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1. ‘반전반핵’ 구호는 간데없고 핵폭풍만 남아
북한이 2006년 10월 9일에 ‘핵실험(핵시험)'을 공표함으로써, 핵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기 시작했다. 판도라 상자에서 쏟아져 나올 핵의 유령이 한반도를 배회하면서, 평화통일의 발목을 잡는 귀신이 될 것이다. 핵무기의 국적과 무관하게 핵무기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막는 원흉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핵문제에 민감한 남한의 시민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남한의 학생운동・시민운동은 기지개를 켤 때부터 줄곧 “반전 반핵!” “반핵 평화!” “반전 반핵 평화!”를 외쳐왔는데, 이에 어긋나는 핵실험을 북한이 단행한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반전 반핵’의 가치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이다. 1980년대 남한의 대학가에서 “반전 반핵 양키 고홈”을 외칠 때 신바람 나게 박수치며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를 주창했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둘째, 남한운동권 일부의 변신이다. 1980년대에 “반전 반핵 양키 고홈!”을 주창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의 ‘무조건(?) 북한 지지파들’은,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을 환영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핵무기가 ‘양키 고홈’을 구현할 수 있다는 반외세 민족주의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지만, 핵무장론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핵무장 민족주의’에서 살벌함을 느낀다.
1980년대 대학가의 ‘반전 반핵 양키 고홈(핵무기를 가진 양키 퇴진)’을, 북한의 핵개발에 우직하게 대입하면 ‘반전 반핵 김정일 고홈(핵무기를 가진 김정일 정권 퇴진)’이 된다. 1980년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운동권이라면 ‘반전 반핵 김정일 고홈’을 떠올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족 절멸의 가능성이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 김정일 정권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
으니 아찔한 일이다.
또 하나 아찔한 일이 있다. 1980년대의 ‘반핵’이 냉전수구 세력의 구호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남한의 꼴보수 우파들은 핵무장한 김정일 정권을 증오하며 “반핵 반김!”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호전적인 우파들이 ‘반전’ ‘반전평화’를 내걸지 않는 게 유감이지만, 이들의 ‘반핵 반김(김정일 고홈)’구호의 ‘반핵’이 오히려 1980년대 대학가의 분위기를 되살려주는 느낌이다.
남한의 우파는 김정일이 죽도록 싫어서 ‘반핵’의 뒤에 ‘반김’을 붙여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자나 깨나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좌파의 일부는 (반평화의 상징인) 핵무기의 개발을 환영하는 ‘뒤틀린 변신’이 슬픈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시대의 분위기가 변하면 운동의 구호도 변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변신을 탓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제아무리 변신을 해도 망각해서 안 되는 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자 한다.
2.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들
첫째, 북한의 핵무기 앞에서 한반도의 뭇 생명들이 떨고 있으며, 한반도 민중들의 목숨이 북한의 핵무기에 저당 잡혀 있는 점이다.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국적 불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으며 생태파괴를 예약하고 있다. 제노사이드(genocide)가 따로 없다. 바로 우리의 지척에 있는 북한의 핵무기가 제노사이드의 무기이며 죽임의 무기
이다. 죽임의 무기를 저주하기는커녕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경배하는 사람들은 민족의 생명을 모독하는 자요, 이들의 핵무장 민족주의 자체가 민족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따라서 좌파 민족주의자의 일부에서 싹트고 있는 핵무장 민족주의와의 사상투쟁이 불가피하다. 동일한 물질(핵무기)인데, 미제의 핵무기는 물러가라 하고 북한의 핵무기는 통일의 성물(聖物)로 극진하게 모시는 ‘북한 핵무기 물신화(物神化)’가 진보이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를 경배하는 일부 인사의 북한 핵무기 신앙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옛날의 좌파가 정신적으로 추락하여 꼴보수 우파보다 뒤진 시대정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나? 죽임의 무기를 민족의 이름으로 경배하는 핵무장 민족주의를 죽이는 것을 운동의 과업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둘째, 민중안보의 시각에서 북한 핵무기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민중의 인간안보(human security) 차원에서 북한 핵무기 개발의 정당성을 논의하는 일이 중요하다. 북한의 핵무기는 남한 민중의 안전한 삶(민중 안보)을 위협할 것이다. 앞으로 계속될 북한 핵실험에 따른 방사능이 남한 민중의 폐부에 깊숙이 스며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프랑스의 핵실험장인 롱게라프 산호초에 거주하는 민중의 방사능 피해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옛 소련의 핵실험장으로 유명한 세미빨라치스크의 민중들이 방사능 때문에 백혈병이 걸려 죽어가는 사태를 남한 민중이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가난에 찌든 북한의 민중들이 핵무기 베개를 베고 자야 하는 신세가 된 점이 가슴 아프다. 이번 핵실험 때 유출된 방사능이 북한 민중의 생명을 위협하는 게 아닌지 우려한다. 인민들로 하여금 기아에 허덕이게 만든 정권이 인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보장하기는커녕 핵세례를 퍼붓는 죄악(?)을 어떻게 청산해야 할까? 이러한 죄악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이 쓴 진보의 탈을 빼앗아야 하지 않을까? 북한 민중을 짓누르는 ‘기아+핵세례의 상승곡선’에서 벗어나 북한 민중의 진정한 안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평화운동의 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셋째, 핵무기는 정당성이나 국적을 따질 것 없이 폭력이다. 북한의 핵무기라고 해서 폭력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가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기능이 있다고 믿을 수 있겠지만, 그 믿음이 핵무기의 폭력성을 경감해주지 못한다. 특히 핵무기는 그에 걸맞은 안보 전략을 동반한다. 핵무기 중심의 군사전략은 상대방을 핵무기로 초토화하는 게 핵심이므로, 그 위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한반도 같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때 북한의 마음에 안 드는 미군만 선택하여 핵무기 세례를 퍼부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 세례를 받은 미군의 사망 숫자보다 남한 민중의 사망자 숫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핵무기는 인류 절멸, 민족 절멸을 초래하는 절대무기이므로 북한의 핵우산 아래에 편입될 남한 민중의 목숨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남한 민중의 생활 잠재력을 갈아먹을 북한 핵무기는 구조적인 폭력(structural violence)이다. 그러므로 북한 핵무기라는 구조적인 폭력을 없애는 적극적인 평화운동이 절실하다.
넷째, 핵실험과 같은 군사모험주의가 초래할 위험성이다. 남북한은 비무장지대(DMZ)를 중심으로 세계 최대의 군대가 밀집되어 있다. 우발적인 군사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할 요소를 가진 화약고 ‘한반도’, 이 한반도의 북쪽 땅에서 핵방아쇠를 당길 자세를 취하는 모험주의는 결코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상무기를 대폭 감축한 다음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
자고 제안했던 북한이 앞장서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모험주의를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에 불어 닥칠 핵폭풍을 예고하고 있으므로, 핵을 통한 군사모험주의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제국 미국과 최후의 성전(holy war)을 준비하는 첫번째 결행인 듯하다. 그런데 핵무기를 통한 북한식 성전은, 재래식 무기를 통한 성전과 달리 민족 절멸의 독(毒)을 지니고 있다. 또 핵무기는 무제한의 군비경쟁을 남북한 사이에 유발함으로써 분단의 영구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파국이 예상됨에도 핵실험하는 모험주의를 민족의 이름으로
척결해야 한다.
3. 핵실험의 배경
지금까지 장황하게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운동의 담론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화제를 바꿔 북한 핵실험의 배경을 거론한다. 우선 북한 핵실험의 대내적(국내적)인 측면과 대외적인 측면을 나누어 설명한다.
이번 북한 핵실험은 대내용에 무게를 더 둔 듯한 인상을 준다. 2006년 10월 3일의 핵실험 의지 천명 이후 미국 쪽과 협상할 틈이 없이 서둘러 당 창건 9주년 기념일(10월 9일)에 맞춰 핵실험을 강행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 핵실험이 대외용(미국과의 협상용)이었다면, 협상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핵실험 발표 이후 6일 만에 전격적으로
단행한 데에 북한 내부의 사정이 있는 것 같다. 핵실험을 통해 북한 국내의 정치문제를 해결하거나 정치・군사적인 압박을 덜려고 하지 않았을까?
당 창건일의 잔칫상에 핵무기를 올려놓고 천출명장 김정일 위원장의 공덕을 비는 푸닥거리가 절실하게 필요해진 사정이 있는 듯하다. 배고픈 인민들에게 장군님의 위대함을 보여주어 정치적인 포만감을 갖게 함으로써, 가난의 시름을 잊게 한 작품일지 모른다. 당 창건일을 빛내기 위한 폭죽 터뜨리기의 일환으로 핵실험을 결행했을지 모른다.
군사를 통해 강권을 휘두르는 정권집단은 예나 지금이나 ‘극장식 군사 쇼’를 좋아하고, 이에 심취한 백성들의 미칠 듯한 환호를 즐겨한다. 북한의 핵실험 역시 당 창건일에 즈음한 ‘극장식 군사 쇼’와 이에 환호하는 민초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면 철천지원수인 미제와 사생결단을 위한 장렬한 전투를 위한 출정식으로서 핵실험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핵실험 이후 엄습할 경제제재・군사제재를 타고 넘기 위한 ‘제2의 고난의 행군’ 출정식일지 모른다. 어쨌든 핵실험을 통한 인민의 단결을 노린 게 거의 틀림없다. 북한 인민이 똘똘 뭉쳐 핵무기를 틀어쥐고 총폭탄이 되자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데 핵실험이 단방약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이와 같은 핵무기 성전에서 말기현상・세기말적인 행태를 엿볼 수 있다. 일본의 대동아전쟁 말기에 횡행했던 가미가제(神風)와 외형상 비슷한 핵무기 성전에서 떼죽음의 악령을 떨치기 어렵다. 핵실험 이후 한반도에 불기 시작한 핵폭풍 속에 민족 생명의 떼죽음, 민족 생명의 단절, 세기말적인 죽음의 집단적인 산화, 죽임의 광란극이 내재해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인가?
이어 핵실험의 대외적인 측면을 기술한다. 핵실험은 미국과의 담판을 위해 최대의 판돈을 건 사생결단임에 틀림없다. 핵무기의 위력에 힘입은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샅바 싸움을 하자는 도전장임에 틀림없다. 미・일・한 3각 군사공동체와의 군사적 비대칭을 한꺼번에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핵무장인 것도 틀림없다. 제국주의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제3세계 빈국들의 가장 효율적인 반미 무기가 핵무기인 것도 틀림없다.
그런데 틀림없어야 할 점은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몇 발을 통해 제국 미국의 고삐를 틀어쥐고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던진 돌팔매와 같은 효과를 북한의 핵무기가 지녀야 하는데 이를 100%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이다. 오히려 미국이 유엔의 등을 업고 경제제재+군사제재의 쌍칼을 들고 사무라이 춤을 추면 한반도에 전쟁의 삭풍이 불어올지 모른다. 북한이 핵무기를 통한 성전을 치루기도 전에 닥칠 전쟁광풍에 온 민족이 휘말릴지 모른다. 핵무기를 매개로 미국과 최후의 담판을 짓는 행위가 북한 정권의 목숨을 죄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핵을 수단으로 한 대미 항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지만, 극도의 불안감을 배제할 수 없다.
4. 맺는 말
필자는 재래식 무기를 통한 반미항전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핵무기를 통한 반미항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핵무기가 만사형통이라는 핵무기 신앙에 사로잡힌 북한 정권에 대한 엄중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 인민들의 주린 창자를 담보로 한 핵무기 개발이 과연 인민을 애호하는 행동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핵실험이 한반도의 파국을 초래할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 책임을 미리 따져야 한다.
한반도 민중의 생명을 인질로 삼아 북한 정권의 생존을 위해 핵무장 모험주의로 나아간다면, 이를 민족의 이름으로 저지해야 하지 않을까?(2006.10. 11.)
1. ‘반전반핵’ 구호는 간데없고 핵폭풍만 남아
북한이 2006년 10월 9일에 ‘핵실험(핵시험)'을 공표함으로써, 핵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기 시작했다. 판도라 상자에서 쏟아져 나올 핵의 유령이 한반도를 배회하면서, 평화통일의 발목을 잡는 귀신이 될 것이다. 핵무기의 국적과 무관하게 핵무기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막는 원흉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핵문제에 민감한 남한의 시민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남한의 학생운동・시민운동은 기지개를 켤 때부터 줄곧 “반전 반핵!” “반핵 평화!” “반전 반핵 평화!”를 외쳐왔는데, 이에 어긋나는 핵실험을 북한이 단행한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반전 반핵’의 가치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이다. 1980년대 남한의 대학가에서 “반전 반핵 양키 고홈”을 외칠 때 신바람 나게 박수치며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를 주창했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둘째, 남한운동권 일부의 변신이다. 1980년대에 “반전 반핵 양키 고홈!”을 주창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의 ‘무조건(?) 북한 지지파들’은,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을 환영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핵무기가 ‘양키 고홈’을 구현할 수 있다는 반외세 민족주의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지만, 핵무장론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핵무장 민족주의’에서 살벌함을 느낀다.
1980년대 대학가의 ‘반전 반핵 양키 고홈(핵무기를 가진 양키 퇴진)’을, 북한의 핵개발에 우직하게 대입하면 ‘반전 반핵 김정일 고홈(핵무기를 가진 김정일 정권 퇴진)’이 된다. 1980년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운동권이라면 ‘반전 반핵 김정일 고홈’을 떠올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족 절멸의 가능성이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 김정일 정권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
으니 아찔한 일이다.
또 하나 아찔한 일이 있다. 1980년대의 ‘반핵’이 냉전수구 세력의 구호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남한의 꼴보수 우파들은 핵무장한 김정일 정권을 증오하며 “반핵 반김!”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호전적인 우파들이 ‘반전’ ‘반전평화’를 내걸지 않는 게 유감이지만, 이들의 ‘반핵 반김(김정일 고홈)’구호의 ‘반핵’이 오히려 1980년대 대학가의 분위기를 되살려주는 느낌이다.
남한의 우파는 김정일이 죽도록 싫어서 ‘반핵’의 뒤에 ‘반김’을 붙여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자나 깨나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좌파의 일부는 (반평화의 상징인) 핵무기의 개발을 환영하는 ‘뒤틀린 변신’이 슬픈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시대의 분위기가 변하면 운동의 구호도 변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변신을 탓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제아무리 변신을 해도 망각해서 안 되는 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자 한다.
2.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들
첫째, 북한의 핵무기 앞에서 한반도의 뭇 생명들이 떨고 있으며, 한반도 민중들의 목숨이 북한의 핵무기에 저당 잡혀 있는 점이다.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국적 불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으며 생태파괴를 예약하고 있다. 제노사이드(genocide)가 따로 없다. 바로 우리의 지척에 있는 북한의 핵무기가 제노사이드의 무기이며 죽임의 무기
이다. 죽임의 무기를 저주하기는커녕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경배하는 사람들은 민족의 생명을 모독하는 자요, 이들의 핵무장 민족주의 자체가 민족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따라서 좌파 민족주의자의 일부에서 싹트고 있는 핵무장 민족주의와의 사상투쟁이 불가피하다. 동일한 물질(핵무기)인데, 미제의 핵무기는 물러가라 하고 북한의 핵무기는 통일의 성물(聖物)로 극진하게 모시는 ‘북한 핵무기 물신화(物神化)’가 진보이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를 경배하는 일부 인사의 북한 핵무기 신앙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옛날의 좌파가 정신적으로 추락하여 꼴보수 우파보다 뒤진 시대정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나? 죽임의 무기를 민족의 이름으로 경배하는 핵무장 민족주의를 죽이는 것을 운동의 과업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둘째, 민중안보의 시각에서 북한 핵무기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민중의 인간안보(human security) 차원에서 북한 핵무기 개발의 정당성을 논의하는 일이 중요하다. 북한의 핵무기는 남한 민중의 안전한 삶(민중 안보)을 위협할 것이다. 앞으로 계속될 북한 핵실험에 따른 방사능이 남한 민중의 폐부에 깊숙이 스며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프랑스의 핵실험장인 롱게라프 산호초에 거주하는 민중의 방사능 피해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옛 소련의 핵실험장으로 유명한 세미빨라치스크의 민중들이 방사능 때문에 백혈병이 걸려 죽어가는 사태를 남한 민중이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가난에 찌든 북한의 민중들이 핵무기 베개를 베고 자야 하는 신세가 된 점이 가슴 아프다. 이번 핵실험 때 유출된 방사능이 북한 민중의 생명을 위협하는 게 아닌지 우려한다. 인민들로 하여금 기아에 허덕이게 만든 정권이 인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보장하기는커녕 핵세례를 퍼붓는 죄악(?)을 어떻게 청산해야 할까? 이러한 죄악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이 쓴 진보의 탈을 빼앗아야 하지 않을까? 북한 민중을 짓누르는 ‘기아+핵세례의 상승곡선’에서 벗어나 북한 민중의 진정한 안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평화운동의 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셋째, 핵무기는 정당성이나 국적을 따질 것 없이 폭력이다. 북한의 핵무기라고 해서 폭력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가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기능이 있다고 믿을 수 있겠지만, 그 믿음이 핵무기의 폭력성을 경감해주지 못한다. 특히 핵무기는 그에 걸맞은 안보 전략을 동반한다. 핵무기 중심의 군사전략은 상대방을 핵무기로 초토화하는 게 핵심이므로, 그 위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한반도 같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때 북한의 마음에 안 드는 미군만 선택하여 핵무기 세례를 퍼부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 세례를 받은 미군의 사망 숫자보다 남한 민중의 사망자 숫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핵무기는 인류 절멸, 민족 절멸을 초래하는 절대무기이므로 북한의 핵우산 아래에 편입될 남한 민중의 목숨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남한 민중의 생활 잠재력을 갈아먹을 북한 핵무기는 구조적인 폭력(structural violence)이다. 그러므로 북한 핵무기라는 구조적인 폭력을 없애는 적극적인 평화운동이 절실하다.
넷째, 핵실험과 같은 군사모험주의가 초래할 위험성이다. 남북한은 비무장지대(DMZ)를 중심으로 세계 최대의 군대가 밀집되어 있다. 우발적인 군사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할 요소를 가진 화약고 ‘한반도’, 이 한반도의 북쪽 땅에서 핵방아쇠를 당길 자세를 취하는 모험주의는 결코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상무기를 대폭 감축한 다음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
자고 제안했던 북한이 앞장서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모험주의를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에 불어 닥칠 핵폭풍을 예고하고 있으므로, 핵을 통한 군사모험주의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제국 미국과 최후의 성전(holy war)을 준비하는 첫번째 결행인 듯하다. 그런데 핵무기를 통한 북한식 성전은, 재래식 무기를 통한 성전과 달리 민족 절멸의 독(毒)을 지니고 있다. 또 핵무기는 무제한의 군비경쟁을 남북한 사이에 유발함으로써 분단의 영구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파국이 예상됨에도 핵실험하는 모험주의를 민족의 이름으로
척결해야 한다.
3. 핵실험의 배경
지금까지 장황하게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운동의 담론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화제를 바꿔 북한 핵실험의 배경을 거론한다. 우선 북한 핵실험의 대내적(국내적)인 측면과 대외적인 측면을 나누어 설명한다.
이번 북한 핵실험은 대내용에 무게를 더 둔 듯한 인상을 준다. 2006년 10월 3일의 핵실험 의지 천명 이후 미국 쪽과 협상할 틈이 없이 서둘러 당 창건 9주년 기념일(10월 9일)에 맞춰 핵실험을 강행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 핵실험이 대외용(미국과의 협상용)이었다면, 협상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핵실험 발표 이후 6일 만에 전격적으로
단행한 데에 북한 내부의 사정이 있는 것 같다. 핵실험을 통해 북한 국내의 정치문제를 해결하거나 정치・군사적인 압박을 덜려고 하지 않았을까?
당 창건일의 잔칫상에 핵무기를 올려놓고 천출명장 김정일 위원장의 공덕을 비는 푸닥거리가 절실하게 필요해진 사정이 있는 듯하다. 배고픈 인민들에게 장군님의 위대함을 보여주어 정치적인 포만감을 갖게 함으로써, 가난의 시름을 잊게 한 작품일지 모른다. 당 창건일을 빛내기 위한 폭죽 터뜨리기의 일환으로 핵실험을 결행했을지 모른다.
군사를 통해 강권을 휘두르는 정권집단은 예나 지금이나 ‘극장식 군사 쇼’를 좋아하고, 이에 심취한 백성들의 미칠 듯한 환호를 즐겨한다. 북한의 핵실험 역시 당 창건일에 즈음한 ‘극장식 군사 쇼’와 이에 환호하는 민초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면 철천지원수인 미제와 사생결단을 위한 장렬한 전투를 위한 출정식으로서 핵실험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핵실험 이후 엄습할 경제제재・군사제재를 타고 넘기 위한 ‘제2의 고난의 행군’ 출정식일지 모른다. 어쨌든 핵실험을 통한 인민의 단결을 노린 게 거의 틀림없다. 북한 인민이 똘똘 뭉쳐 핵무기를 틀어쥐고 총폭탄이 되자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데 핵실험이 단방약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이와 같은 핵무기 성전에서 말기현상・세기말적인 행태를 엿볼 수 있다. 일본의 대동아전쟁 말기에 횡행했던 가미가제(神風)와 외형상 비슷한 핵무기 성전에서 떼죽음의 악령을 떨치기 어렵다. 핵실험 이후 한반도에 불기 시작한 핵폭풍 속에 민족 생명의 떼죽음, 민족 생명의 단절, 세기말적인 죽음의 집단적인 산화, 죽임의 광란극이 내재해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인가?
이어 핵실험의 대외적인 측면을 기술한다. 핵실험은 미국과의 담판을 위해 최대의 판돈을 건 사생결단임에 틀림없다. 핵무기의 위력에 힘입은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샅바 싸움을 하자는 도전장임에 틀림없다. 미・일・한 3각 군사공동체와의 군사적 비대칭을 한꺼번에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핵무장인 것도 틀림없다. 제국주의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제3세계 빈국들의 가장 효율적인 반미 무기가 핵무기인 것도 틀림없다.
그런데 틀림없어야 할 점은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몇 발을 통해 제국 미국의 고삐를 틀어쥐고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던진 돌팔매와 같은 효과를 북한의 핵무기가 지녀야 하는데 이를 100%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이다. 오히려 미국이 유엔의 등을 업고 경제제재+군사제재의 쌍칼을 들고 사무라이 춤을 추면 한반도에 전쟁의 삭풍이 불어올지 모른다. 북한이 핵무기를 통한 성전을 치루기도 전에 닥칠 전쟁광풍에 온 민족이 휘말릴지 모른다. 핵무기를 매개로 미국과 최후의 담판을 짓는 행위가 북한 정권의 목숨을 죄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핵을 수단으로 한 대미 항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지만, 극도의 불안감을 배제할 수 없다.
4. 맺는 말
필자는 재래식 무기를 통한 반미항전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핵무기를 통한 반미항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핵무기가 만사형통이라는 핵무기 신앙에 사로잡힌 북한 정권에 대한 엄중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 인민들의 주린 창자를 담보로 한 핵무기 개발이 과연 인민을 애호하는 행동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핵실험이 한반도의 파국을 초래할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 책임을 미리 따져야 한다.
한반도 민중의 생명을 인질로 삼아 북한 정권의 생존을 위해 핵무장 모험주의로 나아간다면, 이를 민족의 이름으로 저지해야 하지 않을까?(2006.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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