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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오키나와에 평화를 (6)

“미군기지만 없으면 오키나와는 낙원”


김승국


아름답기 그지없는 오키나와에 암세포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미군 기지를 바라보며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만 없으면 낙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미군기지의 맹독성이 오키나와 사회에 침투하여 진주같이 빛나던 오키나와를 실낙원(失樂園)으로 만들었다. 오키나와의 지도를 보면 미군기지가 점점이 박힌 듯 보이지만, 미군기지의 위력을 생각할 때 오키나와가 오히려 미군기지에 포위되어 있다고 표현하는 적절할 것이다. 차를 타고 조금만 달려도 미군기지가 불쑥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미군기지가 필자를 미행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필자는 지난 2월 2일부터 6일까지 오키나와에서 열린 ‘동북아시아의 평화구축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투쟁 현장 등을 돌아보았다. 단 4일간의 일정이었지만 필자를 맞이한 오키나와 평화운동가들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상황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들로부터 들은 미군기지 이야기를 시간순서에 따라 소개함으로써 더욱 현장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2월 2일, 오키나와의 첫 인상

 

2006년 2월 2일, 필자를 태운 비행기는 밤 10시경 오키나와의 나하 공항에 도착했다. 나하 공항은 미군과 민간이 함께 사용하는 민 · 군 공항이다. 미군이 민간용으로 빌려준 공항이다. 그래서 나하 공항 활주로의 한켠에서 군용기의 이착륙이 분주하게 이루어진다. 군용기의 이착륙 굉음을 뚫고 민간기들이 나비같이 사뿐히 내려앉는다. 군용기와 충돌을 피하려는 듯 고즈넉하게 고개를 숙인 듯한 모습이다.

나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미군의 존재를 직감했다. ‘아하! 여기는 류규(琉球; 오키나와의 옛 이름)가 아니라 미군 공화국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하 공항에서부터 물밀 듯 다가오는 미군 냄새, 미군의 체취, 미군의 색깔(카키색), 미군의 상징물, 미군 깃발, 미군 군용차, 미군의 위용, 미군 막사, 미군부대와 오키나와인을 구별 짓는 철조망 등이 오키나와를 떠날 때까지 필자의 신체에 찰싹 달라붙어 ‘오키나와는 미군 공화국임을 체화하라’고 강하게 권유하는 듯했다.

공항의 출구를 나오자마자 심포지엄 주최 측의 인사들이 필자는 마중 나왔다.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지바나 쇼이찌(知花昌一, 57세)씨가 경영하는 민박집(자택 안에 차린 민박집)이 있는 요미탄손(讀谷村)으로 가는 승용차에 올라탔다. 오키나와 민중운동 · 미군기지 반대운동의 지도자인 지바나 씨는, 39살의 젊은 나이에 일장기를 불태운 용감한 사나이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천황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일장기를 불태우려면 목숨을 거는 결단이 필요하고 죽을 때까지 왕따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게 유명세를 치룬 탓인지 지바나 씨에게 일본 각지에서 강연 청탁이 쇄도하고 있으며, 그는 몇 권의 책을 출간하여 필명을 날리기도 했다. 그가 강연하는 장소에 우익의 극렬분자들이 나타나 테러를 가한 적도 있다. 그는 대중적인 반기지 운동의 투사, 마을의 일꾼(요미탄손 의회의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적으로 오키나와 문제를 해결 하겠다’는 정치적인 야심도 갖고 있다.

지바나 씨의 소개가 좀 장황했지만, 그가 말하는 미군기지 이야기는 다분히 민중지향적인 것이었다. 그는 자기 집(민박집)으로 가는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면서 필자 일행을 안내했다. 그의 집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걸리는데, 그 사이 차 속에서 나눈 미군기지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는 차 속에서 주일미군 재편(일본판 GPR)의 핵심인 오키나와 기지의 변동을 설명했다.

“미군은 가데나 기지의 남쪽에 있는 기지를 없애거나 축소하는 대신 헤노코(辺野古) 주변으로 기지를 밀집시키려하고 있어요. 후덴마 기지를 중심으로 한 오키나와 남부의 기지를 헤노코 등의 북부지역으로 이동시키면서 기지의 기능을 대폭 증강하려는 것이지요.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의 숫자가 7000명 줄기는 하지만, 결국 미군기지의 전투력은 질적으로 향상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어요. 미군이 오키나와 남부의 낡은 기지를 없애고, 헤노코 등의 북부지역에 최첨단 기지를 새롭게 건설하려는 것입니다.”

 

점령지, 오키나와의 슬픈 자화상

 

한마디로 밑돌 빼어 윗돌 괴는 방식으로 일본 ·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한미군의 재편도 거의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한국에서도 LPP(연합토지 관리계획)의 미명 아래 밑돌(서울 북부의 낡은 미군기지)을 빼어 윗돌(평택에 신설될 최첨단 미군기지)을 괴는 주한미군의 재편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밑돌 빼어 윗돌 괴는 미군기지 재편(GPR)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일본 · 한국정부가 쾌척하는 것도 동일한 모습니다. ‘쾌척’ 보다 ‘상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나라한 표현일 것이다. 일본 · 한국이라는 ‘봉’이 형님 나라인 미국에 바보처럼 ‘상납’하는 게 아닐까? 조선시대에 형님 나라인 청나라에 조공을 바쳤지만, 이렇게 바보같이 ‘상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슬픈 현실이다. 그런데 이곳 오키나와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한국과 흡사한 미군기지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다.

슬픈 이야기만 하면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좀 재미난(?) 이야기를 지바나 씨의 입을 빌어 소개한다. 요미탄손에 다가오자 ‘도리 주둔지(Dori station)'라는 기지가 나타났다. 이 기지 이름 앞의 ‘도리’는 일본 신사의 입구에 서 있는 기둥 문을 의미함과 동시에 이 기지의 유래를 암시한다. 1945년 미군이 오키나와를 점령하기 위해 맨 처음 상륙한 곳이 ‘도리 주둔지’가 있는 요미탄손의 해변인데, 오키나와 전쟁이 끝난 다음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일본 신사의 도리와 똑같은 석조기둥을 세우고 두 기둥을 연결하는 난간에 후지산 표식을 했다.

당시 일본을 점령한 미군들은 일본의 세 가지 상징으로 신사 · 후지산 · 게이샤(기생)를 떠올리고, 일본을 굴복시켜 승전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첫 상륙 지점에 미군 기지를 만들고 입구에 신사의 도리를 세운 다음 후지산 모양을 새겨 놓았다. 그렇게 해놓고 게이샤는 돈 주고 사면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듯 일본의 세 가지 상징을 모두 정복한 기쁨을 만끽하며 미군들이 몇 십 년 동안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 지바나 씨의 이야기였다.

또한 지바나 씨는 “요미탄손 마을 입구의 도로가 미군 소유이므로, 일본 경찰이 이 도로상에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고 이 도로를 질주하거나 사고를 내도 일본 경찰이 단속하거나 체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 도로마저 미국이 소유하면서 치외법권을 누리는 곳이 오키나와란다. 그래서 이곳은 ‘미군 공화국’일 수밖에 없다.

웃지 못 할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한다. 요미탄손 주변의 미군기지 70만평(올 11월에 주민들에 반환될 예정임)은, 1945년 미군 주둔이후 일본 정부가 지주들로부터 사들여 미군에 제공한 땅인데, 그 땅 중 10만평(요미탄손의 의회 건물 포함)을 미군으로부터 빌려 쓴 주민들이 임대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오키나와의 이곳저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자신들의 땅을 쓰는데 점령자인 미군에 월세(한달에 73만엔)를 낸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 아닌가? 땅 임자가 임대료를 내고 땅을 빌려 쓰는 웃지 못 할 코미디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요미탄손 부근 미군기지 70만평의 대다수가 올 11월에 주민들에게 반환되는 탓인지, 들판 곳곳에 경작 금지 팻말이 나붙었다. 70만평 중에서 눈에 띠는 곳이 ‘코끼리 우리(elephant cage)’라는 감청용 통신시설이었다. 냉전시대에 소련 · 중국 · 북한의 군사기밀을 감청 · 방수하기 위해 거대한 안테나 탑을 촘촘히 연결한 시설인데, 1998년부터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인공위성을 우주공간에 띄우고 감청 · 방수하는 첨단장비 ‘에쉘론’에 밀려 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잉태한 쌍둥이, 평택과 오키나와

 

이튿날인 지난 2월 3일 오전엔 헤노코 기지 반대 투쟁 현장과 기노완(宣野灣) 시청을 방문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헤노코로 가는 도중에 가데나 기지의 탄약고를 지나쳤다. 도로의 오른쪽 숲 속에 탄약고가 있고 왼쪽 마을에 주택이 밀집해 있다. 원래 오른쪽 숲 속에 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미군이 1945년에 진주한 이후 쫓겨나 왼쪽에 집단촌을 형성했다. 그래서 오른쪽 탄약고의 풍경과 왼편에 보이는 토끼장 같은 집들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으로 보였다. 궁전같이 넓은 기지 안에 거주하는 이방인 미군과 토끼장 같이 좁은 집에서 살아가는 오키나와 원주민의 삶은 ‘역설’ 그 자체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가데나 기지의 탄약고에 핵무기가 존재한다는 의혹이 계속되어 왔다는 점이다. 물론 미군 당국은 핵무기의 존재여부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근거 없는 소리라며 발뺌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76년의 탄약고 정비 문서에 ‘핵무기를 정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대한 해명은 현재까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조금 더 달리니 한센 기지(Camp Hansen)가 나타났다. 한센 기지는 슈와브 기지(Camp Schwab)와 더불어 오키나와 북부의 대표적인 미 해병대 기지이며, 이들 기지 주변의 헤노코에 (북한의 종심을 두들기고도 남을 만큼의 위력을 가진) 수직 이착륙기 ‘MV22 오스프레이’가 배치될 예정이다.

한센 기지는 미 해병대의 강습 상륙 연습장인 그린비치(Green beach)를 보유하고 있다. 그린비치라는 영어 단어가 암시하듯 ‘푸르디 푸른 해변’을 미군이 독차지한 채 한반도(북한) 상륙 연습을 위한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 해병대는 슈와브 기지 등에서 북한군을 가상적으로 상정하고 게릴라 훈련을 벌이고 있다.

오키나와 북부 산악지대의 정글에서 북한군을 죽이는 연습을 목숨 걸고 하는 미 해병대. 이처럼 전쟁연습이 한창 진행 중인 오키나와 북부는 북한붕괴 작전의 새로운 거점이 되어 가고 있다. 결국 헤노코에 새로운 기지가 들어서게 되면 미 해병대의 북한 붕괴를 위한 철옹성이 또 하나 등장하는 셈이다.

한센 기지와 슈와브 기지 주변의 상가가 요즘 파리를 날린다는 설명을 들으며, 차창으로 보이는 기지촌을 바라보았다. 대낮이어서 그런지 너무나 한산했다. 밤에는 얼마나 요란할지 모르나, 절반은 개점휴업 상태인 듯했다. 정적이 감도는 기지촌을 유심히 관찰하는 필자에게, 유영자 씨(오키나와 거주 한국인) 씨가 “진짜로 파리 날리는 곳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기노자 마을(宣野座町)로 차를 몰았다.

한센 기지와 슈와브 기지의 사이에 ‘기노자’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입구에 ‘국제 교류촌’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이 국제 교류촌은 오키나와 북부 주민들이 헤노코 기지를 용인하는 대가로,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세운 국제교류 센터다.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 북부의 12개 지방자치체에 10년간 1000억 엔을 들여 국제 교류촌을 세울 예정이며 이미 일부 시설이 가동 중인데, 거의 개점휴업 상태이다.

일본 정부가 거대한 시설을 관리하기가 버거우니까 기노자의 지자체에 관리를 맡겼으나 운영비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일본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한편 건설족(토목 공사 회사)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비슷한 전철을 한국도 밟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평택 미군기지의 배후지에 세우려는 국제화 계획지구도 결국 파리만 날리는 오키나와의 국제 교류촌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헤노코 기지 신설에 반대하는 투쟁 본부에 도착했다. 일본의 외딴 섬인 오키나와에서도 오지인 헤노코의 앞바다를 메워 후덴마 기지의 대체 기지로 만든다는 이 계획은, 지난 1995년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여중생 성폭행 사건에서 비롯됐다. 지난 1995년 9월 4일 미 해병대 병사가 한 여중생을 성폭행한 사건에 분노한 오키나와 주민 8만 5천명(오키나와 전체 인구 130만 명)은 사건 발생 다음 달인 10월 21일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에 놀란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는 ‘SACO(오키나와 시설구역에 관한 특별행동 위원회)’를 11월 19일 출범시켰으며, 이듬해에는 “후덴마 기지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지를 헤노코에 신설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점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주일미군 반대운동

 

그러나 이런 발표를 통해 오키나와 주민들을 진정시키려던 미·일 당국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후덴마 기지가 있는 기노완 시의 시민들은 후덴마 기지를 아예 철폐하라고 주장하는 한편 헤노코의 주민들은 새로운 기지가 헤노코에 들어서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퇴양난을 해결하기 위해 미·일 정부가 협상에 협상을 거듭한 끝에 ‘미일 동맹 · 주일미군 기지의 재편을 위한 중간보고’를 지난 해 10월 29일에 발표했으나, 이 역시 헤노코 기지반대 운동을 냉각시키는 데 역부족이었다.

헤노코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앞장서서 “우리 마을을 지키고 쥬공(헤노코 앞바다의 산호초 속에서 살고 있는 희귀 어족)의 생명을 지키자!”고 외친 구호가 일본 전역에 메아리쳐, 헤노코 반대투쟁은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지금 헤노코 기지신설 반대운동은 주일미군 재편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다. 노쇠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평화의 투사가 되어 싸운 끝에 미국의 헤노코 기지 건설계획에 엄청난 차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에도 오키나와와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이 십시일반 투쟁자금을 모금하면서 헤노코 기지신설 반대의 인간 띠를 형성하고 있다.

슈와브 기지 정문 앞에서 매일같이 1인 시위를 한다는 아줌마, 헤노코 해변의 모래사장 위에 하루 종일 ‘미군 나가라!’는 구호를 작대기로 그리고 있다는 할아버지의 나 홀로 시위 등, 이런 모습들이 강물이 되어 헤노코 반대 투쟁의 대하(大河)를 이루고 있다. 양심적인 시민들이 하나의 점을 이루어 나 홀로 시위를 하면서 이심전심으로 인간 띠를 이루기 시작하면 하나의 자그마한 선(운동전선)이 되고 이 선들이 모여 커다란 투쟁의 공간을 만들어 나아가는 독특한 운동 전략이 헤노코에서 성공하고 있다. 중앙집권적인 운동 방식에만 익숙한 한국의 운동권들에게는 낯설게 보일,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헤노코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헤노코를 빠져나온 뒤 오후 늦게 기노완 시청에 들렀다. 기노완의 시장인 이하 요이치(伊波洋一 )씨는 본래 평화운동 · 반기지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시장이 된 소위 운동권 시장이다. 그는 시장이 된 뒤에도 기노완 시내에 흉물처럼 버티고 있는 후덴마 기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하 시장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런 시장에게 표를 던진 기노완 시민의 선택 역시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었다.

후덴마 기지는 기노완 시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기지를 이착륙하는 미군 군용기의 소음으로 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래서 후덴마 기지의 소음 문제를 놓고 싸우는 민간단체(NGO)들이 소송단을 만들어 법정 투쟁중이다. 특히 2004년 8월 13일 후덴마 기지의 바로 옆에 있는 오키나와 국제대학 구내에 미군 헬리콥터가 추락한 사건이 발생한 뒤에, 후덴마 기지 철폐운동이 시민들의 호응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장이 앞장서고 민간단체들이 밀어주는 후덴마 기지 반대운동은, 한국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훌륭한 가버넌스(good governance)’의 전형이다.

필자는 ‘미군기지와 공존하는 실낙원’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야기를 하면서 평택 횡성읍(대추리) 주민들의 고난을 떠올렸다. 오키나와 · 평택의 주민들이 미군기지 없는 낙원에 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국적과 민족을 떠나서도 정확하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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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22호(2006.3.7)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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