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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도시-평화 마을/3세계 숍

[커피 장사 수기 (89)] 미안한 마음으로 유기농 커피를 팔다

커피 장사 수기 (89)


 

미안한 마음으로 유기농 커피를 팔다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우리 가게의 통유리에 ‘유기농 커피 숍’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프랜카드를 내걸면서, ‘유기농 커피’라는 메뉴를 신설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본격적인 유기농 커피는 일반적인 원두에 비하여 몇 배나 비싸기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핸드드립 커피 곱빼기 한잔에 5,000원을 받는데, 본격적인 유기농 커피를 팔면 적어도 10,000원을 받아야한다. 우리 가게에서 10,000원을 내고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손님이 전혀 없으므로, 본격적인 유기농 커피는 그림의 떡이다.

 

 

그렇다면 한잔에 5,000원의 핸드드립용 원두 중에서 유기농 커피에 가까운 원두를 선택하여, 손님들이 5,000원에 먹을 수 있는 떡을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 내가 보기에 핸드드립용 원두 중에서 유기농 커피에 가까운 원두는 자연 정제(natural processing)한 원두이다. 만데린, 모카 하라, 시다모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원두의 가격도 일반적인 원두와 동일하므로 유기농 커피에 가까운 ‘준(準; pseudo) 유기농 커피’로 선택할 수 있다.

 

 

‘준(準; pseudo) 유기농 커피’는 정통파 유기농 커피와 굳이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어서 ‘소극적․수동적인 유기농 커피(nagative/ passive organic coffee)’라고 부르는 게 좋을 듯하다. 정통파 유기농 커피는 자연스럽게 ‘적극적․능동적인 유기농 커피(positive/ active organic coffee)’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 적극적인 유기농 커피를 판매하고 싶지만, 커피 가격을 10,000원 이상으로 매겨야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소극적인 유기농 커피를 일반적인 핸드드립 커피와 동일한 가격인 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손님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설득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조그마한 메뉴판에 설득력이 있는 문구를 넣어야하는 제약이 따른다.

 

 

이러한 제약을 고려한 새로운 메뉴판에 ‘유기농 커피 5,000’이라는 문구 밑에 ‘비료․농약을 살 수 없는 농민들이 숙명적으로 만들어 내는 유기농 커피’라는 해설을 붙였다. 소극적인 유기농 커피․ 준(準) 유기농 커피라는 난해한 표현을 피하고, 자연 정제했기 때문에 유기농 커피에 가깝다는 뜻이 깃든 해설을 통하여 설득력을 높이려고 했다. 적극적인 유기농 커피만이 진짜이고 자연 정제한 커피는 유기농 커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손님들이 나를 사기꾼으로 규정할 수도 있으므로 설득력을 갖춘 해설이 필수적이다.

 

 

에돌아 표현한 유기농 커피의 해설이 흡족하지 않지만 그런대로 손님들에게 먹혀 들어간 듯, 크게 불만이나 문제점을 제기한 손님이 없었다. 그럼에도 손님들에게 적극적인 유기농 커피를 팔지 않는 미안함, 떳떳하지 못한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일부 손님이 유기농 커피와 보통 커피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약간 당황했다. 양자의 차이점은 비교적 수월하게 설명해드렸으나 우리 가게의 유기농 커피가 보통 커피와 다른 점을 설명할 때는 마음이 좀 찜찜했다. 양심불량은 아니지만 떳떳하게 큰 소리로 우리 가게의 유기농 커피가 진짜 정통파 유기농 커피라고 역설하지 못하여 마음속에 그늘이 남아 있다. 진짜로 국제 공인을 받은 품격 높은 유기농 커피, 그늘 재배한(shadow grown) 생태적인 원두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01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