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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원수폭 금지대회 참가기

김승국
  


2003년 8월 2일부터 일본의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열린 ‘원수폭(原水爆) 금지 2003 세계대회’에서 거론된 내용과 필자의 인상기(印象記)를 싣는다.

‘원수폭’이란 원자폭탄 수소폭탄을 말하며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라늄 핵폭탄이 떨어짐으로써 ‘핵무기에 의한 집단학살(nuke-genocide)' 시대를 열었다(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고생하던 조선인 수만 명도 피폭 당함). 이 핵무기는 미-소 핵무기 경쟁으로 상징되는 냉전시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의 핵개발‧ 대량파괴무기 보유 문제를 에워싼 ‘미국의 북한 공격’의 수단으로 핵무기 사용(소형 핵무기 등)이 내정되어 있어서 핵무기 문제는 우리에게도 비상한 관심사이다.

지난해 이어 두 번째 이 대회에 참석한 필자는 1년 사이에 격변한 세계정세를 읽을 수 있었다. 우선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쟁정책에서 핵의 사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현실이 이 대회의 가장 큰 현안이었으며, 일본 국내외의 문제로서 ‘유사법제(有事法制)’ 통과 이후에 반핵평화운동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냐도 지대한 관심사이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쟁정책과 일본의 유사법제는 모두 한반도의 운명(전쟁이냐 평화냐)과 직결된 문제이어서 조금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그럼 ‘원수폭(原水爆) 금지 2003 세계대회’에서의 발언 내용을 날짜별로 정리하는 가운데 대회의 흐름을 전달하는 형식을 취한다.

 

8월 3일 국제회의

 

8월 3일 오후 2시 히로시마 후생연금 회관에서 ‘원수폭 금지 2003 세계대회의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지금이야말로 핵무기도 전쟁도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이 회의에 23개국, 6개 국제‧지역조직에서 64명의 해외대표를 포함한 3백여 명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는 미국‧영국이 유엔헌장을 무시한 이라크 침략전쟁과 불법적인 점령, 대량파괴무기 확산 방지를 구실로 한 군사대항 전략,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로서 (북한 등 깡패국가 지도부를 괴멸시키려는) 소형 핵무기 개발에 비판이 집중되었다.

주최자를 대표하여 피폭자인 澤田昭二(원수폭 금지 일본 협의회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전 세계에서 ‘전쟁 NO, 평화의 Rule을 지켜라’<이번 세계대회 주최한 일본 측에서 ‘평화의 Rule(유엔헌장의 평화 원칙rule)'를 지키라는 말을 애용했다>는 목소리가 높았음을 상기시키면서 ’핵무기 전쟁도 없는 세계로 전진하자’ 호소했다.

이어 피폭자를 대표한 小西悟 일본피폭자 단체 협의회 사무국 차장이 58년 전 히로시마에서의 피폭 체험을 말하여 ‘중동이나 아시아 제국에서 핵전쟁의 지옥이 재현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속개된 ‘이라크 공격을 에워싼 운동과 과제’에 관한 제1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한국,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의 대표 등이 연설했다. 한국을 대표한 필자는 우선 북한의 핵개발 정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①북한은 현재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② 북한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그 프로그램을 활용한 핵무기 제조 공정에는 돌입하지 않은 듯하다. ③ 북한이 비록 핵무기를 1~2개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발사를 위한 인프라 시스템(전자통신 시스템 등)을 갖출 능력이 없다. ④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핵무기를 발사하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⑤ 북한은 현재 공세적인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정책을 구사하면서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북한 핵문제와 국제정세’의 관련부분으로 다음의 5가지 사항을 지적했다; ① 북한 핵문제는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의 산물이다. ② 미국은 과장된 북한 핵무기 위협론을 근거로 북한 붕괴를 위한 전쟁계획을 결행하려고 한다. ③ 현재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는 미국-일본 군사동맹이 북한 위협론을 내걸고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려 하기 때문에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④ 미-일 군사동맹이 북한 붕괴를 위한 전쟁협력 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⑤ 일본의 유사법제를 반대하는 운동은 미-일 군사동맹에 의한 북한붕괴 전쟁을 예방하는 길이다. 여기에서 한국의 반전평화 운동 세력과 일본의 반전 평화운동 세력이 협력체제를 갖출 필요성이 생긴다. 한-일 평화운동 세력의 국제연대를 중심으로 미국의 평화운동 세력과 연계하는 가운데 한-미-일 군사공동체의 북한에 대한 전쟁구도를 파탄내야할 것이다.

일본을 대표한 新原昭治 일본 원수협 전문위원은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세계 각국의 국민들과 정부들이 유엔의 평화 Rule을 지키라고 미국에 요구한 의미를 강조했다. 핵무기 전면금지와 유엔의 평화 Rule의 옹호를 위한 국제연대가 중심과제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핵무기 사용, 핵개발의 위험과 핵무기 철폐의 전망’이란 주제의 제2회의에서는 뉴질랜드, 필리핀, 중국, 인도, 스웨덴, 일본의 대표가 발언했다. 일본 원수협의 高草木博 사무국장은 ‘세계의 한사람 한사람의 행동이야말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하며,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 60주년이 되는 2005년을 핵무기도 전쟁도 없는 해로 맞이하기 위해 전 세계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했다.

 

8월 4일의 분과회의

 

8월 3일의 국제회의에 다룬 문제를 더욱 구체화하기 위한 분과(分科)회의가 열렸다. 분과회의는 ① 유엔 중심의 평화질서와 평화운동의 과제(제1분과) ② 핵무기 사용‧ 핵개발의 위험과 핵무기 철폐의 전망(제2분과) ③ 피폭자‧ 핵 피해자, 피폭실상의 홍보와 원호 연대(제3분과)라는 3개의 주제로 나뉘어 개최되었다.

 

제1분과;

 

제1분과의 참석자들은 이라크 전쟁, 미국의 핵전략에 대한 우려, 각국의 반핵‧반전운동의 발전을 논의했다. 영국 핵군축 운동(CND)의 Kate Hudson 여사는, 영국이 이라크 전쟁반대 운동의 선두주자가 된 저력을 설명했다. 올해 2월 15일 런던에서 200만 명의 대중적인 이라크전쟁 반대집회에 성공한 배후에 CND, 전쟁저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 영국 주재 이슬람인 협회가 연대한 힘이 있었다고 한다.

제2분과의 참가자들은 미국 핵전략의 위험이나 주일미군 기지의 기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고했다.

 

8월 5일의 회의

 

3일째 계속된 국제회의는 이라크 전쟁반대 운동의 힘을 결집하여 반핵평화운동에 나서자는 내용의 국제회의 선언을 채택하고 폐회했다. 이 국제회의 선언은「죄 없는 다수의 시민을 살상한 미국‧영국군에 의한 이라크 전쟁은, ‘국제분쟁은 유엔을 통하여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유린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부시 정권의 핵전략으로 인한 ‘제2의 히로시마, 제2의 나가사키’의 위험을 지적했다. 미국이 국제적으로 전례 없이 고립되어 있다고 기술한 이 선언은, 2000년의 핵확산 금지 조약(NPT) 재검토 회의에서 핵보유국이 합의한 ‘핵무기 철폐의 명확한 약속’을 실행하라는 목소리가 점차 강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선언은 또 미-일 군사동맹 아래에서 미국을 추종하는 자위대의 해외파병 등의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정부를 비판했다.

 

8월 6일 히로시마 피폭의 날

 

피폭 58주년을 맞이한 이날 오전 평화공원에서 ‘평화기념 식전(式典)’이 히로시마 시의 주최로 거행되었다. 약 4만 명이 참석한 이 식전에서 秋葉忠利 히로시마 시장이 ‘평화선언’을 낭독했다. 그는 ‘평화 선언’에서 ‘핵확산 금지 조약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놓여있다’고 말하고 ‘핵무기의 선제(先制)사용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는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지목하여 소형 핵무기의 연구를 재개한 미국의 핵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와 동시에 유엔헌장을 무시한 이라크 전쟁도 비난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피폭의 참상을 보고 핵전쟁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오후에 열린 ‘원수폭 금지 2003 세계대회의 히로시마 전체 총회’가 폭심지(爆心地; epic center)에서 5백 미터 떨어진 히로시마 현립 종합 체육관에서 열렸다. 64명의 해외대표를 포함한 2,300명이 참석한 옥내 대중집회에서 부시 정권의 야만적인 전쟁정책을 중지시키고 핵무기를 철폐하자고 결의했다. 이 집회에 히로시마 시장이 특별강연을 하여 자리를 빛냈다. 미국, 스웨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대표, 한국‧미국에 거주하는 피폭자의 발언이 있었다. 이 집회에서는 ‘히로시마로부터의 호소’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집회는 히로시마에서의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를 총결산하는 모임이었다. 7일부터 나가사키로 장소를 옮겨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를 속개했다. 올해는 나가사키 대회에 역량을 집중하는 해이므로 나가사키 대회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히로시마에서 바라본 일본 정세

 

필자는 히로시마에 머물면서, 유사법제 통과 등 군사대국화로 치닫는 일본의 국내정세를 시민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취재했다. 내가 만난 히로시마 시민들의 대다수는 유사법제 통과 이후의 일본 정세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었다. 특히 사상 초유의 장기불황이 예상외로 심각했다. 히로시마 시내의 중소기업, 자영업은 기력을 잃어 자포자기의 상태이었다. 필자가 들른 히로시마의 서민 동네의 음식점, 상점 등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필자가 민박한 집 주인은 택시운전수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소득이 40%로 급감했다면서 걱정을 했다.

이런 난국에는 일반적으로 ‘위기를 돌파할 능력을 갖춘 영웅’을 대망하는 대중심리가 작동할 우려가 있으며 나치즘의 히틀러,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天皇이 ‘영웅 대망론(정치적 메시아 대망론)’을 통해 부각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을 벗어나게 해줄 메시아(messiah)를 대망하는 일본인에게 고이즈미 수상은 메시아의 아류로 비춰지고 있는 듯했다. 메시아의 대리인처럼 행세하는 고이즈미가 일본국민들에게 다가가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만들자고 유혹할지 모른다.

앞으로 일본의 위기 탈출용으로 ‘유사법제-군국주의’카드가 다시 이용된다면 변용된 천황 체제가 재가동될 가능성도 엿보였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관련되어 2년째 소동을 벌이는 일본 우익세력의 망동을 보면, 일본에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파시즘이 재발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혹시 장기불황의 돌파구를 한반도에서 찾으며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가다듬으며 나가사키로 향하는 신간선 열차에 올랐다.

 

8월 7일 나가사키에서

 

‘원수폭 금지 2003 세계대회‧ 나가사키’가 7일 시민회관에서 개막되었다. 한국의 8.15 행사 때 통일 선봉대가 전국을 순례하듯 일본도 8월 3~9일 히로시마‧나가사키 반핵 대회에 즈음하여 전국을 몇 개의 코스로 나눠 순례한 다음 모두 히로시마‧나가사키로 집결한다. 올해는 나가사키에 모두 집중하는 해이므로, 순례단, 평화 단체, NGO, 일반 시민 등 7,300명이 시민회관에 운집했다.

해외대표 60명이 단상에 오른 다음 옥내 대중집회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지난해 대회에 비하여 더욱 열기가 있었고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이라크 전쟁 반대운동에 열중한 저력이 이 대회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대회에서 필자의 두 번째 연설이 있었다. 연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인은 북한의 핵무장에 반대하며, 만약 북한이 핵무장한 사실이 드러나면,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계획이 심각하므로 이를 반대하는 운동이 더 중요하다. 최근 한국민의 전쟁위기 의식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한국의 NGO 역시 미국의 북한붕괴 전쟁 계획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정세는, 미국의 전쟁추진 세력인 Neo Con(신보수주의자 그룹)과 김정일 정권이 대결하는 양태이다. 이라크와 달리 북한에 대한 전면전이 어렵다고 판단한 펜타곤은, 북한의 무기수출 선박 등에 대한 제한적인 폭격계획, 김정일 위원장을 소형 핵무기로 살해할 계획을 추진중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한다면 일본을 비롯한 동북 아시아 전체로 전쟁이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전쟁의 먹구름을 몰고 오는 미·일 군사동맹의 전쟁게임을 중단시키는 운동을 전개해야한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의 민중들이 연대하여 일본의 유사법제 체제를 무력화(無力化)시켜야한다.“

 

8월 8일의 분과회의

 

이날 핵무기 문제, 이라크 전쟁, 유사법제, 피폭자 문제 등 12가지 주제로 분과회의가 열렸다.

250명이 참석한 제1분과회에서는 주로 미국의 핵무기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450명이 참석한 제2분과회의에서는 미국의 불법적인 이라크 전쟁과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8월 9일 나가사키 피폭일

 

나사사키의 평화 식전이, 58년 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원자폭탄이 떨어진 시각에 맞춰 열렸다. 나가사키 시장은 ‘평화선언’ 속에서 ‘영국‧미국은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보유를 이유로 유엔의 결의를 얻지 않고 전쟁을 강행했다’고 고발했다. 그는 ‘소형 핵무기 등의 개발이나 핵폭발 실험의 재개를 시사하며 경우에 따라 핵무기의 사용을 不辭하는’ 미국의 핵전략을 엄혹하게 비판했다. 또한 그는 한반도의 비핵화 공동선언의 실현과 북-일 평양선언의 정신에 입각하여 동북 아시아 비핵지대의 창설에 착수하자고 호소했다.

이어 이날 오후에 ‘원수폭 금지 2003 세계대회’의 폐막식이 나가사키 시민회관에서 7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해외대표, 피폭자, 일본 NGO 대표의 발언에 이어 일본 전국의 청년‧학생 단체들이 등단하여 반핵평화의 의지를 드높였다. 7천여 명이 ‘We shall overcome'을 열창하는 가운데 ’원수폭 금지 2003 세계대회’의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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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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