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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오키나와의 풍물 (1)


김승국


오키나와 음식을 먹으면 장수한다


오키나와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다. 오키나와인 중에서도 여성이 장수한다(평균 83.47세). 오키나와의 인구 130만명 중 백 살이 넘는 사람은 457명(2001년 9월 1일 현재)이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인이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의식동원(醫食同源)’ 즉 ‘약(의약)과 음식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비결이 있다. 오키나와 말로 ‘음식물’은, ‘약이 되는 음식(クスイムン)'과 ‘몸을 보호하는 음식(ヌチグスイ; 생명의 약)’을 뜻한다. 약이 되지 않은 음식은 먹거리의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뜻을 따르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옛날부터 약이성(藥餌性) 음식을 많이 섭취한 게 장수의 비결이다.

오키나와 섬의 요리는 궁중요리와 서민요리로 나뉘는데, 두 가지 요리 모두 건강하게 먹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돼지고기를 주요 식단으로 삼는 서민요리는, 가난한 민중들이 자연 속에서 약이성 식품을 많이 개발한 지혜에서 비롯된다.

오키나와인의 장수 비결을 연구한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공통점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① 돼지고기를 통해 단백질을 섭취한다 ② 다시마를 많이 먹고 짠 음식(젓갈 등)의 섭취를 최대한 줄인다 ③ 노후에도 적당한 운동 · 노동을 하면서 일년 내내 몸을 움직인다.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장수식품인 돼지고기(지방분을 뺀 삶은 돼지고기)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먹을 수 있다. 그런데도 누구나 장수하는 게 아니다. 왜 그럴까? 삶의 궁합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인과 같은 ‘삶의 궁합(환상적인 열대 해역에 파묻혀 느긋한 마음 · 음주가무를 즐기는 낙천성, 이웃들과 즐거이 담소하는 공동체 의식, 나눔의 정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노동 지향성)’없이, 삶은 돼지고기만 먹으면 오히려 배탈이 나서 생명을 해진다. 삶의 궁합이 음식의 궁합과 맞아야 오래 산다.

조선 사람들처럼 몇 백 년 동안 일본 · 미국이라는 외세의 지배를 당한 식민지 백성 ‘오키나와인’이 낙천적이라는 평가가 일면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낙천적인 식민지 백성’은 존재할 수 없나? 오히려 조선 사람 · 오키나와인이 낙천적이기 때문에 식민지 백성으로서 갖은 고초를 딛고 살아남지 않았나?

이제 이들이 ‘탈식민의 인동초’로 생존하기 위해 ‘비관적인 역사를 지양하는 낙관적인 변혁’을 꿈꾸어야하지 않을까? 낙관적인 변혁을 꿈꾸는 한국의 수난자(민중)들이 ‘변혁의 저해세력을 씹는(?) 기분으로 돼지고기(삽겹살)를 씹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오키나와인은 미군이라는 지배계급을 씹듯(?) 삶은 돼지고기를 씹는 게 아닐까?

너무 심한 논리의 비약이지만 “역사의 변혁을 위해 돼지고기를 씹자!!” “역사 변혁용 스테미나 식품(?)인 돼지고기를 배터지게 먹자!!” “역사의 변혁을 준비하는 인생의 궁합과 돼지고기의 궁합을 맞춰가며 지배계급 보다 오래 살자!!”

이제 돼지고기를 먹는 일만 남았다. 한국 땅에서 삼겹살은 질리게 먹었으니 오키나와의 삶은 돼지고기를 먹으러 가자! 역사의 변혁을 위한 힘을 비축하기 위해...

오키나와 요리는 돼지고기에서 시작하여 돼지고기로 끝난다. 그러면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한 오키나와의 서민요리를 소개한다..


1. 돼지고기 요리


• 아시티비치(돼지 족탕)
호탕한 오키나와 요리이다. 돼지 족발을 장시간 끓여 젤라틴 질을 우려낸 국물은 독특한 풍미가 있다. 젤라틴 질은 무릎이 노화하는 것을 방지한다고 하여 노인용 식사(장수용 식사)로 귀중한 건강식품이다.


• 라후테(저육 조림)
오키나와에서 가장 대표적인 (중국을 기원으로 하는) 돼지고기 요리이다. 가죽이 붙은 삼겹살에 설탕 · (가다랭이 포에서 우려낸) 국 · 간장 · 아와모리(오키나와 소주)를 부어 살이 연하게 될 때까지 장시간 푹 끓인(삶은) 조림이다. 라후테는 류큐 왕조 시대부터 내려온 궁중요리의 대표적인 유산이다.


• 소키 보네노 오시루(돼지 갈비탕)
돼지 갈비와 다시마, 표고버섯, 순무 또는 무 등을 연하게 될 때까지 끓인 감칠맛 나는 국이다. 오래 끓일수록 맛이 좋아진다.


• 나카미노 스이모노(돼지 내장 국)
돼지의 창자와 밥통을 장시간 잘 씻어 냄새를 없애고 삶는다. 삶은 것을 잘게 저미고 표고버섯과 함께 진한 다시국물(가다랭이 포나 다시마 등을 끓여 우려낸 것)로 연해질 때까지 끓인다. 잔치 상의 필수품이다.


• 미미가 사시미(돼지 귀가죽 회)
돼지의 귀가죽, 얼굴 가죽으로 만든 회 무침이다. 재료를 삶은 다음 채를 쳐서 무침 또는 초무침으로 내놓는다.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있어 아와모리 소주의 안주로 쓰이기도 한다.

• 미미가아(돼지 귀)
오키나와인은 돼지의 귀부터 발바닥 · 내장까지 ‘돼지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먹어치운다. ‘돼지 킬러’인 셈이다. 돼지고기를 “돼지 같이” 먹는다고나할까? 그중에서 돼지 귀를 먹는 재주는 비상하다. 돼지 귀는 모든 미식가들이 먹어야할 음식은 아니지만, 오키나와의 찜통 같은 무더위 여름날 밤에 차가운 맥주와 함께 먹는 맛을 거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 오키나와 소바(오키나와 밀국수)
돼지고기를 꾸미의 한 가지로 쓴 매우 인기 높은 음식이다. 면이나 국물 · 꾸미가 일본의 소바와 다르다. 면은 밀가루를 재료로 쓰고 메밀가루는 일체 안 쓴 납작 국수이다. 국물을 낙낙히 붓고 돼지고기 · 어묵 · 파 등을 얹어 먹는다.
오키나와 소바는 오키나와 노동자들의 음식인데, ‘소바’라는 이름에 속으면 안 된다. 소바(메밀국수)가 아니라 돼지국물에 말아 나오는 우동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종류는 뼈를 발라낸 돼지 갈비살과 어묵 위에 고레구스(아와모리 술에 절인 고추)를 얹은 ‘소오키 소바’, 소멘과 유사한 흰 국수 ‘야에야마 소바’이다. 오키나와에서도 메밀국수(소바)를 만드는데, 그 이름은 ‘우둔야마 소바’이다.

• 기타 돼지고기 요리
‘이나무돗치’는 가짜 멧돼지 국(이노시사-모도키)이라고도 하는데, 돼지고지 · 가마보토(흰 생선살 어묵) · 표고버섯 · 곤약을 가츠오 다시 · 돈코츠(가다랭이 혹은 돼지고기 국물)에 시로미소(흰 된장)를 넣고 요리한 것이다. ‘이카스미지루’는 오징어 먹물에 돼지고기를 끊인 것으로 원기를 돋우는 국이다.


2. 염소고기 요리


오키나와인이 주로 돼지고기를 통해 동물성 단백질을 취하지만 염소도 즐겨 먹는다. 염소는 간단히 사육할 수 있는 가축이므로 어느 농가에도 염소 우리가 있었다. 염소고기는 히자구수이(염소약)이라고 불러 농촌의 검소한 식사를 보태는 영양원이었다.

염소고기는 도살 직후에 먹는 게 좋다고 하여 친구 · 친척이 모여 한꺼번에 먹어 버리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누구네 집에서 염소요리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이웃 사람들이 몰려든다. 어느 집에서 보신탕을 끓인다는 소문을 듣고 군침을 흘리며 덤벼드는 한국 남정네들의 모습을 상기해보라..).

‘신메나비’라고 부르는 큰 남비로 장시간 끓인 염소고기 보신탕(야기지루)을 더운 여름 해질녘에 모두 즐겁게 땀을 흘리며 먹으면 여름을 안 탄다고 한다. 원기를 돋우고 새집을 지을 때 축하하려고 염소를 잡던 옛 전통에서 비롯된 음식이다.

이 밖에 (설익은 고기를 가죽이 붙은 채 엷게 저민) 염소 회, (된장 조림 · 설탕 · 간장으로 끓여 조린) 염소 라후테, 지이리치(염소 피 볶음)가 있다.

염소고기는 냄새가 지독하여 남비에 끓일 때 악취가 난다(악취를 없애기 위해 쑥을 많이 집어넣는다). 이런 탓인지 염소고기의 맛을 아는 40대 이상의 오키나와인들이 주로 먹는다. 염소고기 요리점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냄새가 역겨운데 그걸 회(사시미)로 내놓은 요리솜씨가 대단하다.


3. 야채 요리


오키나와의 밝은 햇볕 아래에서 녹황색 계통의 야채가 잘 자란다. 야채는 생것 보다 데쳐서 먹는 수가 많다. 대표적인 야채 요리를 들면 다음과 같다.


• 고야(여주외)
‘고야’는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야채이다. 독특한 쓴 맛이 식욕을 돋우고 풍부한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어서 여름을 타는 것을 막아준다. 고야와 두부를 기름에 볶은 ‘고야 찬푸루’가 유명하다. 고야 찬푸루는 찬푸루의 대명사이며, 멜론을 볶아서 오키나와 특유의 두부 ‘시마도후’와 함께 내놓는다.


• 나베라(수세미)
조리용으로 설익고 파란 색깔의 수세미를 사용하는데 고운 푸른 빛은 여름의 미각에 맞는다. 수세미 · 돼지고기 · 두부를 된장으로 볶은 ‘나베라 은부시’를 즐겨 먹는다.


• 후치바(쑥)
쑥은 다년생 약초로서 독특한 색깔과 향기를 갖고 있으며 즙을 내서 마시기도 한다. 떡이나 카스텔라의 향로로도 사용된다. ‘후치바 주시(쑥죽)’을 많이 먹는다. 후치바 주시는 쑥을 넣어 만든 쌀죽인데 두 종류가 있다(볶음밥 같은 ‘쿠화’/ 부드러운 조오스이로 만드는 ‘야화라’). 오키나와인이 쑥을 많이 먹기 때문에 장수한다는 분석도 있다.


• 파파야 볶음
푸르고 설익은 파파야를 야채 대용으로 쓴다. 단백질을 분해하는 요소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파파야와 함께 끓이면 고기가 연해지고 소화가 잘 된다.


4. 고구마 요리


고구마는 일찍이 가난한 농가의 기본적인 먹거리이었다. 농가의 긴 하루는 새벽에 ‘신메나비’라고 부르는 큰 남비로 고구마를 찌는 데서부터 시작하였다. 생활양식을 고구마에 완전히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가정에서도 사육하던 돼지의 사료로, 고구마 껍질이 사용되어 양돈 발전에 공헌하였다.

고구마는 은무쿠지(고구마를 짓이긴 전분)로 해서 많이 먹었다. 고구마 요리로는 ‘은무쿠지안다기(찰기 있는 고구마 튀김)’, ‘은무쿠지풋투루(고구마 반죽)’, ‘지마미토후(찰기가 있는 두부)’ 등이 있다. 고구마는 비상용으로 쓰이고 태풍 때문에 농사작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요긴하게 쓰였다.


5. 생선 요리


오키나와는 물고기가 풍부한 바다로 둘러싸였으나 생선 요리는 돼지고기 요리처럼 발달하지 않았다. 기온이 높은 관계로 생선의 선도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선 구이가 많은 일본 본토와 달리 국이나 조림 · 튀김으로 해 먹었다. 오키나와 근해의 생선은 맛이 덤덤하고 기름기가 적었기 때문에 그냥 튀겨 먹었다.

오키나와의 여름날 기운을 앗아가는 열기 속에서 먹을 만한 또 다른 요리는 ‘이라부지루(바다 뱀 국)이다. 이라부(말린 바다 뱀)를 다시마와 돼지고기를 넣고 몇 시간 끊인다.

칼슘 · 비타민이 풍부한 다시마는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장수식품이다. 기름진 돼지고기 요리의 필수품이 다시마이다. 오키나와인이 다시마를 가장 많이 소비하지만 (오키나와에서 채취되지 않으므로) 홋카이도에서 수입해온다.


6. 두부 요리


오키나와는 두부의 섬이다. 두부 요리는 찬푸루를 비롯하여 ‘도후요’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두부 찬푸루(두부 볶음)는 두부를 소재로 한 오키나와 가정 요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찬푸루는 오키나와의 가정 요리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이것을 안 만드는 가정이 없다. 두부와 철 따라 나도는 푸성귀에 맞춘 단순한 요리인데 이상하게도 싫증이 안 난다.

두부를 네모나게 베고 그 위에 작은 물고기 소금절이를 얹힌 ‘수쿠가라스토후’도 인기 있는 요리이다. ‘유시도후’라는 순두부도 식탁에 잘 오른다. 또 오키나와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도요후’는 두부 가공식품인데, 완전히 발효시켜 굉장히 맛이 강하고 밝은 핑크색을 띤 오키나와식 발효두부이다. 그 미묘한 감칠맛과 향기로 인하여 동양의 치즈로 불린다. 이쑤시개로 조금 찍어 먹어 보면, 더운 날씨에 잠에 빠졌다가 확 깨는 ‘음식으로 된 각성제’이다. 그 색깔은 베니코오지(붉은 발효제)에서 나오고 오키나와식 까망베르 치즈로 보면 된다. 이 것을 만들기가 너무 힘들어 한때는 류규 왕국의 귀족들만 먹었다.

이 밖에 순두부 국인 ‘유시도후’와 ‘우지라 도후(당근과 강낭콩을 섞은 두부 튀김)’이 있다.


7. 차


오키나와인은 모두 차를 잘 마신다. 특히 노인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차를 한 잔 마신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오키나와인지라 전통적으로 신핀 차(재스민 차)를 즐겨 마셨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대만에서 ‘시미 차(茶)’와 ‘우롱 차’가 들어왔다.


8. 과자


류규 왕조 시대에는 왕족만이 류규 과자를 맛볼 수 있었다. 현재는 왕조 시대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과자 장인들이 류규 과자를 만들고 있다. 오키나와에 50종의 과자가 있다. 오키나와의 특산인 흑설탕은 백설탕을 제조하기 전의 단계에서 만들어진다. 영양가 높은 흑사탕은 일반 가정에서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할 때 곁들여 내는 과자이다.

서민적인 취향을 맛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과자는 ‘사타안다기(도너츠를 닮은 튀김 과자)’이다. 필자가 오키나와에 갈 때 마다 가장 즐겨 먹는 과자인데 독특한 흑사탕 맛이 일품이다. 떡(갈분 떡) · 찐빵도 인기품이며 ‘아마가시’라는 단 녹두팥죽이 있다.


9. 기타 인기 요리


다른 인기 있는 요리는 다음과 같다;
① 호부추가 든 오키나와식 크레페 ‘히라야치(태풍 때문에 집에 갇혀 있을 때 주식으로 먹던 것)’
② 바다 포도인 ‘우미 부도오’는 ‘초록색 캐비어’라고도 부르는데, 미야코지마 섬에서 나는 괴상한 질감의 해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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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32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