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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종교적인 접근

핵무기와 神 (14) -나가이 다카시 비판

김승국


. 분노하는 히로시마, 기도하는 나가사키


‘분노하는 히로시마’ ‘기도하는 나가사키’라는 말이 있다(高橋眞司ㆍ舟越耿一, 77).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동일하게 원자폭탄의 수난(피폭)을 당했는데, 히로시마 사람들은 원자폭탄 투하에 분노하고, 나가사키 사람들은 기도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뜻에서 히로시마 사람들은, ‘피폭을 원죄로 보는데 동의하는 나가사키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히로시마 사람들은, 기도하는 나가사키 사람들을 대표하는 나가이 다카시(永井隆)의 번제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비판할 것이다. 나가이 다카시가 나가사키에서는 생사를 초월한 대오(大悟)의 종교인, 우라카미의 성자(聖者), 문화의 영웅으로 평가 받지만(高瀨毅, 91) 히로시마에서는 이와 달리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아마 가톨릭을 믿지 않는 나가사키의 피폭자도 비판할 가능성이 크다. 나가이 다카시의 번제설이 피폭자 일반의 정서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한 피폭자 일반은 ① 핵무기에 의해 내 인생ㆍ우리 가족이 파멸되었다 ② 핵무기에 의해 히로시마ㆍ나가사키의 공동체가 붕괴되었다 ③ 따라서 핵무기를 투하한 미국과 (핵무기 투하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의 전쟁 지도부를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여야한다 ④ 분노의 목소리를 담은 ‘No More Hiroshima!, No More War!’를 반핵평화 운동의 구호로 삼아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나가이 다카시의 번제설은, 피폭자 일반의 ‘No More Hiroshima!, No More War!’와 다른 느낌을 주므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번제설은 개인의 종교적인 심성이 반영된 것이므로, ‘시대의식ㆍ역사의식의 결여’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원폭투하의 反인류적 죄악을 번제설이 은폐한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Ⅱ. 나가이 다카시에 대한 비판


  1. 秋月辰一郞의 비판


나가이 다카시의 제자인 秋月辰一郞은 자신의 저서『原爆白書』의 말미에 ‘우라카미(浦上) 번제설의 발상을 공유할 수 없다. 천주의 시련이라는 說이 너무 가혹하다’고 비판했다.
  

  2. 피폭 시인 山田かん의 비판


원폭은 신의 섭리---. 섭리란, 신 또는 성령이 사람의 이익을 고려하여 모든 세상사를 인도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1945년 12월말까지 나가사키의 원폭으로 사망한 사람은 73,884명. 중경상자는 74,909명이다. 이 팽대한 희생자를 낳은 원폭투하는, 죄 많은 인류의 어쩔 수 없는 번제로 우라카미(浦上)가 뽑혔다고 나가이(永井)는 생각한다. 그리고 원폭으로 죽은 사람들(신자)은 신에게 바친 것이 된다. 신의 존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신자는 나가이의 생각을 납득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망한 74,000명의 대다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 및 유족들이 ‘원폭은 신의 섭리’임을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이게 정말이라면[나가사키에서 죽은 사람들이 정말로 하나님께 바쳐진 영광스러운 번제라면] 나가사키 밖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예컨대 센다이(仙台) 공습으로 불에 타 죽은 A군의 양친이나 여동생은 개죽음이 되나? 또 B군의 부친은 남방 전선에서 전사했는데 그것도 개죽음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나가이의  說에 근거하면 미국은 원폭투하를 정의의 행위라고 강변(强弁)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할 수 있다.
나가이(永井) 예찬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폭을 특집으로 다룬 TV 프로그램도 나가이를 알릴 때 고정된 이미지를 답습ㆍ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이 늘 나가이의 위선성(僞善性)을 비판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중의 한사람이 가톨릭 신도이며 나가사키 출신의 시인인 山田かん이다. 山田 자신은 피폭자로서 나가사키의 원폭 문제를 일관되게 직시해왔다.
山田는,『潮』1972년 7월호에 [나가이를 위선자로 고발하는] 글을 기고했다. 山田는 이 글에서 “나가이 다카시는 피폭문제를 포함한 미국의 점령정책을 그대로 따라간 문필활동을 지속하면서『長崎の鐘』등을 간행했는데, 이들 저서는 나가사키의 ‘원폭 No’에 선수(先手)를 쳤다. 그 이후 이들 저서와 관련되어, ‘원폭투하에 대한 독선적인 가톨릭 에고이즘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해석이 하나의 규제력을 갖고 민중의 의식 밑바닥을 오랫동안 덮쳤다’고 비판했다. 山田이 보기에 ‘원폭투하는 신의 섭리’라는 나가이의 생각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언설이며 싸워야할 적수(敵手)이었다.(高瀨毅, 92~94)
      

山田은 나가이 다카시가 쓴 저작의 언설에 관하여 「‘원폭’의 내질(內質)인 反인류적인 원리를 많이 은폐하는데 가담할 뿐이며, 민중의 치유하기 힘든 원한을 비껴가며 위무(慰撫)하는 미국의 정치적 발상을 보강하고 지지하는 선동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논급한다.
확실히 나가이의 저작에는 사회적ㆍ역사적 관점의 누락이 인정된다. 예컨대『長崎の鐘』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종전과 우라카미 괴멸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죄악에 대한 속죄로서, 일본 유일의 성지(聖地)인 우라카미가 희생의 제단 위에서 도륙(屠戮)되어 불 타 버릴 고결한 어린 양(羊)으로 뽑힌 게 아닐까요?”
다른 곳에서도 원폭낙하에 관하여 ‘커다란 섭리’ ‘신의 은혜’ ‘신에게 감사를’이라고 진술하고 있으나, 이러한 감수성과 논리는 지나치게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원죄 의식이나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파생되는 심리적 구조와 같은...
비탄의 절정에서 종교적 구원이나 카타르시스(정화; 淨化)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의사로서 나가이의 활동 등은 평가받을만하더라도 피폭을 ‘신의 은혜’ ‘인류의 죄악에 대한 속죄’로 간주하는 것은, 사회적ㆍ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잘못이다. 오히려 시대인식을 은폐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위의 인용부분[고딕체의 문장]의 논리는 미국의 원폭투하 정당화, 즉 원자폭탄이 더욱 많은 사망자를 내지 않고 전쟁을 종결시켰다는 논리에 근접한다. 나가이에 대한 참된 평가는, 종교적ㆍ심정적 분석과 지적(知的)ㆍ논리적 분석을 해가면서 양자의 접근이 교차하는 곳에서 이루어져야한다.(高橋眞司ㆍ舟越耿一, 79~80)


  3. 高橋眞司 교수의 비판


 ‘우라카미(浦上) 번제설’을 동서냉전ㆍ전후[2차 대전 이후] 정치의 더욱 큰 사회적 문맥 속에 위치 지울 때, 이중의 책임[일본의 전쟁책임ㆍ미국의 원폭투하 책임]을 면제해주는데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高橋眞司, 2004, 102)


우라카미 번제설의 역사적 의의로서 무엇보다 이중(二重)의 면책을 들 수 있다.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가 만일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면, ‘무모한 15년 전쟁(1931~45년)을 개시ㆍ수행하고 전쟁의 종결을 지연시킨’ 천황을 정점으로 한 일본국가의 최고 책임자들의 책임이 면제된다. 마찬가지로 원자폭탄을 사용한 미국의 최고책임자들의 책임도 면제된다.(高橋眞司, 2001, 201)   


아니 그뿐만 아니라 원폭투하의 시인, 더 나아가 원자폭탄 그 자체를 긍정하는 길을 열어준다. 섭리ㆍ번제ㆍ시련의 3요소로 이루어진 ‘우라카미 번제설’이 원폭의 투하를 ‘신의 섭리’로 보았기 때문이다.
원폭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신의 제단에 바쳐진 ‘순결한 어린양’, 즉 ‘번제(holocaust)’로 보았다. 이렇다면 ‘원폭투하는 국제법을 위반하는 전쟁범죄’라는 견해가 배제된다. 원폭 사몰자(死沒者)와 생존 피폭자에 대한 배상ㆍ보상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죽은 자[원폭 死沒者]는, 신의 제단에 올려진 ‘번제’이었기 때문이며, 생존자의 고난은 ‘신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시련’이었기 때문이다.(高橋眞司, 2004, 102)


  4. 필자의 비판 


나가이 다카시가 천황을 정점으로 한 일본국가의 최고 책임자들에가 원폭투하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그의 존왕(尊王)의식 즉 천황을 존숭하는 의식에 있는 것 같다.
그는 ‘[1945년] 8월 9일의 한밤중에 우라카미의 천주당이 불타 오른 것, 천황이 ‘종전의 성단(聖斷)’을 내린 것, 성모가 승천(昇天)한 大祝日에 ‘종전의 대조(大詔)’가 발표된 이러한 ‘이상한 일치’는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천왕(天王)의 묘한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永井隆『長崎의 鐘』, 130)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와 천황의 종전 성단(聖斷)을 중첩시켜 하나님의 의지(섭리)와 천황의 의지(聖斷)를 나란히 놓으면서 존왕의식을 드러냈다. 천황이 종전을 결정했다거나 종전의 결단을 내렸다고 표현하지 않고 종전의 성단(聖斷)을 내렸다며 ’성(聖)’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이는 나가이 다카시가 천황을 성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음을 증명하며, 그의 역사의식의 결여를 드러낸다.


‘기도하는 나가사키’를 상징하는 나가이 다카시가 ‘분노하는 히로시마’의 절반만 따라갔어도 원폭투하한 미국을 비판ㆍ비난ㆍ성토ㆍ규탄ㆍ저주하는 의지를 표명했을 텐데, 이와 관련된 언급이 그의 저서에는 없다. 원자폭탄이라는 인류 절멸의 죄악(Genocide 범죄), 이 죄악을 저지른 미국에 대한 징벌이라는 핵심이 누락된 채 ‘원자폭탄이 하나님의 섭리ㆍ은혜이므로 핵무기 투하를 영광스럽게 맞이해야한다’는 그의 논리에 맹점이 있다.


핵무기 투하를 영광스럽게 맞이해야한다는 나가이 다카시의 생각은, 핵무기 개발을 영광스럽게 맞이한 미국의 핵무기 개발자의 생각과 미묘하게 어울린다. 원자폭탄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는 나가이 다카시의 위험한 생각은, 핵실험 성공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린 글로브스(Gloves) 장관과 호흡이 맞는다.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하탄 계획의 최고 책임자이었던 글로브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드에서 이루어진 폭발실험의 성공에 관한 보고서에, 글로브스의 다음과 같은 언술이 담겨 있다: “이것은 하나의 창세기이다...마치 신이 ‘빛’이라고 말한 바로 그 장소에 있는 듯했다. 발생한 대량의 구름[방사능 구름] 속에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이 만들어진 것을 보았다.
글로브스가 교묘하게 ‘창세기’라고 부른 폭탄의 탄생은 그 성서의 가르침에 충실한, 인내심이 강한, 경건한 [나가사키의] 가톨릭 교도의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비극을 가져왔다.(高瀨毅, 255)  


글로브스가 창세기라고 부른 ‘핵무기 탄생의 영광된 빛’. 이 빛이 나가사키의 시민들 머리 위에 떨어져 ‘피폭의 빛’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미화하면, 미국 핵무기의 빛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글로브스의 ‘영광’과 나가이 다카시의 ‘영광’이 무시무시하게 어울리는 비극. (핵무기를 만든 미국의) 맨하탄 계획과 (핵무기에 당한) 피폭은 모순인데, 핵무기를 만든 자(글로브스)의 ‘영광’과 핵무기 피해를 받은 자(나가이)의 ‘영광’이 모순되지 않고 서로 어울린다면, 이 보다 더 비극적이고 강력한 역설은 없다.


바로 이 역설은 피폭자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핵무기  체제에 반대하는 반핵평화운동을 무력화(無力化)한다. (핵무기를 실험한) 알라모고드와 (핵무기가 떨어진) 나가사키가 동일하게 영광된 장소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폭자들이 크게 분노할 것이고 ‘분노하는 히로시마’는 그런 이야기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 실험의 영광과 피폭의 영광을 동일시하는 것은, 피폭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핵무기를 만드는 영광과 피폭의 영광을 동일시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피폭자에게 방사능을 아편처럼 나누어주는 ‘악의 축(Axis of Evil)’이다. 영광스럽게 핵무기를 만드는 것도 방사능이라는 아편을 나누어주는 것이고, 영광스럽게 피폭 당하는 것도 방사능이라는 아편을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피폭자를 두 번 죽이는 아편(방사능)을 나누어주며 하나님의 영광을 부르짖는 종교는 사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종교가 있기 때문에 ‘종교는 아편’이라는 속설이 지금도 회자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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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정치적으로 이용된 나가이 다카시



나가이의 맹점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쉬운 약점을 지니고 있다. 맨하탄 계획의 지휘자인 글로브스의 ‘핵실험=하나님의 영광’설과 비슷한 ‘피폭=하나님의 영광’설을 유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가이 다카시의 맹점을 파고든 GHQ(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와 반공주의적인 로마 교황 삐오 12세가, 나가이의 맹점을 반공선전용으로 활용한 듯하다. 그의 반공주의 성향이 맹점을 활용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나가이의 반공주의 성향을 아래와 같이 예시한다;


나가이 다카시의 작품「빵」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느라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참으로 교묘한 노르마(norma)를 창안한 셈이라고나 할까’로 끝맺으며 반공의식을 드러낸다.(永井隆『로사리오의 기도(ロザリオの鎖)』, 222),


『ロザリオの鎖』의「科學者の夢想」이라는 제목의 글에, 교묘하고 교활하게 공산당 비판이 삽입되어 있다.「齒車」라는 수필에서는, 제2차 대전 이후의 민주화 투쟁을 백안시하는 냉소를 인정한다. 다른 수필에서는 공산당을 ‘사회를 망치는 전염성 사상병(傳染性 思想病)’이라고 몹시 나무라며 ‘이미 공산열(共産熱)에 홀린 사람은 애처로운 환자이므로 어디까지나 사랑으로 응대하고 백방의 노력을 기울여 열병에서 구출하는 것이 의무이다’고 기술했다.(「共産黨員を愛せよ」1949년)『この子を残して』,『いとし子よ』처럼 달콤한 감상주의로 일관하는 저서의 경우에도 반소(反蘇; 소련 반대)ㆍ반공주의의 노골적인 표현이 군데군데 끼워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高橋眞司『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 200)


또『この子を残して』의 205~206쪽에 실린「神の言」에 ‘국민이 궁핍해지면 기독교에 반대하는 공산당이 번성한다. 이에 대항하려면 기독교의 이웃사랑으로 공산당의 마수(魔手)에 끌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ㆍ옷ㆍ집ㆍ새로운 일거리를 주는 한편 신의 말씀을 설교할 필요가 있다’고 쓰여 있다.


이와 같은 나가이 다카시의 반공주의는, GHQ와 로마 교황의 정치적인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1. GHQ의 개입


『西日本新聞』의 馬場周一郞 기자는 2004년 8월부터「永井隆からの手紙」라는 연재물을 3회에 걸쳐 실었다. 馬場周一郞 기자는 나가이 다카시가『長崎の鐘』을 펴내기 위해 출판사와 부단히 교섭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長崎の鐘』출판에 GHQ가 개입한 것 같다’고 밝혔다.(高瀨毅, 94~101) 


  2. 반공 선전용으로 이용됨


미국과 핵무기 개발경쟁에 나선 소련은, 1949년에 첫 번째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원자폭탄보다 위력 있는 수소폭탄 개발에 착수했다. 핵무기를 바탕으로 한 미소 냉전이 분명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드디어 미국은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을 극동지역의 ‘반공 방파제’로 삼아 대소(對蘇) 전략 속에 집어넣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에서 나가이의 저작은 커다란 이용가치가 있었다. 나가이의 언설 가운데 ‘반(反)공산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로마 교황 삐오 12세의 사자(使者)가 로사리오를 지닌 채 나가이를 방문한 것에 관하여, 전직 나가사키 방송기자인 伊藤明彦 씨는 ‘한 사람의 신자[나가이 다카시]에 대한 미증유(未曾有)의 처우이다. 교황청의 생각을 뚜렷하게 전달한 듯하다’는 의미심장한 논평을 했다.
교황청의 생각이란 무엇일까? 로마에서 볼 때 극동의 기독교도 마을의 신자[평신도]일 뿐인 나가이 다카시에게 왜 사자(使者)를 보냈을까?
『ローマ敎皇とナチス』를 쓴 大澤武南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반공주의자인 로마 교황 삐오 12세는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알면서도 항의하거나 저지하지 않았다. 나치스가 공산주의에 대한 방벽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高瀨毅, 102~104)
  

가톨릭 자체의 반공적인 체질과 개인적인 체험이 가미되어, 삐오 12세의 사고방식이 형성된 듯하다. 그러한 삐오 12세가 나가이에게 로사리오를 선사한 일은,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내포할 게 아닐까.
물론 삐오 12세와 나가이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을 것이다. 또 동아시아의 반공 보루로서 일본을 대소 전략에 편입시킨 미국과 나가이 사이에도 직접적인 접점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소련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중에, 미군[GHQ]ㆍ바티칸의 입장에서 나가이의 언설이 이용 가능한 것으로 비쳐졌음이 틀림없다.
伊藤明彦에 의하면, 1947년 ‘자신의 몸을 실험대로 삼아 원자병 규명에 노력한 과학자가 나가이’라고 발표하고 전국의 신문이 보도하는 단서를 제공한 쪽은, 서(西) 규슈지역에 주둔한 미 8군이었다고 한다. 伊藤明彦은 ‘미 8군은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얻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이어 “나가이의 이름이 ‘성자(聖者)’로 널리 알려지는 과정에 GHQ가 무관심했을까?”라며 묻는다. 伊藤明彦이 지적한 미 8군은 일본을 점령한 미군의 주력(主力)이었다.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GHQ(SCAP)는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9일에 각서를 발표하고 엄격한 보도통제를 실시하면서 일본의 미디어를 감시 아래에 두었다. 원자폭탄에 관한 보도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보도통제 대상이었다. 미군의 여론형성용 정보수집ㆍ공작은 나가이ㆍ나가이의 저작에도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高瀨毅, 105~106)


그런데 나가이 다카시의 저작만 GHQ의 보도통제 아래에서도 계속 간행되었다. 나가이의 주저(主著)인『長崎の鐘』이 공간(公刊)된 것은 다름 아닌 ‘우라카미(浦上) 번제설’ 때문이었다고 말해도 틀림없다. GHQ는『長崎の鐘』을 위해 3만부의 용지를 제공하겠다고 신청했다.『長崎の鐘』의 출판을 중계한 式場隆三郞 박사는 검열당국과의 교섭중 ‘저자[나가이 다카시]는 정말 유화한 태도로 원자폭탄의 투하는 정당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편지를 제출했다.(高橋眞司『續ㆍ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 103)


나가이 다카시가『ロザリオの鎖』『長崎の鐘』에서 ‘우라카미 번제설’을 정식화(定式化)함으로써 미국ㆍ일본을 이중적(二重的)으로 면책했다. 이러한 우라카미 번제설의 면책기능이야말로 ‘기도하는 나가사키’의 원천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나가사키의 언설을 불분명(不分明)하게 함으로써, 제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전쟁책임 추급(追及)을 모호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高橋眞司『續ㆍ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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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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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永井 隆 지음, 이승택 옮김『長崎의 鐘』(서울, 삼일 출판사, 1949)
* 永井 隆 지음, 조양욱 옮김『로사리오의 기도』(서울, 베틀 북, 1999)
* 高橋眞司『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東京, 北樹出版, 2001)
* 高橋眞司『續ㆍ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東京, 北樹出版, 2004)
* 高瀨毅『ナガサキ消えた一つの「原爆ドーム」』(東京, 平凡社, 2009)
* 高橋眞司ㆍ舟越耿一 엮음『ナガサキから平和學する!』(京都, 法律文化社,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