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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일본 관련(9條會 등)

반일운동 평가

김승국

Ⅰ. 반일운동에 관한 우려

  1. 반일 시위에 대한 반성

    1) 너무 경박하고 피상적이며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운동, 눈요기용 반일 시위 중심이다. 운동의 냄비현상 조짐이 보인다. 운동의 거품현상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
    2) 우파 단체들의 일본 대사관 점거, 국수적(國粹的)인 반일운동 전개, 극우단체(강경보수 단체) 성원들이 손가락 자르는 등 자학적인 운동, 극우단체들의 애국심 발휘로 보기에는 민망한 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평소에 극도의 친미행각을 보인 극우단체들이 극도의 반일 행각을 보이는 등 헛갈리는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관제 반일 시위의 현상이 재현된 것이 아닌가? 이들의 행태에 의병적인 요소가 있다고 평가해야 하나? 정부의 조용한 외교를 규탄하고 몸으로 독도를 되찾으려는 의지는 가상하다. 그러나 이런 자학적인 행동으로 일본의 ‘자학사관에 의한 우익화’를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국내의 시민들로부터 호응받을 수 없다. 손가락을 자르거나 할복하는 운동 대신 일본인의 합리적인 이성에 호소하는 운
동을 전개하길 바란다.
    3) 자학적인 시위에 나서기 전에 일본 알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일본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나? 혹시 일본 국민 전체가 우경화하고 있거나 일본 사회 전체가 교과서 개악에 찬성하는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일본의 소수
파 우익세력의 망동과 우익 정치인의 망동의 언저리에 있는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지혜가 아쉽다. 이런 지혜
를 얻기 위해 일본을 제대로 아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일본 알기 운동과 반일운동이 병행해야 심층적인 운동의 지속
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일본 알기 캠페인을 거쳐야 일본의 우경화를 막는 국민운동으로 승화될 수 있다. 이 캠페인을 위해 ① 일본의 우경화, 군사-정치 대국화 경향 ② 1937년 대동아 전쟁 당시의 천황제로 복귀하려는 움직임, 즉 일본군 통수권을 갖는 국가 원수로서의 천황을 다시 탄생시키려는 움직임 ③ 천황제와 군사대국화의 연결지점 ④ 이를 방조하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 일 동맹의 긴밀한 동향 ⑤ 일본 자본주의의 위기 탈출과 일본 평화헌법 파기의 연동 ⑥ 우경화에 이르는 일본 민심의 동향. 최근에 나타나는 ‘소민족주의(petite nationalism)’에 흡입되는 대중들의 심리적 기제(경제불황에 따른 불안감이 우경화의 밭을 비옥하게 만드는 대중 심리) ⑦ 일본 자본주의 축적 위기와 군사대국화의 관련 등에 대한 시민교양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반일 캠페인의 중장기적인 기획을 하고, 운동의 과녁을 ‘일본 천황제와 평화헌법 파기가 연결되는 지점’에 맞춰야한다. 이를 위해 일본 군사대국화를 향한 각종 법률적 완비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의 양심세력, NGO, 평화운동 세력과 연대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일본의 과거사 청산+교과서 개정+독도 관련 운동을 저변으로 삼아 일본의 군사․정치 대국화+평화헌법 파기 움직임을 견제하는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4) ‘극우 민족주의+국가주의=국수주의’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즉자적, 즉흥적 민족주의가 국가주의와 어울려 국수주의(國粹主義)로 흐를 수 있다. 반일 시위가 국수주의적인 냉전수구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일본 제어를 빙자한 군비확장(독도 방어를 위한 대양해군 필요성 주장)으로 나아갈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시위를 대자적(他者와 공존하는) 민족주의, 열린 민족주의로 전환시켜야 한다.
막가파식의 냉전수구 세력이 일본 대사관 앞을 점령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독도 사태의 초기에 일본 대사관 앞을 냉전수구 세력에 빼앗긴 진보진영은, 손가락 자르는 자학행위를 방관하며 얄팍한 비판만 했을 뿐 본질적인 반일운동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거의 없었다. 그 바람에 닫힌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시너지 효과를 거둔 냉전수구 세력이 오랫동안 일본 대사관 앞을 차지하게 되었다.

남한 극우단체의 극단적인 시위는 오히려 일본 우익의 준동에 도움을 줄 뿐이다. 극우단체의 극단적인 시위를 더욱 극단적으로 편집한 {산케이(産經) 신문} 등이 일본국민의 반한 감정을 자극하여 ‘독도는 일본 땅이고 역사교과서 개정이 올바르다’는 우익 논리에 편승하게 할 수 있다.

남한의 진보진영은 “이번 사태로 한국의 우익과 일본의 우익만 재미 보았다.”는 냉소적인 평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빨리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남한의 진보진영은 일본의 좌파세력 중 상당수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 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판정해야 한다. 독도를 한, 일이 공동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으며, 국가주의에 물든 인사들이 상당히 있음을 알고 한, 일 간 국제연대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일본 운동권의 힘이 약하므로 일본 운동권에 큰 기대는 금물이다. 일본의 평화운동 세력의 동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평화운동 세력은 평화헌법 저지 열망이 강하지만 저지 능력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한국의 운동진영을 일본 평화헌법 저지의 원군으로 상정하고 있는 일본의 진보인사들은, 한국의 운동권으로부터 한 수 배우며 공동전선을 펼치겠다는 열망이 강하다. 그런데 남한 극우세력의 자학적인 시위가 지속되면 일본의 진보인사들이 정 떨어져 한국 측과 연대할 의지가 박약해진다.

그러므로 남한의 진보진영은 심층적으로 반일운동을 기획, 실천하고 일본의 진보진영을 견인하는 가운데 일본 극우세력의 망동을 견제해야 한다.

Ⅱ. 미국에 관하여

  1. 운동의 과녁 중 하나를 미․일 동맹에 맞춰야 한다

    1) 한, 일 간의 마찰을 관망하는 미국이 기본적으로 일본 편을 드는 행태를 규탄해야 한다.
    2) 미국의 방조 아래 일본의 군사, 정치 대국화가 진행 중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독도․교과서 문제는 이러한 미, 일 동
맹의 외연이 확대된 것 중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3) 한, 일 외교마찰로 미국의 북한 공세 전선이 흐트러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 핵보유 선언 이후 북한을 6자회담으로 내몰기 위해 한, 일이 단결해야 한다고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데……현실은 그와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렇게 북한 핵문제 해결 위한 한-미-일 공조가 빗나가는 정세를 잘 읽어야 한다. 한-미-일 공조체제가 삐거덕거리는 틈을 비집고,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동아시아에 평화의 바람을 넣는 운동 전략을 내와야 한다. 이와 연동하여 미-일 동맹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국제적인 평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Ⅲ. 한․일 마찰을 평화운동으로 전환하기

일본 정치인의 망언, 신사참배 등으로 빚어지는 한-일 간 외교 위기는, 양국의 민간들이 평화운동을 전개할 절호의 기회이다. 양국의 운동진영은, 운동의 목표를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에 두고, 이를 역행하는 한일 우익-냉전수구 세력의 준동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 독도, 교과서 개정과 관련하여 한-일의 냉전수구 세력이 어부지리(漁父之利)하지 못하게 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중-일 3국 간의 민간인 연대가 중요하다. 이 3자 연대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지대-비핵지대화(북한 핵문제 해결의 지름길)의 초석을 놓을 수 있다.

이처럼 한-일의 국가 간 외교의 위기를 민간인 평화운동의 승기(勝機)로 뒤집는 국제연대 운동이 절실하다. 이와 동시에 북한과 공조하는 가운데 일본의 우경화를 근원적으로 저지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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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81호(2005.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