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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반전 운동

아시아의 평화 운동 개관

김승국

1. 반전 평화

  1) 아프간 전쟁 반대

전 세계의 평화 운동 단체들이 미국에 의한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전쟁에 반대했다. 아시아의 평화 운동 단체 역시 아프간 전쟁반대에 앞장섰다. 한국에서는 ‘반전평화 공동실천’ 등의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이, 필리핀에서는 ‘Peace Camp’ 등이, 일본에서는 여러 평화 운동 단체들이 아프간 전쟁에 반대했다.

  2) 이라크 공격에 대한 반대

이미 미국 ・영국의 공군기들이 이라크의 상공을 3등분하여 공습을 해 왔기 때문에 지금도 전쟁 중이다. 9 ・11 사태 이전의 이라크와 관련된 평화 운동은, 이라크 상공을 공습하는 행위에 대한 비난과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이라크 민중의 고난(아동의 죽음)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9 ・11 사태 직후에 돌입한 아프간 전쟁으로도 성에 안 찬 듯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바짝 긴장한 아시아의 평화 운동 진영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각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3) 반테러 전쟁 반대; 생략
   
2. 반핵 평화 운동

  1) 일본의 반핵운동

피폭 국가 일본의 평화 운동은 반핵운동이 출발점이자 귀환점이다. 일본은 전 세계의 반핵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국제연대 활동이 활발하다. 일본의 반핵운동은 나가사키 ・히로시마를 기점(起點)으로 동진하면서 오사카 ・교토에서 작열한 다음 도쿄에서 마지막으로 승화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① 일본 최대의 반핵운동 조직인 ‘원수협(原水協)’

2002년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열린 ‘원수폭(原水爆: 원자폭탄 수소폭탄) 금지 2002 세계대회(일본原水協 주최)’에 24개국 38개 단체에서 64명의 평화 활동가와 3개국 정부대표를 포함하여 해외에서 67명이 참석했고, 일본 국내에서는 약 1만 명이 참석했다. 일본 국내참석자들 대부분은, 두 달 전부터 일본 전국을 도보로 순회하며 반핵평화 캠페인을 전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당찬 모습은 한국의 통일 선봉대를 연상케 한다.

  2) 인도의 반핵운동; 생략

  3) 비핵지대화 운동

동북아시아의 비핵지대화 방안은 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몇천 킬로미터의 방사선 비핵지대화를 설정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므로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한반도 정세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는 북한의 핵문제를 중심으로 핵무장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으므로 비핵지대화와 더욱 동떨어지는 느낌이다.

3. 무기 반대 운동

  1) 대인지뢰 반대 운동

지뢰운동은 한국, 캄보디아, 아프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아프간 전쟁이 한창인 때 국제적인 대인지뢰 활동가들이 유엔의 이름으로 현지에 파견되어 지뢰제거 작업에 나섰다. 그리고 일본의 일부 평화 활동가들은 캄보디아의 지뢰 밀집지역에 들어가 현지 주민과 동거동락하면서 지뢰도 제거하고 학교 등을 세워 주는 등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2) 무기거래 관련 운동

아시아 지역은 미국 등의 군수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아시아 지역들이 앞 다투어 구입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무기 전시장으로 전락한 아시아에서 무기 거래를 감시하고 축출하는 운동이 중요함을 깨달은 일부 활동가 집단이 무기 거래 모니터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으나 아직 미약하다.

  3) 외국무기 도입 반대 운동

미국은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면 우선 동맹국들에게 실험용으로 사용해 보라고 권유(경우에 따라서는 강매)한다.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은 미국 군 ・산 복합체의 신무기 실습장이며, 우리 민족이 이 신무기의 모르모트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게 된 한국 ・일본의 평화 운동 세력은 자국 정부가 미국 등 외국의 최첨단 무기를 마구잡이로 도입하는 것에 저항해 왔다.

4. 군축운동

아시아에서 군축운동의 뿌리는 깊다. 일본의 경우 태평양전쟁(제2차대전) 당시에도 생사를 건 반전운동가들이 군축운동을 전개했다. 일본의 패망 이후 평화헌법이 제정되자 군축운동은 날개를 단 듯 활발해져 핵무기 반대 운동과 병행하여 큰 힘을 발휘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1990년대 초반부터 국방비 삭감운동을 전개하면서 “국방비 삭감-군축을 통한 평화 배당금(peace dividend)으로 민중 복지를 향상시키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5. 미군주둔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평화 운동

아시아는 미국의 사활이 걸린 지역이다. 아시아는 미국의 국익이 가장 크게 걸려 있는 곳이다. 따라서 미국의 지배계급은 아시아에서 미국 자본을 마음껏 유통시키기 위한 ‘자본 지킴이(capital keeper)’인 미군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10만 명이 미국계 ‘초국적 자본의 헌병’ 노릇을 하고 있다.

미군 주둔 체제는, 한국 ・일본 등 미군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나라의 대외정책 안보정책을 외세지향적 ・반(反)민중적인 형태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자주’를 지향하는 민중들과 정면충돌하고 있다. 이 충돌 지점에서 ‘두 여중생(효순 ・미선 양) 압살’ 사건이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한국 민중 對 미국의 대립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이에 앞선 미군병사에 의한 오키나와 소녀 강간 사건이 오키나와인 ・일본인의 ‘평화의 힘’을 폭발시켰다.

  1) 미군기지 반대 운동

미군주둔 체제의 보루인 미군기지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게 평화운동 세력의 중론(衆論)이다. 이러한 중론은 운동 노선의 차이를 뛰어넘어 미군기지 앞에서의 공동투쟁을 가능케 한다. 몇 년 전 오키나와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 즈음하여 열린 가네다 미 공군기지를 에워싼 인간 띠 잇기는, 일본 국내외의 평화 운동 세력이 대동단결하여 미군기지 반대 운동에 임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에서도 줄기차게 미군기지 반대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용산에 있는 미 8군 입구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2) 미군범죄 반대 운동

한국 ・오키나와 등에서 저지른 미군범죄에 대한 반대 운동의 사례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3)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

필리핀에서 철수한 미군기지를 오염 없는 땅으로 되돌려 받기 위한 필리핀 운동권의 노력은 눈물겹다. 미군기지의 이전이 비교적 많았던 오키나와에서는 일찍이 ‘우리 땅을 더럽히는 미군’들을 좌시할 수 없다는 자각이 집결되어 ‘환경평화(eco-peace)’의 차원에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제거운동을 열심히 전개했다. 한국에서도 만시지탄이지만 녹색연합 등이 중심이 되어 환경평화의 차원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제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6. 군사투쟁과 평화 운동

군대-군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평화 운동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다. 2차대전 기간 중에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 세력에 의한 군대 반대 운동(병역기피 운동 포함), 중국 ・조선의 민중이 전개한 일본군대 반대운동(탈영 등), 베트남전 당시의 미군 반대 운동 등 아시아 민중들에게 군사투쟁은 익숙한 것이었다.

최근 한국 등에서 전개되는 징병제에 대한 저항,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 군 폭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 제고는, 반군 평화 운동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7. 일본의 군국주의화 반대 운동

이윽고 일본의 지배 세력은 최근 유사법제를 서두르면서 평화헌법 파괴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에 일본의 평화 운동 단체를 비롯한 모든 운동 세력이 단결하여 유사법제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8. 구조적 폭력을 지양하는 평화 운동

지금까지 거론한 내용을 갈퉁(Johan Galtung)의 평화 운동 분류법으로 재조명하면 ‘소극적인( negative) 평화(단순하게 전쟁이 없는 상태)를 지키려는 운동’이다. 여기에서 ‘소극적’이란, 갈퉁이 중요시하는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억압 ・착취 ・인권탄압 ・인종차별 ・성차별 ・빈곤 등)’에 대하여 소극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운동이 전쟁 반대에 적극적이란 측면에서 보면 적극적인 평화 운동이다.

억압 ・착취 ・인권탄압 ・인종차별 ・성차별 ・빈곤을 척결하기 위한 전문운동으로서 인권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이 존재하므로, 평화운동만이 구조적 폭력의 제거를 전담한다고 볼 수 없다. 다만 평화운동은 평화의 시각에서 이들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데 앞장선다.

아시아에는 빈곤한 나라들(인도 ・파키스탄 ・북한)이 핵무장을 했거나 핵문제로 의혹을 받고 있어서, ‘빈곤-핵무장
-평화’의 삼각관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핵심적인 사안이다. ‘억압 ・착취 ・인권탄압 ・인종차별 ・성차별 ・빈곤’을 포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안은 이주 노동자 문제이다. 신자유주의 선풍이 낳은 전 세계 민중의 ‘유목 시대(nomad age)’를 반영하는 이주 노동자 문제를 ‘인간 안보(human security) ・평화’의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 인간 안보와 평화

국가 안보의 대안으로 제기되는 ‘인간 안보’는 시민사회 구성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녕을 보장하는 안보가 진정한 안전보장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 인간 안보를 ‘민중 안보’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국적을 묻지 말라는 세계화 시대에 한국으로 돈벌이 온 이주 노동자 개개인의 인간 안보를 보장하지 못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반(反)평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군기의 폭격 연습으로 삶의 질서가 깨진 매향리 주민에게 ‘민중 안보’를 보장하라는 운동은 평화 운동의 한 종류이다. 매향리 주민에게 ‘민중 안보’를 안겨 주라고 국가권력에 압력을 넣는 운동은 더욱 고차원적인 평화 운동이다. 최근에 발생한 ‘두 여중생 압살’ 사태는 한국 국민 전체가 미군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드러낸 것으로 ‘민중 안보’, ‘인간 안보’ 개념을 적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9. 군사문화 척결과 평화 운동

아시아 각국이 군사문화의 상흔(Trauma)을 안고 있으며, 이 군사문화가 사회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군사문화는, 기본적으로 폭력지향적인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으며, 호전 세력의 전쟁문화에 쉽게 영합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평화의식을 가다듬게 하는 데 걸림돌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분단국가의 경우 군사문화가 반공체제와 결합되어 민중의 의식을 짓누르거나 평화통일 의식을 금압하는 지배의 기제(mechanism)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군사문화를 척결하는 일은, 군사 파시즘 ・전쟁지향적인 체제의 상흔을 제거함으로써 사회 ・국가 ・민족의 통합을 내오는 중요한 작업이다.

군사문화의 최대의 피해자인 여성들이 ‘Gender’의 시각에서 군사문화를 척결하려는 움직임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동아시아-미국-푸에르토리코의 여성 네트워크(East Asia-US-Puerto Women’s Network Against Militarism Resources and Information)’에 한국 ・일본 ・필리핀의 활동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10. 비폭력 평화 운동

비폭력 평화 운동의 원조인 간디를 낳은 인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비폭력 평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비폭력 평화의 사상은 곧장 서방 세계로 유입되고 그곳의 시민 불복종 ・인종차별 철폐운동 등과 결합하여 마틴 루터 킹과 같은 걸출한 지도자를 낳았다.

이러한 비폭력 평화 운동을 분쟁 지역에 적용한 운동으로서 평화 여단(Peace Brigade)의 ‘인간방패 운동(평화 운동가들이 분쟁의 현장에 뛰어들어 몸으로 평화를 지켜내는 방패의 역할을 한다)’을 벌여 왔다. 그러나 Peace Brigade의 운동이 소수 백인의 중산층 지향적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Nonviolent Peace Force(비폭력 평화대)’라는 새로운 국제적인 평화 운동 네트워크가 태동했다. 이 ‘Nonviolent Peace Force’에 한국 ・일본 ・오스트리아 ・타이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의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12. 맺음말

필자가 갖고 있는 정보의 한도 안에서 아시아의 평화 운동을 개괄했을 뿐이므로 아시아의 평화 운동 전체를 보는 데는 미흡하다. 그러나 개괄적으로 보더라도 다양한 평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시아의 평화 운동은 주로 전쟁(분쟁)의 예방 ・반대에 주안점이 있으나, 구조적 폭력의 제거에는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아시아의 평화 운동이 구조적 폭력에 소홀한 것을 단점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아시아는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전쟁터이었고, 제국주의가 물러간 자리에 냉전의 그림자가 덮쳐져서 아시아인끼리의 분단의 골이 깊어졌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미 ・일의 해양 세력과 중국 ・러시아의 대륙 세력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전쟁 반대’ 구호가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아시아의 역사 ・지리적 맥락 때문에 구조적 폭력을 지양하는 평화 운동이 정착하지 못했다. 이게 유럽 ・
미국처럼 시민사회가 안정된 곳의 평화 운동과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의 삶을 왜곡시키는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평화 운동이 강력하게 요망되고 있다. 따라서 전쟁 반대로서의 평화 운동의 지평을 넓혀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평화 운동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긴요하다. 아시아에서 전쟁 반대의 평화 운동과 구조적 폭력 제거의 평화 운동이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를 가져올 때, 아시아에 ‘지속가능한 평화(sustainable peace)’가 이루어질 것이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