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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안보론-안보 패러다임 전환

안민을 통한 안보

김승국

Ⅰ. 문제 제기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와 같이 전란이 그치지 않는 암울한 시대의 가장 귀중한 가치는 ‘안민(安民; 민중생활의 안정, 민중의 안전한 삶, 민중이 평화적 생존권을 누리며 잘사는 것)’이었다. 부국강병을 위한 ‘의로운 전쟁(義戰)’을 강조하는 법가, 일부 유가의 논객들도 안민을 필수적으로 언급했다. 어쩔 수 없이 의전(義戰)에 임하더라도 안민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와 달리 부국강병을 위한 의전 자체를 부정한 노자, 장자의 핵심적인 가치 역시 안민이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 사이에 전쟁․평화를 에워싼 이견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안민을 보장할 수 없는 안보는 무가치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이루었다.

춘추전국 시대에 평화의 대안을 놓고 번민했을 현인들은 ‘안민과 안보’ 양자의 비중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다. 안보 중심적인 가치관을 지닌 법가는 안보를 위해 안민을 희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노자, 장자는 안민 없는 안보란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으며, 유가(공자, 맹자)는 양자의 중간쯤에서 의로운 전쟁을 강조했다.

이처럼 안민과 안보의 비중을 에워싼 강조점은 각각 달라도 ‘안민을 배제한 안보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동양의 현인들 모두가 동의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안민을 배제한 안보란 있을 수 없다’가 소극적인 표현이므로, ‘안민을 통한 안보’라는 적극적인 표현으로 대체하는 게 바람직하다.

동양고전의 안민론은 이 양자(안민의 소극적-적극적 표현)를 포괄하는 수많은 명구(名句)를 집대성한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의 암울한 세상에서 민중들이 잘사는 평화체제를 고민한 현인들이 안민의 길을 모색한 단편들을 잘 판독하면, 그 속에 안민론-안민을 통한 안보론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안민론-안민을 통한 안보론을 동양고전에서 찾기 위한 입문 과정으로, 諸橋轍次의 {중국 고전명언 사전}에서 몇 개의 문장을 아래와 같이 발췌하고 해설을 곁들인다.(諸橋轍次, 2004)

* <楚子曰,……> 武有七德, <我無一焉>({좌전(左傳)} 선공 12년)
번역: 무에는 일곱 가지 덕이 있다.
해설: 무(武)에는 일곱 가지 덕이 있다. (초나라 자작의 말) {시경} 「주송 무(武)」편은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정벌할 때 지은 것으로, 일곱 가지 덕목은 {좌전}에는 첫째, 난폭을 금지함(禁暴), 둘째, 무기를 거두어들임(즙병), 셋째, 큰 나라를 보전함(保大), 넷째, 공적을 정함(定功), 다섯째, 백성을 편안하게 함(安民), 여섯째, 대중을 화합하게 함(和衆), 일곱째, 물자를 풍부하게 함(豊財)이라고 들고 있다.(461∼462쪽)

* <君子> 不以 <其> 所以養人者害人({맹자(孟子) 양혜왕} 하)
번역: 사람을 양육하는 토지를 가지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해설: 군자는 인간을 양육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자이지, 인간을 해치는 행위는 하지 않는 자이다. 토지는 백성을 양육하기 위한 것인데, 그 토지를 서로 뺏기 위하여 전쟁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167쪽)

* <周世宗曰,……> 浚民之膏血, 養此無用之物乎({십팔사략(十八史略)} 오대 周)
번역: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이 같은 무용지물을 키우겠는가.
해설: 백성들의 피와 땀이 섞인 세금을 무리하게 거둬들여서 쓸데없는 군대를 양성해서는 안 된다.(주나라 세종의 말)(1141쪽)

* 兵者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손자(孫子)} 計篇)
번역: 전쟁은 나라의 대사이다. 백성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으니 잘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해설: 전쟁은 나라의 중대사이다. 즉 백성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며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갈림길이 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786∼787)

* 子之所愼, 齎戰疾({논어(論語)} 술이)
번역: 공자가 조심한 것은 재계와 전쟁과 질병이었다.
해설: 신을 제사할 때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다스리는 재계(齋戒), 국민의 생사와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는 전쟁,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가는 갖가지 질병, 공자는 이 세 가지에 대해서는 특히 신중하였다.(공자 문인의 말)(58쪽)

* <尹鐸曰, 以> 爲繭絲乎, 以爲保障乎({십팔사략 춘추전국} 조)
번역: 고치에서 실은 뽑듯 하오리까? 아니면 보존하고 보장하오리까?
해설: 치국의 방침으로써 누에고치의 실을 뽑듯 백성들의 힘을 짜내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백성의 힘을 잘 보존하여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할까요. (조간자로부터 영지 晋陽을 맡은 尹鐸의 말)(1091쪽)

* 沈竈産䵷民無叛意({십팔사략 춘추전국} 조)
번역: 물속에 잠긴 부뚜막에서 개구리가 뛰어 노는 형편인데도 백성에게는 전혀 모반의 마음이 없었다.
해설: 진양의 백성들은 적군의 수공(水攻)으로 인해 부뚜막이 물속에 잠겨 개구리가 첨벙거릴 정도의 곤경에 처했다. 그렇지만 윤탁이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결코 그를 배반할 생각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1091쪽)

* 沈竈生䵷, 而民無反心({한비자(韓非子)} 난1)
번역: 가라앉은 아궁이에 개구리가 생겨도, 백성에게 거역하는 마음이 없었다.
해설: 물속에 잠긴 아궁이에 개구기라 알을 까고 뛰어놀 만큼, 오랫동안 수공(水攻)을 당해 고난을 겪었어도 민심은 동요되지 않았다. 조양자(趙襄子)가 진양(晉陽)에 틀어박혀 농성을 할 때, 같은 진(晉)나라의 지씨(知氏)가 냇물을 막아 도성 안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여 그를 공격했다. 이때 조양자의 성안에 있는 모든 집의 아궁이는 물속에 잠겨, 개구리가 생길 정도로 오랫동안 고난을 겪었으나 그 백성들은 한 사람도 그를 배반하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778∼779쪽)

* 迺裹餱糧, 于橐于囊, 思輯用光({시경} 대아 公劉)
번역: 말린 밥과 식량을 비축하는데, 작은 자루에 하고 큰 자루에 하여, 백성들을 화목하게 하여 이로써 국가를 빛낼 것을 생각하였다.
해설: ‘탁(橐)’은 작은 자루. ‘낭(囊)’은 큰 자루. ‘집용광(輯用光)’은 전쟁을 종결시켜, 그 결과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의미. 양식을 작은 자루와 큰 자루에 많이 준비하고 출정해서, 빨리 전쟁을 끝내는 훌륭한 결과를 거두고 싶다.(329쪽)

* <四方三面戰> 十室九家空(왕안석 시)
번역: 열 집 가운데 아홉 집은 빈집이다.
해설: 전쟁이 휩쓴 후 백성들이 곤궁에 못 이겨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열 집이 있는 마을도 아홉 집은 빈집이 되었다.(1327쪽)

* 以佚道使民, 雖勞不怨( 맹자 진심 상)
번역: 편안하게 해 주는 방법으로 백성들을 부리면 비록 수고롭지만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는다.
해설: 백성들에게 편안한 생활을 누리게 하려는 배려의 마음으로 백성을 부린다면 비록 일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수고를 끼치더라도 백성들은 원망하지 않는다.(229∼230쪽)

Ⅱ. 동양고전의 ‘안민을 통한 안보’

  1. 노자의 소국안민(小國安民)

      1) {老子} 80장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의 평화 공동체를 통해 안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소국과민의 안민, 즉 소국안민은 노자(老子) 80장에 잘 나타나 있다.

小國寡民(나라는 작고 백성도 적다)
使有什伯之器而不用(그러므로 여러 가지 기물이 있으나 쓸 필요가 없고)
使民重死而不遠徙(백성들은 죽을 때까지 공동체에서 유리되지 않도록 한다)
雖有甲兵無所陳之(비록 배와 수레가 있으나 탈 곳이 없고, 비록 무기가 있으나 쓸 일이 없다)
使人復結繩而用之(사람들은 옛날처럼 새끼줄로 의사표시를 하게 했지만)
甘其食 美其服(그들의 음식을 달게 먹고, 그들의 옷을 아름답게 입고)
安其居 樂其俗(그들의 거처를 안락하게 여기며, 법이 아니라 옛 풍속대로 즐거워한다)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이웃 나라는 서로 바라보이고 개짓는 소리와 닭울음소리를 듣지만)
民至老死 不相往來(백성들은 죽을 때까지 지역 공동체를 오고가지 않는다)

위의 {노자} 80장은 소국과민이 되면 ‘使有什伯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甲兵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이라는 안민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좋을 듯하다. 달리 말하면 ‘여러 가지 기물이 있으나 쓸 필요가 없고, 백성들은 죽을 때까지 공동체에서 유리되지 않도록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으나 탈 곳이 없고, 비록 무기가 있으나 쓸 일이 없다. 사람들은 옛날처럼 새끼줄로 의사표시를 하게 했지만, 그들의 음식을 달게 먹고, 그들의 옷을 아름답게 입고 그들의 거처를 안락하게 여기며, 법이 아니라 옛 풍속대로 즐거워한다. 이웃 나라는 서로 바라보이고 개짓는 소리와 닭 울음소리를 듣지만 백성들은 죽을 때까지 지역 공동체를 오고가지 않는다’는 안민의 이상향은, 소국과민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2) {노자} 61장

그런데 위와 같은 소국안민의 이상향은 대국(大國)과의 평화공존 속에서 이루어진다. 대국과 소국(小國)의 평화공존을 강조하는 {노자} 61장은, 대국의 과욕(寡欲)과 소국의 과욕(寡欲)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대국, 소국의 안민이 가능함을 암시한다.

<{노자} 61장>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대국은 소국들이 모여드는 하류와 같아서 천하 각국의 교류장이며 만민의 암컷이다)
牝常以靜勝牡(암컷은 항상 고요함으로 수컷을 이긴다)
以靜爲下(고요함으로써 겸양하기 때문이다)
故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그러므로 대국은 소국에 겸양함으로써 소국을 연합(取=聚)하고>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소국은 대국의 아래가 됨으로써 대국에 연합한다(聚)>
故或下以取或下而取(그러므로 대국은 겸양함으로써 연합하고, 소국은 아래가 되어 연합한다)
大國不過欲兼畜人(대국은 타국을 겸병하려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되며)
小國不過欲入事人(소국은 타국에 편입되어 섬기려 하지 말아야 한다)
夫兩者各得其所欲 大者宜爲下(이처럼 대국도 소국도 각각 바라는 바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대국이 의당 겸양해야 한다)

위의 61장에서 말하는 ‘대국’은 독립주권의 소규모 공동체들의 연합을 뜻한다. 노자 80장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소국’, 즉 과민(寡民)하는 소규모 공동체들이 연합한 것이 대국이다. 따라서 61장의 ‘故大國以下小國則取小國/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을 소국병탄(小國倂呑)의 패도주의로 왜곡하면 안 된다. 패도주의로 왜곡하면 ‘대국이 소국에 겸양함으로써 소국을 연합하는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노자는 대국의 겸양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대국의 겸양 아래에서 소국과의 연합관계를 중시한다. 대국이 겸양하려면, 타국을 겸병하려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대국의 과욕(寡欲)을 언급한다. 또 소국도 타국(대국)에 편입되어 섬기려 하는 사대주의의 욕구를 줄이는 과욕(寡欲)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대국의 과욕(寡欲)과 소국의 과욕(寡欲)이 조화되어야 천하 각국의 교류장(국제적인 평화)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천하 각국의 교류장이 이루어지면 대국의 민중과 소국의 민중들이 더불어 안민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대국․소국 민중이 더불어 안민하는 국제평화체제를 한반도 정세에 적용하여 논의할 수 있겠다. 미국을 대국으로 보고 남북한을 소국(미국에 비하여 상대적인 소국)으로 볼 경우, 미국의 과욕(寡欲; 타국인 북한을 겸병하려는 욕구를 줄임)과 남한의 과욕(寡欲; 타국인 미국을 섬기려는 욕구를 줄임)이 대국(미국)-소국(남북한) 민중의 안민을 동시에 보장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과욕(寡欲)과 남한의 과욕(寡欲)이 상승(시너지)효과를 낼수록 북한 민중의 안민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

{노자} 61장의 ‘대국․소국의 과욕(寡欲)-안민 체제’는 {노자} 60장의 ‘治大國 若烹小鮮’에서 다시금 강조된다. 연합국을 태평하게(治大國) 다스리는 안민체제를 이루려면, 소국을 보존(烹小鮮)해야 한다는 것이다. 小鮮(小國寡民)을 잘 보존(烹)해야 대국(소국과민의 연합체)이 태평스럽게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안민이 이루어져야 대국의 안민(治大國의 결과로서의 안민)도 가능하다고 확대해석할 수 있다.

  2. 유가의 안민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子貢問政). 공자가 대답했다. “먹을거리 등 경제를 충족시키는 것이요(子曰 足食), 군사를 튼튼히 하는 것이요, 신의를 쌓는 것이다(足兵 民信之矣).” ({논어} 안연 7)

공자는 정치에 있어서 ‘족식(足食)’, ‘족병(足兵)’과 ‘신(信)’이라는 기본요건을 제시하였다. 세 가지 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꼭 버려야만 할 경우 ‘병(兵)’을 먼저 버리고, ‘식(食)’을 포기할망정 ‘신(信)’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이운구, 1995, 64)

공자는 국가의 관건을 첫째가 신의(信)요, 둘째가 경제(食)요, 셋째가 군사(兵)라고 말했다. 만약 이 순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군자(士君子)는 ‘신(信)’을 위해 정사를 돌보는 것이 직분이므로, 소인의 직분인 ‘식(食)’을 위해 경제를 돌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명분을 어기고 식을 중시하여 이(利)를 허용한다면 천하에 원망이 가득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子曰 放於利而行 多怨(공자가 말했다. ‘이(利)를 맘대로 행하게 방임한다면 천하에 원망이 많아질 것이다.’)” ({논어} 里仁 12)

공자의 이와 같은 경리(輕利)주의는, 또 다른 유학자인 관자(管子)의 부국-강병-중리(富國强兵重利)주의와 어긋난다. 관자가 말하듯이 “나라를 다스리고 봉토를 받은 자는 백성을 기르는 목자이니 계절에 따라 생산에 힘쓰며 곡식 창고를 지킨다. 나라에 재물이 많으면 먼 곳 백성들이 찾아올 것이니 국토의 개간사업을 일으켜 백성이 머물러 살도록 해야 한다. 창고가 실해야 예절을 알고(倉廩實則知禮節)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知榮辱).” ({관자} 권23 / 輕重 甲)

‘창고가 실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는 관자의 명언이, 안민과 직결됨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의식족(衣食足)’이 안민의 선결조건임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상식이다. 의식이 풍족한(衣食足)한 상태에서 안보도 튼튼해진다는 게 상식이다. 재화가 모여야 안민을 통한 안보가 가능한데도, ‘재화가 모이면 백성은 흩어지고 재화가 흩어지면 백성이 모인다’는 유가의 설법({대학(大學)} 10장)은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

안민을 위한 ‘족식(足食)’이 이루어져야 국가안보가 튼튼해지며(足兵), 그래야만 인민의 신뢰(信)가 뒤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공자는 ‘신(信)’이 제1순위의 가치이고, 족식(足食)은 제2순위의 가치이며 안보(兵)는 최하위라고 강조한다. 이는 ‘의식족(衣食足) ⇄안민(安民) ⇄안보(安保)’의 순환을 강조하는 현대 국가의 부국강병론과 큰 차이가 있다.

‘의식족⇄안민⇄안보’의 순환을 강조하는 현대 국가의 부국강병론이 많은 모순을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족⇄안민⇄안보’의 선순환을 통해 부국강병론의 모순을 지양하려는 노력에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 ‘의식족⇄안민⇄안보’의 악순환이든 ‘의식족⇄안민⇄안보’의 선순환이든, 출발점은 ‘의식족’이며, 이는 안민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에 어긋나는 공자의 경리(輕利)주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공자가 보기에 관자의 중리주의는 소인배들이나 할 짓이다. 소인배인 노력자(勞力者)들이 이(利)를 얻기 위해 혈투(먹고살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사이에, 군왕-귀족-유사들과 같은 노심자(勞心者)들은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 타령을 하자는 태도이다. 공자가 이(利)와 신(信)을 나누는 것은, 노력자 계급과 노심자 계급의 사회적 역할을 구분하려는 계급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노심자(지배계급)의 주변부에 배치된 노력자가 이(利)를 추구하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계급사회에서, 어떻게 안민이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생산과 재용을 중시하는 변법파(變法派)를 ‘소인’이라 비난하고 권력투쟁을 벌인다. 공자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관료파’를 덕치와 인정(仁政)을 배반하는 소인으로 규정했고,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왕도를 배반한 패도(覇道)라고 비난했다.(기세춘 ②, 2006, 52)

공자의 논리를 따르면 ‘의식족⇄안민⇄안보’의 순환을 강조하는 현대국가의 부국강병론은 패도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현대 국가에서 안민을 통한 안보의 왕도는 무엇인가? 공자가 강조하는 중의경리론(重義輕利論)이 왕도인가?

‘중의경리론(重義輕利論)’에서 ‘중의(重義)’는 패도를 징벌하는 의로운 전쟁을 포함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의로운 전쟁의 주창자인 맹자는, ‘천자의 권력에 도전하는 제후들을 징벌하는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라고 격찬한다. 그러므로 앞의 ‘중의(重義)’는 의로운 전쟁을 중요시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의로운 전쟁을 중시하면 할수록, 전쟁에 대비한 자본축적을 해야 하므로 민중복지-안민은 어려워진다. 또 전쟁을 위한 자본축적이 불가피한데, 경리(輕利)하면서 의로운 전쟁을 준비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3. 묵자의 안민

묵자가 말하는 ‘겸애(兼愛)’ 속에 ‘안민’이 내재해 있다.

겸애의 ‘겸(兼)’은 인간 내면의 도덕성에 근거하는 유가의 인의(仁義)와는 대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겸’은 곧 서로의 ‘이(利)’라는 노동의 성과를 인정하는 사회적이고 외면적인 규정이기 때문이다.(윤무학, 1999, 86)

겸애․교리(交利, 서로의 利)는 천하의 해(害)를 물리치고 이(利)를 일으키기 위한 최대의 정치이슈였다. 그것만이 인류 모두가 서로의 이익을 옹호해 줌으로써 복지 증진(안민)을 기대할 길이라고 (묵자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를 기저로 하여 「비공(非攻)」의 논리가 전개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아야 하는 직접 피해의 당사자가 그들 민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운구, 1995, 71-72)

겸애의 ‘겸(兼)’은 공자의 ‘별(別)’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공자의 별(別)에 계급사회의 논리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별(別)에 따르면 안민(민중들 사이의 상호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묵자의 겸(兼)은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는 사상을 반영하므로 안민(兼하는 민중들끼리의 안민)을 보장받을 수 있다.

‘천하에서 남을 미워하고 해치는 것을 따로 이름 붙인다면 겸(兼)과 별(別) 중에서 어느 것인가. 반드시 별(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구별하는 것은 과연 천하의 큰 해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묵자는 별(別)은 그른 것이라고 말한다…천하에서 남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을 따로 이름 붙인다면 별(別)과 겸(兼) 중에서 어느 것인가. 반드시 겸(兼)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겸(兼)하는 것은 과연 천하의 큰 이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묵자는 겸(兼)이 옳다고 말한다.({묵자} 「兼愛下」)

공자와 묵자가 살았던 춘추 시대는 전쟁과 굶주림으로 민중이 죽어 가는 난세였다. 이때 묵자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는 기치를 내걸고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그가 꿈꾸는 이상사회는 만민이 평등하고 전쟁이 없으며 생명이 안락하게 살아가는 ‘안생생(安生生) 대동사회’였다. 안생생 사회는 노동이 소외되지 않는 공유(共有), 공산(共産), 공생(共生)의 (평화)공동체 사회였다. 묵자는 그것을 위해 유세했고 스스로 공동체를 조직하여 생활함으로써 실천했다. 그의 모토는 겸애, 절용, 평화였다.(기세춘 ①, 2006, 388-389)

묵자의 안생생 공동체의 주인공들은 가난하고, 천하고,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으며, 도둑, 노예, 과부, 고아 등 예수가 말한 이른바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들이며 ‘고난받는 자’들이었다. 묵자에게 이들은 천하 만민이 다 함께 한 가족과 같은 사회(天下無人),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安生生) 공동체의 주인공들이었으며, 예수가 새로운 세상 하늘나라의 주인이라고 축복했던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안생생’은 바로 만민평등의 ‘대동 사상’을 (평화)경제적 측면에서 표현한 말이다.(기세춘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69호)

겸애로 무장된 천하무인의 안생생 사회야말로 안민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고,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는 비공(非功)․비전(非戰)의 평화 공동체를 통해 민중안보(민중의 평화적인 생존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다.

  4. 주역의 안민

{역경(주역)}은 서주 초기의 저작으로서 국가대사의 결정에 대한 기록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 국가의 군사 운용에 관한 논의가 있다. 여기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가간 분쟁을 해결할 것을 강조하면서 강한 힘으로 약자를 능욕하는 행위에 반대하였다.(국방군사연구소, 1996, 77)

{주역}을 지은 사람은 전쟁이 비록 ‘큰일’이며 국가와 민족의 생사존망에 관계되지만, 그러나 그것은 역시 ‘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쟁에 승리하는 것은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대량의 돈과 물자를 소모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으로써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것을 주장하지 않고, 호전적이며 병력과 무력을 남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우호적으로 공존하고 서로 평화롭게 기뻐할 것을 주장한다. {주역}을 지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 간의 화목과 우호는 서로의 기쁨이며 좋은 일이며 길한 일이다. 그것에 반하는 것은 곧 나쁜 일이며 흉한 일이다. {주역}을 지은 사람은 국교 문제와 관련하여 평화 공존을 주장하고 침략을 반대한다. 「비(比)」괘와 「관(觀)」괘는 모두 이 문제를 논의한다. 그리고 「태(兌)」괘는 더욱 전면적인 이야기를 한다. 우선 평화롭게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주된 뜻을 제시하고, 중간에는 침략하거나 위압하거나 회담을 파괴하는 자는 모두 좋은 결말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며, 최후에는 인도적 방법을 사용하여 평화롭게 함께 기뻐함을 실현할 것을 설명한다.(姜國柱, 2004, 73-75)

이와 같이 {주역}은 ‘전쟁이 안민(민중의 안전한 삶)을 해치는 흉한 일이므로 전쟁을 반대한다.’고 밝히며 평화공존을 주장한다.

Ⅲ. 현대의 ‘안민을 통한 안보’

  1. 국가안보론의 동요

노자, 공자, 묵자 등의 ‘안민을 통한 안보’는, 춘추전국 시대의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비전(非戰) 평화 공동체’에 중점이 있다. 십자군 전쟁 등 무수한 전쟁을 치른 서양의 경우에도 ‘전쟁 방지-금지의 안보관’이 우세하지만, 동양세계와 다른 반전․비전론(非戰論)을 제시했다. 칸트(Kant)의 상비군 반대 논리와 묵자의 비전론이 다르며, 맹자의 의전론(義戰論)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정의의 전쟁(Justice War)론’이 다르다. 법가의 부국강병론과 서양 현실주의자(Realist)들의 부국강병론의 내용이 다르다.

이렇게 전쟁관-반전, 비전론을 에워싼 동서양의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국가가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국가안보론에는 동서양의 차이가 거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국가안보론이 지배적인 담론이었다. 그런데 ‘국가만이 시민․국민의 안전보장을 책임질 수 있다는 국가 안보론’은, 1990년대 이후(탈냉전 시대)의 전쟁 양태 변화로 말미암아 흔들린다.

  2. 인간안보론의 등장

1990년대에 들어서서 국가 간의 전쟁은 감소되는 추세였지만, 국가 내부의 내란이나 인종 분규가 발생하는 빈도가 증가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안보의 대상으로서 인간 문제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내란이나 민족 분규의 희생자는 대체로 군인보다는 민간인이 많았다. 극단적인 경우 인종청소나 대량학살이 자행되어 무고한 민간인 희생
자가 엄청나게 희생되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무력을 수반한 분쟁의 90% 이상이 내란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외부 위협으로부터 시민의 안보를 보호한다는 국가안보(state security)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되기에 이르렀다. 무고한 시민들이 각종 내란으로 인해 엄청나게 희생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안보의 개념이 국가에서 인간으로
확장되기에 이르렀으며, 여기서 ‘인간안보’라는 새로운 개념이 부각된 중요한 배경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 역시 안보 개념의 확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빈곤, 기아,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한 마약, 국제조직 범죄, 테러, 국제적 자금세탁, 불법 이민 등 국제사회에서 비국가 행위자들의 활동이 국가는 물론 개인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사례들이 빈번히 발생하게 되었다. 어쨌든 세계화의 진전은 국가 중심적 시각을 벗어나 전 지구촌의 문제로 사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특히 지구촌의 내부에 살고 있는 인간의 안보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부각되기에 이르렀다.(전 웅, 2004, 32)

    1) UNDP의 인간개발 보고서

‘인간안보(human security)’는 1994년 UNDP(유엔개발계획)의 연례보고서인 ‘인간개발 보고서(the 1994 Human Development Report)’에서 제기됨으로써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94년 판 ‘인간개발 보고서(the 1994 Human Development Report)’는 위협요인을 7개 영역으로 나누어,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 식량안보(Food Security), 보건안보(Health Security), 환경안보(Environmental Security),
신체안보(Personal Security), 공동체안보(Community Security), 정치안보(Political Security)의 7개 영역으로 인간안보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 경제안보란 생산 및 유급 작업, 노후에는 공적부조를 통해 개인의 기본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둘째, 식량안보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기본식량에 대한 육체적, 경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보건안보는 최소한 질병과 유해한 생활양식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넷째, 환경안보는 단기적, 중장기적인 자연의 파괴와 훼손으로부
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다섯째, 신체안보란 신체에 대한 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여섯째, 공동체안보란 전통적 관계나 가치의 훼손을 막고, 특정 종파나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일곱째, 정치안보는 인간의 기본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조성렬 {평화 만들기} 256호, 2006)

    2)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 보고서

이어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2000년 9월)에 의해 설립된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the Commission on Human Security)’의 공동의장에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이 취임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는 2003년에 최종 보고서를 냈는데, 이 보고서에서 정의하는 인간안보 개념은 다음과 같다. “인간안보의 목적은 인간의 자유와 성취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모든 인간의 핵심적인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인간안보는 근본적인 자유, 즉 삶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심각하면서 도처에 만연된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의 생존, 인간다운 삶,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치, 사회, 환경, 경제, 군사, 문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는 인간안보의 기본적인 문제로서 다음의 10가지 사항을 거론한다.
① 폭력을 수반하는 분쟁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② 무기의 확산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다.
③ 이동(이주)하는 사람들의 ‘인간안보’를 확보한다.
④ 분쟁 이후의 상황에서 ‘인간의 안전보장 이행 기금’을 설립한다.
⑤ 극도의 빈곤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공정한 무역․시장의 발전을 지지한다.
⑥ 보편적인 최저생활수준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⑦ 기초 보건의료의 완전보급 실현을 위해 예전보다 더 높은 우선도(優先度)를 부여한다.
⑧ 특허권에 관하여 효율적이고 균형 잡힌 국제 시스템을 구축한다.
⑨ 기초교육의 완전보급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능력을 강화한다.
⑩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걸맞은 정체성(identity)의 필요성을 명확히 한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는 위의 10개 항목 등을 통하여, 아마티아 센의 인간개발(Human development)론과 관련이 있는 ‘Empowerment(능력배양)’  ‘Entitlement(權原)’  ‘Capability(잠재능력)’를 강조한다.(주1)

아마티아 센은, 인간개발(인간적인 개발; human development)과 인간의 안전보장(human security)을, 상호 보완적인 대당(對當) 개념으로 이해한다. 인간적인 개발은, 진보와 증진을 주안점으로 삼아 활력에 넘치는 낙천적인 성질을 지닌다. 이에 반하여 인간의 안전보장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한 후방지원에 투철하다. 사람들의 선택폭을 확대하는 과정으로
서의 인간적 개발은 빈곤삭감과 거의 동의어이다. 아마티아 센은 빈곤과 기근(Poverty and Famines 에서, 빈곤을 돌발적인 식량 권원(entitlement)의 붕괴로 묘사한 뒤, 그 연장선상에서 기근․만성적인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인 대책을 인간안보의 차원에서 거론한다. 아마티아 센은, 권원 개념의 대당 개념이 된 잠재능력(capability) 개념을 제기했다. 잠재능
력은, 권원의 달성을 전제로 삼아 개인의 ‘생활 방식의 폭’을 넓혀 가는 제도개혁, 공동행동에 조응하는 것으로서, 곧바로 인간개발 쪽으로 접속된다. 아먀티아 센의 저서 {굶주림과 공공행동(Hunger and Public Action)}에 따르면, 파국적인 기아를 방지하는 정책론의 기초에 권원 개념이 위치 지어지는 한편, 잠재능력 개념은 일상의 영양부족․-염증(感染症)․교육의 결여 등 주로 만성적인 문제에 적용된다. 즉 권원은 모든 자유의 전제인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에 대응하고, 잠재능력은 교육․건강․공동체 생활, 자존심을 향하는 적극적 자유의 실현에 대응한다.(西川 潤, 2006, 225쪽, 229-230쪽)

아마티아 센의 논리에 따르면, 죽음에 이르는 기아는 ‘권원의 결여’ 때문에 발생한다. 굶주림으로부터 생기는 기근은 식량 권원의 결여만이 아니라, 더욱 광범위한 권원의 결여(기근 때문에 발생하는 전염병 등)와 관련된 문제이다. 인간의 안전(인간안보)과 깊은 관련이 있는 빈곤은 ‘개개인의 기초적인 잠재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이고, 인간적인 개발-내발적 발전은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잠재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가 ‘권원의 박탈’이다.

이처럼 아마티아 센이 생각하는 인간안보는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가리키며, 인간의 내발적 발전의 권원․잠재능력과 관련이 깊다. 그러므로 잠재능력을 주체론, 권원을 제도론으로 위치 지으며, 잠재능력-권원이라는 대당 개념을 인간적인 개발(점진적인 선택자유의 확대)-인간의 안전보장(돌발적인 후퇴에 대응하는 능력의 확대)이라는 대당 개념으로 이해하기 위한 원리론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개발-안보, 권원-잠재능력의 대당 개념을 고려하면서 인간안보론을 펼치는 게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인간안보론은, 인간적인 개발의 잠재능력이 부족하여 안전보장의 능력을 배양(empowerment)할 수 없는 사회․집단․개인에게 안전보장의 권원을 부여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간 안보론은, 이러한 능력배양-잠재능력-권원이 없어서 불안정한 사람들을
상대로 전개되어야 한다. 인간안보론이 적용될 공동체-시민사회-국가기관은 이러한 사람들의 불안전을 제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인간적 발전의 능력배양-잠재능력-권원이 없어서 불안전한 사람들에게 안전한 삶의 연계망(safety network)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인간안보 차원에서 ‘안민을 통한 안보’에 성공하는 길이며, 노자, 공자, 묵자의 ‘안민을 통한 안보’와도 통하는 길이다. 이렇게 통하는 길을 줄곧 달리면 노자, 공자, 묵자가 기원했던 태평세상-대동(大同)세계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인간안보의 꽃을 피울 수 있다. 대동세계에 어울리는 인간안보의 꽃을 피우는 방향으로 안보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3) 인간안보론의 적용 범주 ․ 분야 ․ 대상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서 인간안보 개념이 적용되는 범주․분야․대상을 파악하는 가운데, 인간안보론 차원에서 ‘안민을 통한 안보’의 지평을 넓힌다.

<인간안보론이 적용되는 분야>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는 다섯 가지 분야(치안, 인도적인 구원활동, 부흥․재건, 화해 공존, 통치능력 강화)에 걸친 인간안보의 문제를 제안한다. 이 다섯 가지 분야 중 안민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치안 분야=민간인의 보호(범죄․폭력과의 투쟁-지뢰 제거-소형무기 회수) / 외부요인으로부터의 보호(인신매매와의 투쟁) ② 인도적 구원활동(분쟁 피해자의 귀환활동) ③ 부흥․재건(분쟁 피해자의 사회통합과 사회적 보호의 확립) ④ 화해, 공존(분쟁 피해자의 존엄 회복-사면-경미한 범죄의 불기소) ⑤ 통치․능력 강화(인권의 촉진-시민사회 강화-시민의 능력 구축)
위의 안민과 관련된 인간안보 분야는, 분쟁-전쟁 때문에 생기는 민중의 불안전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인간안보론의 가장 중요한 적용 범주는 민중의 불안전 제거이다. 민중의 불안전 제거가 안민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민중의 불안전 제거>
(「地球市民社會の硏究」 プロジェクト, 2006, 232-239)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에 나오는 ‘인간의 안전’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반대말인 ‘인간의 불안전’은 이해하기 쉽다. 이 보고서는 인간의 여러 가지 불안전에 관한 표현이 많다. 그러므로 ‘민중의 불안전을 없애는 것이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보고서를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불안전을 없앤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들의 불안전을 없애 가는 힘을 갖는 것이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는 ‘능력배양(empowerment)’을 자주 강조한다. 사람들의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이 국가의 안전보장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민중의 불안전을 없애며 이를 위한 힘을 국가가 북돋아 주는 게 인간의 안전보장이라고 기술한다.

인간의 불안전 중에는 병에 걸리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자연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이 있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에서도, 인간의 불안전과 관련하여 평화구축 문제를 다룬다. 분쟁 속에서 불안전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거론해야 한다. 분쟁이 끝난 단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라크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지속되고 있으나, 이라크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불안전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난민을 포함한 이주자의 불안전을 거론해야 한다. 상호 불안전 상태에서 공통의 안전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분쟁 아래에서 ‘공통된 인간안보’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분쟁 상황 속의 공통된 인간안보-시민사회의 경제활동을 연계하는 일이 중요한데, 스리랑카의 반군조직인 LTTE(타밀의 호랑이)가 지배하는 지역에서 이러한 연계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군사경제를 지원하기 위하여 생활협동조합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 지역은 싱할라족(族)과 타밀족(族) 사이의 상호 불신이 강해 테러가 빈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협동조합이 타밀 지역과 정부 관할 지역에서 동시에 활성화되면 상호 교류가 증가되어 상호 불신이 줄어들 수 있다. 분쟁지역 안의 공통된 인간안보를 이런 식으로 모색할 수 있다. 선진공업국의 시민사회와 이주자 공동체 사이에서도 상호 불신을 없애는 방식으로 공통된 인간안보를 이룰 수 있다.

<인간안보론이 적용되는 대상: 시민과 다중>

국가와의 관련 속에서 인간안보를 거론할 때 ‘시민’과 ‘多衆(multitude; 대중)’이라는 두 가지 인간 부류를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은 사람에 대하여 이리(狼)의 관계’라는 홉스(Hobbes)의 말(주2)은 안전보장과 관련이 있다. 옛날에 인간은 이리 떼처럼 서로 물어뜯어 죽였다. 홉스는, 이렇게 물어뜯어 죽이는 사람들을 다중(多衆)이라고 부른다. ‘multitude’라는 말을 사용한다. multitude, multi란 여러 잡다한 사람들이 무정부 상태를 이루며 싸우는 것을 말한다. 서로 죽이는 바람에 매우 불안하고 불안전한 상태에서 임금이라는 권력・국가와 협상하면서 국가에 모든 무기를 건네주고 ‘국가만이 무기를 사용해도 좋다. 국가만이 사람을 죽여도 좋다.’며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시민과 국가 사이의 안전을 위한 계약이다. 시민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지니고 있던 무기를 버리고, 국가만이 무기를 갖게 된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정당한 폭력을 독점하는 게 주권국가에 주어진 계약이며, 시민사회와 국가 사이의 근대적 관계가 이 계약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형태의 안전보장은, 국가가 국민-시민의 안전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외부의 적을 방어하는 틀이다. 그런데 이러한 틀을 ‘인간의 안전보장’ 개념에 따라 탈구축(脫構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를 맞이하여 시민으로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수많은 다중이 나타났다. 따라서 국가에 의한 안전보장만으로 곤란하다는 판단이 ‘인간안보론’을 강화한다. 세계화되는 상황 아래에서 시민과 다중의 처지가 다르다. 시민은 국가에 의해 안전을 보장받는다. 이와 달리 불법입국한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다중(multitude)이라고 부른다.

세계화되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비공식(informal)화 현상이 일어나 국가가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은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주자뿐만 아니라 원주민과 같이 국가가 지켜 주지 않는 사람들, 국가가 지켜 준다고 하지만 거기까지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국가의 안전보장 불능 상태에 놓인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다중이 속출한다.

이와 같이 시민과 다중의 차이가 세계화의 상황 속에서 크게 드러난다. 세계화의 상황 속에서 시민은, 국가-시장에 의해 안전보장을 받는 사람들의 수익권(受益卷)을 이룬다.(주3) 이에 반하여 다중은, 국가․시장에 의해 안전보장을 받지 못하는 수고권(受苦卷)을 이룬다. 시민의 수익권과 비(非)시민-다중의 수고권으로 나누어지는 차이가 안보의 딜레마를 대변한다.

수익권의 사람들과 수고권의 사람들이 모여 지구시민사회를 이루지만, 수고권 사람들의 인간안보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9․11 테러와 관련된 ‘반테러 전쟁’의 희생양이 된 무슬림들이 수고권에 편입되어 감시의 대상이 되었을 경우, 무슬림과 미국 시민의 차이는 크다.

이처럼 비공식화와 반테러 전쟁에 의해 지구시민사회가 불안전하다. 세계화로 말미암아 농촌과 같은 전통적인 안전 공동체가 붕괴되어 인간의 불안전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 슬럼에서 거주하는 비공식 부문(informal sector)이 급증하는 등 인간의 불안전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 비공식 부문에 속한 사람들이 선진공업지역으로
불법이주함으로써 인간의 불안전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들이 지구시민사회를 생각할 때 인간의 안전보장 특히 다중의 안전보장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 국가․대기업이 시장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앞서 다중들에게 공공재(公共財)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제국의 패권 보다 국가의 자결(自決)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시민과 다중의 공통된 안전보장에 관한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지구시민사회는 다중과의 공존․공생을 다지며 공통된 안전보장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Ⅳ. 결 론

지금까지 동양고전의 ‘안민을 통한 안보’와 현대의 ‘안민을 통한 안보’를 상호 비교하는 가운데 국가안보론과 인간안보론을 대비하면서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했다. 인간안보론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면서, 현대 사회의 ‘안민을 통한 안보’가 인간안보론에 내재해 있으며, 이러한 ‘인간안보’를 통한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함을 밝혔다. 이어 세계화 시대에서
안민을 통한 진정한 인간안보를 이루려면, 안보의 수익권에 있는 시민과 사각지대에 있는 다중의 차이․차별이 사라져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인간안보와 인간적 개발의 상호관계에 주목하면서, 아마티아 센의 내발적 발전론에 따른 인간안보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UNDP의 인간개발 보고서․‘인간 안전보장 위원회’ 보고서의 핵심 개념인 능력배양-잠재능력-권원-인간안보의 상호관계를 설명했다.

여기에서 능력배양-잠재능력-권원이 없는 민중-다중들의 안보, 즉 ‘민중안보’를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UNDP의 ‘인간안보’가 위로부터의 안보론이라면 아래로부터의 민중안보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 인간안보’의 차원에서 민중안보에 접근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민중안보는, 얼굴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민초들, 익명의 다중(multitude), 인간
대접 받는 시민이 아닌 다중-민중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이러한 민중안보와 더불어 국가안보-민족안보를 총체적으로 고려하면서 ‘안민을 통한 안보’의 틀을 짜는 게 중요하다.

이와 같은 풀뿌리 인간안보-민중안보를 기획하는 틱 나한(Tich Nhat Hanh) 스님의 사회행동 불교(Socially Engaged Buddhism) 운동을 통하여, 내발적 발전에 입각한 인간안보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캄보디아의 마하 고사난다(Maha Ghosananda) 스님이 ‘평화와 발전을 위한 운동’으로 전개하는 ‘法의 행진(Dhammayietra)’도 주목의 대상이다. 또 캄보디아의 BFD(개발을 위한 불교, Buddhism for Development)라는 NGO가 ‘총을 내려놓고 불법(佛法)을 들어 올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평화․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오랫동안의 내전으로 인간안보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캄보디아에서 ‘안민을 통한 안보’의 길을 열심히 찾고 있다.

한반도의 상황이 캄보디아와 동일하지 않지만 북한 인민의 기아, 신자유주의의 희생양이 된 남한 민중의 ‘양극화 속의 빈곤’을, ‘인간안보-안민을 통한 안보’ 논의로 분석해 내면서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는 지적(知的) 노력이 요청되며, 이 글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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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활자 매체

* 국방군사연구소 엮음 {중국 군사 사상사} (서울, 국방군사연구소, 1996)
* 기세춘 ① {동양고전 산책(1)} (서울, 바이북스, 2006)
* 기세춘 ② {동양고전 산책(2)} (서울, 바이북스, 2006)
* 이운구 외 지음 {묵가철학 연구} (서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95)
* 윤무학 {중국철학 방법론} (서울, 한울, 1999)
* 전 웅 「국가안보와 인간안보」 {국제정치 논총} 제44집 1호(2004)
* 姜國柱 지음, 국방사상 연구회 옮김 {주역과 전쟁윤리} (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4)
* 繪所秀紀 지음, 박종수 옮김 {경제발전론(開發の政治經濟學} (서울, 진영사, 2002)
* 繪所秀紀 지음, 박종수 옮김 {개발 경제학과 인도(開發經濟學とインド)} (서울, 제이앤씨, 2005)
* 諸橋轍次 지음, 김동민 외 옮김 {중국 고전 명언 사전(中國古典名言事典)} (서울, 솔 출판사, 2004)
* 西川 潤 {人間のための經濟學} (東京, 岩波書店, 2000)
* 西川 潤외 편저 {國際開發とグローバリゼーション} (東京, 日本評論社, 2006)
* 「地球市民社會の硏究」 プロジェクト 엮음  [地球市民社會の硏究 ] (東京, 中央大學出版部, 2006)

2. 인터넷 매체

* 기세춘 「공자․묵자의 평화(48)」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69호(2005. 2. 11.)
* 조성렬 「국가안보에 대한 대안적 접근: 인간안보론」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56호(2006.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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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24호에 실린 필자의 글「잘사는 평화 (14)」(2008.5.27)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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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능력배양(empowerment)은 개인이 요망하는 생활을 향수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생활에 관하여 선택-결정-실행하는 힘을 얻는 과정을 가리킨다. 잠재능력(capability)은, 한 사람이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능력하에서 달성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일’을 대표하는 일련의 선택적인 기능집합이다.(繪所秀紀, 2002, 179)
아마티아 센은 권원(entitlement)을 ‘어떤 사람이 직면한 모든 권리와 기회를 사용하는 사회에서, 그 사람이 지배할 수 있는 일련의 대체적인 재산의 집합’이라고 정의했다. 권원은 그 사람의 ‘소유권(즉 부존자원)’과 ‘교환권원’에 의해서 제약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권원을 기초로 해서, 사람은 일정한 능력, 즉 모든 것을 하는 능력(예를 들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繪所秀紀, 2005, 319)

(주2)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끝까지 추구하는 자연 상태에서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있고, ‘사람은 사람에 대하여 이리(狼)’이기 때문에 자기보존의 보증마저 없다. 그러므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은 계약으로써 국가를 만들어 ‘자연권(自然權)’을 제한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의지에 그것을 양도하여 복종한다.

(주3) 수익권에 들어간 시민들 중에서도 세계화 경제의 과대경쟁(mega competion) 체제 아래에서 인간의 안전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은 ‘다중의 수고(受苦)에 무관심한 수익권(受益卷)’ 안에 머물러 있다.