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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평화 사경 (71)-偃武 평화 사경 (71)-偃武 김승국 정리 노자 『道德經』 「언무(偃武)」의 全文은 다음과 같다;夫佳兵者,不祥之器,物或惡之,故有道者不處。君子居則貴左,用兵則貴右。兵者不祥之器,非君子之器,不得已而用之,恬淡為上。勝而不美,而美之者,是樂殺人。夫樂殺人者,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吉事尚左,凶事尚右。偏將軍居左,上將軍居右,言以喪禮處之。殺人之衆,以哀悲泣之,戰勝以喪禮處之。 위의 전문 중 ‘君子居則貴左,用兵則貴右。兵者不祥之器,非君子之器’와 ‘吉事尚左,凶事尚右。偏將軍居左,上將軍居右,言以喪禮處之。殺人之衆,以哀悲泣之,戰勝以喪禮處之’은 본래 注이었는데 본문에 끼어들었다는 說이 있으므로, 이를 제외하고 본문을 다시 정리하면 ‘夫佳兵者,不祥之器,物或惡之,故有道者不處。不得已而用之,恬淡為上。勝而不美,而美之者,是樂殺人。夫樂殺人者,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이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35) ‘원폭 슬럼’은, 1945년 8월 6일의 피폭으로 재난을 입은 사람들이 피난생활을 하기 위하여 집단촌을 이루며 살던 슬럼가(街)이다. 히로시마 시내의 모토마치(基町)의 하천변에 원폭슬럼이 형성되었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9) 폭심지에서 36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옛 일본은행 히로시마 지점] 건물이 피폭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이 건물 안에 있던 28명중 17명이 생존하는 기적을 낳았다. 내진 설계(지진에 대비하여 40~70센티미터의 벽으로 둘러싼 설계) 탓에 붕괴되지 않고 사망자의 숫자를 줄인 것이다. 피폭 당시 1~2층은 셔터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폭 사망자를 크게 줄였다. 생존자의 대부분은 1~2층에 있던 사람들이고, 셔터를 내리지 않아 원폭에 대하여 무방비이었던 3층 사람들은 거의 사망했다. 피폭 직후 영업을 재개하여 피폭으로 기능 마비된 여러 은행들이 이곳에 몰려 들어와 히로시마 금융가의 중심지이었다. 이 건물을 피폭 유적지로 삼아야한다는 시민들의 운동이 성과를 발휘한 끝에, 이 건물을 히로시마 시청에 무..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8) 폭심지에서 36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옛 일본은행 히로시마 지점] 건물이 피폭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이 건물 안에 있던 28명중 17명이 생존하는 기적을 낳았다. 내진 설계(지진에 대비하여 40~70센티미터의 벽으로 둘러싼 설계) 탓에 붕괴되지 않고 사망자의 숫자를 줄인 것이다. 피폭 당시 1~2층은 셔터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폭 사망자를 크게 줄였다. 생존자의 대부분은 1~2층에 있던 사람들이고, 셔터를 내리지 않아 원폭에 대하여 무방비이었던 3층 사람들은 거의 사망했다. 피폭 직후 영업을 재개하여 피폭으로 기능 마비된 여러 은행들이 이곳에 몰려 들어와 히로시마 금융가의 중심지이었다. 이 건물을 피폭 유적지로 삼아야한다는 시민들의 운동이 성과를 발휘한 끝에, 이 건물을 히로시마 시청에 무..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7) 폭심지에서 36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옛 일본은행 히로시마 지점] 건물이 피폭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이 건물 안에 있던 28명중 17명이 생존하는 기적을 낳았다. 내진 설계(지진에 대비하여 40~70센티미터의 벽으로 둘러싼 설계) 탓에 붕괴되지 않고 사망자의 숫자를 줄인 것이다. 피폭 당시 1~2층은 셔터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폭 사망자를 크게 줄였다. 생존자의 대부분은 1~2층에 있던 사람들이고, 셔터를 내리지 않아 원폭에 대하여 무방비이었던 3층 사람들은 거의 사망했다. 피폭 직후 영업을 재개하여 피폭으로 기능 마비된 여러 은행들이 이곳에 몰려 들어와 히로시마 금융가의 중심지이었다. 이 건물을 피폭 유적지로 삼아야한다는 시민들의 운동이 성과를 발휘한 끝에, 이 건물을 히로시마 시청에 무..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3) 히로시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는 ‘안데르센(Andersen)’이라는 제과소 겸 카페는, 1945년 8월 6일 피폭 당시에 일본 제국은행의 히로시마 지점이었다. 폭심지로부터 360미터 떨어진 이 건물의 지붕•천정이 떨어지고 기둥이 파괴되고 철근이 노출되는 등 건물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콘크리트의 외벽이 남았다(건물 윗부분의 검게 그을은 부분이 피폭된 외벽임). 이 건물의 소유주가 피폭된 외벽을 고집스렙게 보존한 끝에 피폭 유적지가 되었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2) 1945년 8월 6일에 핵무기 세례를 받아 잿더미가 된 히로시마가, 시민들의 투혼에 힘입어 평화의 도시로 거듭났다. 피폭 이후 생존한 시민들은 불타고 남은 집의 부스러기 자재를 모아 허름하기 짝이 없는 군대식 막사를 짓는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시민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공동체가, 피폭의 지옥도(지옥 같은 피폭현장)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1) 1945년 8월 6일에 핵무기 세례를 받아 잿더미가 된 히로시마가, 시민들의 투혼에 힘입어 평화의 도시로 거듭났다. 피폭 이후 생존한 시민들은 불타고 남은 집의 부스러기 자재를 모아 허름하기 짝이 없는 군대식 막사를 짓는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시민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공동체가, 피폭의 지옥도(지옥 같은 피폭현장)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0) 히로시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는 ‘안데르센(Andersen)’이라는 제과소 겸 카페는, 1945년 8월 6일 피폭 당시에 일본 제국은행의 히로시마 지점이었다. 폭심지로부터 360미터 떨어진 이 건물의 지붕•천정이 떨어지고 기둥이 파괴되고 철근이 노출되는 등 건물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콘크리트의 외벽이 남았다(건물 윗부분의 검게 그을은 부분이 피폭된 외벽임). 이 건물의 소유주가 피폭된 외벽을 고집스렙게 보존한 끝에 피폭 유적지가 되었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19)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