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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통일의 땅 길을 열다 (1)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다녀와서


연재를 시작하며


 
'통일 인간 떼’ 1,100명이 육로(땅 길)로 분단의 장벽을 뚫는 역사적 쾌거를 이룩했다. 10월 6일부터 9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필자를 비롯한 1,100명의 인사들이 방북했다. 대규모 민간 참관단이 땅 길로 첫 방북했다는 점에서, 정주영 회장의 ‘소 떼 방북’ 이후 최대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남북한이 만나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부시 정권이 육로(땅 길)로 통일의 혈맥을 뚫는 ‘통일 인간 떼’ 행렬을 보고 배 아파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방북의 즐거움은 배가(倍加)되었다.

필자는 ‘통일의 땅 길’ 개척자로서 평양‧ 개성‧ 묘향산에서 3박 4일간 보고 느낀 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할 생각이다. 그렇지만 4일 동안 북한의 겉모습만 보고 방북 보고를 하려니 겁이 난다. 남한 사회에서 50년 동안 살고 있으면서도 남한 사회변동의 본질적인 동력을 감지 못할 때가 많은데, 정말 멀고도 가까운 북녘 땅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만용이 아닐까?

이번 방북 보고는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에 미치지 못하고 피상적인 이야기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1,100명 참관단 각자의 시각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필자 나름대로의 평론을 조심스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송두율 교수와 같은 경계인이 아닌 통일의 당사자이므로 북녘 땅을 멀리에서 내다보며 꿰뚫어보려는 ‘내재적 접근’에서 자유스럽다. ‘내재적 접근’의 학문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필자는, 이번에는 경계인이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서 북녘 땅의 사회현상 특히 인민(북한 민중)들의 표정을 중심으로 취재했다.

이제 북한 인민은 멀리 떨어져 있는 제3자이거나 제3인칭(그이, 그대, 그녀, 그들)이 아니라 ‘내 안의 타자(他者)’이다. 필자는 3박 4일간 평양 시민들을 지척에서 바라보거나 만날 수 있었다. 30년 전 필자가 살던 동네 사람들과 교류하는 기분으로 북녘 사람들과 조우했다. 최근 남쪽 인사들의 방북 물결이 북녘 동포와의 간격을 이렇게 좁혔다. 평양의 번화가에 서 있는 보통 사람들(평양 시민)이 30년 전 필자와 더불어 살던 고향 마을 아저씨‧아주머니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1,100명의 참관단은 평양 시민들이 손짓하면 다가올 수 있을 정도로 더욱 간격을 좁히는 성과를 낳았다. 이런 성과가 통일의 땅 길을 연 참관단의 업적이리라.

따라서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 태도를 유보하고 ‘내 안의 他者’인 북녘 동포를 직관적으로 바라 본 느낌을 전달한다. ‘내재적 접근’에 따른 제3인칭이 아니라 ‘직관적 접근’에 따른 2인칭(당신,여보,You)인 북녘 동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남녘땅에 사는 내(I)가 북녘 땅의 여보(당신, You)에게 말을 거는 수작을 하련다. 내 안에 투영된 북녘 땅의 여보(내 안의 타자)를 불러보는 느낌으로 방북 보고를 연재할 셈이다.

 
필자가 ‘직관적 접근’을 강조했지만 학문적으로 정립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다만 남북 민간교류의 폭이 넓어져 남쪽의 보통 사람들이 방북하여 얼마든지 북쪽의 보통사람들을 지척에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남북 교류 시대의 북한 알기 운동 차원에서 ‘직관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이 글을 쓴다.

우리 참관단 일행이 평양의 도심에서 물건을 사는(단체 쇼핑) 도중 필자는 시민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살펴 보았다. 바로 그 때 내 앞에 서 있는 평양시민들과 맞부딪쳤다. 필자는 그 순간 ‘직관적 접근’의 필요성을 직감했다. 즉 평양 거리에서 대뜸 보고 느끼는 感을 이론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감각이다.

남측 인사들의 방북 쇄도 시대, 평양시민들이 은근히 환대(주1)하는 시대에 내재적 접근을 위한 복안렌즈를 평양 시민들에게 들이댈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 안의 타자’를 평양에서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고 교감을 나누며 북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면 된다.

필자는 ‘직관적 접근’ 태도에 따라 북녘 동포에 감정이입하는 연습을 3박 4일간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안의 타자’인 북녘 동포와 한 이불에서 자는 (마음 속의)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게 필자에겐 가장 큰 방북성과이었다. 이렇게 마음 속의 동거 연습을 위해 직관적 접근이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이런 감정이입은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이를 객관화하기 위해, 필자가 넘어온 DMZ의 중앙 분계선에 서서 방북 보고서를 쓰기로 했다. ‘직관적 접근’이 주관적으로 흐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필자와 같은 남녘의 보통사람들이 DMZ의 땅 길을 뚫고 방북하여 북녘의 보통 사람들과 직접 눈빛을 마주치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남북의 선남선녀들이 눈빛을 마주치는 작열(灼熱)을 ‘통일로 농축해내는 작업’이 절실하다. 남북의 보통 사람들이 서로 ‘내 안의 타자’로 껴안으며 통일을 위한 직관력을 높이지 않으면 ‘마음이 통하는 통일’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통일을 위한 직관력을 가다듬는 ‘직관적 접근’의 첫 시도로서 방북기를 써 내려갈 예정이다(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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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내 안의 타자’인 평양 시민들의 환대(hospitality)를 받은 필자는, 지금까지의 ‘북한에 대한 관용(tolerance)으로서의 북녘 동포 돕기 운동’이 '북녘 동포를 환대하는 나눔운동'으로 격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2)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 방북 보고서의 졸속이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지낸 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장기 체류 대상국가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 나라에 관하여 쓸 내용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정도이었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할 말이 줄어든 결과 20년 30년 체류 이후에는 한 마디도 못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작동원리를 알면 알수록 단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필자의 방북 보고서는 ‘선 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 될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내 안의 타자’ 북녘 동포에 대한 ‘직관적 접근’을 시도하는 만용을 부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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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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