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화연구(이론)-평화학/종교적인 접근

핵무기와 神ㆍ원리주의

김승국


Ⅰ.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북한이 핵실험할 때 북한의 대중들이 열광적으로 찬양한 사실에서 북한 민중의 핵무기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남한의 운동권 일부도 북한의 핵실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이며 “북한의 핵무기는 통일 이후 민족의 자산이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현상을 ‘핵무장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면 ‘핵무장 민족주의’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핵무장 민족주의의 뿌리에 종교적인 요소, 즉 원리주의적인 핵무장론은 없을까? 핵실험을 찬양하는 북한 민중의 핵무기 신앙의 뿌리에 컬트(cult) 의식은 없을까?


핵무장한 주체사상의 선군정치에 내재한 핵무기 신앙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신앙에 함몰된 북한 민중의 컬트의식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컬트 의식의 밑바닥에 근본주의 신앙심 비슷한 게 있지 않을까? 예컨대 파키스탄이 핵실험했을 때, (북한 민중들처럼 열광한) 파키스탄 국민들의 상당수가 이슬람 근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도 타도(힌두 근본주의 타도)”를 주창했다. 인도가 핵실험할 때 열광한 인도 사람들 역시 힌두 근본주의 신앙에 따라 “파키스탄 타도(무슬림 타도)”를 외쳤다.


이와 같이 핵실험과 근본주의 신앙이 결합되는 경우가 북한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일어났다면 그러한 현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이러한 분석태도로 임했으나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 ‘기독교의 원리주의와 핵무장’을 먼저 기술하게 되었다. 결국 북한 핵실험을 에워싼 근본주의 신앙(핵신앙)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아래의 글은 그동안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에 연재한 [핵무기와 神]을 요약한 것이다.
 

Ⅱ. 기독교의 원리주의와 핵전쟁 아마겟돈


  1. 원폭투하를 에워싼 미국사회의 입장


기독교의 정전론(정의의 전쟁론; Just War)에 비추어보아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대한 원폭이 정당했다고 말하는 미국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중 한사람인 가톨릭의 윤리학자 맥엘리니(Shawn McElhinney)는 ‘전쟁의 희생을 가능한 한 줄인 점, 시민을 직접적인 공격목표로 삼지 않은 점에서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는 기독교의 정의의 전쟁 기준에 합치한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일본 본토에 대한 상륙작전과 그 이후의 전투전체를 통하여 미국은 최대 사상자 100만명, 일본측도 200만명의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일본의 경우, 원폭 사망자 21만 5천명을 빼면 원폭 투하로 45만명의 생명을 구하고, 130만명의 부상자를 줄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측도 33만명의 인명이 구원되었고 67만명의 부상자를 줄일 수 있었다. 따라서 원폭은 미국뿐 아니라 일본도 엄청난 생명ㆍ재산을 지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의의 전쟁 조건으로서 ‘적군ㆍ아군 모두 인적ㆍ물적 피해를 최소한으로 멈추게 하는 것’이 요청된다면, 원폭 투하는 이 조건에 충분히 합치된다는 것이다


  2. 미국 대통령들의 핵무기에 대한 관점


미 합중국은 북미 전역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개발할 신의 명령을 받았다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가 크게 작용함.


명백한 운명(사명)에 의한 대외침략 노선의 연장선상에서 핵무기를 사용해도 좋다는 논리이다. 미국은 신에 의해 축복받은 나라, 신에 의해 뽑힌 ‘특별한 사명(special mission)’을 가진 나라이므로, 일본과 같은 악(惡)의 국가를 핵무기로 징벌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를 집행하는 미국의 수장(首長)인 대통령에게 신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신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은, 트루만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대한 핵무기 투하에 대하여 “신에 감사한다”고 언명한 것과 연결된다. 신에 감사하는 심정으로 히로시마에 핵무기를 투하한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신앙을 심층적으로 파악해야, 미국 정부의 핵전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3. 종군 성직자의 기도


원자폭탄을 싣고 히로시마ㆍ나가사키를 향했던 미군 폭격기(에놀라 게이, 보크스카)가 데니안 섬(원폭탑재 전폭기가 주둔했던 미군기지)을 날아오르기 직전에, 데니안 섬에서 근무하던 종군 성직자들<루터파의 종군목사인 윌리암 도니, 가톨릭 사제인 죠지 자벨카(George Zabelka)>이 원폭탑재 폭격기의 출격을 축복해주었다. 핵무기를 실은 에놀라 게이(폭격기의 이름)가 히로시마를 향해 출격할 때, 도니 목사는 승무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지금부터 당신의 하늘(天空)에 과감하게 올라가서, 적[일본]에게 일격(一擊)을 가하려는 이들과 당신이 함께 하여주시길 바랍니다. 이 비행을 호위해주시고 당신의 힘으로 이들의 승무원들로 하여금 전쟁의 종지부를 빨리 찍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전쟁이 조기(早期)에 종결되어, 평화가 지상에 재현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오늘 밤 비행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시고 무사히 우리들의 품으로 귀환하도록 해 주세요. 앞으로 끊임없는 신의 가호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4. 기독교 원리주의의 종말론적인 군국주의


본래 평화의 종교인 기독교가 폭력ㆍ전쟁 지향적으로 왜곡되어 십자군 전쟁 등을 일으켰다. 21세기의 십자군 전쟁인 ‘이라크 전쟁’은 네오콘(Neo Con)과 연결된 기독교 원리주의(근본주의)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 기독교 원리주의 세력은 요한 계시록에 대한 종말론적인 해석에 따라, 악의 축(북한 등) 국가에 대한 핵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군국주의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요한 계시록 16장 16절의 ‘아마겟돈’에 심취한 끝에 사탄ㆍ적(敵)그리스도ㆍ악의 축 국가에 대한 아마겟돈 (핵)전쟁을 상정했다. 이와 같이 기독교 원리주의의 종말론적인 군국주의 경향이 세계 평화를 위협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원리주의는 선(善)인 반면 이슬람 원리주의는 악(惡)이므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대한 반(反)테러 전쟁을 벌여야한다’며 ‘평화의 이름’으로 종말론적인 군국주의 선풍을 일으켰다.


기독교 원리주의의 종말론적인 군국주의의 위험한 발상인 ‘아마겟돈 핵 전쟁’론은, 신(神)의 이름으로 미국의 핵무기를 사탄ㆍ敵그리스도ㆍ악의 축 국가에 퍼부은 뒤 천년왕국(Millennium)을 준비한다는 황당무계한 것이지만, 미국의 기독교인 다수가 믿고 있다는 데 더욱 큰 위험이 있다.


    1) 종말론적 군국주의(apocalyptic militarism)


립튼(Robert Jay Lifton)의『Superpower Syndrome』에 의하면, 핵무기는 본래 묵시록적인 것으로 미국이 묵시록적 핵무기를 통해 일종의 ‘죽음의 소유권(a form of the ownership of death)을 획득하고 그것을 선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핵무기를 통해 악을 타파한다는 신의 목적을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핵무기의 묵시록적인 사용을 승인한 트루만 대통령은 유명한 침례교 신자이었다. 그는 히로시마의 원폭투하와 관련하여 오가스타 전함의 승무원들에게 “그것은 최고의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트루만 대통령은 ‘원폭투하의 선택에 조금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미국 기독교신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5. 핵전쟁 아마겟돈


‘핵전쟁 아마겟돈’론의 출처는 요한 계시록이다. 요한 계시록 6장 4절+6장 12절+6장 13절+8장 7절+8장 10절+16장 8~10절+16장 14절을, ‘대환난 중의 핵전쟁’과 결부시켜 해석하면서 ‘핵전쟁 아마겟돈’론을 정립했다.<레온 베읻즈(Leon Bates) 지음, 정행덕 옮김『한계에 도달한 인류 역사』(서울, 중동 문화사, 1980)>
 

아마겟돈이라는 무서운 핵(核)무기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7년 뒤에, 주님이 이 지상에 다시 돌아와서 지구를 파멸로부터 구원한다. 그 때 교회도 주를 따라 지상으로 되돌아와 1천년간 그리스도를 섬겨며 지상왕국에 군림한다. 이어 새로운 하늘(天)과 대지의 시대가 도래하고 그 뒤 영원히 지속된다.


‘대지가 불에 의해 파괴된다’는 성서의 구절을, ‘핵무기를 구사하는 아마겟돈에서 우리들 손으로 지구를 파괴하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미국인이 전체 인구의 39%를 차지한다. 8천 5백만명의 미국인이 핵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 국민의 39%인 8,500만명이 ‘핵전쟁 아마겟돈을 통하여 지구라는 혹성을 파괴해야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핵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천계적 사관을 지닌 TV 설교 목사들이 기독교 원리주의에 입각한 핵전쟁 아마겟돈설을 유포한다. 그들은 매일 400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에서 방송하는 8만명의 복음주의 목사 중 절반이 천계적 사관론자들이다.


    1) 레이건ㆍ부시 대통령과 아마겟돈


레이건 대통령과 아마겟돈說의 관련을 깊이 연구한 안들 랑그(워싱턴의 기독교 연구소 조사부장)는 “레이건이 대통령 취임 이후에 천계적 사관을 버렸다고 하더라도 취임 이전에 그것을 믿고 있었다. 레이건은 천계적 사관을 갖고 아마겟돈說을 신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레이건과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요한계시록에 따른 핵전쟁 대망론의 선봉에 서서 악의 제국인 소련을 핵무기로 멸망시키려 했다. 이런 끔찍한 발상은 클린턴 정권 때의 잠복기를 거쳐 부시 대통령 시절에 다시 도진다.


레이건은 소련을 ‘사탄의 나라’로 보았다. 그는 1983년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마치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부르듯이… 레이건이 자신의 신앙심에 따라 ‘악의 제국 소련을 핵무기로 멸망시켜야 한다고 확언했듯이, 부시 역시 자신의 신앙에 따라 북한이라는 악의 축 국가를 핵무기로 싹쓸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소련에서 북한으로 바뀌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레이건과 성서 근본주의 세력이 요한계시록에 따른 핵전쟁 대망론의 선봉에 서서 악의 제국 소련을 핵무기로 멸망시키려 했다’는 문구를 ‘부시와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요한계시록에 따른 핵전쟁 대망론의 선봉에 서서 악의 축 국가인 북한을 핵무기로 멸망시키려 한다’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네오콘의 복합체 주변에 핵무기 광신자(cult) 집단이 포진하면서 아마겟돈 핵전쟁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Ⅲ. 나가사키의 피폭과 기독교


  1. 우라카미(浦上) 피폭의 이중구조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개발한 핵무기가 나가사키의 ‘우라카미(浦上)’ 신앙 공동체 위에 떨어졌다.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원폭) 세례를 받은 피폭자들 중에서, 세례 받은 가톨릭 신자 등의 기독교인이 많았다. 원폭투하의 중심지는 松山町인데, 이곳은 기독교 금교령(禁敎令) 시대에 ‘7代 250년’에 걸쳐 신앙을 전해온 잠복 기독교 신자들이 살았던 우라카미(浦上)의 한 가운데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오랫동안의 박해를 견디며 우라카미 지역을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우라카미 신앙 공동체의 핵심인 우라카미 천주당(성당)은 폭심지(핵무기가 떨어진 곳)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핵무기가 투하된 순간 이 성당에서 미사를 보던 수십 명의 신자들이 즉사했고, 우라카미 지역의 가톨릭 신자 12,000명 중 8,500명이 피폭으로 사망했다. 


우라카미의 기독교 신자들이 350년 동안 당한 ‘박해’ 위에 ‘피폭’이 겹치는 이중의 고난을 겪었다. 이러한 ‘고난의 이중구조’를 시간별로 나열하면, 첫 번째 고난이 박해이고 두 번째 고난이 피폭이다.


한순간에 핵무기 벼락을 맞은 우라카미 천주당은 가톨릭 신자들의 350년의 수난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이 건물이 핵무기에 의해 붕괴되었음은, 핵무기에 의한 두 번째의 수난을 잘 드러낸다. 지옥 같은 기독교 박해 속에서 끈질기게 신앙 공동체를 유지해온 가톨릭 신자들의 대다수가 피폭으로 사망한 것은, ‘박해’라는 고난 위에 ‘피폭’이라는 또 다른 유형의 고난이 이중(二重)으로 겹쳐진 것을 의미한다. 신앙 공동체가 이중적(二重的)으로 붕괴되었다는 말이다. 1867년의 네 번째 기독교 탄압(浦上四番崩れ)으로 우라카미가 황무지로 변한 뒤 78년만인 1945년의 피폭으로 우라카미가 두 번째로<이중적(二重的)으로> 황무지로 되었다는 뜻이다.


한편 기독교인을 박해했던 지배층(지배층의 자손이나 친지), 상인<데지마(出島) 부근의 상가에서 살던 사람들>, 나가사키 역ㆍ항구 옆에서 살던 사람들은 피폭을 모면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차별(구별)이 발생했다. 350년 동안 기독교인을 박해했거나 박해에 동조ㆍ묵인했던 사람들은 피폭을 모면하여 살아남았으나, (죽을 고생하며 잠복 신자로 지내다가 겨우 천주당을 세운) 천주교 신자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생(生)-사(死)의 차별’이 생긴 것이다. ‘기리시탄’ 마을로 낙인찍혀 차별받아온 우라카미에 산 자(피폭을 모면한 지배층)와 죽은 자(원폭으로 사망한 신자들)의 차별이 이중적으로 생긴 것이다.


기독교인을 박해했던 나가사키의 옛 시가지의 사람들과 우라카미의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는, 기독교 전래 이후의 탄압ㆍ박해ㆍ차별의 긴 역사가 있다. 나가이 다카시(永井隆)는 우라카미ㆍ옛 시가지의 구별을 ‘크리스천 나가사키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영혼의 마을’과 ‘항구 나가사키의 이름을 알려진 육체의 마을’의 대비에 의해 드러내면서, ‘마리아의 마을’과 ‘에로스의 거리’라고 불렀다.


‘에로스의 거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마리아의 마을에 살면서 피폭된 기독교 신자들을 향해 ‘당신들이 불교ㆍ신도(神道)를 믿지 않고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천벌을 받았다’며 저주했다. 이러한 에로스 거리의 사람들이 저주하는 ‘천벌’을, 기독교의 섭리(“피폭이라는 천벌을 받았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이다”)로 뒤집어 ‘피폭=번제’설을 주장한 나가이 다카시(永井隆)의 논점을 뒤이어 설명한다.


  2. 나가이 다카시의 번제설


나가사키에서 피폭 당한 가톨릭 신자ㆍ부락민ㆍ나병환자ㆍ조선인ㆍ중국인은 ‘피폭된 희생양’으로서 고난의 중층화를 겪었다. 그런데 피폭이라는 동일한 체험을 한 나가이 다카시(永井隆)는, 피폭이라는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피폭=번제(燔祭)’설을 주장했다. ‘피폭이라는 천벌을 받았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피폭=번제’설은, 난해한 문제를 낳는다.


나가사키 원폭의 성격에 관하여, 나가이 다카시는 우라카미(浦上)에 원폭이 투하된 것은 우연이나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신(神)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945년] 8월 9일의 한밤중에 우라카미의 천주당이 불타 오른 것, 천황이 ‘종전의 성단(聖斷)’을 내린 것, 성모가 승천(昇天)한 大祝日에 ‘종전의 대조(大詔)’가 발표된 이러한 ‘이상한 일치’는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천왕(天王)의 묘한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원폭 사몰자(死沒者)에 관하여, 나가이 다카시는 신의 제단에 올려진 희생 즉 ‘번제’(holocaust)로 본다. 원폭 사몰자는 ‘정치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죽어야할 곳’을 얻어 ‘아름다운 최후’를 마치며 ‘더럽게 죽은 어린양’이다. 전란(戰亂)의 그야말로 암흑 속에서 마지막 평화의 빛을 보낸 8월 9일. 이 천주당 앞에서 불꽃으로 올라간 커다란 번제여! 극도로 비통한 가운데 우리들은 번제를 곱고 정결하며 소중하게 모신다.       


겨우 살아남은 자들에게 원폭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가이 다카시는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순교, 끊이지 않는 박해, 원자폭탄. 이것들 모두는 결국 종교를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도, 천주의 광영(光榮)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한 시련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神이] 우라카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라카미에 고난을 안겨 주었으며,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결핍을 안겨주셨다. 그래도 끊임없이 은혜의 비를 이 교회 위에 쏟아주시는 천주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올리나이다.’


원자폭탄은 신에 의해 주어진 ‘시련’이라는 것이다. ‘우라카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라카미에 고난을 주시는 신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올려야한다’는 것이다.


나가시 다카시(永井隆)의 역설적인 번제설이 드러나는「原子爆彈 死者 合同 弔辭」를 소개한다.


    1)「原子爆彈 死者 合同 弔辭」


나가이 다카시가 ‘천주공교(天主公敎) 浦上 신도 대표’로서 1945년 11월 23일에 폐허로 변한 우라카미(浦上) 천주당(성당) 앞에서 낭독한「原子爆彈死者合同弔辭」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0시 30분경 대본영(大本營)에서는 전쟁 최고 지도회의가 열려 항복이냐 항전이냐를 결정하기로 되었습니다. 세계에 새로운 평화를 가져 오느냐? 그렇지 않으면 인류를 더 한층 비참한 피의 전란(戰亂) 속으로 몰아넣느냐? 하는 운명의 기로에 세계가 서 있는 시각 즉 오전 11시 2분, 한발(一發)의 원자폭탄이 우리 우라카미(浦上)에 폭발하여 가톨릭 신자 8천의 영혼은 일순간에 천주님 슬하로 불려가고 맹화(猛火)는 몇 시간 동안에 동양의 성지(聖地)를 폐허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천주당(우라카미 성당)에 갑자기 불이 나서 타고 말았습니다. 마침 같은 시각에 대본영에서는 천황 폐하가 종전(終戰)의 성단(聖斷)을 내리셨습니다. 8월 15일 종전의 대조(大詔)가 발포되자 세계는 다 같이 평화의 날을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날은 성모(聖母)님이 승천(昇天)하신 대축일(大祝日)입니다. 우라카미 천주당을 성모님께 받쳤던 것이 새삼스럽게 생각납니다. 이런 일들의 기이한 일치가 단순한 우연일까요? 또는 천주님의 거룩한 뜻이었을까요?
일본의 전력(戰力)을 끝장내려는 최후의 원자폭탄은 본래 다른 모 도시[고쿠라]에 예정하였던 것이 그 도시 상공은 구름이 끼어 직접 조준 폭격을 못하고 갑자기 예정을 변경하여 예비 목표이었던 나가사키에 떨어뜨리게 된 것이고, 또 투하할 때 구름과 바람으로 군수공장을 겨냥한 것이 조금 북방으로 빗 떨어져 천주당 정면에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군 비행사가 우라카미를 겨냥한 것이 아니고 신(神)의 섭리에 의해 폭탄이 이 지점에 오게 된 것이라 해석 못할 바도 아닙니다.
종전과 우라카미 괴멸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죄악에 대한 속죄로서, 일본 유일의 성지(聖地)인 우라카미가 희생의 제단 위에서 도륙(屠戮)되어 불 타 버릴 고결한 어린 양(羊)으로 뽑힌 게 아닐까요?
지혜의 나무 열매를 훔친 아담의 죄[원죄]와 아우를 죽인 카인의 피를 전승받은 인류가 같은 神의 아들이면서 우상을 믿고 사랑을 배반하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죽이기를 좋아하는 이렇게 큰 죄악을 종결시키고 평화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후회할 뿐 아니라 적당한 희생을 바쳐 神에게 용서를 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러 번 종전의 기회도 있었고 전멸한 도시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그들은 희생으로서 적당치 않으므로 神은 받아 주시기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한데 우라카미가 도륙된 순간 비로소 神이 이를 받아들이시고 인류의 사과를 들고 금세 천황폐하께 천계(天啓)를 내려 종전의 성단(聖斷)을 내리게 한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 없는 일본에서 박해 밑에 4백년 순교의 피를 흘리며 신앙을 지켜오고 전쟁 중에도 영원의 평화를 위하여 올리는 기도를 아침 저녁 끊은 적 없는 우리 우라카미 교회야말로 神의 제단에 바칠만한 유일하고 고결한 어린 양이지 않았나요? 이 어린 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금후 다시 전화(戰禍)를 입을 번한 수천만의 사람들이 구원되었습니다.
전란의 어두움은 끝나고 평화의 빛 비치는 8월 9일 이 천주당 앞에서 불 타 버린 영혼들이여! 슬픔 속에 깊이 잠겨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를 아름답다, 깨끗하다, 거룩하다 하며 쳐다보았던 것입니다. 더럽히지 않은 연기(煙氣)로 되어 천국에 올라가신 주임(主任) 사제를 위시하여 8천의 영혼! 누구를 추억하나 좋은 분들.
패전을 모르고 세상을 떠난 복(福) 받은 분들이여!! 결백한 어린 양으로 神의 가슴에 고이 잠든 영혼의 영광이여! 그에 비하여 비참한 우리 살아 있는 무리들. 일본은 졌습니다. 우라카미는 폐허입니다. 눈에 가득차 보이는 잿더미. 기와집은 없어지고, 옷 없고 먹을 것은 없어지고 밭은 황폐해지고 사람도 적습니다. ‘머엉~’하니 서서 하늘만 쳐다보는 두 세 사람.
그날 그때 이 집에서 왜 같이 못 죽었나이까? 왜 우리들만이 이런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죄인(罪人)이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자기들 죄(罪)의 깊이를 깨달았습니다. 나는 죄를 씻지 못하여 남아 있습니다.  너무도 죄가 많은 자(者)만이 神의 제단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남긴 것입니다.
일본인이 이제부터 걸어 나갈 패전 국민의 길은 고난과 비참이 가득찬 것이요 포츠담 선언으로 부과된 배상은 매우 크고 무거운 짐입니다. 이 크고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 나갈 고난의 길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죄를 씻는 기회를 주는 희망의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복(福) 받을지어다. 우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 받을 터이니 우리는 이 배상의 길은 정직하게 걸어 나가야하겠습니다. 조소(嘲笑) 받고 욕 먹고 채찍질 받으며 땀 흘리며 피투성이가 되어 목이 타고 배를 주리며 이 길을 걸어 갈 때 카르와리오 언덕에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신 그리스트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주(主)는 주신다. 주(主)는 받으신다. 주(主)의 이름으로 찬송 받으시옵소서. 우라카미가 뽑혀 제단에 오르게 된 것을 감사드리나이다. 이 귀중한 희생으로써 세계에 평화가 다시 오고 일본에 신앙의 자유가 허가된 것을 감사드리나이다.
원(願)컨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천주(天主)님의 불쌍히 여기심으로 고요히 쉬도록 하여주심을 비나이다. 아멘!! <永井隆 지음, 이승택 옮김『長崎의 鐘』(서울, 삼일출판사, 1949) 129~133>


    2) 나가이 다카시의 번제설에 대한 비판
  

      ① 高橋眞司 교수의 비판


 ‘우라카미(浦上) 번제설’을 동서냉전ㆍ전후[2차 대전 이후] 정치의 더욱 큰 사회적 문맥 속에 위치 지울 때, 이중의 책임[일본의 전쟁책임ㆍ미국의 원폭투하 책임]을 면제해주는데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우라카미 번제설의 역사적 의의로서 무엇보다 이중(二重)의 면책을 들 수 있다.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가 만일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면, ‘무모한 15년 전쟁(1931~45년)을 개시ㆍ수행하고 전쟁의 종결을 지연시킨’ 천황을 정점으로 한 일본국가의 최고 책임자들의 책임이 면제된다. 마찬가지로 원자폭탄을 사용한 미국의 최고책임자들의 책임도 면제된다.


Ⅲ. 힌두 원리주의와 인도의 핵무기 개발; 연구중


Ⅳ. 이슬람 원리주의와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 연구중


Ⅴ. ‘주체-선군’ 원리주의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연구중
--------
* 위의 글은, {통일미래 사회 연구소}가 2010년 6월 22일에 주최한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것이다.
*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