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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칼럼-에세이

촛불 시위의 미학

김승국

미 대사관 옆 광화문 네거리 부근. 땅거미가 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촛불을 든 시민들이 하나둘 씩 모여든다. 이들은,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의 노상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 양의 혼(魂)을 불러낸다. 두 여중생의 혼과 촛불들이 반디가 되어 광화문의 밤은 더욱 생기 있게 빛난다. 반디들이 죽음의 도시 서울에 생명 부활의 기운을 넣는다.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두 여중생의 무고한 죽음에 대한 연민과 죄를 뉘우치지 않는 미군 당국을 규탄하는 심정으로 얽혀 있다. 두 여중생에 대한 조의(弔意)와 미군 ・미국 비판이라는 엇갈린 정서가 한 가닥 촛불로 승화되어 생명존중 ・평화 ・미국반대의 원동력을 낳는다. 이 원동력은 촛불 시위를 ‘제2의 6월 항쟁’으로 격상시키는 민중의 힘(people’s power)이다.

촛불 시위를 통해 미국정부에 ‘사죄’ 압박을, 한국정부에는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설정’을 요구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나? 이 힘을 이해해야 21세기의 한국 시민사회에 육박할 수 있다. 이 힘이 샘솟는 광화문 현장으로 달려가 보자.

1. 촛불 시위의 분위기

촛불 시위는 두 여중생의 초혼 굿으로 판을 벌인다. 무죄평결을 내린 미군 당국, 미국으로 줄행랑 친 미군 병사를 응징하려고 촛불을 든 이승의 남은 자들(remnants)이, 저승에 있는 두 여중생을 밤마다 불러내 위로하고 같이 놀며 난장을 친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며…

마치 초상집에 가서 일단 조의를 표명한 뒤 삼삼오오 둘러앉아 고인의 덕담을 나누다가 밤늦게까지 왁자지껄 떠드는 조선 사람들의 기질이 촛불 시위에서 재현된 듯하다. 모두 함께 슬퍼하는 아리랑 고개를 넘은 다음에 슬픔을 초월하는 공동체 마당을 만들어 내는 생명부활의 미학이 촛불 시위에서 되살아난 듯하다.

촛불 시위의 수많은 가무(歌舞)는 이 시대 최대의 서사극을 이룬다. 이 서사극은 조사(弔詞)로 시작되어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희구하는 서사시로 끝맺는 장엄한 시대극이다. 陰(슬픔, 애도, 조사 등의 Negative)과 陽(‘슬픔을 딛고 외세의 횡포 없는 새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다짐: Positive)이 조화를 이루어 ‘미군의 폭력-패권주의 미국이 없는 해방세상을 앞당기려는 해방극’이다. 이 해방극이 끝나면, 분단 한국의 겨울밤을 이겨낸 우리들의 ‘광화문 설화(說話)’ 한 편이 남는다. 촛불 시위대들의 애창곡은 ‘광화문 별곡(別曲)’이 된다.

하늘나라에 있을 효순이, 미선이를 향해 ‘사랑해 !’를 목 놓아 소리치는 촛불 시위 현장에서는 이승과 저승이 교차한다. 저승에 있는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한 조사로 시위가 시작되면서 두 여중생의 혼을 불러낸다. 저승사자의 등에 올라타고 광화문에 도착한 망자(亡者)는 촛불 시위대와 묵시록의 대화를 나눈다. 온라인의 쌍방통행을 통해 정보화 자본주의의 꽃이 만발한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망자와 촛불 시위대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며 매일 밤 ‘자주 ・평화의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는’ 설화를 남긴다니 이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드디어 반디들은 두 여중생의 혼과 함께 몸을 흔들며 ‘미군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영생하자 !’는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나라 미국’을 꾸짖는다. 이때 시위장에 들고 나온 깃발은 ‘미국 규탄의 만장(輓章)’이 된다. 그리고 ‘두 여중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 !’는 구호는 조사가 된다. 이 조사가, 살인한 미군에 대한 규탄사(糾彈辭)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촛불은 서서히 미국 반대의 횃불로 다시 타오른다. 그 순간 시위는 절정에 이르며 처음에 만장처럼 보였던 깃발이 미국 반대의 깃발로 펄럭인다(‘깃발을 내리라’는 일부 네티즌의 요청은 이런 촛불 시위의 뜻을 간파하지 못한 단견이다).

두 여중생의 영혼이 보기에도 흡족한 분위기를 연출한 반디(인간 반디)들은 이제 한판 놀이마당을 연다. 이 놀이마당에 서면 헐렁한 바지를 입은 안온한 느낌이 든다. 이 마당극은 ‘장엄한 조의 표명+적절한 구호+Fucking USA 노랫가락에 맞춘 힙합의 율동+때에 따라 주먹 쥐고 구호 외치기+함성 지르기’로 연결되며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룬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반디들은 딴 나라(미국)를 비판하며 ‘줏대 있는 우리나라를 만들자’는 결의를 다진다.

촛불로 도원결의(桃園結義)한 반디들끼리 어깨를 들썩이며 판을 벌인다. 판을 벌이는 데도 순서가 있다. 일단 목소리를 서로 조율하기 위해 ‘아침이슬’을 먼저 불러 젖힌다. 이어 막걸리를 한잔 마신 듯 흥이 돋기 시작하자 ‘Fucking USA’를 목청 높여 부른다. 그러나 이 순간 ‘Fucking USA와 같은 반미 노래를 불러도 되나 ?’고 뇌까리는 시위대들의 자기검열이 되살아나 ‘상록수’를 조용하게 부른다. 이 얼마나 교활한(?) 민중들의 몸놀림인가? 촛불 시위가 반미집회라며 트집 잡는 국내외 수구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반미정서는 충분히 드러내는 민초들의 교활한 몸짓에 찬사를 보낸다.

이러한 대중들의 몸짓을 두고 ‘반미는 무조건 안 된다.’는 금기가 쑥스러워진다. ‘반미’와 유희하는 젊은이 ・네티즌들 앞에서 ‘친미는 환영하고 반미는 안 되는’ 2분법 냉전 논리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뿐이다.

이들의 몸놀림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자. 이른바 운동권 사람들도 꺼려했던 ‘반미’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반디들의 위대한 율동을…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 금단의 ‘반미’를 넘어 광화문(오프라인)으로 달려온 무서운 아이들(enfant terrible)은 ‘반미’노래를 겁 없이 불러 젖히며 윤무(輪舞)를 즐긴다. 오랜만에 장안에 해방구가 열린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파열구로서의 해방공간이 열린 것이다.

주변부에서 맴돌던 젊은이들이 해방구의 주역이 된 것이다. 이 겁 없는 아이들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21세기의 ‘반미 처용
무(處容舞)’는 ‘반미=용공=친북=이적행위=국가보안법’의 등식을 한칼에 베어 버린다. 이들은 기존의 운동권처럼 어려운 사회과학적 인식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도의 반미 운동을 ‘추모의 엄숙함과 촛불 시위의 활기를 안배하면서’ 이렇게 손쉽게 연출해 내다니…

광화문을 해방구로 만드는 데 애를 쓴 네티즌과 청소년들의 유연하면서도 힘 있는 몸짓에서 21세기 통일 한국의 서광이 빛난다. 이들의 함성, 율동, 윤무에서 새로운 한국 시민사회의 미래가 보인다. 이런 비전이 있는 한 촛불 시위는 장수(長壽)할 것이다. 여태껏 단일 사안을 가지고 8개월 이상 매일같이 시위를 해본 적이 없다. 이것만으로도 신기록 아닌가?

2. 촛불 시위의 장수 비결

촛불 시위가 장수하는 첫째 비결은 공명(共鳴)에 있다. 촛불을 통한 마음과 마음의 떨림음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촛불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 촛불 시위에 동조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의 소리통이 되는 게 참으로 미묘한 마력이다. 그렇게 개성이 다르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촛불 하나로 연결되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특히 평소 운동권과 거리를 둔 시민들이 스스럼없이 나서서 발언하며 하나의 대오를 이루는 걸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두 여중생의 죽음을 계기로 시민사회의 공명이 울린 점이 장수의 비결이다.

두 번째 비결은, 감동을 주는 시위라는 점이다. 미군 때문에 잔인하게 죽은 윤금이 씨나 전동록 씨보다 두 여중생의 사망이 더 크게 한국 땅을 메아리친 사연 속에, 감동의 실타래가 내재해 있다. 슬픔을 구호 ・노래로 이겨내는 촛불 시위의 변주곡은 감동 자체이다. 두 여중생의 한(恨)이 풀릴 때까지 촛불을 놓지 않겠다는 것보다 더 감동어린 결의가 있을까?

물론 감동을 연출한 [미군 장갑차 고 신효순, 심미선 양 살인사건 범국민 대책 위원회(이하 ‘여중생 대책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네티즌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들이 온라인에서 실어 나른 상장(喪章)과 백악관 홈페이지 등에 대한 급습(急襲)이, 감동의 바다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지런한 네티즌과 겁 없는 청소년들, 공명의 울림음을 터득한 시민들이 있는 한 촛불 시위의 감동은 지속될 것이다.

3. ‘뚝배기 정신’ 보여줘

흔히 한국 사람들은 냄비근성이 있어서 불끈 달아올랐다가 금세 시들해진다고 한다. 일본 정객의 망언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빗발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라진다. 이를 잘 아는 일본인들이 사죄하는 척 하다가 정략적인 망언을 내뱉으며 야금야금 군사대국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국내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안으로 들끓던 민심이, 물꼬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당국이나 언론의 공작(?)에 의해 가라앉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한국인의 냄비근성은 어쩔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두 여중생 사건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은 다르다. 냄비 근성이 아닌 ‘뚝배기 정신’을 보여준 것이다.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저항 심리는 짧게는 9 ・11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길게는 해방 직후의 미 군정까지 소급됨). 뉴욕 ・워싱턴 동시 테러 사건을 전쟁국면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 부시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을 융단폭격한 끝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다. 이어 ‘악의 축’인 이라크와 북한에 대한 전쟁국면으로 돌입한다. 이러한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적 ・전쟁지향적인 대외정책에 대한 한국 국민의 저항심리가 동계 올림픽 때의 ‘오노’ 사건을 통해 분출한다. 이어 F-15K 전투기 구매 반대로 이어지다가 두 여중생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폭발한다.

그러나 두 여중생이 사망한 2006년 6월의 월드컵 열기에 가려 이 사건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질 뻔했다.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려는 두 여중생 사건을 범국민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오프라인 운동권 [민족화해 자주통일 협의회(자통협), 경기 북부 지역의 단체 등]의 숨은 공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들 단체 및 활동가들은 살인미군에 대한 무죄평결이 내려지자마자 미군부대 앞에서 처절하고 외로운 투쟁을 계속했다. 이러한 초반의 투쟁이 두 여중생 사건을 ‘사태’로 만드는 불씨가 되었다. 이 불씨가 온라인으로 옮아 붙어 자그마한 용광로가 되었다. 이어 살인한 미군의 줄행랑 ・사죄를 거부하는 부시 정권의 뻔뻔스러움이 뇌관이 되어, 일반 국민들의 마음속에 쌓여온 미국 비판 정서를 폭발시켰다.

더 나아가 우리 동포인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해 막무가내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전쟁광 부시’에 대한 증오심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미국 반대의 화산이 터져 버렸다. 이는 해방정국의 흐름을 왜곡시킨 미 군정 이후 ‘미군주둔-미국 지배 체제에 저항해 오던 지하 수맥’이 터진 것이며, 우리 민족의 긴 역사 속에서 꿈틀대던 반외세의 활화산이 터진 것이다. 촛불시위는, 반외세의 활화산이 터져 흐르는 용암의 지류일 뿐이다. 앞으로 한국정부가 미국과 평등한 외교관계를 설정하지 못하거나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 하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들고 나올 것이다. 시민항쟁이 아닌 민중 항쟁이 전개될 것이다. 

4. 촛불 시위의 배경과 동력

여기에서 무정형의(amorphous) 미국 비판을 ‘대중적인 미국 반대’로 작열시킨 원천을 찾는 게 중요하다. 무정형의 대중정서를 ‘꼴을 갖춘 운동’으로 변환시킨 오프라인-온라인 운동의 응집력이 촛불 시위의 배후에 있다. 그리고 이 응집력이 기반이 되어 두 여중생 사태를 국민적인 사안으로 승화시킨 신바람이 촛불 시위의 기본적인 동력이다.

촛불 시위의 첫 번째 배경으로 국민들의 성숙된 세계관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두 여중생의 죽음을 자신의 일, 자기 가족의 일로 여기며 눈물 흘린 ‘정(情)이 통하는 한국형 시민사회의 공동체 정신’이 촛불 시위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도덕적 패자인 미국을 마음껏 규탄했다. 이 규탄의 대중적 흐름에서 진짜 ‘반미’의 샘이 솟아오를 것이다.

그리고 두 여중생을 살려내라는 구호 속에 생명존중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 또한 생명 존중의 의식이 없는 미군 당국을 미워하는 대중심리 속에서 ‘생명존중-미국 반대 정서의 절묘한 배합’을 읽을 수 있다. 이건 단순한 미국 반대가 아니다. 생명존중 사상 아래의 미국 반대라는 점에서 커다란 도덕적인 힘을 지닌다. 이런 도덕력이 없었다면 촛불은 벌써 꺼졌을 것이다.

두 번째 배경은, 미군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뒤늦게 두 여중생 죽음의 진상을 알게 된 시민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피해자는 분명히 죽었는데 가해자는 처벌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죄 평결을 받은 뒤에 미국으로 뺑소니쳤다 ?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 미군 장갑차라도 구속해야 하는 게 아닌가 ?

이제 한국 국민은 이러한 부정의, 한 ・미 간의 불평등, 미군의 폭력을 묵과하지 않는다(윤금이 사건 때는 운동권 중심으로 미군의 부정의를 규탄하는 데 그쳐 국민적인 사안이 되지 못함. 아니 국민 의식이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함).

세 번째 배경은,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성숙한 민족주의 정신이다. 무죄평결은 또 다른 미국의 일방주의이므로 이에 저항하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 결여된 미국의 일방주의를 거부하고,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희망하는 지점에서 대중들의 성숙한 민족주의 정신을 간파할 수 있다. 우리 것만 찾는 이기주의적인 민족주의가 아닌 민족 간의 평등을 요구하는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네 번째 배경은, 대외정책의 틀을 과감하게 바꾸라는 대중적인 요구[대외정책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 요구]이다. 1987년의 ‘제1의 6월 항쟁’부터 지금까지 국내의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한 양심적 시민들의 눈길이 이제 대외관계로 쏠리고 있다. 우리 한국도 이제 OECD 가입국이 되었으니 이에 걸맞은 외교 ・안보 정책을 펼치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라는 대중적인 압박이, 이미 붉은 악마의 ‘필승 코리아’ 구호에 숨어 있었다. ‘정의파 붉은 악마들’은 두 여중생 사태(특히 무죄평결)에서 ‘필승 코리아’가 ‘필패 코리아’로 역전되는 기가 막힌 장면을 목격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이 붉은 악마들을 대표한 ‘앙마(인터넷상의 필명)’가 주먹 대신 촛불을 들자고 제의하여 성공한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경우 무죄평결 이후 한국 정부가 미국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미국 놈들 종노릇을 하지 말라’는 경고장을 보내기 위해 촛불을 든 것이다. 지난 월드컵 대회 때 시민들이 몸으로 내보인 ‘당당한 한국 만들기’에 역행하는 한국 정부의 졸렬함이 두 여중생 사건 처리과정에서 나타나자 이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촛불 시위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당당한 한국을 만들어 보겠다.’고 공약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있지 않으며, 이런 공약을 노무현 대통령이 지켜 나아간다면 환호의 촛불시위를 벌일 것이다.

5. 촛불 시위의 성격

촛불 시위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성격과 정치적인 측면에서 미국을 비판하는 성격이 어우러진 집회이다. 아직도 집회가 계속되므로 촛불 시위의 성격을 단언하기에 이르지만, 성격규정을 위한 판단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첫째, 촛불 시위의 주체가 밝혀져야 촛불 시위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다. 영어로 people’s power가 촛불 시위에서 나타났다는 가정을 세운다면 이 ‘people’을 시민으로 볼 것인가 민중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촛불 시위의 성격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네티즌과 청소년이 대거 가세한 촛불 시위를 놓고 ‘시민・민중 타령’을 하는 게 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다중(多衆: multitude)이 주도한 촛불 시위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다중’이 시민, 민중, 대중, 국민을 어느 정도 포괄하고 배제하는지에 관한 논쟁은 여기에서 생략한다. 단지 이 사회의 주변부에 있던 학생 ・20~30대 청년 ・여성 ・네티즌들이 어느새 다중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붉은 악마~노사모~촛불 시위대로 이어지면서 이들 다중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어 가는 가운데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둘째, 촛불 시위를 ‘제2의 6월 항쟁’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1987년의 첫 번째 6월 항쟁은 주로 국내정치의 사안(직선제 개헌, 호헌철폐)을 에워싸고 국내 파시스트 무리들과 벌인 투쟁이었다. 그런데 제2의 6월 항쟁, 즉 2002년 6월 10일의 전동록 씨 장례식에 이은 6월 13일의 두 여중생 사망에서 비롯된 촛불 시위는 외세(미군-미국)와의 싸움이다.

한편 제2의 6월 항쟁은 제1의 6월 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1987년의 6월 항쟁 때 학생들은 ‘자주 없이 민주 없다.’고 외쳤다. 미국과의 자주적인 외교 ・안보 관계없이 민주화는 어불성설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이 오늘날에도 설득력을 지닌다. 지난 15년 동안 어느 정도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반 푼어치의 민주화이었다. 대외관계의 민주화(미국과의 호혜 평등의 민주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중의 힘으로 민주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과의 평등관계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1987년 6월의 시민항쟁이 그해 7~9월의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져 민중운동의 힘이 배가되었으나 그 힘의 정치세력화에는 미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 ・민중운동이 고양된 덕분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오늘날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더 많은 민주주의(대외정책의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다중의 힘이 모아져 ‘제2의 6월 항쟁’의 촛불을 불태우고 있다.

만일 촛불 시위가 제1의 6월 항쟁 때처럼 더욱 강한 민중운동으로 승화된다면 ‘반미-한국 사회 전반의 Paradigm Shift’를 요구하는 횃불로 타오를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1968년 서유럽 ・미국에서 있었던 ‘68 항쟁’의 한국판과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할 것이다. 즉 서구의 68항쟁처럼 가치관의 전도를 초래하는 ‘다중의 혁명’이 한국 땅에서 일어날지 모른다. 이렇게 되면 미완의 4 ・19 혁명의 완성도를 한껏 높여줄 것이다.

셋째, 4 ・19 혁명 때도 그랬지만 혁명의 기운이 높아지면 늘 청소년들이 민초들의 선봉에 선다. 이는 조선 역사의 철칙이다. 이번 촛불 시위에서도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한 사실 자체가 혁명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중 ・고등학생들 일부가 전교조 선생님이나 인터넷의 교화(?)를 받아 촛불을 드는 것이므로, 혁명을 거론하기에는 성급한 측면이 있다. 입시 지옥이라는 억압구조에서 벗어난 해방구를 광화문에서 찾은 이들 청소년들의 활기 ・활력이 당장 혁명으로 변환되지 않겠지만, 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 최소한 학생운동의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 같다. 서구의 68 항쟁도 학생들의 억압구조 철폐투쟁에서 출발하여 교육 모순을 물고 늘어지면서 폭발력을 발휘했다. 이 땅 한국에서 앞으로 있을 다중 혁명의 지뢰밭은 교육 모순에 있기 때문에, 해방구를 찾아 광화문에 나선 학생들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는 말이다.

넷째, 다중이 촛불 시위를 주도했다는 것은 시민사회 운동의 주인공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두 여중생 항의 집회에서의 마이크 주도권이 운동권 주류에서 탈피하고 있음에서 잘 나타난다. 지금도 형식상 여중생 범대위에서 집회를 기획하지만 무대의 실제 주인공은 다중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운동 단체의 시위문화의 변화가 예상된다. 앞으로 다중에 접근하는 운동이 성공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촛불 시위는 미군의 폭력에 저항하는 평화 지향적인 비폭력 직접행동이다. 폭력 반대의 ‘평화의 문화(culture of peace)’를 한껏 높인 시민적 저항의 요소가 촛불 속에 깃들어 있다. 이런 요소를 간파한 일부 네티즌이 ‘반전 평화운동’으로 선회하자는 제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이런 요소가 있기 때문에 여중생 대책위에서 내거는 ‘자주 평화, 반전 평화’의 구호를 시위 참가자들이 반기는 것이다. 이는 두 여중생의 죽음을 넘어서서 상생(相生)의 마당을 열려는 ‘다중의 평화의지’의 나타남이다. 더 나아가 월드컵 대회때 붉은 악마의 구호 ‘필승 코리아’에 겹쳐서 나오던 ‘Peace Korea’ 구호가 촛불 시위에서 재현된 것이다.

여섯째, 주한미군의 사고가 불특정 다수의 목숨을 노리는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살인 미군이 강요하는 ‘죽음(Thanatos)의 문화’를 ‘삶(Eros)의 문화’로 승화시켜 상생의 축제를 갖자는 이심전심이 촛불 시위 현장에서 엿보인다. 이런 상생의 욕구가 촛불 시위의 활력을 불어 넣으며 ‘에로스 효과(Eros Effect)’를 가져오고 있다. ‘에로스 효과’는 본래 마르쿠제(Marcuse)의 용어인데 이를 자주 빌려 쓰는 카치오피카스 교수는 혁명적 열망과 실천이 급속하게 퍼
지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한다. 그는 광주 항쟁 때 해방구에서 보인 시민들끼리의 유기적 연대에서 에로스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에로스 효과는 단순히 마음가짐이나 양심적 세력들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에로스 효과는 수천의 보통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로서 역사를 움켜쥐려는 대중적 혁명 운동을 수반한다. 에로스 효과는 감정을 ‘중대한 사회 변혁을 가져올 긍정적이고 혁명적 동력이라는 범주’ 속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를 향한 본능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광주항쟁 기간 동안에 벌어진 집합적 현상들 속에 이 본능적 욕망이 내재돼 있었으며 2003년의 촛불 시위에서도 이러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http://www.digitalmal.com/news/news_read.php?no=4266참조).

6. 촛불 시위의 성과

첫째, 두 여중생의 죽음에 얽힌 미군-미국 반대 여론을 국민적인 사안으로 부각시켜 ‘줏대 있는 나라 세우기 캠페인’을 벌인 점이다. 한국 사회의 금기사항이던 ‘반미’를 공론화한 공적이 크다. 맨 처음에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한 연민에 머물던 다중을 무죄평결에 대한 저항으로 이끌어 미군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유도한 운동의 역량이, 국민적인 관심을 끈 주요한 힘이다. 이쯤 되자 다중은 스스로 무죄평결을 내린 주한미군의 존재의미를 캐묻기 시작하면서 자기 학습을 거쳐 촛불 시위장에 나왔다. 이들은 촛불시위 현장에서 ‘오만한 나라 미국의 본질, 미국 대외정책의 야만성’ 을 상호 학습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미국 반대의 전사(?)’가 되면서 두 여중생 사태를 전 국민의 관심사로 만들었다.

이들 ‘미국 반대의 전사(?)’들은 ‘미군의 폭력에 대한 반성 없이 무죄평결을 내린 미(美)국이 과연 아름다운(美) 나라인가 ?’ 묻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미국의 모든 것을 반대하지 않고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주의적 정책을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둘째,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두 여중생 사태-SOFA 전면개정’을 정치적 사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오죽하면 표에 눈이 어두운 이회창 후보가 부시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며 집회장에서 연설할 테니 마이크를 달라고 했겠는가 ? 결국 대선을 앞두고 ‘SOFA 전면개정 정국’을 창출하여 ‘반미(?)표’의 상당 부분이 노무현 후보 쪽으로 몰린 결과 대통령 당선에 일
정한 몫을 했다. 노무현 정권이 촛불 시위 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앞에서 당당하게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셋째, 세계 최초로 온라인 운동권과 오프라인 운동권이 넘나들면서 ‘여중생 대책위’를 꾸려가는 가운데 국민과 함께 하는 운동을 성공시켰다. 이는 서유럽의 68 항쟁 주역들도 못한 일이요, 한국의 제1차 6월 항쟁 때는 엄두도 못 냈던 일이다.

넷째, ‘SOFA 전면개정-미국 반대’라는 거대담론과 (두 여중생과 같은) 시민의 인간 안보(human security)를 요구하는 미세담론을 넘나들면서 대중적인 설득력을 갖춘 성과이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촛불 시위를 지렛대로 이용하여 미국과 당당한 외교를 펼치라’는 압력을 차기정부에 넣고 있다.

다섯째, 촛불 시위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간접적으로 예방한 성과이다. 부시 대통령이 두 차례나 간접적인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사과를 하라고 외쳐대는 것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벼르는 부시의 기(氣)를 꺾는 효과가 있다. 2002년 12월 14일 미 대사관을 삼킨 촛불의 위력은 전쟁광 부시를 기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미 대사관 주변의 촛불 인간띠는, 전쟁광 부시가 한반도에서 ‘전쟁의 염(念)’을 못 갖게 하는 반전평화의 ‘Red Line’이다. 촛불 시위에서의 반미 함성을 통해 ‘한반도에서 함부로 전쟁책동을 하다가는 된통 당하게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부시에게 전달했다. 부시가 제아무리 ‘막가파’라 할지라도 ‘막나가는 반미 함성’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촛불 시위의 전쟁 억지력이 나온다.

촛불의 전쟁 억지력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에서 절멸할지도 모를 우리 민족의 생명을 구제하는 구원력’이다. 촛불이 민족의 생명을 건지는 생명지기이며 평화지기인 셈이다. 이래서 촛불을 끄면 안 된다.

7. 맺음말

촛불은 전선 없는 NGO 시대에 ‘자주 평화의 새로운 전선을 예고하는’ 봉화이다. 이 봉화가 반미의 횃불이 될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으나, 최소한 노무현 정권에게 ‘촛불 시위를 지렛대로 삼아 당당한 대미관계를 재정립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촛불을 든 다중이 제공한 이 지렛대를 활용하지 못할 경우 미국을 향했던 촛불은 노무현 정권을 향해 던져질 것이다.
이제 미국은 한국의 촛불 시위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간파하여 평등한 한-미 외교를 펼치고 북한 붕괴를 위한 갖은 노력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에 소홀할 경우 촛불은 횃불이 되어 ‘반미운동의 다중화(多衆化)’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경고하면서 이 글을 끝맺는다.

* 위의 글은, [진보평론] 15호(2003년 봄)에 실려 있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2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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