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폭력/국가폭력-공권력

씨알의 몸에 퍼부은 색소 물대포

김승국
 

지난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 이날은 ‘물대포의 푸른 색 색소가, 푸른 색 촛불심지를 진압한 날’이었다. ‘촛불 씨알(촛불집회에 참가한 씨알들)’에게 수난의 날이었다. 나를 비롯한 촛불 씨알 157명이, ‘색소 물대포(색소가 든 물대포)’를 맞고 연행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된 ‘갇힌 날’이었다. 촛불 씨알 157명의 몸에, 색소 물대포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권의 폭력성이 각인된 날이었다. 해방된 날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모인 촛불 씨알들을, (8월 15일을 건국기념일로 대체하려는) 이명박 정권이 물대포로 내쫒은 날이었다.


이날 경찰은 파란 색 물감만 묻어 있으면 아무나 굴비 엮듯 연행했다. 촛불집회와 무관한 시민도 당했다. ‘도대체 왜 나를 잡아들이느냐’고 항의 해 보았자 헛일이었다. 옷에 푸른 색 물감이 몇 방울 묻은 게 연행의 유일한 이유이었다.


촛불 씨알 157명의 대열에 끼게 된 나는, 8월 15일의 촛불 문화제에 참석했다가 색소 물대포 세례를 받았다. 푸른 색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아 온몸이 푸른 색 범벅이 된 나는, (푸른 색 색소가 조금만 칠해져도 잡아 가두려고 혈안이 된) 사복 체포조에게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나는 물대포를 맞자마자 연행되어 ‘닭장차(경찰 기동대 차)’에 실려 노원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은 뒤 이틀 동안 경찰서의 유치장에서 지내다가 석방되었다. 내가 보기에 ‘연행’이지만 경찰이 보기에 ‘현장 검거’이다. 집시법의 ‘자진해산 명령 위반’ ‘일반 교통 방해’ 항목을 어긴 죄로 집회현장에서 현행범으로 ‘검거’된 것이다.


색소 물대포라는 새로운 폭압장치로 무장한 공권력의 쓴 맛을 보게 된 나는,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이명박 정권의 폭력성과 나의 신체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촛불 씨알인 나를 향해 덤벼든 색소 물대포의 폭력이, 해방된 날에 던져준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되새기며 이 글을 쓴다. 촛불집회와 관련되어 구속된 사람들이 있어서 단 이틀간의 구류를 소재로 글을 쓰는 게 겸손하지 못하다고 평가받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색소 물대포라는 폭력을 촛불시위자들에게 무차별로 퍼부은 이명박 정권의 폭력성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어서 펜을 들게 되었다.



1. 내 몸에 새겨진 물대포 색소의 의미



8월 15일. 민족이 해방된 날을 기념하러 나갔다가 색소 물대포 세례를 받은 씨알의 몸은 결코 해방되지 않았다. 해방은 커녕 신체 구속이라는 올가미가 촛불씨알들에게 던져졌다. 해방된 날을 건국기념일로 대체하려는 이 명박 정권에게만 색소 물대포를 난사할 자유가 주어졌다.


1945년 8월 15일 씨알들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희열과 2008년 8월 15일 촛불씨알들이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신체 구속된 우울함이 도드라져 비교된다.


해방된 날 밤 경찰서의 유치장에 처박힌 촛불씨알들의 몸에 새겨진 푸른 색 색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색소 물대포를 난사한 뒤 푸른 색 물감이 묻은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한 ‘공권력의 폭거’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옛날 봉건왕조 시대에 죄지은 사람의 몸에 빗자루로 색칠하여 잡아들인 발상과 비슷하다고 평가해야할까? 아니면 아테네에서 낙인찍힌 정치인을 도편추방(陶片追放)한 것과 비슷하다고 보야야할까?


이 명박 정권은 분명히 봉건왕조가 아닌데도 닮은꼴이다. 색소 물대포를 통해 ‘21세기의 빗자루 색칠․도편추방’을 재현하려고 하는 점에서 닮았다.



  1) 이명박 정권의 폭력 인증 표식



한마디로, 시민 김승국의 몸에 퍼부어진 물대포 색소는 이명박 정권의 폭력 인증 표식(마크)이다. 이명박 정권이 봉건왕조 못지않게 폭력 지향적임을 드러내는 표식이 물대포의 색소이다. 옛 봉건왕조와 표식을 하는 방법만 다를 뿐 발상은 빼어 닮았다. 촛불씨알의 몸에 푸른 색 색소를 칠하는 짓. 빗자루로 색칠하는 짓. 두 가지 짓이 행태만 다른 뿐 시민사회 ․공동체로부터 불량시민․문제아(問題兒)를 도편추방하려는 의지는 동일하다.


푸른 색 색소가 묻어 있는 시위 참가자를 불량시민으로 낙인찍어 일반시민과 분리하는 분할통치 방식의 일방적인 검거는, 이명박 정권이 폭력정권임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촛불 대중을 일반시민들로부터 배제하려는 수단이 색소 물대포라는 폭력이다. 색소 물대포를 퍼부어 일단 촛불시위 현장에서 배제한 뒤 법률적인 배제(제2차 배제)를 위해 경찰서 유치장에 집어넣은 것이다.



  2) 불량시민의 분리․배제를 노린 푸른 색 칠하기



색소 물대포는 시민 개씨알의 몸에 퍼부은 색소 물대포 개인의 배제에 그치지 않는다. 촛불을 통해 평화적 생존권(광우병 쇠고기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생존할 권리)을 주창하려는 모든 시민․시민사회에 대한 폭거의 상징물이다. 연행된 촛불씨알 157명의 몸에 푸른 색칠하기는, 불량시민으로 낙인찍힌 촛불대중들의 분리→배제→감금→구속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단계이다.


블량시민을 촛불시위의 배후로 지목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잡아 가두기 위한 붉은 색칠하기에 앞선 예행연습으로 푸른 색칠한 것이다. 제1단계가 푸른 색칠하기이며 제2단계가 붉은 색칠하기이다. 수입 쇠고기 인증 표식과 동일한 푸른 색 칠을 하여 광우병 쇠고기 반대파를 일반 시민과 분리하려는 첫 번째 시도가 색소 물대포 난사이다.


이는 건강한 먹거리․식탁의 안전․평화적 생존권을 요구하는 씨알들의 인간안보(human security)에 대한 도전이다. 정권안보의 방패막이로 등장한 물대포가 씨알들의 인간안보를 유린한 것이다. 유린하는데 그치지 않고 촛불씨알들을 불량시민으로 낙인찍어 일반시민과 분리하여 다스리려는 분할통치와 연결된다. 촛불을 든 불량시민을 일단 물대포로 분리한 뒤에 색소 묻은 자들을 배제하여 닭장차에 집어넣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훈육하면서 길들이려는 분할통치의 수법이다.


이러한 수법의 피해자인 촛불씨알들이 굴욕감을 갖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만으로도 훈육의 효과가 있다. 유치장에 집어넣은 것만으로도 길들임의 성과가 있다. 씨알의 몸을 국가관리 대상으로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공사례가 일상적으로 축적되지 않으면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존재이유가 사라질 테니까...



  3) 색소 물대포 난사에 내재한 폭력의 심각성



어찌 보면 공권력이란, 불량시민을 계속 감옥에 집어넣어 씨알들을 체제에 걸맞게 길들이는 강력(强力; Gewalt)이고 유치장은 경찰의 훈육교실이 아닌가. 지난 정권에 비하여 이명박 정권 들어 공권력의 훈육체계가 강화되었다며 간단하게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색소 물대포 난사에 내재한 폭력성을 파헤칠수록 심각성이 더해진다.


이 명박 정권의 폭력성이 내 몸에 푸른 색 색소로 남아있기 때문에 심각하다. 푸른 색소의 상흔이, 폭력정권 아래에서 신음하는 민초들의 고난을 상징하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몸뚱어리가 전 재산인 민초들의 살갗에 푸른색의 낙인을 찍어 신체적으로 구속하려는 이명박 정권의 폭력성이,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민주주의 발전을 거스르기 때문에 심각하다.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절규하는 촛불씨알들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색소 물대포 난사하는 ‘먹통 정권’의 앞날이 걱정되고,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기 때문에 심각하다. 물대포 쏘는 장갑차가 광주항쟁의 진압군 차량을 연상케 하기 때문에 심각하다. 색소 없는 물대포와 달리 색소 물대포를 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불량시민으로 낙인찍힌 촛불대중들의 분리→배제→감금→구속으로 이어지는 인권침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이 명박 정권의 ‘인권 청맹(靑盲)’이 심각하다.



  4) 이명박 정권의 폭력체계는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이므로 제거의 대상



나와 같이 비폭력을 중시하는 평화 운동가를 폭력으로 감금하려는 권력의 폭거를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색소 물대포로 표징되는 이명박 정권의 폭력체계는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이므로 분리․배제․제거의 대상이다. 민주주의의 잡초 같은 폭력경찰은 촛불씨알과 평화적인 공존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폭력경찰의 배후에 있는 권력의 퇴진은 시대의 요청이다. 촛불시위를 통해 권력의 본질을 일치감치 간파한 촛불씨알들이 ‘이명박 OUT’을 주창하는 이유를 뒤늦게 깨달게 되었다. 나는 촛불씨알들의 ‘이명박 OUT’ 구호가 좀 과격한 게 아니냐고 생각해왔으나, 색소 물대포의 피해자가 되면서 ‘과격한 게 아니라 충분히 이해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2. 색소 물대포의 선제공격



  1) 촛불씨알에 대한 선제공격과 공포정치



이처럼 태도를 선회한 근본적인 이유는 색소 물대포 난사의 배후에 있는 선제공격 발상 때문이다. 8월 15일 밤에 내가 연행된 시위장소(종로)는 물대포를 통한 공포정치의 현장이며, 공포정치가 시민사회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확산된 현장이다.


선제공격(촛불씨알들에 대한 색소 물대포 선제공격)과 공포정치가 연결되는 지점은 물대포 차량이다. 8월 15일 밤의 분위기로 보아 물대포 차량의 경찰책임자는 촛불씨알들을 불량시민으로 간주하고 검거에 나섰다.


그날 밤 시위대 검거를 지휘한 경찰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불량시민을 일반시민과 단순하게 격리하려고 검거했다고 판단하면 좀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혹시 경찰 수뇌부가 촛불씨알들의 일부를 폭도로 보고 검거를 지시하지 않았을까?


내가 붙잡히기 직전에 들은 경고 방송의 음산한 떨림 음에서 이러한 정황을 직감할 수 있다. 경고방송의 상투어인 ‘여러분들은 야간 불법집회를 하고 있는 폭도(?)이니 당장 그만두어라’고 겁주는 위압적인 목소리에서도 직감할 수 있다.


그날 밤. 물대포 장갑차가 내 앞으로 공룡처럼 다가오면서 ‘폭도(?)이니 당장 그만두어라’는 경고방송과 동시에 내뿜은 색소 물대포가 ‘폭도 사냥’의 서막이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평가일까? 그날 밤 테러리스트를 검거하듯 촛불씨알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한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착각하지 않으면 그런 무리한 연행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테러 관련 법률을 제정하려는 발상과 ‘촛불 시위 참가자를 예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발상’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의심스럽다.



  2) 테러리스트 검거하듯 마구잡이 연행



그날 밤 종로에 모인 촛불시위대가 폭동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혁명의 대오도 아닌데 테러리스트를 때려잡듯이 색소 물대포를 난사한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이렇게 의심어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시애틀에서 일어난 과격투쟁처럼 돌을 던진다거나 화염병을 투척한 것도 아닌데… 촛불을 든 맨손의 시민들에게 해산명령을 한차례 한 뒤 물대포를 난사한 저의를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촛불집회의 지도부를 겨냥한 것도 아닌 무차별 난사를 한 배후에, (시위대를 예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공권력의 발상이 내재해있는 듯하다.


시위대를 예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공권력의 과잉반응은 9.11 테러와 관련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9.11테러를 계기로 공포정치(테러의 공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억압체제를 구축함)에 성공한 부시 정권이, 반테러 전쟁의 차원에서 아프간 전쟁․이라크 전쟁을 전개했다. 이 반테러 전쟁은 아프간․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부시 정권의 대북 선제공격 계획 역시 (테러지원 국가이자 ‘악의 축’ 국가인) 북한에 대한 공포정치의 일환이다.


이렇게 9.11 테러에 즈음한 공포정치가 선제공격으로 이어진 점과 물대포의 공포(겁주기)가 촛불시위대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이어진 점의 유사성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유사성이 없다면 ‘촛불시위대가 폭동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혁명의 대오도 아닌데 테러리스트를 때려잡듯이 색소 물대포를 난사한 이유’를 간파하기 어렵다.



  3) 부시 정권의 대북 선제공격 발상과 비슷



부시 정권을 움직이는 네오콘(Neo Con)이 최첨단 무기를 통해 북한을 선제공격하려는 발상과, 이명박 정권이 색소 물대포로 촛불 시위대를 선제공격하려는 발상이 엇비슷하다. 공권력을 과잉행사하며 폭력성을 드러내는 이명박 정권이 ‘한국판 네오콘’이므로 닮아가는 것일까?


그날 밤 종로에서 내가 목격한 시위대는 공격조짐이 전혀 없었으며 웅성웅성 모여 비폭력적으로 농성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촛불 하나만 든 비폭력․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색소 물대포로 선제공격한 짓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공권력의 폭거이다. 예전처럼 전경 버스에 밧줄을 걸어 쓰러뜨리려고 한 것도 아닌데... 경찰이 일방적으로 물대포를 난사한 짓이,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적 소행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경찰은 법을 내세워 불법 시위자들을 검거했다고 변명하지만, 그건 실정법일 뿐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하는 자연법에 어긋나는 폭력행위이다. 홉스(Hobbes)가 말하는 자연 상태를 예방하기 위해 공권력을 부여받은 경찰이 시민들과 한판 겨루기라도 하듯, 선전포고하듯 물대포를 난사한 것이 문제이다. 이는 시민사회에 대한 선제공격이자 시민사회를 전쟁상태로 만들려는 무지막지한 행위이므로 묵과할 수 없다.



3. 맺는 말



앞에서 색소 물대포와 아테네의 도편추방을 비교했는데, 도편추방은 고대 아테네 민주정에서 참주가 될 위험 있는 인물을 도편을 이용한 투표로 국외로 10년간 추방하는 제도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도자기 조각에 체제에 위협이 될 만한 사람이나 독재자가 될 위험이 있는 인물의 이름을 쓰고 그 인물을 추방했다.


당시 아테네의 시민들이 참주가 될 위험이 있는 정치인을 추방하기 위한 방편이 도편추방이었듯이, 한국정치의 새로운 참주로 등장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을 추방하기 위한 도편추방을 시도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를 하기 이전에 이명박 정권이 색소 물대포로 선제공격하면서 시민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진짜 도편 추방될 정권이 촛불씨알들을 도편추방(불량시민으로 낙인찍은 뒤 일반시민과 분리하여 경찰서 유치장으로 내쫒음)하기 위해 색소 물대포를 난사한 ‘희극’을 지켜만 볼 수 없다. 참주가 될 위험성이 있는 이명박 정권을 도편추방하는 민주적인 절차에 착수하지 않는 한, 이러한 희극은 계속되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2008.9.10) 
 ---------
 *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339호에 실려 있다.

'폭력 > 국가폭력-공권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건국가의 폭력  (0) 2009.05.31
부시스러운 MB  (1) 2009.05.31
‘부시스러운 MB 정권’의 경찰국가화  (1) 2009.05.31
'사이코패스 정권’ 논란에 붙여  (2) 2009.05.31
국가권력의 성격 변화  (1) 2009.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