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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반전 운동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50가지 논점

김승국

1.정세를 에워싼 10가지 고려 사항; 생략

2. 10가지 문제제기

  1) 팔루자 학살,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의 성고문 ・학대 사건 이후 파병의 명분을 상실했다. 팔루자 학살과 성고문 ・학대 사건은, 생명 말살의 제국주의 전쟁의 부산물이다. 이미 ‘대량학살(genocide)’의 경향을 보이는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선을 ‘평화를 위해 전 세계의 민중이 투쟁하는 전선’으로 바꿔야 한다.

  2) 한국의 국가권력의 대외 팽창이 이라크 파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비 부담의 파병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국력(경제력) 신장에 따라 강대국의 파병(일본식 파병)을 흉내 내는 ‘亞 제국주의(sub-imperialism)의 모방극’이다. 좀 수위를 낮춰 이야기하면 중진국 한국의 대외팽창욕이 드러난 것이다. 한국이 평화지향적인 국가가 아닌 전쟁지향적인 국가로서 대외팽창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국제사회에 줄 수 있다.

  3) 국가이성의 오용을 지적한다. 파병을 반대하는 국민 다수의 의지를 무시한 파병강행은, 국민국가의 타락상을 나타낼 뿐이다.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군사력(한국군 전력)의 왜곡된 대외 파견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군의 활동이 국내에 머물 때의 영향력과 해외로 미칠 때의 ‘국민 ・국가의 힘(Power)’은 매우 다르다. 자비 부담의 이라크 파병의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국가의 자원을 이라크 민중을 감시 ・억압하는 데 사용
하는 게 문제이다.

  4) 추가 파병이 된다면, 이라크의 민권(民權)을 억누르는 한국군의 군권(軍權)이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 파병 문제를 ‘이라크 민중의 민권 對 한국군의 군권의 대립’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 군권이 기본적으로 이라크 점령군의 맹주인 미군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이라크의 민권-한국군의 군권-미군의 지배권’이라는 3각 구도로 이라크에서의 권력(Power)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전시 작전권을 상실한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독자적으로 전략을 구사할 수 없는 노릇이고, 이라크 현지에서조차 미군 종속의 그늘에 있다면 ‘한국군의 종속체제’가 이라크로 파견되는 구도가 형성된다. 전시 작전권을 상실한 한국군이 해외 파병되어 상대국가의 주권을 훼손하는 상호 모순되는 사태가 조성될 수 있다.

  5) 한국이 군대를 보내 이슬람 사회에 개입할 이유가 있나? 한국군이 이라크 무슬림들의 ‘코란 공동체’에 개입하여 무력을 시위하는 형상이 나타날 것이다. ‘코란 공동체’라는 평화지향적인 무슬림들의 생활세계 안으로 총을 들고 뛰어 들어가는 ‘불량한 행동’은 ‘불량국가(Rogue State)’나 할 짓이다. 한국군이 타 문화, 즉 이슬람 문명에 대한 존경심이 없이 이라크 전쟁의 불섶에 뛰어들었다가 큰코 다칠 우려가 있다. 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파병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6) 미국의 하위 동맹자로 한국군이 파견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분석하면 이라크 전쟁을 원격조종한 미국 네오콘(유태인 세력이 주력임)의 지휘봉에 따라 한국군이 파병되어, 궁극적으로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군의 파병활동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친미형 파병’이며 (네오콘과 직결된) 이스라엘이 보기에 아름다운 파병이다. 이스라엘이 보기에 아름답다면 아랍인들이 보기에는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점에서 ‘친미형 파병’의 긴장이 발생한다. 물론 폴란드 등도 친미형 파병을 했는데 그들 나라는 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지 않아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한국군은 혈맹의 이름으로 미군이 불명예스럽게 철수할 때까지 미국과 함께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될 수도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체제 구축, 즉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려는 미국의 구도를 도와주는 한국군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 미국형 자유주의 ・시장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한편 무슬림 민족주의를 제거하려고 한다. 미국이 원하는 친미 이슬람 국가를 수립하려는 구도가 곧 있을 ‘민정이양’이다. 이 ‘친미 국가형 민정이양’ 계획은 미군-(한국군을 포함한) 점령군 주둔체제 아래에서 이루어지므로, 이라크 민중이 저항할 것이다. 친미국가 한국의 군대가 결국 ‘친미형 민정이양의 하수인’이 되어 이라크 민중과 등지는 결과가 예상된다. 이라크 민중이 원하는 정부를 만드는 데 한국군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이라크 민심과 동떨어진 반(反)민중적인 한국군이 이슬람 전사들의 공격대상이 되고 한국 사회가 테러의 과녁이 것이다.

  7) 이슬람 문명권과의 마찰, 즉 ‘문명의 충돌론’에 입각한 용병으로서 파병이 이루어지는 게 문제이다. 한국사회는 너무나 이슬람 문명에 대하여 무지하다. 파병강행은 이슬람 문명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한국형 유교 자본주의 문명과 이라크의 이슬람 문명이, 한국군의 총을 매개로 불행하게 만나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형 군사문화가 이슬람 사회에 진입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 진입이 무리 없이 이루어지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라크 민중의 반미투쟁이 고조되는 정세 속에서 한국형 군사문화와 이슬람 전사들의 ‘Jihad 문화’의 대결은 이미 내정되어 있다.

  8) 미군의 위상 변화에 맞춰 파병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 한국군이 ‘해방군(軍)~점령군~학살군~성학대군으로 추락하는’ 미군의 졸병으로 파병되는 인상을 받으면 곤란하다. 서희부대가 파병될 때만해도 미군이 해방군을 자처할 수 있었으므로 파병의 정당성이 지금처럼 근본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미군은 점령군 단계를 지나 학살군 / 성학대군의 단계로 진입했다. 이런 학살군 / 성학대군과 보조를 맞추며 한국군이 추가 파병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정되어야 마땅하다. 동일한 파병이라도 시점에 따라, 미군(또는 연합군)의 위상 변화에 따라 파병거부의 강도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파병될 한국군은, 팔루자 공습형 ‘연합군(coalition forces) 체제 아래에 들어간다. 공격지향적인 공습형 연합군의 맹주인 미군의 전략우산 아래에서 군사활동을 벌일 한국군은 이라크 민중을 억압하는 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9) 스페인 군 등의 철군 유행에 역행하는 한국군의 파병은 시대착오적이다. 최근 스페인에서 친미내각이 무너지고 사회노동당이 집권했다. 사회노동당은 “이라크 주둔 스페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선거 공약을 실천 중이다. 스페인의 철군 움직임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현재 이라크 주둔 외국군의 ‘철군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이라크에서의 철군이 유행(?)인 시점에서, 한국군을 추가로 보내는 일은 시대의 민감함을 역행하는 ‘청개구리 파병’이다.

  10) 한국군의 파병은 부시 재선의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이다. 부시의 재선에 돌파구를 열어 주는 원군이 될 것이다. 부시가 재선되면 한반도에 전쟁의 구름이 몰려 올 것이므로, 파병은 오히려 한반도에서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3. 10가지 논쟁점; 생략
4. 10가지 문제점; 생략
5. 10가지 대안; 생략
6. 파병의 기준점
7. 결 론
앞으로 한국에서의 해외 파병 논의는 위의 원칙에 타당한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위의 원칙에 어긋나면 국회에서 거론조차 할 수 없는 사회적인 강령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전쟁의 피해자인 한국의 군대가 이라크에서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원칙 위에서 파병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이라크 국민의 생명을 살리고 한국민과 상생(相生)하는 ‘한국군의 파송’이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는 파병을 거론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인 제동 장치’가 필요하다. 이라크 민중을 죽이는 ‘죽임의 파병’이 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평화공존(이라크 민중과 한국 민중의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파병이 불가피하다면 한국군도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평화 유지군 활동을 흉내 낼 필요가 있다. 그런 모방을 위한 파병이 유엔의 평화유지군(Blue Helmet을 쓴 평화유지군: 미군 주도가 아닌 유엔 주도의 평화유지군)의 이름으로, 최소한의 경무장으로 분쟁지역을 모니터하고 ‘분쟁의 재발 방지 ・평화 유지 ・평화 창출에 주력하는 평화의 파수꾼’이 된다면 한국군의 파병을 거론할 수 있겠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30호(200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