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장사 수기 (38)
인생막판으로 달리는 ‘왕년의 커피쟁이’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우리 가게에 가끔 들르는 ‘왕년의 커피 쟁이’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우리 가게에 나타났다. 그 분은 30년 전쯤 대상이라는 커피 회사에서 로스팅 업무를 맡은 적이 있는데, 은퇴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 분 역시 배운 도적질인 커피 볶는 기술로 재기를 도모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우리 가게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몇 개월 사이에 탄현 지역에서 커피 판매(원두 중심)에 나섰다가 4개월 만에 2천만 원의 손해를 보고 문을 닫았다고 한다.
지난해 겨울 혹독한 추위 탓에 왕래하는 손님이 거의 전무했지만 월세 등을 지불하다보니 몇 달 만에 2천만 원의 적자가 누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을 찾던 중 아는 사람이 봉일천 쪽에 남이 사용하다만 조그만 가게를 인수하라는 제언에 따라 1주일 전에 이사를 했노라고....
2천만 원을 몇 달 만에 날린 탓인지 그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금 부족 때문에 로스팅 기계도 허술한 것을 사용하고 있으며, 에스프레소 추출 기계 역시 저급이어서 우유 스티밍이 잘 안 된다고 하소연하며, 나에게 에스프레소 계열의 메뉴(카페라떼, 카푸치노, 카페모카, 카라멜 마끼이또 등)을 배운 뒤 이들 메뉴를 팔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완전히 ‘개털’ 되기 일보직전의 그분이 나에게 바리스타교육 받은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듯하여, 바리스타교육 신청에 관한 이야기는 애써 접은 채 가까운 시일 이내에 그분의 새로운 가게를 방문할 뜻을 전달했다. 참으로 측은한 커피 자영업자이다. 요즘같이 커피 숍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전에 일찍이 커피 업계에서 한 가닥 했던 ‘왕년의 선수’가 인생막판으로 달리는 초라한 꼴을 나에게 보여 측은지심이 저절로 생겼다. 나의 미래의 모습을 그분을 통하여 직시하는 것 같아서 더욱 가슴이 절절하게 아파왔다.(201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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