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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칼럼-에세이

나의 막걸리 예찬론

정전 협정일을 앞두고 올리는 '평화의 막걸리' 한잔


김승국


7월 27일은 그 지겨운 정전 협정이 맺어진 날이다. 그 날이 다가올수록 몸서리쳐진다. 구두선같이 외치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라는 구호가 남루해 보이는 세태이다. 이런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 역시 남루해 보인다. 나는 평화통일 운동을 하다가 인생이 남루해진 이들의 인생을 격려하고 ‘평화의 발상을 종합하기 위해’ 우거(寓居)에서 막걸리 한잔을 걸쳤다. 내년에는 다시금 7월 27일을 정전협정일로 부르지 않기 위하여….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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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즘 나는 부쩍 막걸리를 즐긴다. 왠지 소주(쏘주)가 역겨워진다. 내가 요즘 들어 쏘주가 독하다는 인상을 갖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옛날의 쏘주(진로)보다 도수가 낮아진 ‘참이슬’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쏘주가 쓰게 느껴지는 건지… 시절의 독함이랄까? 한반도 정세가 날로 독해지고 있는 것을 경계하는 심사가, 쏘주에 대한 신체적인 거부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희한한 사이클(술기운의 주파수)을 경험한다. 맨 처음에 막걸리를 들이킬 때 빈속을 채우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조선 농부들의 배를 채운 농주 ‘막걸리’ 맛이다. 다른 사람들은 막걸리를 일정한 양 이상 마시면 헛배가 부르며 신트림만 나와 불쾌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아마 이런 단점이 소주를 즐기게 하는 모양이다). 나에게도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막걸리는 내 두뇌를 치열하게 만든다. 내 두뇌 속에 ‘사유(思惟)의 에테르(ether)’를 끊임없이 넣어 준다. 한 잔 두 잔 들이킬 때는 위장을 촉촉하게 적시는 느낌을 주지만, 그 술기운이 온 몸을 한번 순환한 다음에는 술기운의 에너지가 두뇌로 올라오기 시작하여 ‘중층적인 사고(思考)의 텔레파시’를 전달케 한다.


이는 참 묘한 현상인데, 술기운이 두 차례 정도 온몸을 순환하면 더욱 왕성한 ‘머릿속 정리’가 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속출한다. 말짱한 정신일 때는 실오라기처럼, 난마같이 착종되었던 생각의 가닥이, 막걸리의 체내 순환을 거듭할수록 “탁! 정리된다.”, 즉 “직관이 형성된다.” 굳이 불교 용어를 붙이면 평소의 생각이 점수(漸修)이었다면 막걸리의 술기운이 체내에서 순환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돈오(頓悟)하는 순간을 포착한다는 말이다. 점수에서 돈오로 전환하는 순간에 담배 한 대를 깊이 빨아들이면, 발상 전환의 두뇌 회전이 배가된다(필자는 골초가 아니다. 이럴 때만 담배를 피운다).


고승들이나 할 수 있는 ‘돈오-점수의 논란’을 막걸리에 비유해서 미안하지만, 나 같은 무지렁이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막걸리 술기운에 힘입은 돈오(?)의 순간. 그동안 머릿속에서 정리 못해 쩔쩔매던 상념들이 한꺼번에 정리되어 몇 가지 용어, 몇 가지 도식, 몇 가지 발상으로 가닥이 잡힌다. 이렇듯 막걸리 몇 사발이 ‘돈오’를 유발하는 데… 내가 막걸리를 거부할 명분이 있겠나?!(쏘주는 사절해도…)


지금 이 순간. 나는 막걸리 한 병을 마신 기운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막걸리를 적당히 마시면, 내 두뇌에 기름칠을 한 듯 머릿속에서 맴돌던 갖은 망상 ・잡념 ・거친 발상이 말끔하게 정리된다. 동네의 점방에서 산 1,100원짜리 한 병을 마시면 ‘머릿속이 산뜻하게 정리되는 묘약’ 막걸리를 영원히 사랑하리라…


나는 요즘 난데없는 평화의 과제로서 ‘한반도의 Peace Roadmap(평화 이행도)’ 작성에 매진하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 Peace Roadmap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머리가 쥐가 나는 듯 아파, 평화의 점수(漸修)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이 어지럽다. 그런 머릿속을 한바탕 휘저어 가닥을 잡게 하는 묘약은 역시 막걸리이다. 막걸리를 음미하는 가운데 ‘혈액순환’과 ‘술기운 순환’의 코드(code)를 잘 맞추면, 낮에 그렇게 복잡하게 여겨졌던 Peace Roadmap이 수월하게 교통정리된다. 참 묘하지…


요즘 들어 한반도의 Peace Roadmap이라는 대작(학문의 촌놈인 나로서는 대작이고말고…)의 질서를 지워 주는 술기운을 제공하는 유일한 물질은 막걸리뿐이다. 즉 필자로 하여금 평화의 발상을 미묘하게 가다듬게 하는 건 막걸리뿐이라는 말이다.


나는 막걸리파(派)이다. 술 도수 6도 밖에 안 되는 막걸리의 술 기운으로 민족통일의 대계(大計)인 ‘한반도 Peace Roadmap’을 정리하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 쏘주를 마시면 오히려 내 머릿속의 평화가 깨져 Peace Roadmap이 혼비백산할 게 뻔하지…


그렇다고 나는 머릿속을 교통정리하기 위한 목적의식 아래 막걸리를 마셔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냥 평화에 관한 이러저러한 상념이 얽히고설켜 있을 때 그 가닥을 잡아 보고 싶은 심리적 충동이 표출되고, 그때마다 동네의 가게에서 산 막걸리 한 병을 반주 삼아 저녁을 먹으면…


처음엔 평화의 발상이 텔레파시처럼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다가 술기운이 가라앉을 무렵에 통째로 정리되는 ‘평화 발상의 돈오점수’를 경험한다는 것뿐이다. 이런 경지(?)에 오르기 위해 필자가 마신 술의 양과 술값이 얼마나 되는지 독자들은 계산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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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1호(200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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