으니 불교의 묘법(妙法)을 전파하는 진리의 향기가 풍기는 산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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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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