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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생태평화-생명평화

장항 제련소를 생태-문화 공간으로?

김승국   
 
필자의 제2의 고향인 장항을 떠난 지 워낙 오래되어서 현재의 장항의 사정을 잘 모른다. 그러나 장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장항이라는 공간에서 뛰놀던 기억은 드문드문 되살아난다. 특히 소풍을 자주 갔던 장항 제련소와 그 인근의 백사장은 ‘꿈의 놀이터’이었다.

그런데 ‘꿈의 놀이터’ 장항 제련소가 문을 닫고, 백사장은 난개발 시비에 휘말려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소문이 한갓 루머에 그치길 바라지만, 두 곳 모두 ‘꿈’을 주는 곳으로 부활시킬 길은 없을까? 그 길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을 수 있다. 당사자들이 탄력 있는 발상을 하면 그 길을 의외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텐데...

필자가 최근 유럽 5개국을 돌아보면서 ‘탄력 있는 발상으로 생태․창조 도시’로 탈바꿈한 독일의 ‘뒤스부르크-노르트 경관 공원(Duisburg-Nord Landschaftspark)’을 방문했다. 장항 제련소․백사장의 대안을 찾으러 이 경관공원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니 대안으로 연결될 법하다.

뒤스부르크-노르트 경관 공원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뒤스부르크는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탄전․제철소가 있던 루르 지역의 핵심도시이었지만, 석탄산업의 쇠퇴로 도시기능이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위기에 빠진 탄광과 제철소를 보전한 채 주변지역까지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문화-생태-관광 지역’으로 탈바꿈하여 경관 공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국의 탄광도시 태백시가 카지노 놀이터로 전락했지만, 독일의 루르 탄광지역은 문화-생태-관광 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태백시는 제대로 못했는데 뒤스부르크는 성공한 비결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장항-서천의 발전을 위해 긴요하다. 장항-서천의 발전 모델이 반드시 뒤스부르크에만 있는 게 아니지만, 뒤스부르크 시 당국과 시민들의 참신한 발상은 학습의 대상이다. 폐광지역 내 시설물을 카페나 패션쇼 장소로 활용하거나 거대한 제련소를 생태체험 장소로 활용하는 등 역사적 자원에 대한 적절한 활용과 가치 창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은 배울만하다.

루르 지방의 뒤스부르크와 도르트문트를 잇는 엠셔(Emscher) 강을 따라 17개 도시의 면적 800㎢를 대상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하였는데 당시 리모델링을 위한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엠셔 파크(Emscher park) 플랜’이었다. 엠셔 파크 플랜은 엠셔 지역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공원으로 설계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엠셔 강은 우리나라의 중량천이나 안양천보다 작은 강이다.

독일 사람들은 실개천 같은 엠셔 강을 활용하여 거대한 경관 공원을 조성했는데, 그 보다 수백 배 큰 규모의 금강을 끼고 있는 장항-서천은 낮잠 잘 권리가 없다. 루르 지방의 녹화를 위해 주정부와 주민들이 노력한 끝에 뒤스부르크를 죽음의 검은 도시에서 생명의 녹색․생태도시로 거듭나게 했듯이, 장항-서천도 친환경․창조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문제는 생태․문화 지향적인 발상이다. 살아 있는 자연에 삽질하는 ‘죽임의 개발정책’을 멀리하고 인간-자연이 공생하는 ‘생태 살리기 발상’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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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347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