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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마르크스_ 정치경제학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군대 개념

김승국

마르크스(Marx)의 군대개념을 정립하기 전에, 마르크스의 폭력-전쟁 개념과의 구조적인 연관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序說(Einleitung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의 「경제학 구상(plan)」 속에서 ‘국가의 경제적 기능의 이중성’을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그는 첫째로 ‘외측(外側)을 향(向)한 국가는 식민지, 외국무역, 어음교환소, 국제적 주화로서의 화폐, 세계시장과 관련이 있다. 부르주아 사회는 국가를 넘어서 확장한다. 그리고 공황, 교환가치에 입각한 생산양식 ・사회형태의 해체, 개인적 노동을 사회적 노동으로서 또 그 반대로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거론한다. 둘째로 내측(內側)을 향한 국가로서 국가와 부르주아 사회, 조세, 생산하지 않는 계급의 존재, 국채, 인구 등을 마르크스는 거론한다. 한편 마르크스에 있어서 ‘사회의 집중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인 국가권력’의 정치적 기능의 이중성이 「경제학 구상」을 통하여 확인된다. 이는 외측을 향한 국가권력의 정치적 기능(국가권력의 중추를 형성하는 구체적인 기구로서의 군대)과 내측을 향한 국가권력의 정치적 기능(재판 ・사법, 경찰, 관료 ・행정 등)의 이중성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산기(産氣)가 도는 모든 낡은 사회의 조산부’임과 동시에 그 자신이 하나의 경제적인 힘(force, Potenz)인 폭력은 상부구조로서의 국가권력을 매개하는 계기로 나타나며, ‘사회의 집중적이며 조직적인 폭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국가권력의 ‘외측을 향한 발동’이 전쟁이다. 여기에서 ‘전쟁이 경제적인 힘’이라고 말할 경우, 이 힘이 발휘되어야 할 하나의 구조를 매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바로 이 구조가 군대이다.(주1)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요강})을 통하여 ‘경제적인 힘’으로서 폭력 ・전쟁 ・군대개념의 상호연관을 고찰한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 제4절 이외에는 군대개념에 관하여 충분히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1857년 9월 25일에 마르크스가 엥겔스(Engels)에게 보낸 편지는, ‘경제적인 힘으로서 군대개념을 확립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증명한다: “그대의 논문 {군대(Army)}는 아주 훌륭합니다. 다만 그 분량이 나를 놀라게 하였을 뿐입니다. ‥‥군대의 역사는 생산력과 사회관계와의 연관에 대한 우리의 견해의 정당성을 가장
뚜렷이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군대는 경제발전에 대하여 중요합니다. 예컨대 임금은 고대인(古代人)의 군대에서 처음으로 완전히 발전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에게 있어서도 전시 획득재산(戰時 獲得財産; peculium castrense)이, 가장(家長)의 소유가 아닌 동산(動産)을 인정하는 최초의 법적 형태(法的 形態; Rechtsform)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업조합 제도(Zunftwesen)도 로마군대 소속 수공업자(공병단; fabri)조합에서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최초로 기계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심지어 금속이 특별한 가치를 갖게 되고 그것이 화폐로서 사용되게 된 것도 원래는 그림(Grimm)이 말하는 석기시대가 방금 지난 후 금속이 군사적 의의를 갖게 된 데 기초한 것 같습니다. 한개 공업 부문 내부의 분업도 역시 군대에서 처음으로 실행되었습니다. 더욱 부르주아 사회의 전 역사(全 歷史)가 매우 적절하게 군대에서 요약됩니다. 만약 그대에게 언제 시간이 있다면 이러한 입장에서 이 문제를 한 번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주2)

이처럼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1857년 {New American Cyclopedia}에 기고한 논문 {군대}에 관하여 주목할 만한 조언을 편지형식으로 남긴다. 1857년 9월 25일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전 역사(全 歷史)가 매우 적절하게 군대에서 요약된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대응의 계기로서 군대 개념의 본질을 규정한다. 부르주아 사회형태의 전 역사(全 歷史)가 매우 정확하게 군대에서 요약되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 제4절 제1항의 ‘잊어서는 안 되는 주의사항’으로 다음과 같이 군대 문제를 제기한다: “전쟁은 평화보다 더 일찍 완성되었다(Krieg
früher ausgebildet wie Frieden). 전쟁에 의하여, 또한 군대 등의 내부에서 임금노동 ・기계 등의 일정한 경제적 관계들이 부르주아 사회 내부에서보다 더 일찍 발전되는 방식이 완성되었다. 생산력과 교통관계(교류관계; Verkehrsverhältnis)의 관계도 군대 안에서 특히 명백하다.”(주3)

마르크스의 군대개념에 관한 위의 논리전개를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제형태諸形態(Formen, die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 vorhergehen)}와 연관 지어 거듭 생각하면, ‘경제적인 힘으로서 군대의 역할’에 관한 총체적인 모습이 더욱 명확하게 그려진다. 즉 현물경제의 성격을 지닌 사회에서 군대는, 자연발생적인 공동체로서 생산력과 교역의 관계를 명확하게 한다. 그리고 군대는, ‘임노동 ・기계 등과 같은 경제적 관계를 일찍이 발전시킨’ 공동체이다.

한편 고전적 공동체에 있어서 군대=용병군(傭兵軍)<주4>이 공동체의 유대를 약화시키고, 공동체의 밖에서 독자적인 성격을 띠며 존재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하여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인(人)의 경우 군대의 형태를 띤 하나의 집단이 존재했고 노동하듯 훈련된 이 집단의 잉여시간은 동시에 국가에 속했다. 그들의 전 노동시간(全 勞動時間)은 모두 임금으로 인환(引換)되는 것처럼 국가에 매도되었고, 그들의 노동력은 모두 그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임금과 교환되었다. 이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와 다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 군대가 시민군(市民軍)이 아니
라 용병군이었던 시대의 일이다.”(주5)

로마제국이 가장 발전한 시대에서조차 현물조세(現物租稅)와 현물급부(現物給付)가 여전히 그 기초를 이루었다. 본래 로마제국에서도 단지 군대에서만 화폐제도가 완전히 발달하였다.(주6) 물론 로마시대의 급여제(給與制; Soldwesen)는 본질적으로 임노동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로마시대의 급여제와 임노동의 차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가는 가치물(價値物)의 생산을 위하여 병사를 매입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원적으로 임금형태가 군대에서 발생한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 급여제도는 본질적으로 임노동과는 구별된다. 약간의 유사점이 있다면, 권력과 富의 증대를 손에 넣기 위하여 국가가 군대를 사용하는 점이다.”(주7)

그러나 마르크스의 연구핵심이 자본제 생산양식-자본 ・임노동의 해명에 있기 때문에, 군대개념도 이와 연관시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 방향에 서서 마르크스의 로마군대 연구에 접근하는 것이 올바르다. 이러한 시각(視角)을 가진 마르크스가 엥겔스의 논문 {군대}를 전반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한편 엥겔스의 군대 연구와 자신과의 질적 차이를 느낀 나머지 편지의 형식으로 엥겔스에게 조언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공동체의 어느 쪽에선가 행(行)하는 가장 본원적인 노동 중의 하나’인 전쟁은, 공동체 사이의 교통(교류; Verkehr)을 강하게 재촉하고 현물경제로부터 상품경제로의 전환을 빠르게 한다. 더구나 이 과정은 동시에 군대에 일정한 경제적 관계를 필연적으로 정착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또 고전적 공동체에 있어서 방대한 잉여생산물의 수요는, 오로지 국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문제와 연관하여 국가권력의 중추적(中樞的) 기구를 이루는 군대의 경제적 활동 ―군대와 금융, 군대와 보급, 군대와 무기 제조 등 ―을 고려할 경우, 군대는 고리대(高利貸) 자본 ・상업자본의 성숙과정이나 근세의 재정금융의 적극적 전개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계기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주8)

마르크스는 ‘군대 속에서 시민적 사회형태의 전 역사(全 歷史)가 요약됨’을 밝힌다. 이러한 시각과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 제4절 제1항의 전쟁-군대에 관한 문제제기를 종합하여 생각하면, 마르크스가 전쟁-군대의 역사적 역할에 관하여 강한 관심을 가진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강}에서의 자연발생적 공동체 분해 경향과 상품경제 출현의 내적 필연성=자본제적 생산양식 성립의 일반적 기초를 확정하는 논리형성 과정에 있어서, 마르크스는 분명히 현물경제의 상품경제에로의 순 경제적 전화(純 經濟的 轉化)를 강력하게 촉진 ・매개하는 계기로서 세계 상업과 절대주의의 국가재정을 고려한다. 마르크스는 이 전화(轉化)를 강제로 매개하는 계기로서 전쟁-군대-국가의 경제적인 힘(force, Potenz)에 초점을 둔다.(주9)

이와 같이 마르크스는 ‘전쟁-군대-국가의 경제적인 힘’의 3각 관계를 바탕으로 국가개념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자신의 군대개념 형성의 현실적인 기초를 쌓는다(1996년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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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竹村民郞 「マルクスにおける暴力-戰爭槪念」 {經濟學批判ヘの契機}(東京:三一書房, 1974), 54~55쪽.
(주2)) Marx {Marx an Engles in Ryde(1857. 9. 25.)}, MEW 29, p.192.
(주3) Marx {Einleitung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13, p.639.
(주4) 마르크스는 1857년 9월 25일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군대연구의 주의사항으로 ‘칼타고인(人)의 용병제도(傭兵制度)’를 제기한다.
(주5)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p.435.
(주6) Marx {Einleitung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13, p.634.
(주7)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pp.435~436.
(주8) 竹村民郞 「マルクスにおける暴力-戰爭槪念」, 위의 책, 57쪽.
(주9) 竹村民郞 「マルクスにおける暴力-戰爭槪念」, 같은 책,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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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마르크스의「전쟁‧평화」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267~272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