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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통일의 땅 길 열다 (7)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다녀와서

 
김승국  

 

2003년 10월 7일 ③-옥류관‧ 정주영 체육관‧인민 문화궁전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옥류관은 대동강변에 위치한 대형 한옥 건물이었다. 옥류관의 식단은 쟁반국수와 냉면 두 가지 종류이었는데, 평양시민들 사이에서 쟁반국수 쪽이 더 인기가 있다고 했다. 필자는 욕심 사납게 쟁반국수와 냉면을 모두 주문하여 맛을 보았다. 쫄깃졸깃한 맛이 좋았으나, 서울식 평양냉면에 익숙해서 그런지 특미(特味)를 느끼지는 못했다.

 

냉면 값과 엥겔 계수

 

냉면 1인분이 북쪽 돈으로 300원(남쪽 돈으로 1천원)이라고 했다. 북쪽 가족의 최저 생활비가 3천원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옥류관에서 가족 5인이 외식하면 한달 생활비의 절반이 지출된다는 계산이다. 한 가족이 냉면 5그릇을 먹고 한달 생활비의 절반이 나가는 북쪽의 엥겔 계수를 납득할 수 없었다. 북쪽에는 세금도 없고 전기세, 수도세도 무료이고 기본적인 의식주는 배급되니 3천원이 있어도 쓸모가 없는가? 그래서 평양시민들이 옥류관에 와서 냉면을 많이 먹는가? 평양에 장마당(자유시장)이 생겨 개인적인 소비가 가능하므로 가족을 위해 특별히 구입할 물건이 많을 텐데 그런 걸 포기하고 평양 시민들이 냉면 먹으러 다니나? 아직도 식량난으로 고전하는 북쪽에서 3천원의 상당부분을 식량이나 부식을 구입하는데 쓸 경우 냉면 사먹을 금전적인 여유가 없을 텐데...금전적인 여유가 없는데도 옥류관에서 점심 식사하는 사람들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남쪽 표현으로 중산층 이상)일까?

이렇게 생각하며 베란다로 나와 둘러보니 평양의 보통시민 수백 명이 옥류관 입구에서 식사 대기 중이었다(이들은 옥류관을 전세 낸 남쪽 일행이 식사를 마친 다음에 들어오기 위해 옥류관 주변에서 집단적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이른바 당 간부 등 난 사람들의 외모가 아닌 보통 사람들 수백 명이 무슨 돈으로 옥류관 냉면을 즐기는지...필자에겐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대동강도 식후경

 

식사를 하고 베란다에 나와 대동강의 푸른 물 속에서 월척고기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입질을 하고 있었다. 그 부근에서 대동강의 강태공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저 멀리 팬티 차림의 젊은이 몇몇이 대동강을 헤엄쳐 도강(渡江)하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는 말을 ‘대동강도 식후경’으로 바꾸면 어떨까? 냉면을 잔뜩 먹고 옥류관 베란다에서 바라본 대동강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양각도 호텔 34층의 숙소에서 수직적으로 바라본 대동강은 유유한 모습이었고, 해발 180미터의 을밀대에서 조망한 대동강은 산수화의 한 폭 같았다. 이에 비해 아주 낮은 곳(옥류관의 베란다)에서 대동강을 바라보니 거울 같은 강물 위에 비추인 평양 시내의 조경이 유별나게 반짝였다.

 

평양과 뉴델리 비교

 

평양은 뉴델리와 비교할만하다. 뉴델리는 영국 제국주의가 마르고 닳도록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세운 계획도시이다. 평양은 미국 제국주의가 한국전쟁 때 잿더미로 만들었다. 미국에 보란 듯이 세운 반미(反美)-반제(反帝)의 성채(城砦)가 평양이다.

그러면 두 도시의 외관을 살펴보자. 뉴델리 시내에는 체제를 선전하는 시설물이 없으나 힌두교‧ 이슬람교의 신념체계를 드러내는 사원이 넘친다. 평양에서는 종교가 미약하지만 주체사상이라는 신념체계를 드러내는 건물‧ 동상‧ 조각‧ 포스터가 넘친다.

뉴델리 시민이나 평양 시민 모두 ‘기아’ 귀신의 손아귀 안에 있는 공통점이 있다. 헌대 뉴델리는 홈리스‧ 거지 투성이인데 비하여 평양에는 거지도 홈리스도 없는 게 다른 점이다. 두 도시 모두 사회주의 체제에 의해 관리된 도시이어서 조경이 좋고, 도로 폭도 넓으며 사회 인프라가 나름대로 훌륭하다. 뉴델리에서는 대동강과 같은 아름다운 강이 시내를 관통하지 않기 때문에 평양 쪽의 도시미(都市美)가 더욱 뛰어난 것 같다.

 

미국이 파괴한 평양을 보란 듯이 재건

 

그런데 미국은 한국 전쟁 통에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왜 맹폭격하여 쑥대밭을 만들었을까?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이니까, 북쪽 주민들이 평양을 복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게 아닐까? 평양을 다시금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북쪽 인민들이 흘린 피와 땀 냄새가 대동강의 민물 냄새와 함께 묻어나오는 듯 했다.

쑥대밭을 쑥 냄새나는 자연친화적인 대도시로 가꾼 북쪽 주민들이 더욱 등 따습고 배부르게 되면, 평양은 살맛나는 곳이 될 것이다.

 

남북 농구 대회

 

이어 우리 일행은 남북 농구대회를 참관하러 다시 정주영 체육관으로 향했다. 농구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피부․얼굴형에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므로 남쪽 사람인지 북쪽 사람인지는 복장으로만 겨우 구분되었다.

농구 대회에 앞서 여성 브라스 밴드의 연주가 있었다. 100여명의 여성 연주자들은 단일기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남쪽 관람단이 앉은 건너편에 북쪽 응원단 수백 명이 앉아 있었다. 북측 응원단은 ‘6.15 선언’이라는 인간 문자를 형상하면서 아주 조직적으로 응원했다. 응원도 6.15 정신으로 하는 듯했다. 북쪽 어디를 가도 누굴 만나도 “6.15 선언을 실천하자...”로 통일되어 있었다. 남쪽 사람들이 북쪽의 절반 정도만 6.15 선언을 실천하면 금방 통일 되지 않을까?

 

다양성과 전일성의 종합을

 

북쪽 응원단의 짝짝이 박수 치는 솜씨는 빈틈없는 일치감을 자랑했다. 마치 북녘 인민사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과시하는 듯했다. 필자가 일본에 몇 년간 체류한 적이 있는데 ‘마쓰리’라는 축제 때 마을 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공동체의 단결력을 결집시키는 것을 보고 내심으로 놀란 적이 있다. 그런 일본인보다 북녘 사람들의 단결 상태가 더욱 공고해 보였다. 그야말로 ‘하나(一)는 전체(全)를 위하여 전체(全)는 하나(一)를 위하여 사는 전일적(全一的)인 삶의 모습’이, 응원단의 짝짝이 박수 속에서도 나타났다.

이런 ‘전일적인 짝짝이 박수’를 남쪽 사람들은 수월하게 칠 수 있을까? 남쪽 사람들이 제아무리 노력해도 숨소리까지 일치하는 박수를 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양한(多) 생각을 가진 다양한(多) 계층이 다양한 생활양식을 나타내는 남쪽에서도 사회통합은 중요한 가치이기는 하지만 전일적인 삶이 목표는 아니다.

남쪽의 경우 사회통합이 헝클어지면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모두 하나의 배 ‘北韓號’에 승선한 북녘사람들은 공동의 운명체이다. 이 일엽편주(一葉片舟)의 北韓號가 ‘전갈과 같은 국제사회’를 헤쳐 나아가며 제국 ‘미국’과 초긴장의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北韓號의 승객중 단 한사람의 일탈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사람의 일탈이 北韓號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일적(全一的)인 삶의 모습, 전일적인 짝짝이 박수가 나오는 게 아닐까?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농구 대회 내내 한사람의 응원 지휘자의 손끝 움직임에 따라 1만 명이 몇 시간 동안 빈틈없이 응원하면서 “우리는 하나” “우리 민족 제일”을 외쳐댔다. ‘전일적인 우리 민족 제일주의(第一主義)’의 힘이 절로 샘솟는 듯했다.

남북을 총괄적으로 보면 남쪽 사회의 ‘多(다양성)’ 와 북쪽 사회의 ‘一(全一)’에 각각 장단점이 있다. 각각의 단점을 지양하고 장점을 지향하는 가운데 통일의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농구 대회 이후 통일 춤판

 

드디어 한반도 단일 깃발을 든 남북 여성 농구선수들이 입장했다. 경기 결과 남쪽의 현대 아산 팀이 북쪽의 아태 여자 농구팀을 88 대 84로 이겼다. 그런데 남북 남성간의 농구경기는 북쪽이 일방적으로 이겼다(86 대 57). 2 미터 35센티의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 이명훈 때문에 남측 선수들은 엄청나게 고전했다.
 
경기가 끝난 다음 북측 사람들이 즐기는 공동체 윤무(輪舞)가 시작되었다. 맨처음엔 북쪽 여성들이 주도하는 윤무이었으나 남쪽 참관단 일부가 합세하면서 남북의 남녀들이 한판 벌이는 춤판이 되었다. 이 춤판의 흥을 북돋아주는 응원단이 또 다시 ‘6.15 선언’ 카드섹션을 펼치는 바람에 윤무는 ‘통일무(統一舞)’로 바뀌어갔다. 가을 별 빛이 반짝이는 평양의 정주영 체육관 안에서 펼쳐지는 ‘통일무’는 “통일이여 어서 오라”고 명령하는 듯했다.

‘민족은 하나임’을 확인하는 통일무가 무르익자 무도회장의 남북 남녀들을 향해 종이 대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통일의 춤꾼들’ 머리 위로 총천연색 종이들이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통일무를 추는 선남선녀들을 시샘하듯 종이들도 통일무를 추어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남북의 선남선녀들이 통일무를 흐드러지게 추어대는 걸 부시 대통령이 보았더라면 기절했을 것이다. 북한 점령 계획을 실행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부시가 혼절하고도 남을 정도로 남북의 통일 꾼들이 밀착하여 통일 춤을 추었다. 그렇다. 우리는 부시가 혼절할 정도로 깊숙이 살을 부비며 통일 춤을 추어야한다. 서로 얼싸 안고 살을 섞어야한다. ‘양키’들의 훼방 놀음을 따돌리고 더욱 진하게 만나야한다. 견우 직녀의 통일 춤판을 더욱 흐드러지게 벌여야한다.

 

인민 문화궁전에서 포식

 

남북의 농구 경기 참관을 마친 다음 우리 일행은 인민문화궁전에서 저녁 만찬회에 참석했다. 국빈 대접하는 사람들이나 인민문화궁전에서 만찬회를 열어주는 모양이었다. 평양을 찾은 남쪽 사람들이 인민 문화궁전에서 만찬을 즐긴 경우는 단 2차례 뿐이었다고...우리 일행을 세 번째로 모셨다니 “영광입네다...”고 답사를 보내야할 모양이다.

인민문화궁전이 내놓은 음식의 차림표는 다음과 같다; 커피 식빵, 색경단, 소고기 후추구이, 대화 새우찜, 청포채, 오골닭 인삼탕, 뱀장어 구이, 화고‧ 은이 버섯, 메밀 국수, 과일, 크림, 인삼차. 각종 고급술.

이런 진수성찬을 먹다가 그 시각에 굶고 있거나 시장끼를 느낄 북녘 동포를 생각하니 목이 메어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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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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