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화연구(이론)-평화학/생태평화-생명평화

민중의 생활 ・민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북한 핵실험

김승국

1. 핵무장 민족주의의 문제점

1998년에 파키스탄・인도가 핵실험할 때, 노동자・농민・빈민 등의 기층 민중이 환호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파키스탄 민중은, 핵실험장의 폭발 장면을 보며 “파키스탄 만세! 무바라크(파키스탄 대통령) 만세! 이슬람민족 만세! 파키스탄의 핵무기로 인도의 힌두민족 타도!”를 외치며 알라신에게 기도했다. 인도의 극빈층 역시 “인도 만세! 힌두민족 만세! 인도의 핵무기로 파키스탄 민족 타도!”를 외치며 힌두의 신들을 향해 기도했다.

파키스탄의 핵실험 배후에 무슬림 민족주의가 있었으며, 인도의 핵실험은 힌두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삼았다. 인도 대륙의 경우 무슬림 민족주의와 힌두 민족주의가 핵무기를 통해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핵무장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핵무장 민족주의’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핵무장 민족주의가 종교적 근본주의(무슬림 근본주의・힌두근본주의)와 결합되면서 핵무기 물신화(物神化)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러면 ‘핵무장 민족주의+근본주의’는 파키스탄・인도만의 이야기인가?
파키스탄・인도와 가난의 정도를 놓고 경쟁하는 북한도 ‘핵무장 민족주의+근본주의’의 병에 걸려 있지 않나?
북한의 핵무장 민족주의가 주체사상・선군정치의 근본주의와 어울리면서 핵실험을 감행하지 않았을까?

본디 평화를 지향해야 할 민족주의가 핵무장을 선택한 끝에, 핵무기를 통한 민족 절멸의 잠재력을 갖게 되었다. 민족주의가 핵무장한 끝에 민족절멸을 초래한다는 말이다. 민족주의와 핵무기의 불행한 만남. 그 만남의 결과가 민족의 절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 기층 민중이 오히려 핵실험을 환호한다

파키스탄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민족 구성원의 절대다수인 기층 민중의 목숨이 핵무기에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쌍수를 들고 핵실험을 환영했다. 그런데 남북한 역시 예외가 아닌 듯하여 걱정이다.

북한의 핵무기에 목숨을 저당 잡힌 남북한 민중들이 북한 핵실험에 환호하고 있는 역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북한의 민중들은, 파키스탄・인도의 민중과 거의 비슷하게 북한 핵실험을 환호하고 있는 듯하지만, 환호의 정도를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남한 민중의 일부가 북한 핵실험에 환호하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비교적 진보적인 오마이 뉴스・한겨레신문 홈페이지의 답글에 ‘핵무기는 민족의 자산・민족자주의 수단・민족통일의 절묘한 방편・통일의 대안(핵무장 통일론)’이라는 내용의 핵무장 민족주의가 난무하고 있다. 일부 운동권 인사들마저 ‘북한 핵은 나중에 통일되면 우리 민족의 자산이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의 핵무기로 미제를 싹쓸이하자!’는 이들의 주장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핵무기 파시즘’이 이 땅에 등장할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핵무장 민족주의의 지척에서 핵무기 파시즘이 준동할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핵폭탄을 가슴에 않고 철천지원수 미제를 향해 돌진하자는 ‘가미가제(神風)식 핵무장 민족주의론’은 미제와의 핵전쟁도 불사한다. 핵무기로 미제와 맞붙자는 종말론적인 핵무장 민족주의론은, 그 논리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민족생명의 단축을 예약한다. 민족 절멸의 핵무장 민족주의에 가장 심취하고 있는 세력이, 일부 민중들․일부 운동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생활고에 찌든 민중들은 염세주의에 쉽게 젖어든다. 염세주의에 물든 민중들은, 이놈의 세상이 뒤집혀 종말이 빨리 다가오길 은근히 기다린다. 이러한 대중심리는 핵무장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특히 카리스마 같은 정치지도자가 핵무장론을 내걸고 뒤따라오라고 선동할 때 핵무장론을 거침없이 받아들인다. 파키스탄・인도・남북한 민중의 생활이 어려울수록 핵무장론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난할수록 핵무장론을 체질화하는 민중들은 ‘자신들이 핵전쟁의 최대 피해자’라는 점을 까맣게 잊는다. 1945년에 핵세례를 받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절대 다수의 민중들이 피폭당한 점, 남태평양의 핵실험장 부근에 살던 원주민의 피폭, 소련의 핵실험장 부근의 주민들이 백혈병에 걸려 지금도 고난받고 있는 사실을 망각한 채 핵무장 민족주의를 주장한다. 가
난할수록 핵전쟁 피해의 제1순위가 되는 것을 모른 채, 핵무장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민중들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민중들의 핵무장 민족주의를 ‘비핵(非核) 민족주의로 전환시키는 비핵평화운동이 필요하다. 한갓 반핵(anti-nuclear)운동이 아닌 근원적인 비핵(de-nuclear)운동이 절실하다.

2. 핵무기는 민중생활・민족생명의 적

이와 같은 비핵평화운동의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핵무기가 민중생활의 적(敵), 민족생명의 적임을 설명한다.
핵무기는 민중생활의 적이다. 핵무장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민중들에게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현장을 들러본 다음에 피폭자들을 만나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핵무기에 의한 피해자를 직접 만난 뒤에도 핵무장 민족주의를 계속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생명관・세계관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피폭자 앞에서 핵무장 민족주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정신을 분석해보아야 할 것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연행되어 히로시마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핵무기 세례를 받은 조선인이 남북한에 현존하고 있는 현실을 망각한 채, 핵무장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폭력지향적 의식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핵무기가 민중생활의 적임을 깨닫지 못하면 (일본의) 히로시마・나가사키, (남한의) 합천으로 가서 피폭자의 참상을 보라! 그리고 이라크로 가라!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이 투하한 열화우라늄 탄으로 백혈병에 걸린 민중들을 만나보아라! 그런 다음에도 핵무장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진보인사’임을 자처한다면, 그가 쓴 진보의 탈을 빼앗아야 한다. 민중의 이름으로, 민족의 이름으로…

핵무기는 민족생명의 절멸(genocide)을 예고한다. 북한의 핵무기이든 미국의 핵무기이든, 한반도 안에 핵무기가 있다면 핵전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핵전쟁이 터지지 않아도 핵무기 자체가 민족 절멸의 불씨를 지니고 있다. 핵전쟁은 한반도의 온 생명을 절멸시킬 것이다. 핵전쟁이 벌어지면, 한반도에서 숨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잿더미로 될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이에 대응한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남한에 배치되어 한반도가 핵무기 지대로 되어 민족 절멸의 핵전쟁 가능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이름을 팔아 북한 핵무장을 찬양하는 자들(찬핵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 행세를 하고 있다.

민족 절멸을 초래할 핵무장 민족주의가 민족의 적임을 늘 확인하는 반핵운동이 진짜 진보이다. 찬핵(핵무기 찬양)운동은 (진보의 반대인)퇴보일 뿐 아니라 민족생명을 단축하는 민족의 적이다. 따라서 ‘핵무장 민족주의가 진보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민족생명을 단축하는 핵무장 민족주의자를 감별한 뒤 추방해야 할 것이다. 핵무장 민족주의의 중독자는 특별히 북한의 핵무기 보관소로 추방함으로써 방사능과 공존하도록 해야 정신 차릴 것이다.

3. 핵무장 민족주의는 ‘진보’ 아닌 ‘퇴보’

반핵평화는 전 세계 진보주의자들의 상표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진보단체・진보정당도 ‘반핵’을 귀중한 가치로 내세운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경계선이 반핵인데도 남한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남한의 냉전수구 세력이 (북한 핵실험을 반대하는) 반핵을 외치는 한편 진보세력은 친북의 강도가 강할수록 반핵(북한 핵실험에 대한 반대)을 기피한다. 반핵을 외면하는 진보세력은 ‘진보’라기보다 ‘퇴보’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에 반핵평화를 주장하지 않는 세력은 ‘퇴보진영’이다.

이들 퇴보진영은 북한 핵실험에 대한 반대는커녕 북한 핵실험을 은근히 찬양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북 공세만 붙들고 미국반대(반미)에만 열을 올린다(물론 미국의 대북 공세는 언제나 반대해야 한다). 북한 핵실험으로 야기된 현 사태의 책임을 북한・미국이 나누어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물론 미국의 책임이 무겁다), 미국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운동은 부시의 일방주의와 무슨 차이점이 있는가? 북한의 책임을 묻지 않는 일방주의적인 운동으로 남한의 대중을 평화통일의 대열에 모실 수 없다.

대중을 평화통일의 마당으로 제대로 모시려면,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북한붕괴(공세) 전략을 저울의 좌우에 올려놓는 평형감각이 중요하다. 핵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될 기층 민중일수록 한반도 안팎에 핵무기 귀신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핵무기 금지의 울타리를 쳐야 할 것이다. 기층 민중의 선두주자인 노동자・농민이 앞장서서, 핵무기에 생명을 저당 잡힌 민중・
민족의 목숨을 건지는 구명(救命)운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 구명운동의 일환이 비핵평화운동이다. 이 운동의 구체적인 행동은 비핵지대화운동으로 나타나며, 운동의 반경은 한반도・동아시아이다.

    2) 비핵평화운동을 펼치자

(북한의 핵실험을 물고 늘어져 전쟁으로 내몰려는) 미국을 규탄하는 반전운동과 더불어, 북한 핵실험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비핵평화운동이 긴요하다.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이 운동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다.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기능마비 상태이므로,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한반도 안팎의 평화를 창출하는 비핵평화운동이 더욱 절실하다.

한반도 비핵화선언에서 출발하는 비핵평화운동의 핵심은 한반도・동아시아 비핵지대화운동에 있다. ‘비핵평화’의 강령을 구현할 한반도・동아시아 비핵지대화운동의 진행과정에서 제2의 제네바협정을 내오는 게 중요하다. 1994년에 발효된 제1차 제네바협정은, 한반도 비핵화선언(1991년)의 파행에 따른 전쟁위기(1993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제1차 제네바협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준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어긴 북한 핵실험의 현재의 사태가 너무나 엄중하여, 제1차 제네바협정으로는 수습할 길이 없게 되었다. 한반도의 비핵화, 한반도・동아시아의 비핵지대화를 단계별로 추진할 수 있는 제2차 제네바협정을 체결해야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

3. 결 론

미국・중국・러시아의 전폭적인 협조와 북한의 결단(핵개발 체제의 해체) 없이 한반도・동아시아 비핵지대화가 성사되기 어렵다. 미국 등의 핵 강대국이 동북아시아를 겨냥하는 핵무기・핵전략의 폐기 없이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거론하는 게 무의미하다. 그리고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는 한반도 평화통일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 비핵지대를 위해 필요한 장치는 다자간 안전보장 틀이다. 이러한 안전보장 틀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후견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는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민족 구성원의 평화로운 생존과 직결된 과제이다. 핵이 없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대외적인 환경 조성의 일환으로, 한반도・동아시아 비핵지대화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하며, 한반도 안팎에 핵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제2의 제네바협정을 내와야 한다.(2006.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