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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통일의 땅 길 열다 (4)

정주영 체육관 개관 개념식에 다녀와서

 
김승국
  


2003년 10월 6일 ③-양각도 호텔~정주영 체육관

 

오후 2시 45분경 양각도 호텔에 도착한 우리들은 호텔방을 배치받은 다음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호텔 1층에 있는 대형 식당의 왼쪽 벽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어났다는 정일봉 귀틀집을 형상한 대형 그림이, 오른쪽 벽에는 금강산의 사계를 그린 산수화가 걸려있었다. 북녘 땅에서 처음 맛을 본 평양음식은 서울에 비해 덜 자극적이고 덜 달고 덜 매웠다. 오히려 밋밋한 맛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음식 맛의 순수함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양각도 호텔의 맨 꼭대기 층(47층)에 있는 회전식 레스토랑으로 올라가 평양시내의 전경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빨리 정주영 체육관으로 떠나야한다’는 성화 때문에 포기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오후 5시부터 시작하는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평양은 예부터 버드나무가 많아서 ‘버드나무로 둘러싸인 수도’란 뜻으로 ‘柳京’이라고 불리어 왔다. 이 ‘柳京’이란 말이 ‘정주영 체육관’ 앞에 붙어 운치를 더해주었다. 체육관의 이름이 말하듯 평양은 과연 버드나무가 우거진 운치 있는 도시이었다.

 

보통강변의 운치

 

양각도 호텔에서 정주영 체육관으로 가는 길가의 버드나무 잎이 살랑거리며 평양의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버스는 지금 보통강변의 산책길 옆을 달리고 있다. 평양 시내를 관통하는 보통강은 대동강 보다 더욱 푸른빛을 띠고 있다. 보통강의 유유한 흐름을 즐기는 가로수들이 늘어선 사이로 널찍한 산책길과 시민 공원이 펼쳐지고 있으며, 그 주변의 고층빌딩들이 멋진 Sky Line을 연출한다. 고층빌딩을 총천연색으로 도색하면 환상의 도시 풍경을 선보일 수 있으련만....회색 一色의 고층빌딩 때문에 대동강변의 秋景(가을 경치)을 마음껏 자랑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은 유럽풍의 계획도시마냥 가로(街路)‧ 공원‧ 살림집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루고 있었다. 이 길거리가 53년 전 한국전쟁때 미군의 폭격으로 잿더미로 된 사실을 떠올리며, 이렇게 멋진 평양 거리를 조성한 북녘 민초들(인민들)의 노고를 다시금 생각했다.

보통강변을 뜀박질(조깅)하거나 산책하는 시민, 담소하는 젊은이, 양지바른 곳에 둘러앉아 환담하는 모습이 정답게 느껴졌다.

보통강변을 쏜살같이 달리던 버스는 거대한 류경호텔 바로 옆에 있는 정주영 체육관에 도착했다. 류경호텔은 골조공사를 마쳤으나 내장을 하지 않아 흉측한 피라미드처럼 다가왔다. 북측 안내원은 ‘미국이 류경호텔 건설에 재를 뿌리는 바람에 이런 몰골이 되었노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제제재의 마수가 류경호텔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현장에서 목격한 필자는 북쪽 사람들이 ‘미제(미국 제국주의)의 각을 뜨자’는 섬뜩한 구호를 외치는 까닭을 이해할만했다.

 

정주영 체육관 개막식

 

드디어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막식’이 옥외에서 시작되었다. 필자는 이 호웅 의원의 바로 옆에 앉아 이 행사를 지켜보았다. 무대 좌우에 대형 한반도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1만여 명이 참가한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약 2백 명의 여성 브라스 밴드의 연주에 맞춰 민족통일을 고취시키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개막식이 끝난 다음 체육관으로 들어가 개막 축하공연을 관람했다.

 

꼴불견 축하공연

 

남쪽의 SBS 방송국이 추진한 축하공연은 한마디로 꼴불견이었다. SBS는 이번 기회에 (북측과의 방송교류 선발주자인) KBS, MBC를 따라잡으려고 전력투구(全力投球)하여 축하공연을 준비하고 정주영 체육관 개관 참관단의 움직임을 밀착 취재했다. SBS가 거금을 들여 이런 행사를 마련했음은 물론이다.

필자는 축하공연에서 선보인 남측의 썩어빠진 공연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다 못해 구역질이 났다. 역시 부평초같이 가벼움만 좆는 SBS 다운 공연이었다. 한마디로 이런 데 쓸 돈이 있으면 남북한의 배고픈 민중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게 훨씬 나을 성 싶었다. 그럼 축하공연의 전반부를 장식한 남측의 공연상황을 소상하게 소개한다.

 

걸레 같이 잡스러운 음악

 

맨 처음에 등장한 가수 이 선희가 나와서 ‘J에게’를 불렀을 때만해도 그럴듯했다. 이 선희에 이어 나온 설 운도부터 남쪽의 걸레 같이 잡스러운 음악들이 쏟아져 나와 기분을 잡쳤다. 그나마 설운도가 ‘황성옛터’를 불러 그런 메스꺼움이 덜하는 듯했다. ‘황성옛터’의 애잔한 곡이 끝나자 설 운도는 트위스트 곡의 노래를 불렀다. 이 때부터 설운도 한 남자를 에워싼 초미니 스커트의 앳된 무희들이 온몸을 흔들며 관능적인 춤을 추어대기 시작하는데 오줌이 저절로 저렸다. 이런 관능적인 춤판은, 정신 사납게 돌아가는 남측 자본주의의 마취제로 충분한데....왜 평양 시내에까지 끌고 올라와 저 지랄을 하는지...그 저의를 통 알 수 없다. 무희들은 남쪽사회의 ‘性 개방의 과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남쪽에서 늘 북쪽의 개방‧ 개혁을 되뇌는데... 북쪽도 이런 식으로 온몸으로 젖퉁이를 흔들며 개방하라고 유혹하는 것인가?

필자는 낮이 뜨거워서 견딜 수 없었다. 무대 위의 ‘남쪽 무희들의 초미니 스커트’와 ‘북쪽 여성 청중들의 온몸을 둘러싼 한복’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북측 청중들이 저런 저질 공연을 폄하할 생각을 하니 등골이 뜨거웠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에 있는데 갑자기 ‘신화’라는 10대의 가수단이 무대 위로 뛰어 달려 나왔다.

 

광란의 춤판에 어이없는 표정

 

‘신화’라는 그룹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꼬부라진 혓소리로 가사의 내용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노래를 중얼거리며 무대 위를 미친 듯이 굴러다녔다. 이걸 남쪽에서는 레게라고 하던가 랩이라고 하던가 힙합이라고 하던가 가물가물했다. 노랫말이 조선말인지 영어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광란의 춤판을 벌이자 북측 청중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이가 없는 듯 표정으로 굳어진 북녘 여성들도 있었다. 한 때 미국 등에서 유행한 레게 등의 음악에 사회변혁의 요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남쪽의 가수들은 레게의 핵심인 ‘사회변혁’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본주의에 찌든 삶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음악으로 전락시켰다(서태지를 제외하고).

 

시속 2백 킬로미터 사회의 괴성

 

시속 2백 킬로미터로 질주하는 남쪽 자본주의 대열이 내는 고성방가, 이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목숨 걸고 사투하는 괴성, 이 대열에서 탈락중인 무리들이 내는 소외의 떨림음, 이미 이 대열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의 골골대는 한숨소리를 모아 놓은 게 ‘뜨내기처럼 명멸하는 10대 가수 집단들의 노래(레게, 힙합, 랩)’이다. 시속 2백 킬로미터에 맞춰 노래를 부르려니 노랫소리는 자연히 빨라지고 그 것도 우리말을 파괴하듯 ‘영어식 한글 발음’으로 부르려니 소음 덩어리로 들릴 수밖에....

시속 2백 킬로미터의 노래를 통해 남쪽 사회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무한경쟁)’을 읊조리는 사설(辭說) 속에 ‘시대를 반영하는 음조’가 들어 있다고 촌평을 내릴 수도 있겠다.

제아무리 ‘시대의 소리’라는 호평을 받더라도, 이런 노래는 남쪽 사람들 일부의 정서를 반영할 뿐이다. 이런 노래를 북쪽 사람들에게 내리 먹이려면 곤란하다. 북쪽 사람들은 시속 50킬로미터 이하의 삶에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에서 오는 무한 스트레스도 없는데, 스트레스에 찌든 2백 킬로미터의 삶에서 나오는 외마디 소리를 들으라니....

SBS의 PD가 미치지 않았으면 이런 광란의 쑈는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필자도 그 동안 남쪽에서 이런 광란의 쑈를 밥 먹듯이 TV를 통해 보며 무심코 지내왔으나, 평양시민의 생활 정서와 너무나 동떨어진 歌舞를 보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마 필자가 서울로 되돌아가 한달만 지나면 광란의 쇼를 보고 이다지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조영남의 ‘심장에 남는 사람’

 

“이런 광란극을 당장 집어치워”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순간에 조영남이 나타났다. 조영남은 북녘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북쪽의 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의 주제가란다. 이 노래는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로 시작하는 노랫말 중에서 ‘심장 속에 남는 사람’은 누굴 지칭하나? 연인? 인민의 연인?

나중에 알고 보니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김일성 주석을 가르킨단다. 역시 조 영남은 배짱이 두둑했다. 국민가수의 빽(뒷심)을 믿고 그런 노래를 불렀나? 공개석상에서 김 일성 주석이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뜻을 지닌 노래를 조선의 심장인 평양 한 복판에서 부르다니....위험할 정도로 신선했다.

그런 위험을 피하려는 듯 조 영남은 민감한 부분을 고쳐 불렀다. 일상생활에서 심장에 남는 사람을 기리는 노래로 개작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렇게 해서 겨우 남북이 부드럽게 하나 됨을 연출할 수 있었다.

조영남의 뒤를 이어 테너 가수 김 동기가 ‘향수’를 부르며 공연 초반의 이 선희의 분위기로 되돌려놓았다.

 

북측의 서사적인 가극


 

남측의 온갖 대중음악을 압축하여 보여준 전반부의 공연이 끝나고 북측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남측의 음악이 분위기를 잡는데 중점이 있었다면 북측은 혁명가극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중심을 두었다. 만수대 예술단에서 제작한 무대 장치도 사뭇 달랐다. 의상도 다르고 리듬도 달랐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집체예술이라는 예술형식에서 극적으로 차이점을 보였다. 남측의 공연은 개인기에 매달리는데 반하여 북측의 공연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기계처럼 진행되었다. 북측 공연의 내용은, 사회주의 건설에 헌신하는 인민의 땀, 인민의 혁명의지, 민족의 혼, 민족통일의 염원, 서민의 애환을 기리는 서사극에 대중성을 가미한 집단 가무이었다.

남북한의 대중들이 즐기는 공연예술이 이렇게 달라가지고 어느 세월에 남북의 문화통합이 이루어질지 꿈만 같았다.

북측 공연의 순서는 ‘꽃피는 강산’ ‘통일 아리랑(여성 4중창)’ ‘봉선화’ ‘풍년가’ ‘우리 장단이 좋아(가야금 독주)’로 이어졌다. 일부의 노래는, 남측 참관단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일부러 선곡한 것도 있었다.

공연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자 남측의 사회자(SBS의 남자 아나운서)와 북측의 사회자(중앙 텔레비전의 여성 아나운서)가 나와 폐막을 선언했다. 남측의 사회자는 그야말로 인사말만 나열한데 비하여 북측의 여성 사회자는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6.15 공동선언 정신’ ‘민족 대단결’을 절절하게 호소했다.

 

‘다시 만나요’를 합창

 

사회자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노래로 담기라도 하듯 북측의 애창곡 ‘다시 만나요’를 합창했다. “목매여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통일의 날 다시 만나요”라는 가사를 부른 남북의 공연 참가자들은 어느새 목이 메었다. 헤어지기 싫어서...

체육관 안에서 퇴장하자마자 체육관 개장을 축하하는 폭죽이 평양의 밤하늘을 수놓으며 터지고 있었다. 폭죽 소리를 들은 평양 시민들이 ‘통일의 대박’으로 응수하고 있으리라 믿고 양각도 호텔행의 버스를 탔다.

 

암흑천지의 밤거리

 

버스가 체육관을 떠나 큰 길로 들어서자마자 암흑천지이었다. 방금 전에 휘황찬란한 불빛의 체육관에서 3시간 머문 탓인지 평양의 밤거리가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 필자가 금강산에도 여러 차례 다녀와서 전력사정 탓으로 북측 주민들이 어두움 밤을 지새우는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런데 ‘조선의 심장’이라는 평양 도심의 거리가 동굴같이 어두운 것을 보고 놀랐다. 이 어두운 거리를 평양시민들은 더듬거리며 귀가하고 있었다. 버스가 달리는 길의 오른편 가로등은 모두 꺼져 있었고 왼쪽 가로등도 3분의 1정도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그러니 길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얼굴도 지척에서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길거리의 가로등이 거의 꺼져 있는데 비하여 살림집이 들어선 고층 아파트의 방마다 등불이 희미하게 비추이고 있었다. 대낮에 본 평양 시내의 멋진 Sky Line이 어둠에 잔인하게 묻힌 듯했다. 한낮에 ‘柳京’의 가을빛을 내던 유럽풍의 도시 평양이 어둠의 저승사자에 사로잡힌 듯했다.

이런 어두운 밤길을 훤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북측의 체제를 선전하는 네온사인들이었다. 대문짝만큼 크게 쓴 ‘자주 평화 친선’의 대형 네온사인이 외롭게 깜박이고 있었다. 인민문화궁전, 주체사상탑 등의 중요한 건물 부근은 대낮같이 밝았다(이 주요 건물 주변도 밤 10시에 모두 소등하는 걸 보고 북측이 얼마나 전기를 아껴쓰는지를 알 수 있었다). 주체의 구호, 혁명의 구호, 통일의 구호를 앞세운 네온사인의 불빛이 평양시내의 야경을 지배하고 있었다.

필자는 갑자기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평양시내와 서울 시내를 동시에 굽어보며 밤하늘을 가장 빛내는 불빛의 종류를 헤아려본다면....서울 거리에서는 다방과 술집보다 많은 교회의 네온싸인이, 평양 거리에서는 ‘주체의 네온싸인’이 서로 앙숙인 듯 발광(發光)하고 있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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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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