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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칼럼-에세이

오키나와 민중운동의 주체와 양태 (1) 김승국 운동론을 정립할 때 운동의 주체와 (그 주체가 운동을 전개한) 양태를 파악하면 쉽게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다. 오키나와의 경우도 누가 · 어느 집단이 운동의 주체로 나서서 어떠한 양태의 운동을 벌였느냐를 분석하면, 민중운동의 역사를 수월하게 조망할 수 있다. 오키나와 민중운동의 주체와 양태를 한눈에 보기 위해 작성한 에 나타난 ‘주체-운동양태의 번호순’에 따라 운동론을 서술한다. 먼저 을 보자. 일본 사람들은 프라이버시(privacy)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생활 · 개인만이 즐기는 시간 · 개인만이 향유하는 공간을 차지하려고 한다. 서구 시민사회의 자아 발견의식과 좀 다르지만 어쨌든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려는 욕구가 크다. 한국인이 ‘우리’를 중심에 놓고 행동하는 것과 다르다. 일반 시민.. 더보기
오키나와의 민중운동 (2) 김승국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이후의 민중운동 지난번에 이어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한 1972년 이후의 민중운동을 기술한다. 오키나와의 민중운동은 세차례의 커다란 물결을 일으켰다. 첫 번째 물결은 1950년대 중반의 ‘島ぐるみ鬪爭(오키나와 섬사람 전체가 달라붙어 미군의 토지강탈에 저항한 투쟁)’이고, 두 번째 물결은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에 걸친 정치투쟁(특히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투쟁)이다. 세 번째 물결은 1995년 가을의 ‘미군 강간사건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부터 1997년 12월의 나고(名護) 시민투표에 이르는 민중운동이다. ‘島ぐるみ鬪爭’은 지난호에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두 번째 물결과 세 번째 물결을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두 번째 물결은 미국의 군사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한 민중의.. 더보기
오키나와의 민중운동 (1) 김승국 1. 근대의 민중운동 일본의 메이지(明治) 정부는 1879년 오키나와에 경찰 · 군대를 파견하여 독립왕조의 상징인 슈리성(首里城)을 접수하고 정식으로 오키나와 현의 설치를 포고한다. 이 사건을 ‘류규(琉球)처분’이라고 부른다. 이 ‘류규 처분’으로 메이지 정부의 지배를 받게 된 1879년부터 오키나와의 근대가 시작되며 근대의 저항운동도 동시에 진행된다. 혁명의 전통이 결여된 일본 본토의 민중운동과 달리 오키나와에서는 1870년대부터 끈질긴 저항운동이 전개되었다. 근대 오키나와의 저항운동은 옛 류규 왕조의 부활을 모색한 완고당(頑固黨)이 효시이며, 일본의 오키나와 병합에 반대하는 운동이 1945년의 패전 때까지 지속된다. 예컨대 인두세 폐지운동 · 자유민권 운동 · 징병기피 등을 통해 메이지 천황 .. 더보기
촛불과 한국사회 김승국 * 현재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려면 우선 촛불집회에 대하여 이해해야한다.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 촛불정국을 면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한국사회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쉽지 않다. * 2008년의 촛불시위는 의 갈등에서 더보기
‘Corea’ 운동의 의미 김승국 1. 옛 국호 ・지명 되찾기 운동의 의미 1) 제국주의가 지어 준 이름 지우기: 제국주의의 기억으로부터의 탈출 * 만주라는 이름을 일제가 즐겨 쓴 이유는 무엇일까? * 조선이라는 이름을 왜곡시킨 일제의 의도를 ‘조선인은 멍텅구리(조센징 빠가야로)’에서 찾을 수 있다. * 인도 지나(인도 China)는 일본식 이름이다. * ‘버마’인가 ‘미얀마’인가. ‘버마’라는 표기가 올바르다. ‘미얀마’는 포스트모던(Post Modern) 사고방식이 아닐까? ‘미얀마’ 는 미얀마의 일부 정치 세력(및 이 세력을 해외에서 지원하는 그룹)이 즐겨 사용하는 것 같다. 이처럼 국호 ・지명 속에 정 치적 정당성을 에워싼 대립이 내재해 있다. 2) 제국주의 잔재 청산: 역사 청산 * 인도인들은 봄베이(Bombay)를 뭄바.. 더보기
국제연대에 왕도 없다 김승국 필자는 국제 연대의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평화 운동을 하는 가운데 해외에 나가서 부딪히며 느낀 점을 ‘국제연대’란 틀에 맞춰 겨우 기술할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정색을 하고 말할 때의 ‘국제연대’가 아닌 평화 관련 ‘국제회의’에 참가하여 겨우 의사소통하며 국제적인 연대감을 느낄 정도의 감각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좀 섣부른 이야기도 있을 법하다. 국제연대에 관하여 ‘glocal 운동’이란 화두를 던진다. ‘glocal 운동’이란 ‘global 운동’과 ‘local 운동’을 아우르는 말이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지구촌을 누비며 활약하는 운동(global 운동)도 잘 하고,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풀뿌리 운동(local 운동)도 잘 해야 한다는 당위가 함축된 뜻이다. 지역의 풀뿌리 lo.. 더보기
나의 막걸리 예찬론 정전 협정일을 앞두고 올리는 '평화의 막걸리' 한잔 김승국 7월 27일은 그 지겨운 정전 협정이 맺어진 날이다. 그 날이 다가올수록 몸서리쳐진다. 구두선같이 외치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라는 구호가 남루해 보이는 세태이다. 이런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 역시 남루해 보인다. 나는 평화통일 운동을 하다가 인생이 남루해진 이들의 인생을 격려하고 ‘평화의 발상을 종합하기 위해’ 우거(寓居)에서 막걸리 한잔을 걸쳤다. 내년에는 다시금 7월 27일을 정전협정일로 부르지 않기 위하여…. [필자 주] ----------------- [본문] 요즘 나는 부쩍 막걸리를 즐긴다. 왠지 소주(쏘주)가 역겨워진다. 내가 요즘 들어 쏘주가 독하다는 인상을 갖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옛날의 쏘주(진로)보다 도수가.. 더보기
‘악동’과 미국의 불행한 만남 나는 왜 평화운동을 하게 되었나 김승국 아무래도 어렸을 적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평화’를 역행하는 전쟁 지향적인 생활공간, 시대 상황에서 자랐다. 나는 한국전쟁의 포성이 그치지 않은 1952년 7월 달에 태어났다. 나는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한국전쟁의 공포를 느꼈다. 내가 받은 태아교육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전쟁의 공포)으로부터의 도피’이었다. 1. 태생적으로 ‘전쟁 체제’와 씨름 내가 태어나던 날 밤도 야간 등화관제가 실시 중이어서 ‘왜 이 집은 불을 끄지 않는냐!!’는 성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등화관제 속에서 태어난 나는 태생적으로 ‘전쟁 체제’와 씨름할 수밖에 없다. 내가 두 살 때 우리 집은 금강 하구에 있는 장항(長項)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더보기
촛불 시위의 미학 김승국 미 대사관 옆 광화문 네거리 부근. 땅거미가 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촛불을 든 시민들이 하나둘 씩 모여든다. 이들은,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의 노상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 양의 혼(魂)을 불러낸다. 두 여중생의 혼과 촛불들이 반디가 되어 광화문의 밤은 더욱 생기 있게 빛난다. 반디들이 죽음의 도시 서울에 생명 부활의 기운을 넣는다.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두 여중생의 무고한 죽음에 대한 연민과 죄를 뉘우치지 않는 미군 당국을 규탄하는 심정으로 얽혀 있다. 두 여중생에 대한 조의(弔意)와 미군 ・미국 비판이라는 엇갈린 정서가 한 가닥 촛불로 승화되어 생명존중 ・평화 ・미국반대의 원동력을 낳는다. 이 원동력은 촛불 시위를 ‘제2의 6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