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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통일의 땅 길 열다 (5)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다녀와서

 
김승국  


10월 7일 ①-평양역 앞 영광거리의 표정


아침 8시까지 식사를 마쳐야하기 때문에 서둘러 호
텔 로비로 내려가는데 10월 7일자 『로동신문』이 보였다. 10월 7일자 『로동신문』은 정주영 체육관 개막식과 개관 축하공연에 참가한 남측 일행의 동향을 대서특필했다. 4쪽에 걸친 10월 7일자 신문 중에서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 관련 기사를 4건이나 실었으니 국빈 대접한 것이다.

『로동신문』에 대서특필

『로동신문』의 작풍이 워낙 남쪽 언론과 달라서 논평하는 게 무리일 수 있으나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 관련 기사 중 몇 가지 눈여겨 볼만 한 대목을 소개한다;

“...류경 정주영 체육관은 정주영 선생과 정몽헌 선생을 비롯한 일가의 애국애족의 지성과 더불어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을 지향하는 온 겨레의 뜨거운 열망과 의지에 의하여 일떠선 체육문화기지이다.”(1면 기사)
“남측 행사단은 서해 림시 기본도로를 통해 개성시에 들어섰다. 개성시의 만수다리 입구에서 관계 부문 일군들이 행사단을 동포애의 정으로 맞이하였다.”(4면 기사
 
▶ 정주영 체육관 개막 공연에 참석한 평양시민들

“정주영 체육관 개관을 축하하는 북남 예술인들의 합동공연이 진행되었다. 북과 남의 겨레가 모여앉아 개관의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된 것으로 하여 공연장소는 뜨거운 동포애와 통일열망으로 끓어번지였다....출연자들은 북과 남이 하나가 되여 분렬의 장벽을 허물고 7천만 온 겨레가 얼싸안을 그날을 꿈결에도 그리는 민족의 통일열망을 격조높이 구가하였다....북과 남의 예술인들과 관중들은...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마음과 뜻을 하나로 합치여 백두에서 한나까지 온 강산에 통일의 환희가 차넘칠 그날을 하루 빨리 앞당길 의지를 더욱 굳게 가다듬었다.”(4면 기사)



기사 내용에 토 달기



위의 기사중 ‘정주영 선생과 정몽준 일가의 애국애족’에 대하여 딴지 걸 생각은 없으나, 『로동신문』기사는 정주영 재벌가에 대한 남측 민중의 정서와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남측 사람들은, 고 정주영 회장이 남북교류ㆍ금강산 관광ㆍ개성공단 개발에 쏟은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현대재벌의 반민중적인 성격(노동자 탄압 등)을 비난하는 양면적인 태도를 취한다. 남쪽에서 노동자를 탄압함으로써 계급문제를 야기했지만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민족문제 해결에 공헌한 ‘현대재벌의 2중성’ 가운데에서 ‘민족’에 더 무게를 둔 북쪽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정주영 일가의 애국애족 정신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남쪽의 노동자들이 민망하게 받아들일지 모른다. 노동자를 짓밟은 ‘왕 회장(정주영 씨를 풍자하는 말)’ 일가를 융숭하게 대접하는 일은 온당하지만, 도에 지나치면 북쪽 정권이 남쪽 노동자의 계급문제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주관적인 글 쓰기



그리고 4면 기사 중 ‘공연장소는 뜨거운 동포애와 통일열망으로 끓어번지였다....출연자들은 북과 남이 하나가 되여 분렬의 장벽을 허물고 7천만 온 겨레가 얼싸안을 그날을 꿈결에도 그리는 민족의 통일열망을 격조높이 구가하였다....북과 남의 예술인들과 관중들은...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마음과 뜻을 하나로 합치여 백두에서 한나까지 온 강산에 통일의 환희가 차넘칠 그날을 하루 빨리 앞당길 의지를 더욱 굳게 가다듬었다’는 부분도 자칫 객관성이 결여될 우려가 있다.


그날 정주영 체육관 개막 축하공연자에 모인 북측 청중들이 뜨거운 동포애와 통일열망을 보인데 비하여, 남측 참관단들은 상대적으로 냉정한 관망 분위기를 나타냈다. 특히 북측의 출연자들은 ‘북과 남이 하나가 되어 분열의 장벽을 허물’ 의지를 보였으나, 남측 출연자들은 ‘분열의 장벽을 허물고 7천만 온 겨레가 얼싸안을 그 날’을 꿈결에도 그리기는커녕 관능적인 춤판만 벌임으로써 통일열망을 격조높이 구가하지 못했다.


도대체 북측의 『로동신문』기자가 개막 축하 공연장 현장에 와서 남측 참관단의 표정이나 남측 출연자들의 춤판을 정확히 보고 쓴 기사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주관적인 기사이다. 이 기사들이 통일의 의지를 주관적으로 드높이다 보니 미세한 부분을 담아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통일 담론’이 국시인 북측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통일을 노래하는 기사를 쓰는 게 오히려 권장사항인 점을 납득하면서도, 기사의 객관성을 중시하는 남측의 언론관으로 보건데 좀 정밀도가 떨어진 느낌이었다.

남북 언론 사이에 기사 쓰는 작풍의 차이를 좁히는 일도 예사롭지 않은 과제라고 생각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출근길의 평양 시민들



 
버스는 우리 일행을 평양의 번화가 ‘영광거리’의 민예품 상점 앞에 풀어 놓았다. 필자는 민예품에 들어가 이것저것 눈요기 쇼핑만하고 이내 밖으로 나와 민예품 상점 앞을 지나가는 평양 시민들에게 다가섰다. 마침 출근시간이어서 그런지 시민들의 발걸음은 바쁜 듯했다. 여성들은 비교적 수수한 정장 차림(하이힐에 검정 치마)이 많았으나, 남자들은 작업복 차림이 가장 많았다. 가벼운 운동화를 신은 남성, 인민복(모택동이 즐겨 입은 중산복?)을 입은 사람도 보였다. 출근길의 평양시민 중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인물이 출중해 보였다. '남남북녀(南男北女)'라고 했던가?


옷 입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북측 사람들의 검소한 생활이 돋보였다. 북측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욕구의 절제미(節制美)’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치품의 소비를 통해 욕구를 충족하려는 남측 사람들에 비해 겸손한 삶의 방식이 옷차림에서 나타난 게 아닐까?

그런데 북측 남자들이 아침부터 줄담배를 피우는 걸 보고 북쪽에는 금연운동이 있는지 없는지 의아했다.


필자가 둘러본 영광거리는 공기가 맑고 확 트인 길거리가 깨끗했으며 차량 소통이 적어서 인간과 차량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서울처럼 사람이 차량에 쫒기지 않아서 좋았다. 마침 유치원 학동들이 화사한 옷을 입고 단체로 등교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산한 상점가



영광거리의 민예품에서 쇼핑을 마친 우리 일행은 을밀대를 향해 달렸다. 을밀대 가는 도중의 상점가에는 물건이 좀 진열된 곳도 있고 텅 비어 있는 곳도 있는데 손님들의 왕래는 거의 없는 듯했다(아침 출근시간이라서 그런가? 퇴근시간에는 붐빌까?).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평양 시내 곳곳에 장마당(자유시장)이 생겨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필자가 장마당에 가보지 않아서 시민들의 소비 현장에 관하여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평양시내 주요거리의 상점가가 ‘파리 날리는 점’으로 미루어 인민의 소비경제에 난맥상이 있는 듯했다.



공사장의 세 가지 풍경



버스가 김일성 광장을 지나자마자 건설 공사장 주변에 ‘충성의 사회주의 경쟁 도표’라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안내원의 이야기로는 최근 평양의 구(舊)시가지에 있는 건물들의 보수 공사(남쪽의 영어 표현으로 ‘remodeling')가 한창이란다. 북측의 경제형편이 좀 나아져 건물 보수공사를 집단적으로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느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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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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